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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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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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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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6-100. 사이비(似而非)- 폐아파트 (5)

DUMMY

갑자기 환한 하얀색 빛이 결계를 그린 바닥에서부터 가득 뿜어져 나오자 여자귀신 둘은 윤재를 노려보며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둘은 고통스럽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윤재는 황급히 민혁에게 다가가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키며 스승 무명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편 윤재가 한창 결계를 쳐 민혁을 지키고 있는 동안 무명은 재빠른 걸음으로 돌산을 올랐다. 무명은 어느새 아까 기린처럼 목을 기다랗게 내밀고 미친듯이 춤을 추던 여자귀신들이 있던 곳까지 순식간에 다가섰다.


그녀들이 서서 빙글빙글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했던 곳에 다다르자 무명은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에 구역질이 치밀었다.


- 윽! 이게 뭐야?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무명이 서둘러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니 흙을 새로 덮은 듯한 이상한 터가 하나 보였다.


분명 돌산인 줄만 알았던 산은 그녀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산 중턱까지 오르자 짙은 갈색 흙이 보이며 오래 되어보이는 나무들도 간간히 보였다.


- 완전히 통으로 된 돌산이 아니었구나. 흠... 이게 뭘까...


무명이 언제 자신에게 공격이 들어올지 몰라 예의주시하며 주변을 살펴보는 동안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 어떤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이놈!


무명이 놀라 뒤를 바라보자 화려한 오색무복(巫服)을 입은 어떤 여자 하나가 보였다.


- 이곳 터주는 아니신 거 같고. ‘무당귀’이신가본데... 여기서 사람들을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요?


무명이 차분한 목소리로 묻자 그 무당귀신은 무서운 눈빛으로 무명을 쏘아보며 외쳤다.


- 이 놈들은 내 무덤을 없앤 걸로도 모자라, 나와 내 제자들까지 불 싸질렀다! 내 이 새끼들 씨를 다 말려 버릴 것이야!


살기어린 무서운 기세로 말하는 그녀를 무명이 말없이 쳐다보자 무복을 입은 귀신이 아까처럼 목을 길게 빼면서 무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뱀처럼 목이 길게 늘어나 무명을 향해 날아오는 그녀의 얼굴은 흉측하게 화상을 입은 것처럼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 어이쿠!


무명이 재빨리 몸을 비틀어 그녀의 얼굴을 피한 뒤, 재빨리 가슴 속에서 하얀 나비모양의 종이 몇 장을 꺼내 허공에 띄웠다.


종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나비처럼 날개짓을 퍼덕이며 무명의 얼굴 앞에서 두둥실 떠있었다.


- 역시 평범한 일반인은 아니로구나! 왜 나를 막는 것이냐! 원통한 나를 왜 막는 것이야?!


바락바락 악을 쓰며 무당귀신이 무명을 노려보며 말하자 무명이 차분히 대답했다.


- 천천히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주셔야 제가 해결해드릴 것이 아닌가요? 다짜고짜 죽인다고 하시면 제가 ‘예, 그러십시오’ 하고 물러날 것이라 생각하신거요?


무명이 껄껄 웃으며 말하자, 약이 잔뜩 오른 듯한 귀신이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 그럼 어디 내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도... 내 행동이 틀렸다 말할 수 있는지 보겠다.


그녀의 목은 순식간에 원래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무명을 노려보는 매서운 눈빛만큼은 여전했다.


- 나는 본래 이 곳에서 대대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모시던 만신(滿身)이었다. 이 돌산은 원래 큰 화장터가 있었지. 무연고 시신이나 가족들한테 버림받은 행려병자들을 화장해서 묻었던 공동묘지였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오기 꺼려하고 두려워하던 버림받은 땅이었지. 우리가 무덤을 관리하는 대신 내 선대 윗 신어머니부터 시작해 마을의 안녕을 빌면서 대대로 세습무당 제자들이 이 무덤가 근처에 당집을 짓고 살 수 있었다. 이곳이 불길하다고 해도 나름대로 영험한 기운이 깃든 영산(靈山)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세습도 끊기고, 나와 내 마지막 제자들은 이곳에서 대가 끊긴 채 죽고 이곳에 묻혔다.


- 다들 이런 시골에서 무당이 되려하지는 않죠. 더군다나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도 선대의 유지를 이어받으려 하지 않아요. 고생하고 싶어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명의 말이 맞았다.


어느새 시대는 바뀌어 이제 무당들이 인터넷 채팅이나 SNS로 점사를 보는 시대가 되었다.


일반인들도 쉽게 유투브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점사를 보며 무속(巫俗)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어 허주 잡신을 모시는 사짜 무당들이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동굴에 틀어박혀 십수년을 공부를 하거나 힘들게 수련을 쌓아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영험한 이 돌산에서 수십년간 세습무당으로서 자리를 지키는 이 여자귀신처럼 공(工)을 쌓아 무속을 공부하려 하지 않았다.


무명의 말에 여자귀신 역시 동의한다는 듯이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내 바뀌어 가는 시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잊혀져 가고, 사라져야하는 문화와 전통이라면 마땅히 응당 그래야하겠지. 그것을 원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 그러면 무엇이 그리 원통하셔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시는지요?


무명이 공손히 묻자 무당귀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오며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


- 어느 날 이 산을 깎아 아파트를 짓는다며 땅을 파헤치고 무덤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와 내 제자들 더 나아가 내 스승님의 무덤까지 파헤쳐지기 시작했지. 그것이 원통하다는 것이다! 이 개잡놈들이 나를 그리고 내 제자들을 죽어서까지 죽였다! 다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순간 자신의 눈 앞에서 말하는 무당귀신의 말에 무명의 눈이 깜짝 놀라 한껏 커졌다.


