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사웨이 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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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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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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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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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 1장 (19)

DUMMY

같이 가기로 한 이상 기사단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여야 했다.


에스텔은 로트와 정보를 교환하며 빠져나갈 길을 모색했다.


"오다 보니 기사 두 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더군요.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 대비해 두었습니다."


로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책장으로 달려갔다.


"어디 보자. 여기가 맞을 텐데..."


그는 위쪽 구석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덜컥.


책장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돌계단이 깔린 비밀통로가 드러났다. 두 명이 나란히 지날 수 있을 만큼 꽤 넓은 통로였다.


로트가 뒤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비밀통로야말로 낭만 아니겠습니까?"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하셨죠?"


"남는 시간에 틈틈이 만들어 두었습니다. 통로를 만들기는 쉬웠는데 비밀장치를 고안하기가 어려워서 머리를 좀 썼습니다. 어떻습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에스텔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본 비밀통로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산물이었는데 로트 사제님이 만드신 건 뭐랄까... 거창한 소꿉놀이 같네요."


"어허! 치밀한 설계와 은폐 아래 진행되는 이 아름다운 과정을 소꿉놀이라 표현하시다니. 정말이지 남자 마음을 너무 몰라주시는군요."


"뭐, 하여튼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편하게 빠져나갈 수 있겠네요."


에스텔과 로트는 돌계단을 밟으며 비밀통로로 들어섰다. 비밀통로는 산 아래로 이어지는 구조라 계속 걸어 내려가야 했다.


통로를 반쯤 지났을 때 에스텔이 물었다.


"로트 씨."


"네. 말씀하시죠."


"일단 로트 씨가 주신 지도대로 방랑 마법사님께 가려고 하는데 그분은 믿을 만한 분인가요?"


"음··· 조금 종잡을 수 없는 면은 있어도 매번 제게 살길을 제시해 주셨던 은인입니다. 사실 많고 많은 수도원 중에 글로리아 수도원에 갔던 것도 마법사님의 조언 덕분이었죠. 믿어봐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근데 에스텔 씨와 같이 가게 될 줄은 몰랐네요. 약속한 사람은 한 명이라 두 명이나 보내주실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공평하게 선착순으로 하죠!"


"지금 제가 발이 느린 걸 알면서 일부러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헤헤, 들켰네요."


에스텔은 혀를 살짝 내밀며 장난스레 웃었다.


"어휴. 수녀를 그만두더니 완전히 고삐가 풀리셨군요. 참으로 애석할 따름입니다."


로트는 한숨을 쉬고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보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빙화라는 조직의 음모를 저지하겠다고 하셨는데 뭔가 생각은 있으신지요?"


"방금 빙화를 그만두신 로트 사제님이 제일 잘 아시지 않을까요? 헤헤."


로트는 턱을 쓰다듬으며 반문했다.


"뭐. 저도 생각하고 있는 곳이 한 군데 있긴 합니다만 에스텔 씨의 의견을 먼저 듣고 싶군요."


로트의 물음에 에스텔은 자신이 세웠던 목표를 생각하며 지금껏 얻은 정보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먼저 에스텔의 목표는 명확했다.


진실이 남긴 실마리를 따라 냉병기에 얽힌 빙화의 음모를 저지하고 영원한 겨울을 막아내는 것.


그러려면 보다 직접적으로 빙화의 계획과 관련이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빙화의 계획이라···'


문득 광산에서 읽었던 서류의 내용 중 일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팡이가 완성되는 대로 사우스케이프 지부로 넘겨 다음 단계를 진행하겠음.


백랑기사단끼리 나누던 대화 내용도 떠올랐다.


-그러게 말이야. 사우스케이프로 넘어가면 휴양이나 해야겠어.


영원한 겨울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섯 냉병기가 필요하다. 빙화는 그중 하나인 빙화장을 완성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빙화장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는 크게 세 가지.


소재인 결빙석, 형태를 완성하기 위한 연성술, 마지막으로 아그리파의 편지에서 짤막하게 언급된 혼돈의 정수였다.


이미 결빙석은 다 채굴했고, 지팡이 형태로 연성까지 마무리했다.


