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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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s
작품등록일 :
2024.01.0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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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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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짱이 누구냐?

DUMMY

하나둘 체육관에 모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구 원장의 얼굴에 그윽한 미소가 가득했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들을 모으는지도 모르면서 거미줄만 가득하던 체육관에 사람냄새 풍기는 것이 뿌듯한 것일까?


구 원장 정도의 연배라면 복잡스런 분위기가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자신이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놀이터에 모이는 손주들로 바꿔놓았다.


“제가 뭐라 했습니까?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함께 바라보던 김 실장은 구 원장과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을 콕 집어 한 듯한 말은 누구를 두고 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김 실장은 한 명밖에 안 보이는 모양이군.”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덜 아픈 손가락은 존재할 수 있지요. 원장님도 자주 사용하는 손가락이 있을 거 아닙니까?”


“허허. 내가 그렇게 사람을 대하면 안 되지 않겠나?”


모두를 동등하게 교육해야 하는 구 원장의 위치에서 당연히 어느 한 사람을 편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구 원장도 튀어나온 못에 눈이 가 있었다.


구석에 마련한 목인장을 어루만지는 사람, 줄넘기하는 사람, 샌드백을 두드리는 사람 사이로 당당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는 모습은 누구라도 한번은 쳐다보게 될 것이다.


도를 닦으려면 구석에서 하던가, 하필 여러 사람과 동선이 겹치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은 남의 차 막아놓고 주차 브레이크까지 채워놓은 몰상식한 사람의 심정과 비슷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석주에게 어슬렁거리며 다가가는 사내의 표정은 육두문자를 씹어 뱉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어이~ 당신! 옆으로 좀 가면 안 될까?”


“왜요?”


“왜긴. 이 넓은 공간에 하필 거기 자리 잡고 있으니까 여러 사람 불편하잖아.”


“내가 먼저 자리 잡았고, 이 넓은 공간에 불편한 사람이 옮겨가면 되잖아요? 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까요? 아저씨가 반장이라도 돼요?”


누구나 자신의 공간을 차지하고 원하는 짓을 마음껏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체육관에서 석주의 위치선점이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단지 동선이 겹치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명상하는 사람에게 집중된 다른 이의 관심이 사내의 불만이었다.


부딪칠 염려가 있어 조심한다기보다 지난 면접에서 보인 실력 때문에 관심을 두는 것이었는데, 마치 학기 초에 일진으로 보이는 사람 주변에 다가가지 않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사실, 사내는 공공의 질서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무뢰배에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을 공유하고 싶었다.


“명상이라도 하는 모양인데, 그런 건 집에서 해도 되잖아? 사람 모이는 장소에서 그따위로 애매하게 자리 잡고 할 일이야?”


“집에서도 했고, 여기서도 하는 건데 왜요? 명상은 꼭 집에서만 하라는 법 있나요?”


“사람이 말을 하는데 어디서 깐죽거리기나 하고! 안 일어나?”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는 구도가 나쁘지 않았지만 올려다보는 눈에 주눅 든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눈빛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내는 석주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저거 싸움나겠는데? 자네가 말려야 하지 않겠나?”


혈기왕성한 사내가 험악한 분위기를 이어 나가자 지켜보던 구 원장이 김 실장의 등을 떠밀었다.


“아닙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죠.”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이 싸워가며 클 리가 없다. 김 실장이 보기엔 처음 보는 수컷들끼리 벌이는 흔한 서열정리 같은 거였다.


‘너 몇 살이니? 나 몇 살이다.’ 같은 가벼운 나이싸움부터 만만한 사람을 골라 큰 소리로 으악 죽이며 광역기를 펼치는 모습까지... 자신의 서열을 공표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하나로 본 것이다.


“너무 심해지면 나서서 말리겠지만 그렇게 될 거 같지는 않군요.”


힘없이 사내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석주의 모습을 바라보는 김 실장의 눈망울은 로봇 만화의 시작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밝게 빛났다.


즐겨 보는 격투 경기를 눈앞에서 직관한다는 기대도 있겠지만, 면접에서 보여준 석주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말로 해요. 말로.”


거칠게 당겨진 옷깃을 가볍게 뿌리치며 바짝 다가선 사내를 응시하는 석주는 이런 시비가 마냥 귀찮을 따름이다.


서열정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양 삼은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쉽게 당해줄 성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 사내를 통해 자신의 서열을 정하고 싶지도 않았던 석주는 조용히 넘어갈 방법을 모색했다.


“말로 해도 안 듣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말을 듣게 해야겠지?”


“알았어요. 알았어. 저 구석으로 가면 돼요? 그게 아저씨가 원하는 거에요? ”


사내는 자신과 비슷한 체급에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아 가볍게 시비를 걸었지만, 말 몇 마디에 주눅이 들어 물러서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하면 다른 방법을 쓸 생각이었고...


걱정과 달리 이처럼 삐딱하게 나오는 반응에 사내는 쾌재를 불렀다. 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력을 모든 이에게 보일 생각에 데뷔무대를 기다리는 아이돌처럼 가볍게 들뜬 모습까지 엿보였다.


