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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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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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6,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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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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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챕터8-149(완). 전생- 이별의 기억 (4)

DUMMY

계순은 잠겨가는 두 눈을 애써 뜬 채 소우타의 귓가에 속삭였다.


“소우타! 나... 죽기 전에 꼭 말하고 싶었어. 정말 많이 사랑했어. 아니 지금도 사랑해. 우리 다음 생에 꼭 만나.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 모습 이 얼굴 그대로 태어날게. 그러니까 우리 꼭 다시 만나? 내 얼굴 그대로 일테니까 꼭 나 알아보고 다시 찾아야 해? 우리... 우리 꼭 다시 만나서 또 사랑하자. 알았지? 소우타... 사랑해.”


계순은 이내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했다는 듯이 살짝 웃어보이며 소우타의 볼을 소중히 어루만졌다.


소우타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선물해 준 꽃모양의 옥색 비취가 박힌 얇은 금으로 된 실팔찌는 계순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은은한 애매랄드빛 꽃은 계순이 제일 좋아하는 배꽃이었다.


- 우리 아부지 보시면 또 한소리 하시겠네. 분명 그러시겠지...? 꽃이야 지고 말면 그뿐... 이러실 거 같은데... 죄송해요 아부지...


계순은 부디 자신의 바랄 것 없는 삶에 다른 이들이 절절한 기다림으로 얽매이지 않기를 소원하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햇살이 눈부셨다.


그녀는 자신의 남아있던 마지막 힘을 다해 소우타를 끌어 안았다.


아직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이었지만 제5광산 안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게워내지 못한 슬픔 때문인지 폭발음이 연이어 들리는 광산 앞은 얼어붙을 만큼 차가웠다.


운명이란 것은 떠나려는 별과 자리를 지키려는 별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는 힘과 같은 것이었다. 멀리서 스치기만 할 뿐 절대 만나지 않고, 닿아서도 안 되는 것이 운명이었다.


소우타와 계순은 그런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황금빛 햇살이 드리워졌던 청량하고 온화한 미소는 지금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한데, 서로를 향한 사랑을 전하지 못해 그 회한(悔恨)을 가슴에 독(毒)처럼 품은 채 소우타와 계순은 그렇게 이별을 맞이했다.


오늘도 하늘이 비친 태백 광산마을의 산봉우리는 의연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움은 과거라는 시간의 나무에서 흩날리는 낙엽이고, 기다림은 미래라는 시간의 나무에서 흔들리는 꽃잎이라 하던가.


맑고 청량한 가을 하늘을 가로질러 제5광산 앞에 갑자기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커다란 뿔이 양쪽에 달린 집채만한 소 한 마리가 앉아 무엇이 그리 서럽고 구슬픈지 '꺽꺽'대며 숨이 넘어가라 울고 있었다.


소의 온몸에는 검디 검은 털이 가득 자라있었는데 머리에 매달린 뿔만 아니었다면 얼핏보아 ‘말’같아 보이기도 했다.


머리 위의 갈퀴와 발굽 밑, 그리고 꼬리에는 새빨간 불꽃이 털갈퀴처럼 매달려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뒤쪽으로 멀리 보이는 뒷산에는 평소에 흔히 보이던 조각구름 한 점 없었다.


- 행복하게 살려 하다 보니 불행이 찾아오는 법. 오르막길이 있으니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다. 행복하려 하니 불행한 것이다. 백년을 살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삶이 오면 삶과 함께하고, 죽음이 오면 죽음과 마주한다. 삶과 죽음은 손바닥 뒤집기와 같다. 삶과 죽음도 둘이 아니다. 탄생이 고통의 시작이고 죽음이 안식의 시작일 수도...


검은 황소의 입에서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광산 내에서 모락모락 검은 아지랑이가 맺히더니 이윽고 어떤 사람 형상을 한 검은 형체가 황소 앞에 서서 말했다.


- 누구십니까?


- 사람들이 나를 이르길, ‘깡철이’라고 부르더군. 내 그대에게 묻겠다. 무엇이 그리 원통하더냐.


- 죽이고 싶습니다. 제 한몸 불태워서라도! 꼭 죽이고 싶습니다!


- 그래, 무엇을 죽이고 싶더냐?


황소 한 마리가 그 검은 형체를 향해 물었다. 검은 형체는 이윽고 결심했다는 듯이 굳세게 말했다.


- 내 원(願)을 이루지 못하게 한 놈들을 모조리 죽일 겁니다! 씨를 말려 버릴 것입니다!


- 그대의 원(願)이 그러하다면. 이루어지리라.


황소는 이윽고 ‘컥컥’거리는 구슬픈 울부짖음을 마지막으로 저 멀리 하늘 어디론가 달리듯이 날아가버렸다.