이윽고 그녀가 말해주는 광경은 처참했다.


그녀가 보내오는 전사(轉寫)된 화경 속 모습은 참으로 황당하기가 그지없었다.


세 대의 포크레인이 산비탈 경사면에서 무자비하게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굴삭기들이 산에서 일하는 경우는 일반인들에게 낯선 광경일 것이다.


하지만 흔히 산비탈을 깎아 터를 다지는 경우, 굴삭기가 산경사면을 타고 공사하는 일은 공사판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흔히 휴지나 종이를 만들기 위한 나무를 다듬기 위해 전기톱을 다루는 톱사들이 나무질을 해놓고, 굴삭기들이 먼저 벌목을 하는 작업을 벌인다. 이 작업을 ‘삼판현장’이라고 하는데 이 삼판현장은 보통 우거진 나뭇잎과 우성한 잡초들 때문에 묘지가 가려지면서 무덤이나 묘가 훼손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곳 폐아파트 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거진 수풀과 나무이파리들로 인해 무당들의 무덤과 묘지가 가려지면서 경사지를 오르락내리락 하던 굴삭기가 그만 봉분에 박혀 관을 훼손하고야 말았다.


보통 지역 유지나 양반, 혹은 부자들은 무덤 속에 관을 3미터 가량 깊게 묻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관은 그렇게 깊이 묻지 못했다.


굴삭기 포크레인에 찍힌 관은 그대로 두동강이 나버렸고, 그걸 알게 된 굴삭기 기사는 바로 굴삭기에서 내려 무덤가에 엎드리며 사죄를 하고 수습을 하려 했다.


문제는 세대의 굴삭기들이 그런 식으로 파헤치면서 훼손한 무덤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곳은 말 그대로 무덤들의 밭이었다.


이윽고 공사를 관리 감독하는 작업반장이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거야! 시간없어! 그냥 대충 파묻어버려!”


그의 말에 3대의 굴삭기 기사들은 완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굴삭 작업을 거부했다.


굴삭기 기사들 사이에 금기처럼 내려오는 미신이 있었다. 혹여나 굴삭기 작업 중 묘지를 훼손하거나 봉분을 다치게 했다면 바로 땅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사과를 올리고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제사를 지내드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업 일정이 촉박했던 작업반장은 제사는 무슨 제사냐며 작업을 독촉했고, 결국 굴삭기 팀의 팀장은 다른 두 명의 굴삭기 기사들과 함께 작업을 못하겠다며 그대로 숙소로 가버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작업반장을 비롯한 몇몇 인부들이 새벽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굴삭기들이 파헤친 무덤 속 관들을 모두 굴삭기로 마구잡이로 퍼낸 다음 한데 모아 휘발유 신나를 뿌려 불태우고는 그대로 그 뼛가루를 땅에 파묻어버렸다.


지금 무명이 밟고 있는 이상한 흙색의 터가 바로 그 자리였다.


- 이제 알겠는가? 지금 네가 밟고 있는 발밑에는 무수히 많은 이들의 뼛조각이 그대로 파묻혀있다. 나와 내 제자들은 불에 타 뼈조차 남질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이 곳에 관련된 사람들을 멀쩡히 살려둘 수 있겠느냐! 그래야 하느냐?!


무명은 그녀의 모든 사정을 알게 된 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불과 몇 주 전에 양부터널 사건 때, ‘산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냐’는 윤재의 말에 버럭 화를 냈던 자신이었다.


아무리 산사람이 우선이라 할지라도 안식처인 무덤과 관을 파헤치고 아무런 뒷수습 없이 그저 흙을 메꾸고 아파트를 쌓아올린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분노와 원망이 한(恨)처럼 쌓였을 터였다.


- 차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겠습니까?


- 당신도 무당팔자니까 우리 소임을 알테지... 어르고 달래 올려 보내는 것이 마땅하지만 내 분노가 내 억울함이 그리 쉽게 풀릴 것은 아니네! 달랜다고 달래질 것도 아니고, 이 한(恨)을 풀 수는 없을 것이야!


어느새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봐준 무명에게 경어체로 존대를 하고 있는 무당귀신의 두 눈에서 또다시 굵고 시뻘건 피눈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수십 개의 영혼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단체로 시위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무명은 난감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이럴 때, 이럴 때.... 내 스승님이라면 어찌 하셨을까... 어째야 할까... 스승님... 어째야 합니까....


무명은 깊은 고민과 번뇌에 휩쌓였다.


- 스승님! 대체 어찌 해야 합니까...


답답한 무명은 그만 두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그 때였다.


갑자기 엄청 큰 방울소리가 무명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청아하고 맑은 방울소리가 아니라 머리가 터질 듯이 귀가 쨍한 방울소리와 우는 듯 웃는 듯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까지 겹쳐서 들려왔다.


무명 눈앞에 오색한복을 입은 무당귀가 피눈물을 흘리며 맨바닥에서 뛰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맨바닥에 뛰는 듯 했지만 무명은 이내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무당이 작두를 탈 때의 모습이었다.


- 다 태워버릴 거야! 다 죽여 버릴거야!


무당의 목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무명이 지켜보니 피부가 다 벗겨져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다른 여자 둘이 그녀 옆에서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무명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속으로 생각했다.


무당이 춤을 추자 아파트 외벽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 저 아파트가 전부 다 피로 물들면 다 죽일 것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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