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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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최근연재일 :
2024.09.20 17:12
연재수 :
1,744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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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9
글자수 :
512,582

작성
24.05.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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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검은 물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나 혼자 살고 있는데,

자꾸 팬티들이 사라지고 있어.


소녀의 목소리는 맑고 명랑해서

경쾌함이 없는 일상적인 경쾌함으로 건너왔다.


그래? 이거 이거 동질감이 느껴지는데. 나~도 그래.

장난스레 대답하는 목소리 역시 맑고 아름다운

높고 가녀린 소녀의 음성이었다.



두 소녀들은 열심히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같은 곡을 하나의 악보에서 다른 악보로 옮기는,

말하자면 악보를 베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머? 별일이~다!

넌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잖아?

고개도 들지 않고 바쁘게 펜으로 악보를 베껴서

똑같지만 다른 그러나 약간 색깔은 다른 오선지 종이들 위에

부지런히 똑같게 음표들을 옮기고 있는 소녀는

진주처럼 그리고 보석처럼 눈부시게 반짝이는

하얗고 깨끗한 치아를 드러내며

살짝 웃었다.

아마 새 오선지들이어서 종이의 색깔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소녀의 통제를 벗어난 머리카락들이

책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 앞으로

가볍게 곡선의 빛살들로 드리워져서

내비치는 반투명(半透明)의 아름다운 베일처럼

그러나 듬성듬성한 대단히 엉성한 차단막처럼 가리듯

속으로 들여다보이게 하는 탓에

그녀의 아래로 숙이고 있는 얼굴이 햇살에 유난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춘기 시절의 흔적이자 영광인

희미한 주근깨들이 아직도 많이 있었다.

눈썹이 곧고 아름답게 양쪽으로 펼쳐지면서 뻗어나가서

그녀의 단정한 분위기 같은 것이

명랑한 말투나 성격과 약간 대조적인 강조를 이루고

타인이 받을 인상에 남았다.





그렇기야~, 그렇지.

하지만 누가 알아? 내 팬티들이 왜 없어지는지.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주근깨가 꽤 있는 아름다운 미소녀가 갑작스레 신 나게

즐거운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손은 쉬지 않고 계속 음표들을 그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인지 좀 조사를 해봐~!


주근깨 미소녀는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개는 들지 않고 악보만 베끼고 있었다.

많이 바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점은 상대방인 다른 소녀도 마찬가지인 것만 같았다.

그 소녀 역시 바쁘게 악보를 연신 베끼고 있었으니까.

둘은 친구지간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같이 음악을 배우거나 하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있겠니?


그 말을 하며 주근깨 소녀의 상대인

친구 같아 보이던 소녀가 고개를 돌려서

잠깐 멈춘 다음에 주근깨 미소녀를 잠시 쳐다보았다.

턱이 약간 가운데가 갈라지고 눈이 몹시 컸지만

그녀 역시 인상적인 외모의 예쁜 소녀였다.

무성하고 풍성한 금발이 찬란하다고 할 만큼 눈부신 금빛이었다.

장난스럽게 노려보는 앙큼한 눈빛은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기대에 보답할 수 없는 것이 주근깨가 난

미소녀였었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바쁘게 혹은 신중하게

악보를 베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금발이 눈부신 가운데 턱끝이 약간 갈라진 미소녀도

다시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같이 악보를 베껴서 옮기며 다시 말했다.

집안의 식구가 그런 짓을 했으면 또 어떡해?



주근깨가 난 미소녀가 말했다.

그런데, 며칠 뒤 학교 내의 자체 경연에서 누가 우승할까?


그 대답은 눈부신 계절의 한숨 같은 산들바람처럼

너무 경쾌하고 상냥하며 동시에 설렘 같은 기쁨이 들어가 있었다.

대답이라기보다는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글~ 쎄...?

턱끝이 갈라지고 두 눈이 몹시 크고 빛나는 소녀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길게 말꼬리를 끌면서

또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난...

알고 있어.

누가 우승할지.


누군데?

급하고 빠르게 그리고 궁금하다는 듯이

금발 미소녀가 잽싸게 즉각 물어보았다.

둘 다 막바지라도 된 것처럼 한층 급해졌다.


피아노 경연 대회의 우승자는,

바로 나야, 나.


그날 우승자는 바로 나야, 나~!


금발이 무성할 정도로 길고 숱 많은 미소녀가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크고 길게 웃었다.

