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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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loolv
작품등록일 :
2024.05.0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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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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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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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의 눈

DUMMY

“자자! 거기까지!”

교착상태를 깬 것은 베르트의 거대한 방패였다.

번개를 머금은 방패로 땅을 거칠게 내려 찍자 땅이 크게 흔들렸고, 양쪽으로 노란색 줄기가 뻗어나가며 나의 앞에서 솟아올랐다.

쿠릉!

“흠, 다들 너무 쉽게 막는 거 아닌가? 나름 힘을 쓴 건데 말이야.”

뱀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뇌전은 뇌신에 비할 바는 못되었지만, 어지간한 헌터는 가볍게 제압할 만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그런 잡동사니에 의존하는 버릇은 고치라고 했을 텐데.”

“크하하! 장인이 도구에 의지하지 않으면 뭐를 의지하며 살겠냐?!”

그것도 맞는 말이지.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어느새 그걸 또 봤는지 베르트가 달려와 나와 어깨동무를 했다.

“봐라. 네놈의 딸인지 손녀인지 모르겠지만, 걔가 선택한 사람도 이렇게 동의하고 있잖냐.”

“···비켜라. 당장 승부를 봐야 하니.”

이글거리는 눈을 보고 있자면, 절대 물러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딱히 피할 이유가 없었다. 전지의 눈에 왜 내가 이끌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감정을 버릴 필요는 없었다.

‘이걸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음 알갱이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금 전 베르트가 일으킨 거대한 번개 충격에 의해 가루가 되어 사라졌지만, 그만큼 다시 나타난 얼음은 한상배의 손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네놈도 같이 날려버리기 전에, 당장 비켜라.”

“워워,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난 충분히 냉정하다.”

“그놈의 전지의 눈이 뭐길래 그리 집착하는 거야? 어차피 쓰지도 않는 거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야지. 쯧쯧, 노인네가 욕심만 많아서는.”

그렇게 말하는 베르트도 딱히 금속을 쉽게 넘겨주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일단 날 도와주는 거니 가만히 있어야지.’

한상배는 그 말에 움찔하며 지팡이를 툭툭 내리쳤지만, 아직도 눈에 담긴 독기는 빠지지 않았다.

“이건 대의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르트는 품에 곱게 넣어두었던 오리할콘을 꺼내 머리 위에 툭 올려놓았다.

“아, 설마 넌 이런 걸 못 받아서 그런 건가?”

“···대의를 위한.”

“이것 말고도 잔뜩 받았거든. 그렇지?”

“아, 뭐.”

굳이 말하자면 이것저것 주긴 했었지만, 설마 대현자 정도 되는 양반이 선물을 못 받아서 삐졌을라고.

“···그 외에 또 뭘 받았지?”

“미스릴을 산더미처럼 받았지. 우리 장인들이 품에 안아도 남을 만큼 말이야. 크하하!”

꿈틀.

다시 한번 손이 크게 움직였다. 그 모습에 베르트도 곧장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이번에 날아온 방향은 전혀 달랐다.

“에?”

파앙!

물풍선이 땅바닥에서 터지는 듯한 느낌으로 마나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덕분에 순간 시야가 푸른빛으로 흐릿하게 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놈!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는데 저딴 잡놈에게 먼저 가고 말이야.”

‘거기부터 시작인건가.’

애초에 오라클에 방문할 생각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쪽으로 갔겠지만, 애초에 난 베르트의 초대로 갔으니까.

그러다 문득, 손가락에 걸린 반지가 툭 걸렸다. 그 위쪽에는 이전에 설아가 챙겼던 현자의 보석이 곱게 박혀있었다.

이래저래 굴러다니느라 흠집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 상처 아래에서 흐르는 피 같은 붉은 색 덕분에 피부에 생긴 생채기를 보는 듯했다.

‘이게 오라클의 보물이라고 했었나.’

이걸 줘도 될까? 라는 의문이 순간 머리에 감돌았지만, 본래 있던 장소로 가는 거라면 상관없겠지.

‘그래도 반지는 안 되겠지.’

원래부터 하나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박혀있는 보석이었지만, 손가락에 힘을 주고 빼내자 기분좋게 빠져나왔다.

