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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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loo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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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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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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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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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DUMMY

폭풍과 둥그런 탁자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

안 그래도 텅 비어있는 공간에 목소리와 사람이 없으니 그 공백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눈물자국이 진한 여인은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빈자리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왔는데, 공석이 많네.”

사신과 제림닐.

평소에 앙숙이었던 둘이지만, 의외로 말은 많이 꺼냈기에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 둘이 사라진 회의장엔 그 어떤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후우웅···

“으, 시끄러워.”

귀를 양손으로 막은 여인은 눈을 찌푸리더니 폭풍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샤악.

어떠한 전조 증상도 없이 바닥에서 갑작스레 솟아오른 검은 가시가 폭풍을 관통했고,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던 폭풍은 가시에 흡수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아이들의 비명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머리가 어지러워.”

여인의 표독스러운 말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흥.”

“진정. 우리뿐.”

“당신은 너무 착하다니까. 저 둘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데도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동료. 이곳.”

“···그래, 나도 그 사람에게 설득당해서 왔으니 할 말은 없지만.”

볼을 긁적인 여인은 거인을 올려보았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혼돈. 혼란. 아니다. 나.”

“아아··· 당신의 관할은 그쪽이던가? 힘들겠네.”

“하다. 마땅히.”

“난 그런 의무 따위 몰라. 난 그저, 내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을 뿐이니까.”

씨익.

거인은 밝게 웃으며 새침하게 말하는 여인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주었다.

“뭐, 뭐야?”

“좋은. 당신.”

“웃기는 소리 하네!”

오랜만에 활기가 돌아온 회의장은 사신과 제림닐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들 오랜만이군.”

그런 화목한 분위기를 뭉갠 것은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등장이 늦으시네?”

여인은 눈매를 잔뜩 찢는 표독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할 일이 있었다.”

“그래그래,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듣는. 부탁.”

“···쳇.”

거인이 하는 말이었기에 여인이 한 걸음 물러났고, 목소리는 그제야 제대로 말을 시작했다.

“사신과 제림닐이 죽으며 균형은 무너졌다.”

본래라면 사내, 거인, 여인. 그 누구도 세상에 내려갈 수 없었다.

그들의 힘은 초월적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으며, 세상은 그런 존재가 함부로 내려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탑이라는 편법을 통해서 가는 것은 가능했으나, 그나마도 일부 상황에서만 가능할 뿐 온전한 해결 방안은 아니었다.

“누구든 내려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지.”

그것은 곧, 출정을 의미했다. 거인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신의 앞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화염 덩어리처럼 보였지만, 의지를 가진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고, 거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몸을 비틀었다.

“무너지다. 균형. 되찾다.”

“그렇군. 그게 너의 역할이었지.”

사내의 시선은 이내 여인에게 옮겨졌고, 여인 또한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내려갈 생각은 없고?”

“원한다면.”

후웅.

잔잔한 바람이 이윽고 칼날처럼 변하며 세상을 가득 채웠다. 살짝 닿기만 해도 살갗이 찢겨나갈 날카로움이었지만, 여인은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더욱 걱정했다.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은데.”

퍼석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자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며 은은한 윤기를 되살려주었다. 그러자 만족한 듯 살짝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내가 갈게.”

“···호오?”

의외라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여인은 허공에 삿대질했다.

“어차피 아저씨는 못 가잖아?”

그 말에 거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이 뒤틀리며, 정령들이 마구잡이로 날뛰기 시작한거잖아?”

“그런. 맞다.”

“그러니 내가 갈게. 뭐, 순서상 내가 가는 게 그림이 좋고 말이야.”

“무슨 목적이 있는 모양이로군.”

사내의 의심에도 여인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굳은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죽은 머저리 둘과는 다르게 나와 아저씨는 너랑 동등한 관계야.”

“알고 있다. 하지만 군단이라는 조직 내의 서열로 보자면 내가 우위인 것도 사실이지.”

“하아?”

여인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건방진 태도를 보였다.

“재밌네. 그딴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알량한 권력으로 나의 행사를 방해하겠다. 뭐 그런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여인의 몸에서 풍긴 기세가 사방으로 옮겨붙었고, 이윽고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거대한 검은 가시들이 우후죽순 솟아났다.

폭풍과 바람이 지배하던 공간은 어느새 끔찍한 외견을 가진 가시의 성으로 돌변했고, 그 가운데에는 면류관을 쓴 여인이 사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싸움 불가. 진정.”

거인은 양쪽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불덩이도 내던졌지만, 이미 불이 붙은 싸움은 막을 수 없었다.

“원한다면.”

쿠웅!

낙뢰 하나가 여인의 눈앞으로 떨어졌고, 탁자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거인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뒤로 물러서고는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끝나지 않다.”

여전히 영문 모를 말이었지만, 사내나 여인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인과 지낸 시간이 길었다.

“낮은 자의 저주.”

여인이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자 세상의 압력이 급증했다. 사방에서 거대한 손이 몸을 죄이는 듯한 감각이었고, 잠시라도 저항을 멈춘다면 그대로 핏물이 되어 사라질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높은 자의 파멸.”

이번에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하늘을 가리켰다. 목소리는 잠시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약속을 먼저 어긴 것은.”

여인은 손목을 맵시 있게 꺾어 검지 손가락의 방향을 아래로 바꾸었고, 검지가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 검은 가시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너였잖아.”

파삭!

무언가 꿰뚫리는 소리가 아닌 가시가 부러지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고, 여인은 짐작했다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슈우웅···

검은 가시로 도배된 불길한 공간 속에서 작은 바람이 일어났고, 곧이어 재차 세상을 장악해 나갔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무의 공간.

