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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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loo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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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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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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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군단

DUMMY

솔직히 마지막은 도박수였다.

그러나 거대한 제림닐의 모습은 이전, 자드키엘이 일부러 거대한 기술을 보여준 뒤 빠르게 기습을 했던 장면과 겹쳐 보였고, 결국 그동안의 경험과 훈련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정화되어라.”

이것은 자드키엘이 준 빛의 검에 깃들어 있는 기술이었다. 그녀의 기술 중 가장 파괴적이었고, 가장 배우기 까다로운 기술이었다.

단순히 마나를 극도로 응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성을 올바르게 이해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둥 설교가 있었지만, 결국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대신, 검과 하나가 되기로 했다.

빛의 검은 성화가 담기면 기뻐했고, 흑염이 담겼을 때의 고통과 슬픔을 토로했다.

그 모든 것을 담아낸 것이 바로 모든 것을 정화하는 빛의 기둥이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졌어.’

빛의 검은 자드키엘이 직접 몸에 각인시켜 주었기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굳이 옛날 표현을 빌리자면, 장병기는 연인이나 다름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허억, 큭.”

그러나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엄청났다.

일단 흑염에 의해 타버린 신체 부위가 검게 물들어 작은 용 문신의 흉터를 만들어냈고, 정화를 사용한 대가로 눈이 타버린 듯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잠시 눈을 감아 기다리자 점차 고통은 안정되었고 다행히 시력은 금방 돌아왔다.

“해치웠나.”

스르륵.

“···이런.”

빛의 기둥에 터져버려 사방으로 흩어진 육편들이 스멀스멀 어디론가 기어가기 시작했다.

해당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방금까지 제림닐이 쓰고 있던 두개골이 바닥에 처박혀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징글징글하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살아나려고 하다니.

‘진짜 어떤 의미로는 최강이라고 할 수 있겠네.’

조각 중 하나에 흑염을 흘리자 슬라임처럼 녹아내렸고, 그렇게 하나하나 전부 지워나갔다. 그럼에도 한곳에 뭉치기 전에 전부 없애는 것은 무리였다.

“크흐흐, 걱정마라. 이미 늦었으니.”

이전과는 달리 신체 일부가 결손되어 있었고, 머리카락 또한 듬성듬성 심겨 있었다. 즉, 불안정했다.

“아아, 근원이 박살 나서 말이지.”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반쯤 자라난 팔로 땅을 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구만, 이렇게 끝나다니.”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어딘가 후련해 보이는 모습이기도 했다.

“···넌, 무엇을 바라고 있던 거지?”

“재미있는 질문이네.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처음이야. 음음.”

제림닐은 멀리서 다가오는 조각을 발로 차며 재생을 막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민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웃지 못하는 세상, 멸시를 받는 세상, 혐오로 가득 차서 고통밖에 없는 세상.”

잠시 말을 멈춘 뒤 내 얼굴을 바라보며 녹아내린 얼굴로 해맑게 웃었다.

“그렇지 않은 곳이 어디 한 곳 정도는 있어도 되잖아?”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제림닐을··· 죽여야 한다.’

지금 멀쩡히 대화하고 있고, 나름대로 술잔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가 나의 원수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아니, 과거의 나라면 곧바로 심장을 터트렸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앙? 뭘 그딴 눈으로 보는 거냐. 좀비 처음 봐?”

썩어가는 살덩이를 긁적이며 나를 바라보는 제림닐의 말은 험했지만, 그런 놈이라도 따르는 존재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여기서야 그가 악이며 적이지만, 저 사람의 동료들에겐 다르겠지.

‘모든 것을 희생한 영웅···이려나.’

입맛이 쓰다.

여기서 죽인다고 한들, 어떤 변화가 있을까.

‘···아무것도.’

이전이었다면, 여기서 누군가 나에게 한마디를 해줬을지 모른다.