방금까지 화를 내고 있던 한상배도 씩씩거리면서 이 장면을 지켜봤고, 내 손에 들린 보석을 보자 그제야 눈을 찌푸리며 내 손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끄응···”

“보자마자 눈치채신 것 같은데요?”

“호오, 어쭙잖은 세공사가 만든 보석은 아닌 것 같군. 그래, 우리 정도 수준이 아니라면 만들 생각조차 못할 수준이야.”

베르트가 은근슬쩍 자기 자랑을 섞어서 말했지만, 굳이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보니 네놈의 손에 걸린 그 반지.”

과하지 않지만, 촘촘히 새겨져 있는 수수한 꽃문양은 설아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걸 알고 있는 한상배였기에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긴 것은 꼭 결혼반지처럼 생겼구만.”

“아하하···”

비슷한 말을 저번에도 들은 것 같아 딱히 어색하지는 않았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당연히 설아에게 받은 것들이겠지. 흐음.”

보석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한상배는 이내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안쪽에 담겨있던 마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 오라클을 증명하는 유물이기에 그토록 찾아다녔었다.”

베르트도 지금은 끼어들 타이밍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발로 땅바닥을 걷어차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 정도면 전지의 눈을 대신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명분이 필요했던 건가?’

싸움에서 내가 이겼다면, 그 힘을 증명했으니 자격이 있다고 하면서 넘겨줬으려나.

‘그것까지는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전지의 눈을 넘겨주기로 했으니 상관없었다.

“전지의 눈을 해체하는 작업이 끝나면, 설아를 통해 보내주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두 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끌림을 받는 두 개의 물건을 손에 넣었다.

‘···하나?’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불의 정령이 나의 물음에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텅 빈 공간.

사방에서 휘날리는 바람에 안쪽에 있는 문서와 보물이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그중에는 날카로운 무언가도 있어 잘못 만졌다가는 내민 손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 뻔했기에 그 중심에서 마녀는 조심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항상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네. 응.”

살짝 갈라진 바닥에 커피를 흘려보낸 마녀는 빙긋 웃으며 두 번째 조각을 찾은 신연우를 바라보았다.

언뜻 보기엔 여유로워 보였지만, 입꼬리가 흔들리고 있었으며 눈동자 또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네.’

오히려 바라 마지않던 때가 다가왔기에 마녀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공간 너머에 있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궁금해서.”

그의 최후가.

그의 마지막이.

‘나와 같을까?’

텅 빈 공간을 손으로 뒤적거리던 마녀였고, 그 손에서 끌려 나온 것은 먼지뿐이었다.

“이젠 너에게 줄 선물도 없네.”

언제나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던 신연우.

그가 지금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이 온전히 네 의지일까?’

아니면, 세상의 뜻일까.

그것을 언제 눈치챌지 알아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넌 영원히 탑을 재건할 수 없어.”

신연우가 모은 두 개의 핵심 재료.

“무한의 강철과 전지의 눈. 응, 그것들은 매우 중요해.”

무한의 강철은 탑의 뼈대를 이룬다.

그것이 없다면 탑은 제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며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

“전지의 눈은··· 탑이 탑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

정상에 올라 세상을 관조하며 온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야말로 신의 권능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있음에도, 마지막 재료가 없다면 전부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 두 부분을 제외한 탑의 모든 것.”

정확히 말하자면, 남은 찌꺼기들.

첫 번째 등반자가 남기고 간 그 외의 모든 것.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그냥 살던 것처럼 살고, 그렇게 죽으면 될 텐데.”

가슴에 손을 올린 마녀는 여느 때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살아있어?’

모른다.

‘이미 죽었을지도.’

영문 모를 생각이었지만, 오래된 생각이기도 했다.

띵!

뒤쪽에서 따끈한 버터 냄새와 함께 오븐의 작동이 끝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의 상당 부분이 무너져 딛기 힘들었지만, 마녀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오븐으로 향했다.

“마지막 과자려나.”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를 무시하며 손을 집어넣은 마녀는 각진 별 모양의 과자를 입 안에 집어넣었다.

“음, 하트 모양도 만들걸 그랬나?”

하지만 과자틀 대부분이 공허 속에 빠져서 사라졌다는 것을 떠올린 마녀는 머쓱하게 웃으며 과자를 상자에 담아냈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어. 재미없게.”

최초의 탑.

모든 것의 시작이었고, 모든 것이 마무리될 장소.

