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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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틀
작품등록일 :
2024.03.08 09:43
최근연재일 :
2024.05.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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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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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의식

DUMMY

시인이면서 라디오 구성 작가이기도 한 엄혜란이 심준구 찜쪄먹게 멜랑콜리한 분위기의 남자와 동행하여 들어왔다. 남자는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세상에!”

“만상에!”


하하하.

깔깔깔.


현이숙과 나조희가 주고받은 만담으로 실내에 웃음이 퍼졌다.


“혜란이가 얼빠였어?”

“남친이 드라마 쓴다고 하지 않았나? 영화 쓰다가 드라마로 넘어갔다는 말 들었던 거 같은데. 무슨 작가가 저렇게 잘 생겼대?”

“우도윤 씨 앞에 두고 그렇게 물으면 우도윤 씨가 대답해야 할 것 같네. 무슨 작가가 그렇게 잘 생겼어?”


나조희는 ‘-씨’라는 호칭은 포기하지 못한 채 반말하는 연습에 나섰다. 그녀의 언어 방식이었는데 현재 이곳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가 나라는 뜻이다.

원 역사에서도 니체로서의 나는 풍채가 좋았다. 키도 이곳에서 제일 크다.


“나는 무엇보다 어깨 깡패라서 든든해.”


홍선화가 윙크 살짝 하면서, 실례되는 말을 눈감아 달라고 했다. 그 말에 장난을 담아 구미가 당기는 얼굴로 보는 부건의 발을 나는 테이블 밑에서 밟았다.

부건은 장난이었다면서 당장 양손으로 엑스 표시를 했다. 장난도 선은 지키면서 해야 한다.


네 정체성은 네가, 내 정체성은 내가.

결정에 개입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이번에 등단한 심준구도 장난 아니라던데.”


벌써 소문났구나.

문단, 참 좁다.


“네, 분위기 깡패입니다.”

“다음엔 같이 와. 아는 사이면.”

“저희 등단자 모임에 속해 있거든요. 같이 오자고 청하겠습니다.”

“아, 기대되고 아름다워라.”


문단엔 훈남 삼총사와 흔남 삼총사가 있었다. 심준구와 정형문이 이 자리에 있다면 누구라도 나서서 훈남 삼총사라 명명할 것이다.

그러곤 언어학자이자 소설가이며 진보 논객으로 일컬어지는 공석중과 기자 출신 소설가 이진섭, 평론가인 윤성룡을 묶어 흔남 삼총사로 명명할 것이다.


이쪽도, 저쪽도 아직 우리는 다 모이지 않았다.

이진섭은 아직 기자이고 공석중은 베를린에서 등단과 함께 돌아온다. 박사님이 되어. 윤성룡만이 등단 3년 차로 이 자리에 있다. 정형문은 아직 등단 전이고.


남자 친구가 강현미에게 꽃다발을 안기도록 인사시킨 뒤 엄혜란은 현이숙과 나조희, 홍선화를 발견하곤 우리 쪽으로 곧장 왔다.

현이숙은 엄혜란의 남자 친구와 안면이 있는지 반갑게 인사했고, 나머지는 엄혜란이 소개해 주길 빤히 기다렸다.


“드라마 쓰는 친구예요. 이름은 최규원이요.”

“최규원입니다.”

“어, 저기 이 남친께서는 ‘응급 24시’를 쓴 분이셔. 병원 드라마. 그전에는 근현대사 기업물 쓰셨고. 드라마 업계 탑 오브 탑. 시청률 제조기래.”


현이숙이 추가로 그의 경력을 설명했다.

아, 네에. 모두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와중에 “난 드라마를 안 봐서.”라는 무례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홍선화가 대신 사과에 나섰다.


“어머, 나 그거 닥본사했어요. 병원 드라마 중에선 제일 재미있게 봤어요.”

“고맙습니다.”

“돈은 잘 벌겠다.”


누구지?

아까하고 같은 목소린데.