디아블로가 안쪽에서 혀를 차며 나에게 욕을 했을 테고, 자드키엘이 한숨을 내쉬며 잔소리를 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리우스가 끼어들어 헛기침을 내뱉은 뒤 은근슬쩍 조언을 건네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엔 아무도 없다.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건 내가 골랐고, 그로 인한 결과도 내가 감당해야만 한다.

화륵.

심장에서 거칠게 뿜어나온 흑염이 마나의 해일을 타고 몸 밖으로 빠져나와, 검을 타고 세상에 용솟음쳤다.

“이제 결심이 든 거냐? 흥, 이런 꼴로 만들어놓고 참 늦네.”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다른 부위들이 극도로 짧아졌지만, 팔만큼은 원래대로 돌아온 제림닐이 머리를 긁적였다.

“자, 그걸로 나를 어떻게 죽일 거냐? 단숨에 목을? 아니면 네 부모님이 죽었던 것을 떠올리며 그 흑염으로 천천히, 나에게 고통을 주며. 그것도 아니라면.”

스윽.

검을 든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고, 제림닐의 나불거리는 입도 닫혔다. 마른침을 삼킨 그는 떨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부여잡았고, 끝내 웃어 보였다.

“죽여라.”

“···”

나는 검 대신, 손을 내밀었다.

제림닐은 이해하지 못한 듯 그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무슨 뜻이냐. 뭐, 지금 화해라도 하자고?”

그는 녹아내리는 몸을 들어 올렸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신호였고, 동시에 자신을 모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러면 뭐냐. 값싼 동정이냐? 크하하! 마지막에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하는구나. 그냥 깔끔하게 죽여라. 그게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광소를 터트리며 손을 피했지만, 난 피하는 제림닐을 따라 계속해서 다가갔다.

“뭐 하는 거냐.”

“···그렇게 죽을 거라면, 이번이 마지막 권유다.”

“아앙?”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나를 노려보던 제림닐이었고, 나도 굳이 피하지 않고 싸움에 어울려주었다. 그리고 시선을 피한 것은 결국 그가 먼저였다.

“크크, 마지막까지 털어먹으려고 하는구만, 그래. 아마 이걸 원하는 거겠지?”

제림닐은 다가오는 살덩이를 손으로 잡아 몸에 기어 넣었다. 그러자 점차 원래의 몸을 되찾았고, 겉으로 보기엔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우욱!”

입 안에 손을 집어 넣은 제림닐은 무언가를 찾는 듯 손가락을 마구잡이로 흔들었고, 이내 헛구역질을 하며 무언가를 토해내었다.

데구루루···

입에서 빠져나온 것은 붉은색의 동그란 무언가.

아니, 그냥 사과라고 봐도 무방했다. 입에 베어 물면, 아삭 소리를 내며 육즙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맛있는 외형이었다.

“쿠엑, 쿡. 크흡. 음, 그래.”

토악질을 하며 숨을 진정시키던 제림닐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숨을 돌린 그는 이마에 흘린 땀을 닦았다.

“저건 나의 근원이다. 뭐, 권능이라고 불러도 좋아. 당연하겠지만, 저기엔.”

“불사가 담겨 있다는 뜻이겠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제림닐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네가 뭘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내가 있었던 흔적이라도 남겨봐라. 뭐 그런 뜻이겠지?”

난 말 없이 웃어 보였다.

괜히 내가 한마디, 두 마디 더 얹어서 그의 감상을 망치는 것보다는 최후의 순간,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두는 것이 좋아 보였다.

“그러면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제림닐은 주문을 외우는 듯 입을 움직였고, 사방에 흩어진 뼈들과 육편들이 이곳에 새로운 공간, 건물을 세웠다.

하늘에 걸린 것은 거대한 붉은 달.

우리는 나무 단상 위에 있으며, 그 아래에는 육편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민중이 서 있었다.