면류관조차 멀리 날려버릴 정도로 커진 바람이었고, 곧이어 처음 세 사람이 있던 공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흥.”

그러나 바람은 여인에게 닿지 못했다. 온몸을 갈아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회전하는 바람이었지만, 여인의 주변에 무언가가 있는 듯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뭐, 이번 일은 먼저 사과할게.”

전혀 미안하지 않은 태도로 손을 흔들었고, 사내는 담담히 바람을 외부로 걷어냈다.

“하지만 방금도 말했지? 먼저 약속을 어긴 것은 그쪽이라고.”

“···글쎄, 우리가 한 약속은 분명 다 지켰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저씨. 당신은 저 사람과 무슨 약속을 했어?”

“없다. 약속.”

“아아, 뭐. 아저씨는 균형만 지켜진다면 간섭하지 않는 주의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대화를 넘겼지만, 그녀의 비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근데 세상 꼬락서니를 보면 누가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뻔히 보이지 않아?”

“이 또한 균형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 어련하시겠어.”

여인은 더 이상 사내를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세상을 올려다보고, 그곳에서 작은 불씨를 바라보았다.

“거기서 뭘 본거지?”

“···약속도 안 지키는 녀석이랑 나눌 대화는 없어.”

사뿐히 자리에서 일어선 여인은 어느새 다시 푸석해진 머리카락을 만지며 공간에서 벗어났다.

은은하게 올라온 여인의 미소는 그동안 사내도, 거인도 본 적이 없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이클리스가 웃는 것을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도 안 나는군.”

“않은. 그렇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거지?”

몇걸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거인은 여인이 떠난 자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할 일을 한다.”

“그래, 다음에 보도록 하지.”

여인과는 달리 거칠게 공간을 찢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 거인.

결국 자리에 남은 것은 언제나처럼 사내 혼자였다.

“···이제 머지않았으니.”

사내는 조용히 떠난 이들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발버둥 쳐라. 있는 힘껏.”


* * *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

그러나 사신 때처럼 무기력증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많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많아진 거지?’

시작은 연아와 자드키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함께 시작한 작은 공간에는 어느새 꽤 많은 사람이 들어왔다.

악연이라면 악연으로, 혹은 누군가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

‘괜히 싱숭생숭해지네.’

나쁜 감각은 아니었다. 따뜻한 샤워를 하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해지는 묘한 느낌.

‘다른 사람들은 뭐 하고 있으려나.’

언제까지고 자리에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방금까지 새로운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 밖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자 드래곤들은 집에 찾아온 사람들을 훈련시켜 주고 있었다.

“쓰읍, 그게 아니라니까? 초능력이나 마법이나 결국 의지의 힘이야. 용언이나 언령이나 비슷하니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거라고.”

아카는 주로 마법 쪽을 도와주었고.

“언제나 선공은 큰 이점을 갖는다. 그렇기에 발의 움직임을 속이고, 검의 위치를 속여라. 상대가 나를 예측하지 못하게 만들어라.”

프레키는 몸소 상대를 해주며 훈련을 시켰다.

“소용돌이를 다루는 것에는 익숙해진 모양이로군.”

해룡은 남도현이 일으킨 물보라를 맞으며 세심한 컨트롤을 지적했다.

그리고 최악의 독룡인 니드호그는···

“흐흐흐, 이리 와라.”

“꺄룩!”

“이미지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네.”

헤츨링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범한 술래잡기는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마나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방에 마법 함정을 깔아 두었다.

퍼엉!

“···에아르가 보면 가슴이 좀 아프겠는걸.”

숲에서 마나가 폭발하며 이곳저곳에 불이 붙었지만, 그곳에 정확히 소용돌이를 날려 불을 끄는 방식으로 훈련을 연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언제나처럼 연아도 함께하고 있었다.

“흐읍!”

하얗고, 작은 주먹이 올곧게 뻗어나간다.

직선으로 내밀어진 주먹은 이윽고 앞을 향해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쿵!

주먹이 닿은 거대한 돌덩이는 외부에서 볼 때는 멀쩡했지만, 돌을 살짝 돌리자 뒷편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다.

“역시 대단합니다. 군주의 가족이라 그런지 배우는 속도도 엄청나군요.”

“힛, 아니에요. 자드키엘 언니가 평소에도 많이 도와주고. 아리우스 님도.”

“흠흠, 내 도움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대가 열심히 한 덕분이지.”

아리우스 또한 이곳에 오래 있다 보니 몸에 배어있던 피 냄새도 상당히 옅어졌다. 덕분에 처음에는 다들 꺼리던 분위기도 상당 부분 사라지고, 이제는 오히려 놀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 아리우스 얼굴 또 빨갛게 변했다.”

키츠네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쿡쿡 웃었고, 옆에서 차를 따르던 에아르도 빙긋 웃어 보였다.

“보기 좋네요.”

“아아, 하지만 연우가 허락 안 하면 절대 저 이상 못 나갈걸?”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난 아무런 사심 없이.”

마음에 안 드는 말도 나오긴 했지만, 그 정도는 이제 가볍게 웃어넘길 정도로 마음이 넓어졌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도 걱정이 있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했다.

“하아.”

“에아르? 갑자기 웬 한숨?”

꼬리로 팔을 휘감으며 자신 쪽으로 에아르를 당겼고, 깜짝 놀란 에아르가 귀를 쫑긋 세웠으나 이내 그 품으로 스르륵 들어갔다.

“그게, 최근에 세계수님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응?”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일교차가 점점 심해지는 게 느껴지네요.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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