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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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s
작품등록일 :
2024.01.0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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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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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또 봐요?

DUMMY

두 사람의 다툼을 구경하던 김 실장의 눈에 체육관으로 들어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따위 가볍게 무시한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지위에 있는 하윤을 필두로, 우람한 체격에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밖에 해본 적 없는 오 이사가 그 뒤를 따랐고,


강인한 인상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내와 호리호리한 여성의 뒤로 왜소한 어깨를 더욱 움츠린 윤 부장이 일행을 안내하는 모양새였다.


“벌써 시작한 거에요?”


“그게...”


“자유대련 중입니다. 무도가의 첫 만남에 반갑다는 인사 같은 겁니다.”


무심한 하윤의 질문에 어떻게 둘러댈지 생각하는 구 원장을 대신해 김 실장이 대답했다.


“인사라고 하기에는 많이 격해 보이네요?”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내뻗는 사내의 공격은 하윤의 말마따나 만나서 반갑다고 하는 인사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무척 귀찮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사내의 공격을 흘려보내는 석주의 모습은 더더욱 그러했다.


“그만 멈추라 할까요?”


상관의 눈치를 살피는 구 원장이 슬쩍 운을 띄었지만 하윤은 대꾸도 없이 함께 온 사내에게 다가가 무언가 속삭였다.


길지 않은 귓속말로 밀담을 주고받던 하윤은 구 원장과 김 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 이렇게 하시죠.”


“알겠습니다.”


하윤의 얘기를 들은 김 실장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누가 봐도 신난 얼굴로 돌아서는 김 실장의 발걸음은 발랄하다 못해 날아오를 기세였다.


“멈춰요!!!”


체육관을 쩌렁쩌렁 울리는 큰 소리에 석주가 힘껏 뒤로 뛰어 사내의 공격을 피했다.


씩씩거리는 쇳소리를 뱉으며 호흡을 고르는 사내는 멀찌감치 떨어진 상대를 죽일 듯이 노려봤고, 얄미운 표정으로 양손을 위로 향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 석주는 김 실장의 개입이 무척 반가웠다.


“인사는 충분했죠?”


“아직 덜 했는데, 급한 거 아니면 시간 좀 더 주시죠?”


“중요한 겁니다. 지금부터 일정을 설명할 테니 다들 집중하세요.“


싸울 생각 없는 석주로 인해 시작부터 시들 해져버린 대결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은 김 실장의 등장에 새로운 재미를 기대했다.


격한 몸놀림으로 초췌해져 버린 사내와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석주도 호기심에 가득한 표정으로 김 실장의 발언을 기다렸다.


“환영회라는 게 정해진 순서가 있고, 이것저것 준비한 게 있습니다... 만! 성질 급한 두 분의 모습을 보니 굳이 형식에 맞춰 진행할 필요가 있나 싶군요.”


굳이 누구라고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을 향했다. 덕분에 피해 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협박도 느껴졌지만, 당사자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공식적인 얘기부터 해야겠죠? 여러분은 앞으로 교육과 실습을 거쳐 각자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이종격투기 사업부’와 ‘보안 사업부’에 배정됩니다.


이종격투기 사업부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지도하거나, 원한다면 선수로 참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보안 사업부는 다들 아시는 일반 보안업체와 같은 업무를 하게 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앞으로 있을 교육에서 차차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업 모두 아직 기획단계에 있기 때문에 외부로 발설되지 않게 주의하길 바랍니다. 들어올 때 보안서약서 작성했죠? 작성한 내용 꼭 숙지해서 불이익 당하는 일 없도록 하세요.”


이들 대부분은 일반인 대상으로 모집하는 격투기 사업을 염두에 두고 지원한 것이다.


그렇다고 일반부에 지원하는 건 수준 떨어지는 행동이라는 생각에 유단자라는 조건이 붙은 쪽으로 지원한 것이고, 사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다소 의외였지만, 선수로 참여하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안 사업부? 사설 경비원 같은 걸 말하는 건가? 보안업체로 취업하기 위해 도장에 나온 사람들을 가르친 게 이들인데, 그쪽으로 빠진다면...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외에 다른 부서는 없습니까?”


양쪽 다 구미가 당기지 않는 모양이지? 스모선수 같은 사내의 질문에 몇몇이 같은 생각을 한 듯 고개를 들어 김 실장을 바라봤다.


“가고 싶은 부서가 있습니까? 능력이 있다면 원하는 곳에 배정받을 수 있습니다. 백연그룹은 인재에 맞춘 부서 배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적성검사와 함께 희망부서를 조사하는 시간도 있으니 그때 자세히 상담하게 될 겁니다.”


“얘는 구내식당에 넣어주면 됩니다. 퇴근도 필요 없으니 양껏 먹게 해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들끼리 지원한 모양이다. 자기들끼리 농담처럼 나눴던 대화를 공개적으로 말해버리다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웃었고, 질문한 사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얼굴만 붉혔다.


해맑은 이들의 장난에 김 실장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린 것들... 젊음이 좋아...


“식당에 가고 싶으면 이곳에 지원하면 안 되는데요? 외주업체라서 저희가 마음대로 인사이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식사는 자율배식이라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할까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홍당무처럼 빨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더해지자 동글동글한 외모가 더욱 귀여워 보였다. 이렇게 한 명씩 알아가는 거지...


“다른 질문 없으면 공식멘트는 이 정도로 하고 환영 이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로얄럼블’ 아시죠?”


친하게 지내는 어느 검사님 덕분에 레슬링에 관한 지식을 탄탄히 쌓은 석주는 로얄럼블이란 경기를 무척 좋아했다.