“아니. 넌 안 되겠다. 가볍게 몇 대 맞자.”


사내의 말이 끝나자 주변의 모든 사람이 뒤로 물러나 공간을 만들었다. 두 명이 움직이기에 충분한 공간을 만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관객의 입장이 되어 자신들이 만든 경기장을 바라봤다.


“말로 하자니까요? 원하는 걸 말해봐요.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건데요?”


석주는 가볍게 제자리에서 뛰는 사내를 향해 끝까지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이목이 쏠리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싸우는 건 당장은 피해야 했다.


미리 단속해놓지 못한 웬수놈이 문제였다. 생각이 있다면 눈치껏 튀어나오지 않겠지만, 그런 믿음을 가지기엔 평소 행실에 신용이 없었다.


“가드 올려.”


석주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낸 사내는 앙칼진 주먹을 내질렀다.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은 막을 생각도, 피할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하찮았다.


온 힘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내의 공격은 제대로 목표지점을 때린다 해도 충격은커녕 생채기 하나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실력이 없는 걸까?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이라면 종류에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인 단증은 가진 사람일 텐데?


의심도 잠시, 만사가 귀찮은 석주는 살짝 고개를 숙여 날아드는 주먹에 이마를 갖다 댔다.


빠악!


비실대던 모습과 달리 제법 묵직한 소리를 내며 부딪힌 주먹은 약간 풀린 모양새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파라~”


이마를 어루만지며 아픈 척하는 같잖은 삼류연기에 사내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 차올랐다.


등 뒤로 감춘 주먹을 살살 쥐었다 폈다 하는 모습이 적잖은 고통이 있는 듯하지만, 얼굴에서만큼은 묵은 체증을 내려보낸 시원한 표정이었다.


지켜보는 관객들은 단 한 번의 충돌로 누구의 피해가 더 컸는지 눈치챘고, 이미 끝난 경기에 하나둘 관심을 거두기 시작했다.


“겨우 한대로 끝날 줄 알아? 딱 대!”


이마에 전해지는 충격으로 웬수놈이 개입하지 않음을 파악했다. 비슷한 조건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행동하는 것이 제법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셋방살이하려면 눈치가 좋아야지. 암!


한가지 걱정은 덜어낸 석주는 그렇다고 이 무의미한 싸움을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알았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구석탱이에 짱박혀 있으면 되는 거죠?”


비굴한 모습도, 한 대 맞고 움츠러든 모습도 아니었다. 당당하게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빳빳이 들어 상대를 깔보는 자세와 어울리지 않는 대사는 사내의 화를 돋우는 결과로 돌아왔다.


“넌 자세가 글러 처먹었어!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게 밟아주마!”


제자리 뜀을 하는 자세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발목만을 사용해 폴짝거리는 모습에서 무릎과 허리까지 사용하는 역동적인 예비동작은 이자의 특기가 무엇인지 말해 주었다.


사내는 앞뒤로 양발을 벌린 자세에서 뒷발을 당겨 앞발 옆에 놓으며 동시에 앞발을 들어 올려 석주의 몸통을 향해 쭉 뻗었다.


거리를 좁히기 위해 도움닫기를 하며 날리는 사내의 발차기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모든 힘을 집중하여 차는 발의 파괴력을 극대화 시키는 공격이었다.


석주는 쏜살같이 날아드는 사내의 발을 밖으로 쳐내려 했으나 어중간한 자세로 대충 휘두른 손에 자신도 모르게 발목을 잡아채고 말았다. 아니 잡혔다고 하는 게 맞을까?


잡힌 발을 발판삼아 시계방향으로 몸을 회전하며 내지른 발이 석주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석주는 얼굴로 날아드는 공격은 무시하고 잡고 있던 발을 강하게 뿌리쳐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예상이 적중했는지 사내는 무너진 중심을 잡기 위해 휘두른 다리로 바닥을 디뎠다.


불안정한 자세로 착지한 사내는 정강이를 노리고 로우킥을 날렸다. 석주가 자세를 낮추며 막으려 하자마자 얼굴을 향해 다리가 날아들었다.


퍽!


사내의 공격은 제법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석주의 팔에 저릿한 통증을 남겼다.


“휘유~ 제대로 맞으면 눕겠는데요?”


“제법 잘 막는다?”


하단을 목표로 뻗는 발차기로 주의를 분산시키며 돌려차는 발로 머리를 노리는 태권도 특유의 화려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동체시력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석주가 따라가지 못할 속도가 아니었다. 만약 중단부터 시작했다면 활갯짓으로 막으며 카운터 펀치를 선사할 수 있는 예상 가능한 동작이었다.


만사 귀찮은 석주로서는 무의미한 대결을 끝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테지만, 아무 이유 없는 폭력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괜한 시비를 걸어오는 상대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떻게 하면 그만 할래요?”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면?”


“아잉~ 그건 너무 심하자나여~”


온몸을 배배꼬며 비음을 섞어 뱉어내는 석주의 말은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하였다. 그 결과로 사내의 꼭 쥔 주먹에 굵은 핏줄이 드러났다.


누구를 흉내 내는지 모를 같잖은 말투와 행동으로 이 이상의 대화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내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거칠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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