기록에 나온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사우스케이프 지부에서 혼돈의 정수와 관련된 어떤 계획이 진행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계획을 망쳐놓으려면 역시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수밖에 없겠지.'


에스텔은 생각을 정리하고 로트에게 말을 꺼냈다.


"사우스케이프로 가야겠어요. 거기서 단서를 찾아보죠."


로트가 에스텔의 대답에 씨익 웃음 지었다.


"안 그래도 거기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열심히 조사하셨군요."


"잠입하느라 고생 좀 했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통로의 끝이 보였다. 출구에는 로트가 통로를 숨기기 위해 만든 흰색 천이 걸려 있었다.


천을 치우고 나니 새하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착한 곳은 수도원이 위치한 산의 아랫부분으로 막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시야 저 멀리 얼어붙은 절벽이 보였고 그 사이 눈에 덮인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에스텔이 수도원을 벗어났음에 안심하고 몇 걸음 떼놓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로트가 거대한 나무 뒤로 그녀를 확 잡아당겼다.


깜짝 놀란 에스텔의 귀에 두런두런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떠날 날도 며칠 안 남았는데 눈은 왜 치우라는 건지."


"훈련도 못 끼는 말단은 잡일이나 하라는 거지 뭐. 그래도 조금만 참자고. 앞으로 다시 이런 빌어먹을 곳 따윈 올 일 없으니 말이야."


삽을 든 기사단 두 명이 투덜거리며 방금 빠져나온 통로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뭐야, 이건? 이런 동굴이 있었나?"


"잠깐. 이거 눈이 아닌데?"


천을 집어 들고 의아해하는 그들 뒤에서 로트가 조용히 속삭였다.


"에스텔. 약점을 좀 봐주시죠."


에스텔은 로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푸른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왼쪽 남자는 목덜미. 오른쪽은 정수리에요. 제가 오른쪽을 맡을 테니 왼쪽을 부탁드릴게요."


로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가락을 세 개 폈다.


'셋, 둘···'


입 모양으로 숫자를 셀 때마다 손가락이 하나씩 접혔다.


'하나... 지금!"


손가락이 완전히 접히는 순간 둘은 동시에 뛰쳐나가 지팡이로 목표한 곳을 타격했다.


오른쪽 남자가 반응이 빨라 바로 고개를 돌렸으나 타격 지점은 변함이 없어서 정수리를 맞고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천을 들고 있던 왼쪽 남자는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목덜미를 얻어맞았다.


"크어억!"


그는 목덜미를 붙잡으며 괴성을 내지르더니 이내 거품을 물고 쓰러져버렸다.


에스텔은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기사단은 전부 수도원 내부에 주둔하는 줄 알았는데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원도 있네요"


"말단들은 훈련 대신 잡일을 시킨 모양이군요.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서 가야겠습니다."


에스텔과 로트는 기사단을 피해 수풀에 몸을 감추며 이동했다. 그러나 숲을 빠져나와 평원이 펼쳐졌을 때는 더 이상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주치는 기사단원들을 직접 물리쳐야 했다.


"연성술사다! 옆에 그 수녀도 있어!"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잡아! 잡으면 아그리파님이 포상을 주실지도 몰라!"


기사단원들이 삽을 들고 달려들었다.


"로트 씨. 허리를 노리세요."


"알겠습니다."


로트가 내려찍는 삽을 여유롭게 피하자, 상대는 그대로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등을 보였다.


로트는 지팡이 아랫부분으로 상대의 허리뼈 중앙을 세게 내리찍었다.


퍽!


"크아아악! 하필 저번에 다친 곳을 때리다니...!"


기사단원 하나가 허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엎어졌다.


로트가 한 명을 제압하는 동안 에스텔은 삽을 든 나머지 두 명을 바라보았다.


"어디 보자. 다음 분은 왼쪽 무릎이 안 좋으시네요. 제가 좀 손봐드릴게요."


에스텔의 도발에 제법 몸집이 큰 기사단원이 삽이 들고 달려들었다.


"그래 봤자 수녀 한 명쯤이야.!"