그들은 제림닐의 죽음을 바라며, 우리를 향해 환호성을 보내고 있었다.

‘처형장.’

“그래, 이곳은 너를 위한 공간. 원수의 목을 베어내어 모든 것을 끊어내는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한 만큼, 그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난 빛의 검을 들어 올려 처형장을 반으로 갈라냈다.

사악.

쉽게 지어진 그 공간은 가볍게 사라졌고, 붉은 달 또한 땅으로 떨어져 자취를 감추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림닐은 눈을 찌푸렸다.

“뭐냐, 널 위해 해주었던 건데. 쯧.”

“내가 여기서 널 원수로 죽이면, 그건 분노와 증오에 의한 것이겠지.”

그런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비록, 내가 주변 사람들을 위해.

세계는 뒷전인 사람이지만, 그 사내의 의지까지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주변 사람을 위하기에 오히려 세계가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록 이 자리에는 없지만.”

흑염에 둘러싸였지만, 빛의 검에서 나오는 빛은 여전히 찬란했다.

자드키엘의 모든 것이 담긴 검이었기에 그곳엔, 그녀의 감정 또한 여과 없이 담겨있었다.

‘기대, 믿음.’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옳게 행동할 것이라는 그녀의 믿음.

무슨 일이 있어도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녀의 기대.

그 모든 것이 담긴 검이며, 그렇기에 그녀는 모든 것을 담은 힘을 나에게 건네준 것이다.

“그런 사람을 배신할 수는 없잖아.”

“···”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 제림닐은 앉은 자세 그대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니 이곳에서 일어날 일은 원수의 처형식이 아니야.”

원수.

그래, 원수.

‘넌 나의 인생을 무너뜨렸다.’

바라지도 않은 힘이었다.

그렇기에 용서는 하지 않는다.

용서하기엔 내가 너무 작은 사람이기에.

‘그럼에도 난.’

주변의 환경이 변한다.

빛의 검이 나의 의지를 받아 세상을 변화시켰고, 이전에 제림닐이 구성했던 세상과는 정반대의 세상이었다.

“···어어?”

제림닐은 빛으로 구성되는 세상을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빛, 빛이. 이렇게 아름다운 빛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슈라, 루크, 벨름.”

빛은 제림닐의 모든 것을 빛으로 변환시켜 보여주었다.

내 눈에는 그저 찬연한 것들에 불과했지만, 빛에 눈이 먼 제림닐에겐 또 다른 것들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친구들.”

수많은 따뜻한 손길.

그 모든 것을 받아낸 제림닐은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이봐, 신연우.”

고개를 돌린 제림닐은 머리를 긁적였다.

“···쯧, 내가 졌다.”

빛무리가 결국 환상이라는 것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그저 꿈에 불과하다는 것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인간들이 꾸는 꿈이 이런 거라면, 평생 잠에 들어도 좋을 것 같네."

바라는 것이 있는 듯 제림닐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 또한, 그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수고했다.”

“그래, 수고해라.”

화륵!

제림닐의 몸이 흑염에 의해 갈라지며, 잿더미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잠시 그 자리를 노려보았지만, 재생되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 맞아.”

바닥에 굴러다니던 제림닐의 근원을 집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혹시 여기서 제림닐이 다시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과실은 마치 심장처럼 안쪽에서 뜨거운 박동이 느껴졌고, 손 위에서 벗어나려는 듯 살며시 몸을 굴리고 있었다.

“끝난 건가.”

사신과의 전투는 그저 목숨을 노리고 싸웠다. 그곳엔 삶과 죽음밖에 없었으며, 결과는 사신의 죽음으로 끝날 뿐이었다.

그러나 제림닐은 많은 것을 남겨두고 떠났고, 많은 것을 가져가고 말았다.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원한과 증오.

네가 다 갖고 떠났다.

“···돌아가자.”


작가의말

불사의 군단 에피소드가 끝났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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