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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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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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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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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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현이

DUMMY

“누나~ 나 좀 살려줘~”


“어서 와요. 내려오느라 고생했어요.”


“아니에요. 형님. 고생은요. 바쁘실 텐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보자마자 죽는소리하는 피붙이보다 그의 아내를 반갑게 맞이하는 하윤은 아쉬울 때만 친한 척하는 놈이 얄미웠지만 그래도 동생이라고 차마 매몰차게 내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엔 누가 죽인다디?”


“국세청에서 조사 나왔던 건 알지?”


강현의 비리를 의심한 국세청에서 대놓고 관련 자료를 요구한 것은 이미 몇 달 전의 일이다.


몇 번을 확인하고 누락 없이 전달한 자료는 해외 출장 중 유흥비로 사용한 업무추진비와 여기저기 보낸 선물, 접대비 등 시답잖은 내용이 전부였다.


배임이나 횡령으로 걸기엔 규모도 자잘했고 이미 가지급금으로 처리한 항목이었기에 아무도 그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액수가 많으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법인기업의 대표가 유흥비라고 써봐야 호화로운 요트를 빌려 선상 파티를 한 것도 아니고 몇 푼이나 나오겠는가?


한 병에 몇억씩 하는 어른들의 술도 존재하는 모양이지만 그런 걸 하룻밤에 몇 병씩 불어 재낄 정도로 간 큰 강현이 아니었다.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행위의 위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법정에서 다투면 그만이다.


유죄판결이 나와도 중범죄라 하기엔 처벌도 가벼운 축에 속했고 실형을 선고받는다 해도 재심도 있고, 보석도 있다. 굳이 ‘재벌 3·5 법칙’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법무팀이 왜 있겠는가? 이미 심의 끝에 결론 내리고 보낸 자료였기에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자세한 내용까지 관심 두지 않았던 하윤은 그게 왜 문제인지 의아했다.


“끝난 거 아냐? 그 뒤로 보고서까지 봤다며? 별거 없다고 신경 끄라고 하지 않았어?”


이미 법무팀이 국세청 내부에서만 움직이는 보고서까지 확인했다. 그들의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해놓고 왜 이렇게 호들갑일까?


“그게 끝이 아니었어. 첨부 파일에 핵심이 있었어.”


“뭔데?”


“나 대표 달면서 작업했던 거 기억나? ”


단순히 물류의 대표로 선임되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지분도 확보해야 했던 강현에게 온 식구가 달라붙어 밀어준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백 회장이 증여한 현금에서 증여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계열사 중 비상장 주식을 사들였다. 그렇게 확보한 주식은 적절한 시기에 해당 계열사를 상장시키면 몇 배로 불어나게 된다.


그 시기에 맞춰 백연 그룹의 오너 일가와 계열사 임원들에게 리조트 사업부의 전환사채(만기일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회사채)를 헐값에 발행했다.


몇 배로 불어난 주식은 리조트 사업부에서 발행한 엄청난 물량의 전환사채를 사들이는데 사용되었고, 만기일이 다가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 임원이 할당된 권리를 포기하면서 전환사채를 인수할 권리는 백씨 4남매에 배정되었다.


가장 많은 배분은 강인이 가져갔지만, 나머지 형제들도 적지 않은 지분을 확보하며 실질적인 리조트 사업부의 경영권은 이들이 가지게 되었다.


그 후로 리조트 사업부가 백연물류의 지분을 사들이며 백 회장 다음으로 많은 주식을 보유한 2대 주주가 되었고, 적당한 시기에 강현을 대표로 앉히며 안정적인 백연물류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작업이 완성되었다.


그냥 백 회장의 지분을 자식들에게 넘기면 되지 않나 싶지만, 가진 자들은 세금 내는 걸 싫어한다.


“그게 터져도 너한테 갈 일이 아닌데? 아빠나 오빠면 몰라도 왜 너한테?”


“바로 그거에요. 아버님을 타겟으로 작업 들어가려는 표적 수사 같아요.”


이런 작업이 법적으로 깨끗할 리 없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매매하여 부당이득을 취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에, 비상장 주식이라는 것과 직접적인 내부자가 아니라는 점이 백연 일가가 내세울 무기였다.


