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재벌은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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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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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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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촉발

DUMMY

난생 처음으로 가보는 미국.

그것도 첨단 지역의 메카라고 불리는 실리콘밸리. 산호세와 베이 에어리어.

테슬라나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건물들을 탐방조차 못해보고 끝난 허무한 일정의 끝에서 난 어느 순간 내내 불편해져 있었던 거 같다.

오히려 더 복잡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 거 같아 편치가 않았다.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다.

아니, 중요한 하나는 남아 있지. 지금 품에, 내 손에.

갈색 봉투 안에는 USB 하나와 설계 도안을 그린 종이 2장, 그리고 친절하게도 영어로 된 설명 속 아래에 한국말로 해석까지 붙여 놓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개발자들이 하는 일들에 대한 걸 잘 모른다. 금형에 관해서는 나름 겪어온 바가 있어 빠삭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개념의 금형 같은 걸 개발해낼 수 있을 정도의 지식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이걸 이렇게 변형한다면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추상적인 개념 정도만 갖고 있었다.


“하아.”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인천공항에서 아버지의 자택으로 가는 길에서 나도 모르는 한숨이 몇 번이나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머리에 안개가 짙게 낀 거 같았다.


“차라리 물어볼 걸 그랬나.”


만약 거절한다면?


이 질문을 김창우에게 했었어야 했다.

내년까지 기간을 줄 테니 오라는 말에 대한 부드러운 유압에 꽤나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그냥 그 녀석은 그렇게 옳다고 믿고 있었고, 김창우의 분위기에 속절없이 휩쓸려간 난 뭔가 약간 당한 기분으로 찜찜해져만 있을 뿐이었다.


다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AIE는 미국에서 지금 돌풍의 핵이라고 불리는 기업이었다.

최근 다른 누구도 아닌 테슬라와 계약을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애플까지도.

애플은 가능성이 높지 않다지만 테슬라에 한해서라면 자신만만해하던 녀석은, 일론 머스크를 두고 일론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해져 있다고.


마냥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다.

그런 놈이 한 번 독한 마음을 먹으면 우리 하나 케미칼 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풍비박산 내버릴 수도 있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기우가 앞섰으니까.

어찌 되었든 김창우는 만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능력을 손에 거머쥔 놈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이번 테슬라 거래 한 방이면 녀석은 또 한 번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이야 지역뉴스에 나오는 수준이라지만 김창우가 다른 나라에서도 유명하지 않은 건 아니다.


복잡한 마음을 내리누르며 부모님의 자택에 도착했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지금 사모님밖에 없는데···.”

“괜찮습니다. 곧 아버지도 오실 거여서요.”


가정부 아주머니가 출근하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뒤이어 아주머니가 잰걸음으로 다가가 부모님의 안방을 노크하는 걸 끝으로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네가 갑자기 웬일이야? 미국은?”

“다녀왔어요.”

“이렇게 일찍? 밥은, 기내식은 입에 맞든?”


이제는 제일 먼저 내게 밥부터 먹었냐고 물어보신다. 역시 우리네 어머니들은 한결 같다.


“서우 왔냐?”


얼마 안 있어 아버지가 등장하셨다. 그리고 5초 간격으로 등장하는 공장장님과 개발자 몇 사람도.

나를 보자마자 아버지는 별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이미 내가 전날 명약관화하게 설명을 한 상태였고, 아버지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보이는 침음만을 흘리며 그렇게 전화를 마쳤었다.


곧 응접실에 모두가 모였다.


“보시고 판단해주세요.”


USB와 종이가 든 갈색봉투를 몰래 접선이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그들에게로 건넸다.


“으흠···.”


그 봉투는 어제와 비슷한 침음을 삼킨 아버지가 제일 먼저 열어보았고, 아버지의 주변으로 개발자들과 공장장님이 모여들어 같이 보게 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저 양반들 뭐 하는 거야?”

