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하는 한계,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아주 희미한 빛 속에서
먼지들처럼 빛을 발하는 빛의 부스러기들이
섬세하고 옅은 가루들처럼
허공에 넓고 연하게 펼쳐져서
조용히 떠돌듯이 느리고 느리게 맴을 돌면서
그러나 땅바닥으로 낙하하지는 않으면서
그녀의 주변에서 위에 떠 있었다.
그녀는 그 금빛 먼지들의 엷은 후광에 둘러싸여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직 새벽은 본격적인 것이 아니어서
환상(幻像)의 빛처럼 스며드는,
아침을 앞둔 혼돈한 흐릿한 적막(寂寞)이
방에는 깔려 있었다.
마치 새벽 안개처럼.
불사(不死)의 신체를 지니게 되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절대적인 힘을 얻게 되지.
나는
그런 소녀가
되고 싶었던 걸까?
계속해서 끊임없이 폭발하는 빛들이
그녀가 있는 방을 가득히 채울 듯이
규칙적이고도 일정하게 제각각의 운동으로
사방 팔방으로 튀어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
어지럽고도 정적이 가득한
이상하고 기이한 분위기였다.
엷은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던 투명한 어둠이
점점 더 선홍색으로 변해만 가는
느닷없는 변화가,
시간의 진행이 좀 더 선명한 의미를 향해 세상을 옮기고 가듯이
그녀를 둘러싼 공간이
인간이 가진 지각(知覺) 밖의 감각처럼
지각(知覺)하지 못하는 곳에서 몰려왔다.
그녀는 침대 위에 두 다리를 겹치고 앉아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두 무릎에 두 손등을 각각 대고 두 손바닥은 천장을 향하게
힘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게 그렇게 집어넣고
천장을 향해 약간 고개를 들듯이
턱을 올리고는 두 눈을 굳게 감고 있었다.
그래서 가느다랗고 긴 두 속눈썹의
무수히 많은 올들이
겨울철 처마밑에 매달린 고드름처럼
섬세한 의지의 표상으로
그녀의 차가운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두 눈꺼풀의 차단이 풀린
그녀의 두 눈은
햇빛이 들지 않는 창고에 보관된
조각상의 눈동자들처럼
어떤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은,
한곳에 모든 눈빛이 고정된
아주 크고 몹시도 맑고 고운 눈동자들로
차가운 물처럼 깊고
따뜻한 바다처럼 정지된
아름다운 공허였었다.
금색 섬광이 스쳐가다가
그대로 얼어붙은 혼돈이
사람의 눈에 깃들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빙글빙글 돌면서 마구 회전하는
금색 빛들이 급속도로 낙하하는 빠른 흐름처럼
그녀의 두 눈동자로
그 빛의 물길이 느리고 격렬하게 세차게 흘러 들어가고 나서는
두 눈에 드디어 빛이 떠올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는
엷고 순백색의 얇은 옷 한꺼풀이
위에도 또 아래에도 각각 하나씩
그녀의 몸을 간밤의 수면처럼
그녀를 가리고 있었다.
배는 드러난 무방비한 마음처럼
미처 다 덮지 못한 짧은 옷의 길이 때문에
옷처럼 희고 매끄러운 흰 살결이
흐르다가 멈춘 물결처럼 어른거리며 보였다.
창밖은 점점 더 밝아오는 여명(黎明)으로
조금씩 뭔가에 쫓기듯
또 사냥터에서 몰이꾼들에게 몰려서 도망가는 짐승처럼
그리고 떠내려가는 강물처럼
어둠이 자꾸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밑에서 꺼내어
자신의 오른쪽 바닥의 옆에 방향을 꺾어서 내려놓았다.
그대가 가는 곳이 어디이든
그곳이 설사 어디라고 한들,
그러나 내가 그대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녀는 몸을 왼쪽으로 밀듯이
삐뚤어지게 옆으로 기울이고
고개를 그러나 정반대로 오른쪽으로 떨구듯 틀어서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백만 개의 달과 꽃송이,
그리고 달빛이 빛나는 꽃들의 들판
그녀가 천천히
피아노의 뚜껑을 열듯이
자신의 오른쪽 다리 뒤의 종아리를,
손을 뻗었다.
그녀의 물건이 담긴 상자를 향해
마치 평소에 하던 조심스러운 동작처럼.
오른쪽 다리는 눈부시게 섬세한 연분홍의 빛살들이
마구 거센 급류처럼 그녀의 그 다리를 마구 휘감고
바람의 급작스럽고 제멋대로인 흐름과 그 변화무쌍한
방향의 변경처럼 움직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몹시도 붉은 보석이 뼈 옆에 들어가 있었다.
보석을 꺼내서 손바닥에 쥐고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아.
그렇지만
내가 말할 수 없는 사랑은
그만큼이나 아주 크지.
요염할 정도로 붉은색의 보석은
아주 크고 둥글며 공처럼 완벽한 모습인,
숨겨진 제 욕망처럼 강렬한 적색(赤色)의 광채들로
불안할 정도로 흔들리는 빛들의 난반사가
그 표면에서부터 떠올라있었다.
그녀의 두 눈동자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담담한 같은색의 광채가
바다로 침몰하는 배처럼
또한 끝없이 가라앉는 듯한 익사하는 사람처럼
침착하고 침울하게 나타나 있었다.
내 삶이 끝나는 곳에서
내가 다시 한 번 상처를 받는다고 해도
그 무엇이 또다시 내게 달라지리오.
단호한 이 마음은
당신의 운명에 함께 묶어버린 내 뜻이
모든 걸 말해주리라.
보석은 이제 피보다도 더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보석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녀가 그 보석에게 입김을
보일 듯 말 듯 아주 작게 입을 벌리고
그 세심한 입술의 틈으로 불었다.
보석을 마치 그 내부를 통과라도 한 것처럼
바람은 보석을 스치고 지나쳐가서
이윽고 벽에 뿌려지는 빗방울들처럼
허공에서 물로 변해버렸다.
내 한숨이
산과 들판과 계곡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이라면
이 세상은 얼마나
오래된 환상인가.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내 한숨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내 마음
두 번 다시 닿을 수 없는 내 슬픔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은
마법의 주문이었다.
정확하게는 마법을 행할 때의
의식상 먼저 선결해야만 하는
서두와 같은 시작하는 대사였다.
실제로 효력이 생기게 하는
본래의 목적으로 행하는
주문의 구절이 아니고.
그녀가 내쉰 입김이 변한 물들은
허공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눈부신 빛으로 반짝거리며 빛나는
짙푸른 후각처럼
옛 기억처럼
매달려 있었다.
허공은 어떤 중심에서 뻗어나간 실이
반지름이 되어 둥근 원을 그리며 회전하듯이
모든 먼지들이 다 사라진 끝에,
맑음의 극치에 다다른 듯한
투명한 공기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그만두었다.
영원히 내리는 이 비처럼
그렇게 아픈 이 운명을 탓하며.
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하는 이 한계,
그 너머에서 내가 다시 삶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러나
내가 음악을 그만둔 이유처럼
내 선택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필연이었다.
내가 거부할 수 없었던.
그녀는 이제 눈물이 글썽글썽거리는 두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울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 틈으로 진주처럼 흰 이빨들이 살짝 엿보였다.
왕립 음악 학교의 교사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입술을 약간 비틀듯이 한쪽 끝을 올리고는
일그러진 것 같기도 하고 떨기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입매로 다시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그만두었다.
미래의 예상을 그려보면서.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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