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사웨이 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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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08 12:18
최근연재일 :
2024.07.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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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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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 1장 (6)

DUMMY

"어린 시절 저는 중앙 교구 근처 시골 마을에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로트의 아버지는 원래 오르티아 중부의 테라미드 지역에 터를 잡은 명망 높은 상인이었다.


축복받은 땅이라는 이명답게 기름진 옥토가 많고 그에 비례해 인구도 많은 지역이다 보니, 꾸준히 교구 근처에서 장사한 로트의 아버지는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다만 그의 아내, 다시 말해 로트의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았던 탓에 요양 차 사업을 정리하고 시골 마을로 내려와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아내의 간호에 집중했으나 결국 로트의 어머니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어린 로트를 두고 떠나버렸다.


로트의 아버지는 아내가 묻힌 땅에 계속 머물고 싶어 했다. 또한 몇 년간 마을에 정을 붙이는 바람에 다시 장사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고로, 둘만 남은 로트 가족은 그대로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중 보물 사냥꾼으로서 전 세계를 돌던 로트의 삼촌이 굉장한 물건을 발견했다며 가져왔다.


삼촌이 가져온 물건은 처음 보는 금속으로 만든 창이었는데 나름 상인으로서 수많은 상품을 접해본 로트의 아버지조차 주조법은커녕 금속의 정체조차 전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시험 삼아 휘둘러본 창은 단단한 바위조차 가볍게 꿰뚫을 만큼 강력했다. 전설에 나오는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이 이 시대에 다시 나타났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로트의 삼촌은 아버지에게 가보로 대대로 물려주라며 창을 선물하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아버지는 로트에게 언젠가 네게 물려주겠다고 이야기하며 주문 제작한 무기함에 창을 보관해 두었다.


그렇게 몇 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로트가 아버지를 도와 밭일을 하던 도중 중앙 교구의 성당에서 한 사제가 찾아왔다.


사제는 예언자의 명령으로 세상에 흩어진 여섯 냉병기를 찾고 있다고 말하며, 이 집에 그 후보로 예상되는 무기가 있다고 들었다면서 혹시 보여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눈치였으나 사제가 보여주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자 하는 수 없이 창고에서 창을 꺼내왔다.


사제는 창을 만져보더니 반색하며 자신이 찾던 창이 맞다고 이를 예언자께 봉헌하기 위해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아버지는 가보로 물려줄 창이라며 절대 줄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자 사제는 이 창은 본래 여신교의 것이니 원래 제 물건을 돌려받을 뿐이라며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창을 회수하고자 무기함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사제가 창을 먼저 집어 들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창을 든 채로 벌벌 떨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언자께서 불경한 자가 신의 말씀을 거역한다면... 처, 처리해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딱 봐도 겁먹은 모습에 아버지는 헛소리 말라며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사제와 아버지의 거리가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까지 좁혀질 즈음이었다.


그 순간 사제의 얼굴에 각오가 서리며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뻣뻣해졌다.


사제의 진심을 본 로트는 아버지를 외쳐 부르며 튀어 나갔으나 창은 이미 앞으로 내질러졌다. 미처 로트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허공에 새빨간 피가 흩뿌려지며 아버지의 몸이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저는 즉시 사제를 밀치고 아버지에게 다가가 보았지만, 급소를 찔리는 바람에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더군요. 저는 울면서 아버지를 되살리려 애썼지만 어린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그동안 그 사제는 옆에서 신께 기도를 올리며 이렇게 되뇌고 있더군요."


로트는 공허한 눈으로 에스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교리는 곧 진리이니 미천한 종은 신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라고요. 기도가 끊기면 죽기라도 하는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의 눈에서 보았습니다. 무고한 이를 죽였다는 죄책감과 살인자가 된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요."


"그럴수가···"


"그 남자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은 예언자의 가르침을 따랐을 뿐이라고 하면서 비틀거리며 도망가더군요. 그 상황에서도 창은 꼭 손에 쥔 채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지극히 모순적이었던 그 남자의 뒷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로트는 옅게 미소 지으며 에스텔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제 아픈 과거 중 하나입니다. 어떠셨습니까?"


항상 웃음기를 잃지 않는 그였지만 에스텔이 보기에 지금 그의 웃음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먹먹한 마음에 에스텔은 말꼬리를 흐렸다.


"어째서 사제라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한 걸까요···"


"저도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대체 교리란 무엇이기에 신을 섬기는 사제를 살인마로 바꿔놓을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제가 사제가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일을 겪고 가졌던 호기심이 그중 하나입니다."


"그 호기심은 해결하셨나요?"


"예. 전에 있었던 성당에서 우연히 그 신도의 소식을 들었거든요. 사람 몇 명을 더 죽인 끝에 지하감옥에 갇혔다고 하더군요."


"그럴수가..."


"이후 창살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마주한 그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사라진 채 교리만을 따르는 괴물이 되어있더군요. 그때 알았습니다. 그릇된 신념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쌓인 결과, 한 고귀한 영혼을 이 차가운 감옥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말았다는 걸요."


