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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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최근연재일 :
2024.09.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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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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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참된 요리도 없도다 : 불가사의한 마법의 맛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소리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뭔가를 두드리는 듯한,

규칙적이고도 일정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간격을 두고서

그러나 멈추지는 않으면서

다가오듯이 계속 접근하듯이 울려퍼져서

실내를 점차 점진적으로 마치 음악이 번지듯 밀고 나가며

점점 파도처럼 멀리 잠식해오거나 잠식해나가듯이

그 음(音)은 끊어지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음악 학교의 수업에서

피아노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레이피엘페이셔스이었다.


그녀는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탈진을 해서 감정이 통째로 휘발된 것 같기도 한

어둡고 침울한 격렬한 감정들을

같은 종류의 어둡고 초췌할 정도로 침체된 표정으로

간신히 가리고 겨우 제어하고 있는 사람처럼

우울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눈부시게 새하얀 희고 부드러운 팔을 뻗어서

쇠로 된 검은 막대기를 오른 주먹에 쥐고서

책상에 기대어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쇠로 된 검은 막대기로 그 책상 옆의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겨드랑이가 양쪽 다 노출된 어깨에

두 개의 끈으로 매달린

눈부시게 흰색의 긴 치마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얼굴이 숙인 머리의 각도와 방향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 무수한 머리카락의 결들과 다발들이

땅으로 많이 쏠리듯 그러나 한편으로는 밑에서 거꾸로 뒤엎어지듯이

기묘하게 땅바닥으로 향해 있었다.


그 쇠막대기는 손잡이 부분은 약간 더 굵고 더 넓은 폭의

짙은 갈색의 나무가 손잡이처럼 원통으로 감싸고 있었고

쇠막대기의 끝은 수평으로 된 부분이 생겨서

다시 양쪽으로 두 갈래가 더 뻗어나간 것이었다.

그 쇠막대기를 자꾸만 두드리고 있어서

그래서 방에서 그런 소음(騷音)이 울려서

방의 다른 끝까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차츰 실내의 집기들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쇠막대기를 두드리는 동작에 따라서.

그녀가 쇠막대기로 만드는 음(音)에 따라서.

그녀의 의지로 만들어진 소음(騷音)이

소리의 동심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면의 무늬처럼

조금 더 먼 곳으로 자꾸만 물결처럼 퍼지면서

그렇게 닿은 곳에서 충격이 생겼는지

방의 여기저기 가구들이 흔들리면서 자꾸 파손되고 있었다.

비틀비틀거리다가 마침내 큰 굉음을 내면서

땅바닥에 옷장으로 보이는 큰 가구가 완전히 쓰러졌다.

다른 찬장이나 탁자 같은 것들도 또 좌우로 혹은 위아래로

덜커덩 덜커덩 흔들리거나 요동치듯이 솟구치고 다시

땅바닥으로 돌아가다가

천천히 연달아서 허물어지듯이 또 바닥으로 넘어져버렸다.

이미 넘어지기 전에도 금이 가거나

부스러기나 조각난 파편들이 떨어지고 있었기에

실내의 바닥으로 쓰러진 그런 가구들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것들도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이

고개를 천천히 침묵 속의 의식을 치르는 것마냥

고요하고 집중된 의지와 정념처럼

느리고 부드럽게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런 몸동작은 어딘가 처연한 여자 특유의

쓸쓸함도 엿보였지만 동시에 무서운 오싹함도 함께 내비쳤다.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그새 많이 상해 있었다.

마음의 상심이 얼굴의 상태마저도 잠식한 것처럼.

분노와 슬픔으로 무너지듯

괴롭고 고독하며 외로움을 느끼면서

그러나 격한 분노로 슬픈 우울에 거칠고 황량해진 이목구비.

흰 얼굴이라기보다는 병든 사람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고

왠지 만지게 되면 촉각에서 전해져 오는

피부의 결도 꺼칠꺼칠할 것만 같은.



부서져 버렸네.










그녀의 메마른 목소리가 한참을 두고

드디어 빈 방에 혼잣말처럼 울려퍼졌다.

그 낮은 목소리는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호소라는 단계를 넘어서서.




나의, 아기도 그렇게 죽었었지.

부서지기라도 한 것일까?


당신의 아기가 아니야.

나의 아기였다고. 나의 아기야...



그녀는 울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은 파란색처럼 이상한 색깔로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돌고 있는 빛은

뭐라고 잘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하고 기이한 이상한 색채였다.

고개를 숙이고 왼쪽의 팔을 책상에 짚고

오른손엔 아무렇게나 대충 쇠막대기를 쥐고 있는 그녀는

이젠 고개를 왼편으로 돌려서 역시 아무렇게나 무의미한 시선을

그쪽으로 대강 던지고 있었다.

피곤하고 병약해보이는 그녀는 그러나

자꾸만 두 눈에서 이상한 광채가 나오고 있었다.

심연(深淵)이 보일 것도 같고

그 심연(深淵)에서 뭔가가 떠오르기 직전의

예상할 수 없고 예상한 적도 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물빛의 흔들리며 떠오르듯이 다가오는 파동처럼.



그녀가 왼손으로 무성한 숱의 탐스러운 긴 다갈색 황금빛 금발을

무성의하게 쓸어올려서 이마에서 대충 치운 다음

다시 중얼거렸다.



내가 세상에서

내 자신이 소유하고 있었던,


여러 좋은 부분들을

드디어 잃어버리게 되었다면


그녀는 눈빛이 많이 쓸쓸해 보였다.