- 내 소우타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갈기갈기 찢어 씹어먹을테다!


검은 형체는 피눈물이라도 흐른 것인지 검붉은 핏줄기로 젖은 두 눈으로 서로를 껴안고 차갑게 식어버린 소우타와 계순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 꽃이야 지고 말면 그 뿐...





<챕터8. 완결>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챕터9. 봉인>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 사형! 언제까지 산을 타야 해요? 나 힘들다구요! 이대로 뒈져버리겠네!”


이마에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살짝 짜증 섞인 말을 내뱉고 있는 것은 어린 중학생 선아였다.


그녀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가끔씩 자신의 목에 걸린 작은 은장도를 한 번씩 손에 쥐고는 소중하다는 듯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일전에 선아의 엄마가 수희를 만났을 때, 그녀에게 전해준 유품이었다.


뒤쳐진 선아를 흘끗 뒤돌아보며 천수도령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아이고! 선아야, 평소에 운동 좀 해야겠다. 겨우 이거 오르고 힘들다고 그러면 어떻게 하니?”


“그러게나 말이에요! 저 앞에 우리보다 나이가 더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저렇게 잘만 산 올라가시는구만! 한창 팔팔할 나이인 애가 겨우 이정도 낮은 산 오르는 거 가지고 이렇게 헥헥 대면 어떻게 해?”


살짝 웃으며 천수도령의 말을 거드는 승주마저 선아를 나무라자 선아는 입술을 잔뜩 삐죽 내밀며 뾰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우리 반에 다른 애들은 나보다 더 저질 체력이거든요? 으이구, 내가 말을 말자 말을!”


선아가 인상을 팍팍 쓰며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천수도령 바로 옆에 바싹 붙어 섰다.


선아가 걸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수도령은 선아가 자신을 추월해 산 위로 올라가자 그녀의 등 뒤로 살짝 인사를 하는지 고개를 숙여보였다.


천수도령의 눈에 비친 것은 선아의 등에 붙어있는 그녀의 어머니의 영혼이었다.


- 수희 말로는 대단한 만신이신 것 같다고 들었는데, 해태와 친분이 있을 정도로 강한 신을 모셨다더니 돌아가셔도 자기 딸 지킨다고 저리 붙어계시네... 참....


자식을 지키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을 그 누가 막으랴.


죽어서도 환생을 포기하고 자식의 옆에 붙어있고 싶어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 것일까. 수희는 선아에게 소중히 간직하라며 선아의 어머니가 수희에게 주었던 은장도를 선아에게 주었고, 천수도령 자신이 그것을 목걸이로 매달아 선아가 늘 차고 다닐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수희는 구미에서 무명도사의 사건이 있은 뒤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신변을 조금씩 정리했다.


마치 모든 것을 걸겠다는 듯이 구는 그녀의 태도에 함께 산다는 승주는 불안하고 초조해했다.


하지만 수희는 이제 더 이상은 물러날 것이 없다는 듯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부탁을 꺼내기 시작했다.


“승주언니랑, 선아, 그리고 천수오빠는 이 푸른 돌 좀 조사해줘요. 분명 무명도사가 남긴 건데 이게 화마랑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화마랑 딱히 관련이 없으면 나중에 뭐 써먹을 데가 있겠지. 일단 위험한 물건일 수도 있으니... 천수오빠가 가지고 있어!”


웃음기 하나 없이 수희는 선아와 승주, 그리고 천수도령 자신에게 무명도사의 사건 때 얻은 작은 푸른색 돌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천수도령은 그 푸른 돌을 복주머니에 넣은 채로, 자신의 품안에 넣어두었지만 분명 이 푸른색 돌이 어떤 광물인지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지면 눈부시게 영롱한 푸른빛을 가득 내뿜어내 신기한 귀물(鬼物)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스승인 무명도사를 떠나보낸 윤재가 의식을 잃고 병원에서 이틀 만에 깨어난 직후의 일이었다.


그가 의식을 차리자마자 수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윤재를 바라보고 말했다.


“드디어 일어났네? 잘 됐다. 너 지방 좀 내려가서 정보 좀 캐 와라! 아무래도 봉인이나 결계에 관한 건 나보다는 너가 더 전문적 이다보니 니가 다녀오는 게 맞는 거 같아. 걸을 만 하지? 지금 바로 전남 함평 지역에서 행해졌던 불막이제에 대해 조사해주면 돼. 직접 발로 뛰어서 찾아봐야 할거야. 그 어떤 자료도 남아있는 게 없거든...”