매매시기도 충분한 기간을 두고 이루어졌기에 적절한 핑곗거리가 되었다.


전환사채를 헐값에 대량으로 발행한 것도 지적할 수 있지만, 주주 배정방식으로 발행했기에 문제 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오너일가를 제외한 다른 주주들이 전환 권리를 포기하는 과정에 위법성이 있었는지 밝힐 방법은... 당연히 없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물량에 주가폭락을 걱정하는 정도면 모를까, 실질적으로 오너일가가 피해 볼 일은 전혀 없는 방법이었다.


오히려 리조트 사업부와 그룹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를 통해 불어난 매출은 주가에 영향을 미쳤고 치솟는 주가와 배당금에 소액주주들은 축배를 들었다.


그런데도 조사가 들어오고 수사가 진행된다? 백연그룹의 법무팀도 놀고 있지 않았다.


법의 테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모양새지만 빠져나갈 구실도, 명분도 확보해 놓은 상태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안이었다.


문제는 왜 수사가 시작되었는지, 후발주자에 밀려 눈에 띄게 매출이 줄어든 백연물류가 왜 타겟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아야 했다.


“매출이 감소하니 법인세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잖아. 세금 줄어드니까 조사하는 거지 뭐.”


겨우 한두 해 법인세 줄었다는 이유로 정기적인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에? 말이 안 된다.


“동생아. 이 누나한테 얘기할 거 없니?”


“뭐가? 뭐? 없어~ 어? 눈을 왜 그렇게 떠? 살려 달라고 찾아온 동생을! 어! 왜 그렇게 봐? 내가 뭐? 난 잘못한 거 없어!”


뭔가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았다. 그저 소파에 등을 붙인 채 팔짱을 끼고 흘겨봤을 뿐,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게...”


“아! 가만있어! 당신이 왜 끼어들어?”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운을 떼려는 걸 강현이 막아섰다.


“흠···”


둘의 행동에서 뭔가 있음을 직감한 하윤은 자세를 풀지 않고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엄마나 오빠는 대가리 컸다고 많이 봐주는 모양이지만 난 아니다. 까먹었지? 옛날 기억 한번 떠올려 볼래?”


왈가닥, 왈패... 그 어떤 단어도 하윤의 행패를 대신 설명하지 못했다.


특히나 강현은 누나의 존재가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맞고 살았다. 어른이 되어 철이 들고 결혼도 하면서 좀 줄어들었지, 지금까지 이유 없이 맞은 횟수를 따지는 건 무의미했다. 그걸 언제 세고 앉았어...


그래도 최근에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고 장난도 치고 기어올라도 웃으며 받아주지만, 누나가 사백안을 뜨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강현이었다. 뇌리에 각인된 공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얘기해요.”


“그게...”


많은 금액은 아니었다.


비서가 조용히 회사공금을 빼돌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경영관리부도 회계부도 아닌 강현이었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조금씩 빼돌린 공금을 이리저리 굴리며 세탁하는데 비서의 통장을 사용한 게 화근이었다.


견물생심.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통장에서 월급보다 많은 금액이 하루에 열두 번씩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는 걸 보다 보면 다른 생각을 품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액수가 맞지 않는 것을 눈치챈 강현은 비서의 행동을 의심하면서도 많지 않은 금액이었기에 수수료다 생각하고 적당히 참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별다른 얘기가 없으니 간이 커진 비서는 서서히 금액을 늘려나갔다. 백, 이백, 어쩌다 오백... 한참 있다 다시 백... 빠진 금액을 확인해보면 얼마나 가슴 졸이며 빼갔는지 눈에 훤했다.


부하직원의 잘못을 눈치챘으면 따끔하게 타이르고 넘어가든, 때에 따라 신고를 하든 하면 될 문제다. 하지만 이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강현이 빼돌린 회사공금을 빼돌렸으니 공범이라고 해야 할까?