텅 비고 휑한 두 눈동자 속으로 그 면적만큼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그대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그랬다면


그건 내 잘못일까


내가, 내가, 너무 나약해서

내 마음 속의 악하고 잔인하며 차가운 본성이라는

내 마음의 일부에 타협해서?



그녀는 한 번 슬프고 힘없이 웃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옆얼굴이 메마르고 고독해 보였다.

그녀의 목과 그 선이 보는 사람의 눈에 그런 역할을 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세상이 날 그렇게 타락하게 만든 걸까

그가 날 이렇게 나쁜 여자로 만들어 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그만 타락하고 거친 악녀로 변해버린 걸까?





나는 더 이상 착하지 않아.

더 이상 순수하고 깨끗하지 않다고.











다시 그녀의 괴로운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당신이 훨씬 나빠...


당신은 한 번 웃을 때마다

금화 천 개씩 내야만 해...


이게 당신의 그 수준 낮은 농담이었지...

우스운 말을 하는 재능이 너무 없는

그저 건실하고 성실하며 단정한 모범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거 알아, 당신?

착실한 사람이 배신하니까

그 배신 당한 아픔이

당하게 되는 사람쪽은

몇 배는 더 심하다는 걸?




그녀는 이제 왼쪽으로 고개를 꺾은 상태에서

점점 더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시 머릿결들이 기울어지듯이 땅바닥으로 쏟아져내릴 것 같이

무성하게 아래로 드리워졌다.

빛이 가끔 들어오다가 말다가 할 때마다

방의 여러 곳들이 빛났는데

그때도 빛이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어진 그 많은 다발들을

어루만지듯이 비추고 있어서

그녀도 그녀의 머리카락도 환하기 이를 데 없는

금빛으로 빛나면서 반짝거렸다.








나는 과거에 이미 없어진

그래서 이젠 한낱 껍데기만 남은 존재야.

나는 과거에 붙잡힌 죽은 유령에 불과하다고.



그녀가 오른손으로 탕!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날 정도로 책상 옆의 빈 벽을

쥐고 있던 쇠막대기로 내리쳤다.

그 부딪친 벽에 금이 빠른 속도로 위와 옆으로 마구 퍼지듯

갈라지면서 계속 번져나가듯이

여러 갈래로 여러 개가 다시 나타난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내가 살아있는 만큼!

당신도 죽었어야만 했어!













그녀의 날카롭게 울부짖는 가늘고 높은 아름다운 목소리에

사방의 벽들이 흔들리면서

먼지들이 우수수수, 여기저기서 마구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고양이 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신경조차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녀가 서 있던, 책상에 대충 기대어서 쇠막대기로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던 벽에서

일렁이며 어른어른거리는 빛들로 이루어진

정사각형의 물결치는 면적 같은

괴상하고 신비한 공간이 생기면서

새가 한 마리 벽에서 날아서 나왔다.

천천히 아름답게 물 속에서 유영(遊泳)을 하는 듯한

곡선과 무늬로 날아다니던 새는

그녀의 맞은 편 넘어진 가구 위에 앉았다.

옷장이었다.


오색 찬란하며 번쩍번쩍거리는 깃털에,

뿔이 세 개가 난 아주 아름답고 독특한 새였다.

두 눈이 무슨 보석을 집어넣어서 만든 것처럼

미지의 불가사의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아무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고서

그 모든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차츰 그리고 갑작스럽게

츠 츠 츠 츠 츠...

이상하고 신비롭지만 생경한 처음 들어보는 소리들이 나더니

그녀의 등뒤의 양어깨에서 점점 더 빛이 뻗어나왔다.

흰 빛살들은 점차 더 넓게 번지거나 스며서 흘러내리듯이 퍼져나갔고

그 흰 빛살들은 별별 영롱하고 휘황한 색채의 광선들과

그 만큼의 광채들로 변하다가

다시 완전힌 무색이거나 투명의 극치 같은

원래대로의 흰 빛살로 돌아와서


이윽고 아름답고 큰 두 날개죽지들로 변해버렸다.

그녀는 그렇게 빛의 날개들로 눈앞 정면에 있는 벽을 향해 날아가고는

그냥 부드럽고 유연하게 통과해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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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세상의 낯선 음악 24.05.12 2 0 15쪽
40 기억이 멈춘 곳에서 시간의 공백을 기다린다 24.05.11 3 0 11쪽
39 빛을 잃은 약속과 다가올 운명들 24.05.10 2 0 13쪽
» 세상엔 참된 요리도 없도다 : 불가사의한 마법의 맛 23.12.06 3 0 9쪽
37 세상엔 참된 계절도 없도다 23.12.05 4 0 5쪽
36 세상에 참된 평화 없도다 23.12.04 2 0 8쪽
35 내일은 비록 내가 없다고 하더라도 23.12.01 6 0 8쪽
34 추억처럼 고통스러운 미래 23.11.30 9 0 7쪽
33 봉인된 장미의 열쇠 : 기억 저편에서 불어오는 노래 23.11.29 3 0 5쪽
32 가버린 날들의, 흩어진 추억들 23.11.28 2 0 6쪽
31 예전보다는 지금을, 지금보다는 먼 훗날에 23.11.27 3 0 7쪽
30 침묵으로 봉인된 이름 23.11.23 3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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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9월의 이빨 23.11.21 9 0 5쪽
27 7월의 눈동자 23.11.20 6 0 6쪽
26 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하는 한계, 23.11.19 6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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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세계는 나의 의지로부터 말할 수 있는 곳과 나의 의지로 말할 수 없는 곳까지일 뿐이다 23.11.17 6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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