나는 옆 테이블에서 흘러나온 말에 고개를 돌렸으나 누가 말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누군지 말해놓곤 시치미 떼고 있었다.

여잔데.

이곳이나, 대학이나 남자 30%에 여자가 70%인 여초는 어딜 가도 달라지지 않았다.


“네, 돈 잘 법니다.”


최규원도 그 말을 들었는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그가 입고 있는 옷부터 시계, 신발, 벨트 등 무엇하나 명품이 아닌 게 없었다.


“드라마를 썼어야 해. 내 몸엔 왜 상업을 쓰는 게 안 맞는지 몰라. 부내가 풀풀, 정말 부럽네요.”


푸념을 혼잣말처럼 하더니 결론은 비아냥거림이다. 순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돈과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인기보다 명예가 더 우위에 있다는 결론이었고.

문학의 허위의식이 여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쓰세요. 도와드리겠습니다.”


최규원은 돈이 많았고, 많은 돈을 벌기까지 자신이 쏟아부었던 열정을 순수하게 드러냈다. 그의 말에선 여유가 넘치기도 했다.

같은 작가로서 조금 많은 돈을 버는 그걸 모두에게 공유할 선량한 의지도 있어 보였다.

누가 어떤 의미로 비꼬든 간에 그가 누리는 부와 인기, 성취는 기표로서만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유 쩌는 거지.

한 방 제대로 먹인 거고.


“뭐라니?”


드라마를 쓰라는 말에 튀어나온 비아냥이 하도 적나라해서 잠시 놀라는 기척이 들리는 것 같더니 이내 숨소리까지 조심스럽게 내는 게 읽혔다.

실내는 잠시 서늘해지는 듯했는데 불편한 분위기를 지독히 싫어하는 현이숙이 홍선화를 다그치듯이 수다를 끌어냈다.


“자자, 나는 시를 썼어도 돈 잘 법니다. 돈 잘 버는 사람 옆에 있으면 커피가 공짜로 생깁니다. 떡볶이도 생겨요. 좋은 거잖아.”


홍선화는 시집이 7쇄에 들어갔다면서 이 넘쳐나는 돈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너스레 떨었다. 한마디로 고군분투였다.


“나, 인세로만 이천만 원 넘었잖아. 웬일이니? 재벌이야. 회비 이만 원씩만 걷어. 나머지는 내가 낼게요.”


정가의 10%를 인세로 받는다.

이 시대, 시집 한 권 값은 8,000원을 넘지 않는다. 그녀의 시집은 7,500원인가 그렇다. 5,000권씩 인쇄했으니 삼만 부 넘게 팔았고, 총매출은 2억을 훨씬 웃돈다는 뜻.

출판사는 그 매출을 시인인 당사자와 나누는 게 아니라 다른 책 몇 권을 출판하는 데 보탠다. 팔린 책 한 권이 안 팔리는 책 열 권을 출간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10쇄 이상 찍을 거야. 인심이다. 내가 허락할게.”

“시로 이천만 원이 넘는 인세를 받다니, 바람직하도다.”


나조희는 더 팔리길 기원했고 현이숙은 말에 리듬을 실어 뿌듯해했다. 그때 백선희가 툭, 예의 날카로움을 드러냈다.


“시집이 아니라 표절을 읽은 거지. 양 머시기 그 애가 큰일 했어. 여기 우도윤 씨하고.”

“아니야. 선화 선배 시집 좋아.”

“좋아. 누가 나쁘대? 좋아도 안 읽잖아. 표절이니까 읽었지.”


백선희는 예의 시니컬한 말투로 다시 표절을 꺼내곤 슬쩍 윤정헌을 건너다보았다. 그러곤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었다. 비웃음이 확연했다.


아, 이 여자는 아는구나.

윤정헌이 홍선화 시집을 읽어 놓고도 양윤정을 등단작으로 뽑은 이유도······, 아는구나!


따로 나가야겠는데.