보통사람이라면 조용히 무마하려 했을 상황에 강현 도련님께서는 회사자금 사적유용 혐의로 경찰에 몸소 신고하는 만행을 저지르셨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돈을 빼돌렸으니 자신의 돈을 훔쳐갔다고 생각한 걸까? 어떻게 그렇게 용감할 수 있지?


그래도 생각이 전혀 없진 않았는지 자신이 빼돌린 자금은 모두 돌려놓고 일을 진행했다.


당연히 신고를 받은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고, 비서가 횡령한 금액에 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우리 강현이~ 저기 가서 벽보고 서 있어.”


“누나...”


“착하지~ 웃으면서 얘기할 때 얼른~”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꺾어 뚜둑거리는 하윤의 모습에서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린 강현은 조용히 일어나 구석진 곳을 찾아 떠났다.


강현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보며 티 나지 않게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 그런 거 아니다. 어쩌지 못한 철없는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 차라리 그쪽에 가까웠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의문의 통장에 공금이 세탁되는 과정과 최근에 다시 메꿔진 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계속된 추적으로 모든 자금이 강현에게 향했다는 증거를 확보한 경찰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외로 돈을 빼돌려 도박에 사용한 증거까지 찾아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것도 아니고 이건 뭔가? 제 발등 지가 도끼로 내리찍은 꼴이다.


다급하게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사건을 무마하려 노력한 게 먹혔는지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건을 덮는 조건으로 받은 선물이 맘에 들지 않았던 누군가가 조용히 국세청에 문자 몇 통 보낸 모양이었다.


국세청은 신원을 알 수 없는 신고자의 공익제보로 강현을 타겟삼아 세무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강현아~ 손들어야지~”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척, 무게 잡고 있던 강현은 하윤의 목소리에 커튼을 잡아당겨 자신의 앞을 가리며 기지개를 켜듯 천천히 두 손을 올렸다.


“결국 저 새끼가 문제였네요.”


“형님. 너무 뭐라 하진...”


“올케가 자꾸 감싸니까 더 하잖아요. 저 새끼는 하루에 한 번씩 깨져도 정신을 못 차린다니까요?”


하시연.


교회에서 만난 동갑내기 강현을 몰래 흠모하다가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자리를 만들어 겨우 연애를 시작한 것이 사랑의 시작이었다.


백연가의 아들이라는 것도 상견례 자리에서 알았을 정도로 다른 건 전혀 보지 않고 강현을 향한 마음 하나만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두꺼운 콩깍지가 씌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강현의 곁을 지키는 그녀의 내조는 백씨 일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집안에서 강현에게 원하는 부분을 모두 시연이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강현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핏줄이라 함부로 내치지 못하는 강현을 사람 구실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묵묵히 챙기는 시연은 가족 모두 고맙고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였다.


“제가 잘 얘기 해볼게요. 잠깐 스트레스 풀려고 했던 일이 좀 커져서 그렇네요.”


잠깐 스트레스 풀려고 회사 돈 빼돌려 해외 원정도박이라... 강현이 통이 큰 것인지, 시연의 이해심이 넓은 것인지...


“오빠도 알아요?”


“보고서 내용은 알고 계실 거에요. 다른 건 저도 잘...”


하윤에게 먼저 얘기하는 건 시연의 생각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안 좋은 상황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강인이 먼저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지 모른다.


그에 비해 그룹 내에 영향력이 크지 않으면서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는 하윤이 조금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조용히 잘 무마해서 좋게좋게 끝내주면 최고였고, 아무리 못해도 불같이 화낼 장남을 같이 달래주는 정도라도 기대하고 있었다.


하윤도 강현을 윽박질렀지만, 그래도 강인에 비하면 가벼운 장난 정도였다.


“조용히 넘어갈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내가 얘기할까요?”


“제가...”


“아니지. 저 새끼가 직접 해야죠.”


“그래도... 같이 있어주시면 안 될까요?”


시연의 애처로운 표정은 하윤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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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강현이 24.03.24 16 0 12쪽
40 오해 말고 이해 24.03.23 15 0 12쪽
39 아가야 24.03.22 16 0 11쪽
38 놓지마 정신줄 24.03.21 19 0 12쪽
37 그들은 24.02.07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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