“저도 잘···.”


어머니가 낸 혼잣말에 가정부 아주머니가 속닥였다.


“허어, 거 참···.”


탄식과 찬사가 어우러진 말이 튀어나오기까지는 불과 2분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가 용접 및 설비 관련 기술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어왔다지만, 이건 좀···.”

“···획기적이네요. 오히려 기존에 미제이던 90퍼센티지의 완성률을 접고 다시 전면 재수정을 해야 할 정도로. 이거면 사장님··· 굳이 우리가 AVT에게 앞으로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될 입장이 되겠는데요?”


하나 케미칼이 라이선스가 없는 게 아니었다. 자체적인 특허 정도야 몇 가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시장 개척을 할 정도로 대단한 결과물들은 아니었다.

즉, 하나 케미칼로서는 코어이자 핵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서의 고질적인 징크스가 있던 거였다.

그런데.


“이 정도면 국내를 넘어 해외로도 우리가 제품을 수출할 정도가 될 겁니다.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결코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기술력 하나가 이제 완성이 될 거라고요. 사장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야 하나 케미칼이 속도전을 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이걸 응용 삼아 여러 사출 부문에 적용시킬 수 있을 거 같습니다.”

“···!”


개발진 중에서도 유일하게 하나 케미칼에서 근속이 20년 이상 된 연구소장의 말이니 그렇다고 봐야 했다.

벌써부터 대박을 논한다. 도파민 가득한 분위기가 얼굴에 넘실거렸다.


“축하드립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나 같이 눈가가 축축해져 있었다.

피로에 찌든 얼굴에서 나오는 투명한 눈물이 세월이 진 주름살을 타고 내려오는 게 내 눈으로도 여실히 보였다.

지랄 같은 고생에 대한 성과다. 평생을 개발해오며, 그렇게 풀리지 않는 실마리들을 쫓고 쫓아 마지막에도 갈림길에 서서 막히는 벽을 등지고 나오며 좌절하던 순간들을.

그 모든 시련들을 이겨내게 만들 저 갈색 봉투 밖으로 나온 종이 두 장이 해답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로써.

어쩔 수 없이 김창우에게 나에 대한 명분이 넘어가게 된 순간이었다.


***


집단의 발전이라는 건 항상 상대 집단과의 경쟁력이 도화선이 되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결국 권위와 부의 창출은 본능적인 경쟁심에서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니까.

기업들도 저마다 그렇다. 똑같은 기업들은 또 얼마나 많고, 편의점들은 한 다리 건너 비슷한 체인들이 우후죽순 모여 있다.

숙명의 경쟁관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뜻하지 않은 거인의 출현으로 인해 집단끼리의 결맹이 되기도 하는 상황이 찾아오게 된다.


하나 케미칼 같은 경우에는 어떤가.

개척자라기보다는 배척자의 입장에서 여태 수수방관하다가 수없이 많은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아버지는 또 오히려 이런 점을 내심 걱정하지 않으셨나 싶다.


“너는 도대체 이런 걸··· 이런 개발 프로젝트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설마 네가 해낸 건 아니겠지?”


아버지의 큼지막한 기대 한 스푼이 내 면전에 뿌려져 온다.

원인 모를 자책감이 드는 순간이다.

내가 해낼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그렇다면 난 과거의 서우처럼 또 한 번의 요행을 바라지 않을 수 있는 전사적 이행을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과거의 서우를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의 발전을 이루어낸다는 건 여러모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김창우는 내게 준 도면 설계도를 향해서 가타부타 별다른 언급도 없었다.

대신 나도 판별력이라는 게 있다.

이 설계 도안이 진짜 하나 케미칼에게 적격인지 부적격인지 확신과 판단이 들고 나서야 아버지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먹히는 것에 대한 판별력은 갖고 있되 이 결과물이 불러들일 파장 정도를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저게 저렇게 대단한 파급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


“제가 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기분이 쓰라렸다.