호기심에 깔려 죽기 전에.


내가 어떻게 데리고 나가서 저 입을 열게 할까, 궁리하는 중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시 나섰다. 홍선화에게 계산을 덮어씌우겠다는 저렴한 의지였다.


“홍 선배, 재벌이라면서요? 회비 내요?”

“얻어먹다 보면 거지 근성이 거지로 되는 거다, 너? 기본은 내고 먹자, 좀.”

“농담이에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했다.


“선배는 표절당한 거 기분 안 나쁜가 봐요?”


그래, 나도 이걸 묻고 싶었다. 조금 다르게 틀어서. 윤정헌에게 시집을 출간하자마자 사인해서 증정했을 텐데, 윤정헌이 제 시집을 표절한 작품을 등단작으로 뽑았다.

나는 그걸 묻고 싶었다.

좀 더 날것을.


홍선화는 대답하기 전에 슥, 윤정헌 쪽을 바라봤다. 그러곤 표정을 갈무리하여 말했다.


“막았는데 뭘. 난 이슈 생겨서 팔린 게 고마운 걸! 10쇄, 아멘!”


말과 달리 갈무리한 표정 뒤에 진심이 있었다. 서운함, 원망, 의구심 그런 것들. 나는 그걸 알아봤다.


“아무튼 부럽습니다. 팔리면 장땡!”

“누구예요?”


나는 나조희에게만 들리게끔 물었다.


“오혜림.”


안다, 오혜림. 왜 모르겠나?

이 시절의 나는 그녀를 본 적 없으니 묻는 것이다. 무례한 저 여자 이름이 뭐냐, 질문을 가장한 힐난이기도 했다.

오혜림 옆에 표가윤이 앉아있었다. 표가윤과 오혜림은 아까부터 엄혜란과 최규원을 가리키며 아니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끼리끼리라고, 가관이었다.


팔리면 장땡.

저 말을 신념으로 삼은 건가?

그래서 훔쳤어?


식사가 끝나고, 커피 파와 와인 파가 나뉘어 술안주와 군것질거리가 식탁에 분리되어 놓일 때 엄혜란은 최규원을 일으켜 세워 떠났다.

축하 인사로 두 시간은 충분했으니 내일 방송 원고를 써야 한다는 말로 일어섰다.


늦게 온 둘이 먼저 가는 게 불만이었나 보다. 어쩜 그렇게 한치의 예상도 어긋나지 않는지, 오혜림은 카페 문이 닫히는 것과 오버랩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테이블에 내려놓은 벤츠 리모컨에 반짝거리는 시계에, 어쩜 저렇게 티를 낸다니. 여기 올 때는 좀 검소하게 입고 오면 안 돼?”

“왜죠?”


왜 검소하게 입어야 하는지, 나는 그 생각이 너무 궁금해서 물었다.


“여기 다 가난한 문인들이잖아요.”

“그래서요?”


나는 정말 모르는 얼굴로 반문했다.


“아니, 삼관왕인 거 알겠는데. 선배한테 그렇게 들이받으면 내가 불쾌해요.”

“저,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겁니다.”

“나는 배려를 말하는 거네요. 배려요.”


선을 넘을 듯, 넘을 듯 밟고 선 금이 매우 교묘했다.


현이숙이 슬쩍 손을 뻗어 내 팔꿈치를 잡아당겼는데 나조희가 그 손을 잡아챘다. 그냥 두라고.

나조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턱을 슬쩍 쳐들어 보였다. 더 해보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더 해볼 참이다. 아직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궁금하지 않겠는가.


“왜 가난은 당당하게 배려받아야 하고, 왜 조금 많이 가진 사람은 그 부를 숨기면서 다녀야 하죠? 왜 가진 걸 누리며 사는 것뿐인데 미움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렵네요.”


그렇지.

나조희가 내 귀에만 들리게끔 무릎을 쳤다.


“여기는 누리고 싶어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있는 사람을 배려할 생각은 없으세요?”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말이 안 될 건 또 뭐죠?”