“거기에 내가 있지는 않겠지.”

지금도 벽이 무너져 내리며 벽돌 하나가 공허 속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공간은 검은색 가시가 스멀스멀 기어 오고 있었고, 그건 마녀에게 딱히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끝. 인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 믿던 마녀에게 찾아온 영원보다 더 긴 순간.

그것이 죽음이라고 마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히히, 그래. 최초의 탑은 없어. 이젠 없다고. 시작은 있지만, 끝을 낼 수는 없어.”

그렇기에 재건해야만 한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하기 위하여.

“한설아. 그 아이가 본 것도 결국 전부 가짜야. 응, 환상이지.”

그러나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넌 결국 재건할 수 없어.”

그건 정해진 운명이었다.

적어도 마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상.

“그야, 마지막 재료는.”

마녀는 두근거리는 심장 대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작고, 딱딱한 무언가. 그 안에 담긴 힘은 마녀가 죽음에 이르지 못하도록 영원히 묶어두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으니까.”

지금 과자를 갖고 공허로 뛰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은 복수였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넌 영원히 진실을 알아내지 못하겠지.”

스멀스멀 기어오는 가시에게 유린당하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편안한 죽음일 것이라 확신했다.

마녀는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가시의 끄트머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콕 찍었고, 창의 끝자락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가시 때문에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당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균열에 침입할 수 있는 존재라면, 무언가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아마도 이걸 원하고 있겠지?”

탑의 마지막 재료.

“영생의 꽃.”

가장 어두운 곳에서 찬란하게 피어나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탑의 마지막 재료. 그것이 마녀의 가슴 속에 잠들어 있었다.

“죽을까?”

신연우와 더불어 절대적인 존재에게 엿을 먹일 수 있다면, 마녀의 최후에 걸맞은 재미라고 생각했다.

발이 점차 절벽 끝으로 움직였고, 팔은 양쪽으로 넓게 뻗어 떨어지기 좋게 자세를 잡았다.

“자, 이제.”

덜컥.

─ 죽지 말아줘.

“···싫어. 죽을 거야.”

─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넌 그렇게 죽어버렸으면서.”

이건 저주였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했던 마녀에게 쥐어진 마지막 저주였고, 가장 소중한 것만 지키지 못했던 마녀의 절망이었다.

“···그래. 모든 게 어쩔 수 없다면.”

마녀는 몸을 돌려 쿠키 상자를 챙겼다.

“여기도 이제 마지막이네.”

콰득!

사방에서 뻗어 나온 마녀의 붉은 기운이 가시를 찢어발기며 공간을 열었고, 그 사이로 뛰어들었다.

“진짜 마지막. 진짜진짜 마지막이니까.”

이제는 안쪽을 꽉 채운 검은 가시들을 바라보며 마녀는 중지를 치켜들었다.

“···엿이나 먹어. 개자식들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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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블랙스미스 24.09.16 5 0 11쪽
128 블랙스미스 24.09.15 6 0 12쪽
127 블랙스미스 24.09.14 7 0 12쪽
126 블랙스미스 24.09.13 5 0 12쪽
125 데이트? 24.09.12 5 0 12쪽
124 데이트? 24.09.11 7 0 11쪽
123 데이트? 24.09.10 7 0 11쪽
122 데이트? 24.09.09 6 0 11쪽
121 데이트? 24.09.08 6 0 12쪽
120 세계수 24.09.07 7 0 11쪽
119 세계수 24.09.06 6 0 12쪽
118 세계수 24.09.05 6 0 12쪽
117 누군가의 이야기 24.09.04 7 0 12쪽
116 누군가의 이야기 24.09.03 7 0 13쪽
115 누군가의 이야기 24.09.02 7 0 12쪽
114 누군가의 이야기 24.09.01 6 0 12쪽
113 누군가의 이야기 24.08.31 8 0 11쪽
112 불사의 군단 24.08.30 8 0 11쪽
111 불사의 군단 24.08.29 5 0 11쪽
110 불사의 군단 24.08.28 7 0 11쪽
109 불사의 군단 24.08.27 8 0 11쪽
108 불사의 군단 24.08.26 7 0 13쪽
107 불사의 군단 24.08.25 6 0 13쪽
106 불사의 군단 24.08.24 8 0 11쪽
105 불사의 군단 24.08.23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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