잠시간 아버지의 눈에서 나를 향한 일말의 기대감이 홍수처럼 빗발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김창우의 조력을 받았다.

어차피 잘 된 것이니 기뻐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그럼 네가 미국으로 간다고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사람 덕분이라는···.”

“맞습니다. 그 친구 덕분에 이번 하나 케미칼에 드디어 엔진을 얹을 수 있게 된 격이죠. 사실··· 지난 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을?”

“사실은···.”


나는 이후로부터 아버지에게 구체적으로 여태 김창우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김창우가 왜 날 원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를 내년까지만 하나 케미칼에 머무를 수 있도록 관용을 베푸는 척(?) 한다는 말도 빠짐없이 전부 다 털어놓았다.

듣는 족족 아버지의 표정은 각양각색으로 변했다.


“이름이 같기에 그 놈이 그 놈일 것이라고 한 번쯤 상상은 해봤다만··· 진짜였을 줄이야.”


아버지도 내가 미국에 가는 이유를 알았다. 왜 가는 것인지, 어떤 목적에 의해 가서 뭘 얻어오고 싶어 하는지를 박 기장의 개인적인 보고와 출장계획서 덕분에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던 거다.

때문에 아버지도 AIE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나 보았다.

그러나 김창우의 사진이 CEO이자 COO로 떡하니 걸려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도 감히 판단이 안 섰겠지.

내가 봐도 못 알아볼 정도로 김창우는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침음이 가른 사이로 침묵이 퍼져 나왔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을 무렵 나도 쉬이 무슨 말을 꺼내기조차 힘든 상태가 되었다.

얼굴에 감정만을 지울 뿐.

그렇게 약 1분 정도 흘렀을까. 갑자기 아버지의 말이 들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네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집단을 건드린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아버지는 나처럼 전혀 후련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위법을 한 행위는 전혀 없다지만 김창우인가 하는 사람으로 인해 하나 케미칼이 휩쓸리게 될 수도 있으니. 어쩌면 에코SL때와는 비교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후폭풍이 다가올 거 같다는 판단이 드는구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 걸작은 우리가 직접 그려서 이뤄낸 작품이 아니야. 나나 넌 김창우라는 녀석에게 큰 빚을 지게 된 거고. 때에 따라서는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야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거다.”

“그렇다고 별일이야 생길까요? 제가 녀석의 뜻에 따라주기만 하면 하나 케미칼에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너의 인생관에 있어서도 김창우 하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원망과 분란을 초래했는지. 너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고, 네 엄마도 알고 있고. 네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었냐. 왜 애써 잊으려 했던 감정의 화살이 다시 되살아나게···.”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아니지. 네 말처럼 어찌 됐든지 좋은 건 좋은 거니까.”


서늘하다.

아버지도 말은 하지만 영혼이 없는 얼굴이었고,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바로 그것.

김창우가 언급했던, 표정태.


“아버지.”

“왜.”

“혹시 SNQ공업이라고 아십니까?”


내 말에 아버지의 눈꺼풀이 크게 열렸다. 곧 보름달처럼 눈을 뜬 아버지를 보자마자 모든 게 확실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알고 있었구나.

표정태. 그리고 SNQ공업.


‘김창우.’


너는 대체 무슨 빌드 업을 짜려고 하는 거냐.

이가 악물렸다.


작가의말

소중한 추천 언제나 고맙습니다.

수정작업을 하는 내내 밖으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병원 예약이 잡혀 있는데 머뭇거려지네요...

장마 조심하시고 스트레스 덜 받는, 더 기분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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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일단 사보시죠 +2 24.07.13 1,867 30 13쪽
81 믿을 수 있는 존재 +2 24.07.12 1,943 35 12쪽
80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2 24.07.11 2,036 39 12쪽
79 새로운 장 +3 24.07.09 2,100 4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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