-...영원히 변하지 않은 신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았으니까요.


에스텔은 1년 전 로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로트의 얼굴은 그때처럼 우수에 차 있었다.


"제가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당신에게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그때의 경험 때문입니다. 교리를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당신의 눈이, 떨면서 기도를 올리던 사제의 눈과 너무나 닮아 있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저에게 접근하셨던 거군요."


에스텔은 6년 전 마음으로 거짓말을 한 이후, 수도원으로 돌아와 교리 공부에만 몰두했다.


그러면 마음이 편했으니까.


유일하게 함께 진실을 보았던 시몬 사제조차 기사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랬기에 로트를 처음 만났을 때는 마음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은 거의 잊은 상태였다. 오직 성전에 담긴 교리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중이었다.


에스텔은 로트를 만나지 못한 경우를 가정해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계속 교리에 의존하며 살았다면 언젠가 마음으로 거짓말을 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까. 더 나아가 영혼의 고귀함을 잃고 지하감옥에 갇히게 되었을까.


근거가 부족했다. 아직은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에스텔은 로트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처음에는 그저 귀찮고 수상한 사람이었으나 지금 에스텔의 마음속에서 로트는 그저 자신을 가엾게 여겨 도움의 손길을 뻗어 준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어쩐지 조금씩 알아갈수록 로트를 향한 믿음이 더욱 공고해지는 기분이었다.


로트가 담담하게 말했다.


"에스텔. 당신은 알면서도 마음으로 거짓말을 했다며 괴로워했지요. 그러나 진정으로 두려운 자는 알면서 거짓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모르면서 진실을 외치는 자입니다."


그는 손을 뻗어 산봉우리 저 너머를 가리켰다.


"여신님께서 잠든 지금, 계시는 저 바다 아래에서 저절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생각을 포기하고 타인이 제시하는 진리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의 길을 스스로 밝혀나가십시오. 그것이 제가 당신에게 바라는 유일한 소망입니다."


말을 마친 로트의 얼굴에는 쓸쓸한 미소만이 떠올라 있었다.


에스텔은 처음 보는 그의 애처로운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든 그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에스텔은 축 처진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맞닿은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이 그의 피폐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로트는 놀란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웃음 지었다. 그러고는 포개진 에스텔의 손 위에 자신의 반대쪽 손을 올려놓았다.


"...앗."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에스텔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로트와 마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헤헤··· 웬지 좀 부끄럽네요. 포상이 좀 과한 것 같아요."


에스터는 헛기침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요. 로트 씨 덕분에 결심했어요. 이번에 임명식 있죠?"


로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예. 2개월 후에 있을 겁니다. 그때면 에스텔 견습 수녀님도 정식으로 수녀가 되겠지요."


"임명식이 끝나면 정식 수녀 업무에 임하기 전에 최대 한 달 동안 혼자 순례를 떠날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때 얼어붙은 절벽으로 가서 그분이 이야기하셨던 마을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6년 전에 있었던 일 아닙니까? 이미 많은 것이 변했을 겁니다. 어쩌면 마을 자체가 없어졌을지도 모르고요."


"많이 늦었지만, 그분의 부탁을 들어드리고 싶어요. 만약 그럴 수 없다고 해도 제 거짓말의 결과를 직접 보고 스스로 감내하고 싶어요. 그러면 저도 무언가 깨닫는 바가 있겠죠."


로트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에스텔을 바라보았다.


"괴로운 여정이 될 겁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도 이 기회에 가지 않으면 다시는 찾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사실 마음 같아서는 걱정되어 말리고 싶습니다만··· 당신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존중하겠습니다."


로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에스텔 씨가 결심했다면 저도 나름대로 준비해야겠군요.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잠깐만요. 무슨 준비인데요?"


"임명식까지는 비밀입니다."


"치. 알겠어요. 다음에 또 봬요, 로트 씨."


로트는 손을 흔들며 천천히 수도원 뒤편으로 사라져갔다.


에스텔이 혼자 제단에 남아 부순 얼음을 양동이에 담고 있으니 서서히 귀에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광장은 바쁘게 돌아다니는 수도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일상적인 광경이었다.


과연 앞으로도 이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을까. 속으로 고민해 보아도 어쩐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로트와 만난 이후로는 그 무엇도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웠다.


에스텔은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별 관심이 없었던 바깥 풍경이 오늘따라 보고 싶었다.


눈이 빼곡하게 들어찬 드넓은 평원과 끝자락에 자리한 높디높은 절벽.


수도원에서 내려다보니 평원 한복판에 희끄무레한 인영이 줄지어 걷고 있었다. 복식을 보아하니 백랑 기사단이었다. 얼마나 빠르면 그새 저기까지 간 걸까.


기사단은 평원 끝자락에 자리한 절벽까지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에스텔은 고개를 돌리는 일 없이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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