수희는 윤재에게 선아의 어머니가 목숨을 걸어 천기누설을 하면서까지 알려준 전라남도 함평 지역에서 행해지던 불막이제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수희 말로는 자신이 알고 지내는 여러 민속학 교수들이나 무당들에게 불막이제에 대한 것을 수소문해보았지만 딱히 아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보아 직접 함평 지역을 찾아가 조사 해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수희는 상현에게 태백 철암 탄광마을의 동행을 요청했다.


그렇게 수희의 주변 사람들을 향해 수희가 마치 작전을 세운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명령같은 부탁을 내뱉자 모두는 저마다 떨떠름한 마음으로 수희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 모두가 수희의 부탁을 들어주기 싫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수희의 부탁이 찜찜하고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선아의 빠른 발걸음을 뒤쫓으며 천수도령을 향해 조용하게 무언가 말하기 시작하는 승주의 두 눈에도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저기.... 수희랑 잘 알고 지내시는 거 같던데.”


“네. 사연이 좀 있죠. 승주 씨는 부적을 쓰신다고요?”


서로 처음 보아 데면데면하고 어색했던 둘은 조심스럽게 수희를 언급하며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등산로 초입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뒤로, 산을 오르면서 서로 대화한마디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승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혹시 못 느끼셨어요?”


“뭐를요? 영(靈)적인 것이라면 제가 못 느끼지는 않았을 텐데 이 곳에서 뭐가 느껴지세요?”


천수도령이 이상한 듯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자 승주가 고개를 슬며시 가로저으며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영적인 것은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 수희가 좀... 이상해서요.”


“역시... 저만 느낀 게 아닌가보네요. 수희가... 다 내려놓고 죽을 각오로 덤비려나봅니다.”


“그쵸? 맞죠? 수희.... 지금 화마하고 끝장을 볼... 허... 참... 죽을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천수도령은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랑했던 연인 시우를 떠나보낸 자신 역시 남은 인생을 모두 그녀를 구제하기 위해 수살귀들을 천도하며 살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하나도 아닌 여럿이나 그렇게 무참히 도륙당한 수희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불구덩이 속에 뛰쳐 들어갈 아이였다.


“막아야하지 않을까요? 복수는 하더라도... 왜 죽을 생각을....”


“일단 모른 척 두세요. 당연히 우리가 막아야죠!”


어느새 눈가에 굵은 눈물이 맺히며 울려고 하는 승주를 향해 천수도령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 승주 역시 옅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수희를 죽게 두었다가는 평생 마음에 돌 하나가 박힌 것처럼 편히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니 이대로 수희를 죽게 둘 바엔 수희의 복수를 막아설 생각까지 하고 있는 승주였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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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챕터9-163.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2) 24.01.02 1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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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챕터9-161.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2) 24.01.01 19 2 12쪽
160 챕터9-160.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1) 24.01.01 20 2 11쪽
159 챕터9-159.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2) 23.12.31 20 2 11쪽
158 챕터9-158.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1) 23.12.31 18 2 12쪽
157 챕터9-157.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3) 23.12.30 17 2 12쪽
156 챕터9-156.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2) 23.12.30 22 2 11쪽
155 챕터9-155.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1) 23.12.29 20 2 11쪽
154 챕터9-154.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2) 23.12.29 18 2 11쪽
153 챕터9-153.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1) 23.12.28 19 2 11쪽
152 챕터9-152. 화마 봉인- 양물단지 23.12.28 16 2 11쪽
151 챕터9-151.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2) 23.12.27 18 1 11쪽
150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23.12.27 20 1 11쪽
» 챕터8-149(완). 전생- 이별의 기억 (4) 23.12.26 18 1 12쪽
148 챕터8-148. 전생- 이별의 기억 (3) 23.12.26 16 1 12쪽
147 챕터8-147. 전생- 이별의 기억 (2) 23.12.25 16 1 12쪽
146 챕터8-146. 전생- 이별의 기억 (1) 23.12.25 16 1 11쪽
145 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23.12.24 15 1 12쪽
144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23.12.24 16 1 11쪽
143 챕터8-143. 전생- 거사의 기억 (1) 23.12.23 16 1 12쪽
142 챕터8-142. 전생- 유린의 기억 (3) 23.12.23 15 1 11쪽
141 챕터8-141. 전생- 유린의 기억 (2) 23.12.22 19 1 11쪽
140 챕터8-140. 전생- 유린의 기억 (1) 23.12.22 2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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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챕터8-138.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2) 23.12.21 17 1 11쪽
137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23.12.20 17 1 12쪽
136 챕터8-136. 전생- 만주의 기억 (2) 23.12.20 17 1 11쪽
135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23.12.19 19 1 11쪽
134 챕터8-134. 전생- 전생의 기억 (3) 23.12.19 2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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