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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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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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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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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신입사원

DUMMY

영진은 혹시라도 석주가 지친 기색을 보이면 바로 나서기 위해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다행히 석주가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자, 노심초사하던 머릿속은 회수할 내깃돈으로 가득 찼다.


배당율이 조금 떨어졌을지언정, 적어도 세배 이상은 받게 될 것이다.


승수를 틀린 게 못내 아쉬웠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투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성공한 투자결과에 흐뭇해하던 영진에게 대표이사의 추가보상은 조금 더 욕심 내보라는 하늘의 계시와도 같았다.


두 세 번만 이겨도 내깃돈보다 많은 상금을 받게 될 테고, 더 나아가 우승이라도 하게 된다면...


한번 패배한 사람은 탈락하기 싫어서 쉽게 나서지 않을 테고, 그 외에 잔챙이들이라면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우승까지는 무리라고 해도, 23명 중에 한두 명도 이기지 못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머릿속 깊숙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자아의 속삭임은 꿀처럼 달콤했다.


“아저씨. 나랑 한번 해볼래요?”


역시 석주가 문제였나? 헐렁한 운동복을 입은 사내가 껄렁거리며 걸어나와 영진의 맞은편에 섰다.


“좋습니다. 영진님과...?”


김 실장은 합격자의 서류를 정리하며 그들의 인적사항을 꼼꼼히 확인했다.


하지만, 운동복을 입은 사내의 서류를 읽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성함이...?”


“에이~ 뭐 그런 게 중요합니까? 차차 알게 되겠죠.”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꾸한 사내는 제자리에서 폴짝거리며 몸을 풀었다.


“그래요. 어여 합시다.”


사사로운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사내의 태도에 영진도 가볍게 응해주며 몸을 풀었다. 준비 동작을 보니 자신과 같은 태권도로 보였다.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몇 번이고 순위권에 오른 적도 있었기에,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시정잡배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그럼. 시~~~~ 작!”


빠~ 악~!


준비신호 없이 바로 시작한 김 실장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고 영진이 방심하고 있던 것도 아니다.


상대가 앞에 선 순간부터 언제든 시작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열어놓고 있었기에, 사실 시작 신호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단지 시작을 알리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영진은 경기장 밖으로 튕겨 나갔고, 사내는 영진이 서 있던 자리에 다리를 곧게 뻗은 채 서 있었다.


영진은 자신이 경기장 밖에 널브러져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장외도 있죠?”


찰나에 가까울 정도로 빠른 사내의 공격을 정확히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까이 있던 김 실장은 당연히 볼 수 없었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석주를 포함해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몇 명만이 사내의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었다.


“저거... 텔레포트 아냐?”


“예끼! 이 사람아. 축지법 몰라? 그 왜 있잖아~ 땅을 접고 보폭을 넓혀서...”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이렇게 짧은 거리에서는 그런 것 보다··· 그 왜 있잖아! 단거리를 순간이동 하는...”


온갖 무협 소설과 SF영화를 섭렵한 사람들 중심으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와중에 석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사내의 빠른 움직임이 딱히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영진을 날려버린 공격이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근데, 저 사람. 아까 시비 걸다가 된통 털린 사람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러네? 뭐야? 아깐 대충한 거야? 아니면, 정말 저 양반이 센 건가?”


아침에 석주에게 시비 걸다가 혼자서 땀만 흘리고 돌아선 그 사내였다.


주먹질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비실거리더니 그래도 무도인이라고 실전에서는 다르다는 말인가?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날쌘 움직임을 보여준 사내는 서서히 시선을 돌려 김 실장을 바라봤다.


“내가 이긴 거 맞죠?”


“영진 씨?”


“졌수다. 제길...”


영진은 바닥에 누운 채로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상대가 시작 신호와 함께 달려들 것쯤은 예비동작만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취할 행동은 뻔했다.


달려드는 상대를 살짝 피하며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태연히 일어나길 기다리는 멋진 모습. 주도권을 가져오는데 그보다 좋은 그림이 또 있을까?


머릿속에 그려놓은 시나리오를 풀어내기 위해 사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먼저 피하면 쉽게 따라올 테고 늦게 피하면 방어도 준비해야 하니, 정확한 순간에 확실하게 피하고자 눈에 불을 켜고 기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진의 머릿속에는 상대의 움직임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작 신호와 함께 흐릿해지는 사내의 모습에 영진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 고민할 시간 따위는 사치였다.


봄날 아지랑이 같은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난 상대를 발견하자마자, 아차 싶었던 영진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뒤로 살짝 뛰었다.


생각지 못한 전개에 당황하긴 했어도, 싸움꾼으로서의 날카로운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숨쉬듯 몸에 밴 동작으로 사내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의 기억이 없었다.


장외로 밀려나면서 몇 번을 굴렀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사내의 힘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긴 덕분에 숨이나마 쉴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여기 어디 의무실 있지 않았수?”


대자로 누워 팔만 들어 올린 영진을 돌아보던 김 실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곧게 뻗어야 할 영진의 팔이 엄한 곳에서 꺾여 힘없이 덜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영진씨!!!”


“아~ 별거 아니우. 빠진 거면 알아서 맞추겠는데, 이건 누가 좀 해줘야 되겠구먼.”


사람의 팔뚝에는 두 개의 뼈가 있다. 그 중 하나라도 온전하다면 이처럼 끔찍한 모습으로 덜렁거리지 않을 텐데, 둘 다 부러진 것이 분명했다.


“괜찮아요?”


“아파 죽겄수. 그러니까 의무실이 어딘지 좀 알려주겄소?”