바로 앞까지 뛰어든 그는 삽을 들어 그대로 에스텔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질서의 방패!"


주문과 함께 투명한 보호막이 생겨났다.


삽날이 보호막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렸다.


덩치에 걸맞은 강력한 타격에 보호막에 금이 가긴 했지만, 일격에 부서질 정도는 아니었다.


삽은 팅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고 기사단원은 반동에 두 팔이 하늘로 향하며 몸 전체가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에스텔은 보호막을 해제하며 왼쪽 무릎을 지팡이로 세게 내리쳤다.


"끄아악!"


기사단원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무게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에스텔은 그대로 무력화된 기사단원에게 다가가 뒤통수를 내리쳐 기절시켰다.


"이제 한 분 남으셨네요."


에스텔이 푸른 안광을 내뿜으며 다가가자 남은 한 명은 벌벌 떨더니 삽을 내던지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젠장! 포상이고 뭐고 일단 보고부터 올려야겠어."


"앗! 그건 곤란해요!"


줄행랑을 치는 그를 에스텔이 쫓으려는 순간 로트가 어깨를 짚었다.


"그만!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아그리파가 작업실을 확인할 테니 쫓아가 입을 막아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빨리 도망가죠."


에스텔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길을 막는 기사단이 없었기에 몸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대신 추격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 했다.


둘은 눈밖에 없는 설원을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로트가 발이 느린 편이라 속도가 빠르진 않았지만, 체력은 아직 충분했기에 쉴 틈 없이 달렸다.


그렇게 그들이 평원을 반쯤 지났을 때였다.


뿌우우우.


수도원이 있는 산 쪽에서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를 돌아보니 활짝 열린 수도원 철문 사이로 물밀듯이 밀려 나오는 백랑 기사단이 보였다.


그들은 그물을 등에 메고 올가미를 한 손에 빙빙 돌리며 산길을 달려 내려왔다. 일부는 산길이 아닌 숲속을 마치 눈표범처럼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정예 인력은 확실히 다른 것인지, 미끄러운 바위를 돌다리 건너듯이 뛰어다니는 묘기는 에스텔이 보기에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멀리서 보니 그야말로 눈사태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기세였다.


새하얀 기사단 중앙에 아그리파가 홀로 검은 옷을 입고 지팡이를 든 채로 서 있었다. 그녀는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흑마법사처럼 고고하게 서서 평원을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은 무덤덤했으나 확실하게 로트를 향하고 있었다.


로트가 소리쳤다.


"젠장! 예상보다 더 빨리 들켰군요. 어서 뛰어요!"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지금부터는 앞만 보고 뛰어야 했다.


에스텔은 점점 무거워지는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마음 같아서는 더 빨리 가고 싶었으나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기사단원과 전투를 거친 이후부터 휴식 없이 계속 뛰는 중이었다. 갈수록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가운데 발이 느린 로트는 점점 뒤처졌다.


어떻게든 돕고 싶었으나 회복마법으로 상처는 치유할 수 있어도 피로까지 해소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같이 손을 잡고 없는 체력을 쥐어짜 내며 달리는 방법뿐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멈추지 않고 움직이다 보니 얼어붙은 절벽 아래 동굴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수도원에서 빠져나가는 단 하나뿐인 출구였다.


호흡을 갈무리하고 동굴로 들어가려는 찰나 로트가 동굴 입구를 보며 우뚝 멈춰 섰다.


"드넓은 절벽에 입구는 하나뿐이라···"


작게 중얼거리는 로트를 보고 에스텔은 빨리 오라며 재촉했다.


"로트 씨! 뭐 하시는 거예요. 시간이 없어요."


로트는 절벽을 올려다보며 잠깐 생각하더니 몸을 돌리며 동굴 앞에 버티고 섰다.


"아니요. 먼저 가십시오."


왜 그러느냐고 물으려고 돌아선 순간이었다. 에스텔은 로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할 말을 잊어버렸다.


하얀 늑대가 어느덧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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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에스텔 1장 (18) 24.05.31 13 1 12쪽
18 에스텔 1장 (17) 24.05.30 1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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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에스텔 1장 (15) 24.05.28 9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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