논쟁이 시작되자 윤정헌이 양손을 허리에 짚고 서선 우리를 주목했다.


“누구는 같지도 않은 글로 억대를 벌고.”


아, 여기는 바닥이구나. 같지도 않다니. 문학으로 은폐한 바닥은 구역질 났다.


“그러면 드라마 쓰세요. 돈 많이 버는 거.”

“난 작가로 살고 싶네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문장을 쓰기 위해 문장의 기술을 아무리 배웠다고 해도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을 배우기 이전에 자신의 머릿속을 개선하는 일이 우선이다.」

(-<방랑자와 그 그림자> 중에서)


나는 이 말을 간절하게 오혜림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영화 정도는 괜찮지.”

“어떤 영화냐에 따라 다르죠.”


표가윤이 추임새를 넣자 오혜림은 숨도 안 쉬고 장르와 작가에 등급을 매겼다. 드라마는 저급하고, 영화도 상업성에 매몰되면 저급한 것으로.

순문학만이 본연의 작가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난은 트로피가 아닌데.”

“아이고.”


누군가 내 말을 이해하곤 탄식을 뱉었다.


“왜 문학 시장은 자꾸 줄어들까요? 영화는 천만 영화가 매해 나오는데 왜 국내 소설하고 시집은 초판도 안 빠질까요?”


실내는 침묵하면서 나와 오혜림의 논쟁에 주목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엄혜란을 모른다. 그녀의 남자 친구가 썼다는 드라마 또한 본 적 없다. 제목은 들어서 안다.

드라마를 안 본 건 내 개인의 문제이고, 시간의 문제다. 소설을 안 읽은 것 또한 내 선택의 문제다.


어느 유명 작가의 소설은 당연히 읽었을 거로 여기고, 안 읽었다고 하면 믿을 수 없어 하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안긴다. 드라마를 안 보고 모르는 건 당연한 저 사고방식은 깨부숴야 할 무가치한 가치관이었다.


“독자들은 문학성 높은 글은 안 읽어요. 자극적인 것만 찾아서 읽죠.”


오혜림은 슬쩍 홍선화를 건너다보았다.

그녀의 시가 자극적이라는 뜻일까?


이 지점에서 부건은 백 팩을 찾아 품에 안았다. 그동안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베푼 친절이 그들의 스테레오 타입에 지나지 않았음을 눈 뜨자 이곳에서 떠나고 싶어진 것이다.


부건은 소설에서 썼다.

가난은 권리가 아니라고.

제가 쓴 소설이 재현되는 현장을 보면서 부건은 탈덕에서 까덕으로 돌아설 채비를 마친 표정이 되었다. 신물 난다는 표정은 신랄했다.


나는 같이 나가자고 눈짓한 뒤 말을 이었다.


“등단이라는 절차 한 번을 거친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작가들은 독자들을 왕따 시키면서 어떤 수정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감시도 거절해요. 문화 권력이라는 욕망의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하고선 문학성 운운하면서 가난을 포장하는 작가들, 정신 승리 오지게 할 시간에 고민하길 바랍니다. 왜 내 책은 안 팔리는가를요.”


44년을 살다 온 선배로서, 세계 철학사의 한 획을 그은 스승으로서 하는 말이다.


뜨끔.

몇몇이 불편한 얼굴을 해 보이는 가운데 문학에서 손을 뗀 백선희와 누구보다 가난한 시인으로 살아가는 현이숙, 나조희가 씩 웃었다. 더 말해보라고.


“순수문학도 결국 출판하는 순간 상업적 가치를 증명해야 대중의 픽을 받습니다. 문학성 높은 글은 안 읽는다고요? 노벨상 받은 뛰어난 작품들은 잘만 팔리는데, 어디서 그런 유언비어를 듣고 다니는지 모르겠군요. 언제까지 안 팔리는 걸 문학성 찾으면서 딸딸이 칠 건지 궁금하네요.”