천천히 일어나는 영진은 입으로는 아프다고 징징거리면서도 죽을 듯이 괴로워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형님.”


“에헤이~ 고작 팔 하나 부러진 걸로 호들갑은! 별거 아니라니까. 고정하고 일주일 정도 잘 먹으면 금세 붙을 거요.”


한 걸음에 달려온 석주의 걱정하는 모습이 부담스러운지 영진은 연신 별거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팔이 부러져 덜렁거리는 데도 머쓱하게 미소까지 짓는 얼굴만 보자면 자신에게 몰리는 관심을 부끄러워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 실장님. 의료진...”


“봅시다.”


어느새 다가온 의료진이 영진의 팔을 들어 올리자, 정확히 손목과 팔꿈치의 중간 부분이 꺾이며 힘없이 덜렁거렸다.


“힘 빼고 움직이지 마요. 억지로 움직이려고 하면 안에서 근육이 다칠 수도 있으니, 우선 간단하게 응급처치만 합시다.”


“세상에나···. 어쩜 이렇게···.”


의사의 치료를 돕는 간호사는 차마 못 볼 걸 본다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축 처진 팔에 부목을 대고 붕대로 단단히 고정한 의사는 영진을 부축해 천천히 일어났다.


“걸을 수 있죠? ”


평범한 사람이라면 관절이 어긋난 탈골에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질러댈 것이다.


간혹, 격렬한 움직임이 일상인 무도인 중에 스스로 틀어진 부위를 맞추는 상남자도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완전히 부러져 버리면 어지간한 통뼈라도 어금니를 꽉 깨물 정도의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것이다.


당장이야 긴장해서 모를 수 있다고 해도, 태연히 의사의 부축을 받으며 움직이는 영진의 표정은 동네 마실 나온 어르신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따라가는 석주가 더 아파 보였다.


“어이~ 어딜 도망가려고? 다음은 너야.”


사내는 영진을 부축하는 석주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기다려요. 사람이 다쳤는데, 쯧!”


돌아보지도 않고 쏘아붙인 석주는 영진을 부축해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비록 오늘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먼저 살갑게 다가온 영진의 부상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아무리 목적이 있는 접근이었다 해도, 딱히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가 아니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영진에게서 동네 형과 같은 편안함을 느낀 석주는 쓸데없이 난폭한 공격을 펼친 사내가 영 못마땅했다.


조금만 살살 했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을 텐데, 굳이 팔까지 부러트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니! 그렇게 붙고 싶었으면 일찍 기어 나오든가!!! 어디서 뭐 하다가 이제 튀어나와서 지랄이래!? 지랄이!?”


체육관을 벗어나서 내지르는 석주의 고함은 - 비록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 체육관 안에 있는 모두의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특히나 찔리는 구석이 있는 사내에게는 더욱 예리한 비수가 되어 날아들었다.


“아놔~ 저 새끼가~!”


“1승으로 만족하는 겁니까? 이대로 경기장을 벗어나면 기권처리 하겠습니다.”


김 실장은 석주를 쫓아가려는 사내를 향해 엄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저 새끼도 나갔잖아요.”


“석주 씨는 논외입니다. 음··· 그러니까··· 성함이···?”


“세진이요.”


“네. 세진 씨는 경우가 다릅니다.”


세진? 귀찮다는 듯, 툭 던진 사내의 이름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퍼뜩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서류에서 본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 자리에 외부인이 들어올 수는 없을 테니 깊게 파고들지 않고 흘려버렸다.


“아 몰라요. 기권이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난 저 새끼만 족치고 치울라니까!”


“기권이든 뭐든 석주 씨와 싸우는 건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석주 씨뿐만 아니라 이 자리의 누구와 싸우고 싶다고 해도 불허합니다. 시합을 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절차대로 하세요.”


만사 제쳐놓고 석주를 쫓아가려는 세진을 막아서는 김 실장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사고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막아서고 있지만, 석주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더 크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놔~ 진짜! 누가 허락해 달라고 합디까? 맘대로 하시라고~!”


“통제에 따르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어쩔건데... 어?”


세진은 앞을 막아서는 김 실장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불편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세진의 행동에 김 실장은 당황스러움을 넘어 황당함을 느꼈다.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직원의 - 그것도 비서 실장의 - 명령을 대놓고 무시하는 놈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누르자니, 불의의 사고로 깨져버린 목검이 아른거렸다. 지금쯤 장인의 손에서 더욱 튼튼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을 텐데...


겨우 목검 하나 없다고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도윤이 아니지만, 아무래도 있던 게 없으면 또 어색해서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행여나, 그럴 리 없지만, 만에 하나 우스운 꼴이라도 당하게 되면 자존심은 둘째치고, 회사 이미지에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될지도 모른다.


“신입사원이 말을 안 듣습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 김 실장의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위협적인 자세로 노려보던 세진의 눈빛이 보이지 않게 흔들렸다.


“그러면 안 될 텐데요. 신입사원은... 시. 키. 는. 대. 로. 하. 세. 요.”


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이 실장의 목소리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묘한 울림까지 담겨 있어 듣는이에게 싸늘한 기운까지 선사했다.


거기에 더해, 경기장을 향한 시선에도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어려 있어, 세진을 얼어붙게 한 것이 그의 목소리인지, 눈빛인지 분간조차 쉽지 않았다.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뭐 어떻게 할까요? 여기 그냥 서 있으면 돼요?”


어깨를 으쓱이며 물러나는 세진의 얼굴에 옅은 공포가 스쳐 지나간 것은 바로 앞에 있는 김 실장도 눈치채지 못할 찰나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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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아가야 24.03.22 16 0 11쪽
38 놓지마 정신줄 24.03.21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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