1:1로 시작해서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한 명씩 추가되어 2:1, 2:2, 잠깐 한눈팔면 순식간에 3:1, 5:2로 점점 개판이 되어 가는 모습이 제법 재미진 경기였다.


일반 경기처럼 핀 폴 3초 후에 패배하는 게 아닌 3단 로프 위로 넘어가 두 발이 바닥에 닿으면 탈락하는 것도 꽤 흥미로운 요소였다. 그런데 그게 왜?


“거기서 약간 변형된 룰로 진행하겠습니다. 1:1을 원칙으로 시간 무제한. 한쪽이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승자는 계속 시합을 이어갑니다.”


로얄럼블은 개뿔! 실력이 아니라 체력 좋은 사람이 살아남는 연승전이잖아!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사람은 수석의 타이틀과 함께 비서실로 배정하겠습니다.”


김 실장은 실력 있는 사람을 데려갈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우승자뿐만 아니라 두어 명 더 데려가고 싶었지만, 감히 하윤의 지시에 욕심을 내비칠 용기는 없었다.


“저기...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게 좋은 겁니까? 거기 커피 타고 심부름하는 데 아닙니까? 그런데서 유단자가 왜 필요합니까?”


“길게 설명하는 건 그렇고, 타 부서와 다른 복지혜택이 있다고만 해두죠. 참고로, 비서실에서는 VIP 경호업무도 함께 맡고 있습니다.”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김 실장의 모습은 일반적인 환영회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마치 자대배치를 기다리는 신병과 그들을 상대로 특수병과 지원자를 모집하는 기간병의 모습이랄까.


‘음대 출신 손들어. 가서 피아노 옮겨.’ 같은 넌센스가 벌어지진 않겠지만, 기업의 신입사원 환영회와는 어딘가 다른 모습이 그려졌다.


한번도 뽑아본 적 없는 유단자들을 잔뜩 모아놓고 급하게 활용방안을 모색하다 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결정권자가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경미한 사고로 생각보다 많은 인원을 선발한 것도 그렇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엔 실무진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 다른 질문 없으면 본격적으로 경기를 시작해볼까요? 순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만, 제비뽑기로 할까요? 의견 있으면 편하게 말해주세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첫 경기부터 나서는 게 좋을까? 일단은 누구를 상대하게 될지 보는 게 낫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실력을 알지도 못하는 데, 상황을 지켜보다 지친 상대와 붙는 게 좋은 거 아닌가? 각자에게 유리한 점을 찾기 위해 돌 굴러가는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개중에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게 뻔한 경기에 불미스러운 면접시험을 또 치르는 기분이 든 것이다.


“이쯤에서 양심고백 하나 하겠습니다. 대표이사님께서 제안하신 깜짝 이벤트라 미리 준비 못 한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대충 하겠다는 건 아니고, 여러분의 의견도 적극 받아들여 즐겁게 진행했으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


대놓고 불만을 표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하긴, 면접시험처럼 합격 불합격을 정하는 것도 아니고, 비서실 근무라는 게 딱히 매력적인 포상도 아니었다.


대부분은 김 실장의 양심고백을 수긍하고 초등학교 반장 선거처럼 가볍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석주는 다르다. 비서실이라면 고급 정보에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법. 무조건 우승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였다.


“무기는 금지합시다.”


“두 번 지면 탈락 어때요? 한 번은 정 없고 두 번은 받아들여야죠.”


“상체만 공격해서 포인트제로 합시다. 가벼운 스파링처럼 해야 부상도 적죠.”


“다치기 싫으면 보호구 차요.”


가벼워진 분위기에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한 의견을 제시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이 남발하니 딱 반장선거 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순서 없이 자유롭게 합시다. 먼저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하시고 도전하고 싶은 사람 나서고. 어때요?”


“우~~~ 짜고 치면 어쩌려고요? 보니까 친구끼리 온 사람도 있던데~”


어느 선거든 과반이 넘는 사람의 지지를 받으면 당선되는 게 당연하다. 총 25명이 맞붙는 시합에서 13명이 작당해서 한 명을 밀어준다면 연승전 아니라 무슨 방식으로 치른다 해도 막기 힘들다.


“짜고 친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요? 그렇게 해서 우승자가 나온다면 저는 인정 하겠습니다!!!”


패배는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뭔지도 모르는 ‘비서실 근무’를 위해 한 명에게 일부러 져 준다? ‘우승자’라는 타이틀도 포기하고?


“저희 이렇게 5명이 친구인데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서로 개인주의라 밀어주고 그런 거 없어요. 걱정 안 해도 돼요.”


“별로 친하지도 않아요. 맛있는 거 있으면 먼저 먹으려고 달려드는 형제 같은 사이에요.”


친하다는 거야? 안 친하다는 거야?


“못 믿겠으면 우리끼리 안 붙으면 되잖아요?”


사실 붙어도 상관없었다. 13승이면 무조건 우승인 상황에서 확실하게 4승을 챙긴다면 우승 확률이 높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재도전은 같은 사람과 붙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면 어때요? 한 사람에게 2승을 밀어줄 수 없게 말예요.”


“받고! 우승자가 정해지면 무조건 도전할 수 있게 합시다. 인정 못 하면 직접 실력행사 하면 되지 않겠소?”


“그럼 먼저 올라간 사람이 손해잖아요. 연승을 많이 해서 올라갔으면 당연히 더 지쳐 있을 텐데, 가만히 기다리다가 우승자한테 덤비려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요?”


“우승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어중이떠중이가 운 좋게 우승하면 그게 더 우스운 꼴이 되는 거야.”


“말 짧다? 뭔데 반말이야?”


“이런 후레자식이! 첫사랑에 성공했으면 너만 한...”


“자자~~ 그만~~~”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김 실장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러게 미리미리 준비했으면 이런 일 없잖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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