“와, 등단 백일 짜리가 세다. 삼 년 후면 달라질 텐데.”


누군가가 시니컬하게 일갈했다.

나도 결국 문단의 헤게모니에 순응할 거라는 뜻이다. 모두가 누군가의 말을 알아듣고 머쓱해졌다. 그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다음 말을 이었다.


“대중 문학, 이를테면 영화나 드라마는 대중의 감시와 외면에 바로 반응합니다. 떨어져 나간 대중을 다시 부르기 위해 기호를 살피고, 기민하게 반영해서 다시 대중과 호흡해 나가죠. 자정 노력을 기울이면서 양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게 전 부럽던데요.”

“막장 드라마를 발전으로 볼 수 있을까요?”

“왜 호텔에 가서 식사 안 하세요?”


나는 막장 드라마를 비웃은 이가 누군지 확인했다. 조혜진이었다. 나와 같이 문비 편집 위원을 역임했던 편집 3기. 나보단 등단 1년 선배다. 나이는 두 살 위고. 아직은 햇병아리.


“네? 갑자기?”

“문학은 호텔이고, 막장 드라마는 불량 식품으로 보는 모양인데, 왜 이런 카페에 계세요? 강남의 최고급 파인 다이닝이나 호텔만이 식사할 유일한 장소로 취급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실질적으로 막장 드라마 같은 김떡튀순을 사랑하고 더 자주 애용합니다. 문학이 그렇게 될 순 없을까요?”

“이야, 멋지다. 더 해봐. 나, 오늘부터 네 팬이다.”


백선희가 대놓고 부추겼다.


“대중의 외면을 책도 안 읽는 것들로 폄훼하잖아요. 그게 왕따죠. 스터디하면서도 보면요, 실패하는 오타쿠들이 모여서 겸손이라곤 하나도 없이 내 문학은 어쩌고. 그게 싫어서 비평하는 겁니다. 망치질 좀 하려고요.”

“니체야?”


푸후후훗.

망치질이라는 말에 누군가가 니체를 꺼냈다.

니체 안다 이거지.

실내엔 동시에 비웃음이 쏟아졌다.


“야. 야 그너우. 인 스와츠 트레픈 (Ja. ja genau. Ins schwarze treffen)”


응, 맞아. 정답이야.


나는 매우 간단한 독일어로 대답하고 일어섰다. 절대로 영원 회귀하는 내 정체를 밝힐 수 없다고 했던 지난 결심은 힘없이 스러졌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부건은 이미 카페 문을 열고 서 있었다. 환멸이 치올라온 얼굴에선 슬픔이 배어 있었다. 작가들에 대한 탈덕이 끝난 얼굴이라 나는 조금 반가웠다.


“어머, 왜요? 가지 마요.”

“가려워서요.”


이곳은 우리가 머물 곳이 아니었다.


기어다니는 벌레들로 인해 가려운 거였으나 저들은 내 알레르기 체질로 이해하며 또 정신 승리하겠다. 일부는 내 말을 이해하겠지만.


나는 목을 벅벅 긁으며 카페를 나섰다. 슬쩍, 윤정헌을 바라본 건 의도한 눈길이었다.


선생님 소리 들으면서 논쟁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교통 정리도 하지 못하고. 내가 깨지길 은근히 기대한 눈치인데, 미안하군. 그 기대를 깨트려서.

내가 누군데.


네가 그러고도 선생이야?

나는 환멸의 눈길을 던지고 문을 닫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일 오후 3시 05분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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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파토스 +2 24.03.25 965 38 13쪽
22 선악의 저편 +2 24.03.24 990 4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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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올빼미들 +5 24.03.17 1,208 51 13쪽
14 루 살로메 +4 24.03.17 1,245 5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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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김장하는 날 +3 24.03.14 1,361 4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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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장 강화 +2 24.03.12 1,554 4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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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갈라파고스 신드롬 +1 24.03.10 1,795 5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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