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참된 계절도 없도다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어제에게 내가 말해줬지
남자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순진하고 맑고 깨끗한 인상의 남자였다.
내가 어제와 결별하지 못한 건
내가 어제를 사랑해서가 아니라고
그러나 방에는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웃기지 않아?
그가 고개를 돌리고 방의 어느 구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랑하지도 않는데
헤어지지도 못한다니?
청년은 목의 옷깃을 곡선을 따라서 양손으로 천천히
침착하고 상냥한 손길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목의 옷깃을 매만지던 그가 그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나는 어제와 결혼하지도 못했어.
그는 이제 목에 연보라색의 대단히 맑고 눈부신,
옅으면서도 지극히 황홀하기까지 한 광채 투성이의
정육각면체를 가까이 댄 후에
정교하게 모든 모서리와 꼭지의 각을 다 깎은
그 작은 보석을 집어넣고 있었다.
목에는 길게 틈이 자그마하게 나있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힘은,
보석에게만 있는 건 꼭 아니겠지?
그가 상냥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로
너무 유쾌한 미소를 지으면서 돌아보았기 때문에
그 방에는 누군가라도 같이 있어서
그가 옷을 입고 여기저기를 매만지고 점검하면서
또 동시에 마법 같은 능력과 그런 정경으로
자신의 목에 보석을 집어넣은 걸
시종일관 다 지켜보고 있는 혹은 있을 거라는
착각이 자꾸 들게 했다.
방은 그의 인상과 입고 있는 복장처럼
아름답고 연하고 투명하고 담담하지만 화려한 장식으로
실내의 분위기를 꾸며서
참으로 안정적이고 쾌적하며 지내기에 편할 것만 같은
밝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소박한 공간으로
귀족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취향이라는 건 없어.
재능이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게 결코 아니니까.
선천적인 재능도 그렇지만,
또 후천적인 재능마저도 결국엔 갈고 닦아야만 하는 것이니까.
취향은 재능이지,
기질이 아니고
개성보다는 더 미묘하고
감각보다는 더 까다롭고
미적 가치관과 비슷한 것 같으나
더욱 고난도의 통과 과정을 요구하지.
소문 같은 유행을 단순히 따르고 덩달아 선택하는
무수한 낡은 인간들에 의하여
비록 이 거대한 세상이
안정되고 정상적인 다정함을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면
자신의, 그토록 진정으로 원하는 길과
그 길을 걸었던 삶은
그가 다시 돌아보았다.
텅 빈 방구석 한쪽을 바라보면서.
타인의 자아에 매몰된 흔적만이 있겠지?
난 내 삶에 있어서
도덕적 취향이든
삶의 방식으로서의 취향이든
연애의 취향이든 그리고 그 밖의 뭐든
결국 다 실패하고 나서야
내 취향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그래서 내가 걸어온 길도 역시 그랬음을
겨우 이제야 알게 되었어.
내 나이 스물 일곱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너무 늦은 걸까?
스물 일곱살에 처음으로
닭에 후추를 양념 친 매운 닭고기와 감자 조림을 먹어봤다면
너무 늦었듯이?
난 그래.
내가 볼 때에는
그가 다시 이젠 오른손으로
목에 난 그 틈을
재주도 좋게 벌려서
깊이 들어가 있었는지
보이지도 않던 그 정육면체의 모든 모서리와 꼭지를 깎은
아름다운 작은 연보라색의 몹시 투명하고 환한 보석을
밖으로 원래대로 꺼내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순수함도 강함이 있어야만
계속 간직할 수 있다고 봐.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강한 인간성이 어느 부분에든 있어서,
성격에 말이야,
그게 받쳐주든 지켜주든 해야
결국엔 순수한 성격도 유지된다고 생각해
약한 나머지 자신의 깨끗함을
흔들리거나 포기하거나
아니면 오염될 때 차마 막지 못했었던
그런 마음 약한 착한 사람들을 몇 명을 지켜봤거든
내가 노인은 아니지만?
그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방 한구석을 돌아보았다.
벽과 가구들과 탁자 같은 것의 위에 놓아둔
가재 도구들과 집기들만 있는 있는 방을.
벽에는 초상화들이 걸려 있었다.
아름다운 귀부인들의 초상화들과
범선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거나
신화 속의 동굴과 산맥과 숲이 그려져 있는
그런 그림들이
또한 그 아름다운 여인들의 옆에 함께
실내의 공백과 공허와 허전한 침묵처럼 같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청년은 오른손에 쥔 그 정육면체에 가까운
지극히 아름다운 작은 크기의 연보라색 보석을
거울 앞의 세로로 길고 가로로 작고 옆으로 얇은 탁자에 올려놓았다.
보석은 너무 아름다워서 빛이 굴절될 때마다
차마 눈부신 추억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이상하게 뒤흔들었다.
그렇지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면
꼭 강하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순수함이나
혹은 자신의 고유함을
어떤 방식으로든 지키거나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본질이 간직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목소리는 침착하고 차근차근 들려와서
뭔가를 조목조목 그러나 온순하고 조용하게 짚어나가듯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방의 한쪽 구석에
희고 청결하며 눈부시게 환한 빛살이 내리쬐는 곳에
한 남자가 팔짱을 끼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구부러지듯이 겹쳐서 얹고는
잠자코 벽에 기대어서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윗옷은 파란 색상의 긴팔로 된 겉옷이었고
단추를 일일이 꼼꼼이 다 채운 그 밑에는
또 흰색의 상의을 입은 것인지
언뜻 언뜻 흰색 옷들이
보이고 있었으며
바지는 길고 회색의, 고급스럽고 멋진 것이었다.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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