아까의 주근깨소녀처럼 이번에는 턱끝이 갈라진 미소녀가.


그럼 나는?



넌?...음, 차석은 시켜줄게.


누구 맘대로?

고개도 들지 않고 진지하며 단호할 정도로 빠른 주근깨 소녀의 대답에

금발의 미소녀가 역시 바쁘게 악보를 옮겨 적느라

고개를 마찬가지로 들지 않아서 서로 쳐다도 보지 않았지만

우습다는 듯이 대꾸했다.


글쎄~!?

그게 마음대로 될까? 우리 학교의 다른 미래의 피아노 연주자들이?

장차 거장이 꼭 될 거라는 그 대단한 애들이 가만히 너를 내버려둘까?


글쎄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길게 끌어서 세 글자처럼 들리게

그녀는 약간 장난스러웠다.



주근깨 미소녀가 악보들을 한아름 집어서

금발머리 미소녀에게 넘겨주었다.

소매가 약간 올라간 놀라울 만큼 흰 팔뚝에 이리저리 드러난

흐릿한 초록색에 가까운 아주 옅은 색의 푸른 혈관들이

빛이 지나간 흔적 같은 섬세한 애수(哀愁)로

그녀의 청춘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 끝냈어. 그냥 드리면 될 거야.

살짝 미소를 짓는 주근깨의 두 눈은

깊은 여름 바다의 표면이나

매혹적이고 무척 고가(高價)의 보석처럼

기쁨에 가득 찬 연한 빛들로 빛나면서 파랗고 깊고 서늘했다.


그리고,

그런 애들은 어차피 내겐 상대가 되지도 않아,

다들 팬티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종족이거든.

괴물이라고.괴~ 물~ !







커튼이 가볍고 찬란하게 빛살들과 함께 흔들리는

음악실에는 길게 아름답고 투명한 빛줄기들이 비스듬히

눈에 보이게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활짝 다 열어젖힌 여러 창문들로 내리비치면서 들어와서

눈부신 맑음 속에 투명한 듯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

불투명함이 있는 듯

애틋한 추억 같은 몹시 감미로운 젊음이 머물렀었던

어느 한때로서의

행복하고 충만한 서정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날은 상쾌하고 싱그러웠고 이 계절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한가하고 역설적으로 편안했는지도 몰랐다.

수업실에서는 높고 신 나는 웃음소리가 천장까지 가득히 울려퍼졌다.

두 소녀가 보이지 않는 창문 밖 화단에서는

나무 가지들의 잎새가 펄럭이듯 잔바람에 맑은 그림자들로 술렁거렸다.

바람이 상쾌한 저온이어서 따가워진 한낮의 햇살에

실내 안팎으로 지낼 때마다 기분이 쾌적했다.


비록 집으로 돌아간 주근깨 소녀의 기분은 그렇지 않았지만.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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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무음(無音)과 망각(忘却)과 무의미(無意味) 24.05.22 2 0 15쪽
43 약속의 땅 24.05.15 3 0 14쪽
» 검은 물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 24.05.13 7 0 6쪽
41 세상의 낯선 음악 24.05.12 2 0 15쪽
40 기억이 멈춘 곳에서 시간의 공백을 기다린다 24.05.11 4 0 11쪽
39 빛을 잃은 약속과 다가올 운명들 24.05.10 3 0 13쪽
38 세상엔 참된 요리도 없도다 : 불가사의한 마법의 맛 23.12.06 4 0 9쪽
37 세상엔 참된 계절도 없도다 23.12.05 4 0 5쪽
36 세상에 참된 평화 없도다 23.12.04 3 0 8쪽
35 내일은 비록 내가 없다고 하더라도 23.12.01 7 0 8쪽
34 추억처럼 고통스러운 미래 23.11.30 11 0 7쪽
33 봉인된 장미의 열쇠 : 기억 저편에서 불어오는 노래 23.11.29 3 0 5쪽
32 가버린 날들의, 흩어진 추억들 23.11.28 2 0 6쪽
31 예전보다는 지금을, 지금보다는 먼 훗날에 23.11.27 4 0 7쪽
30 침묵으로 봉인된 이름 23.11.23 3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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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언어는 사랑을 위장한다 23.11.15 7 0 5쪽
21 비와 당신의 묘지(붕괴와 시작의 서막) 23.11.14 3 0 7쪽
20 20회: 방황하는 가을날의 넋들 23.11.13 3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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