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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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loo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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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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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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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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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야기

DUMMY

“흐억, 윽.”

뒤에서 거칠게 따라붙는 늑대를 떼어내고 계단을 오르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

등 뒤에 있는 여동생은 긴장했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등을 어루만져 주며 진정을 시켜주자 다행히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졌다.

“걱정마. 여길 올라가면, 분명히 무언가 있을 거야.”

아니, 있어야만 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직 벽.

타고 올라갈 수 없을 만큼 벽은 반들반들했고, 애초에 올라갈 높이도 아니었다.

“···미로, 미로인가?”

벽에 손을 가져간 뒤 천천히 걸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이곳이 무언가 특별한 공간이라고 판단한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움직이는 것이 의미가 없다면,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품에서 꺼낸 마른 과일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뒤로 과일을 넘겨주었지만, 움직일 힘도 없는지 여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먹어야 기운을 차리지.”

“···”

미로의 비밀.

‘벽은 하늘에 닿을 듯 높지만, 하늘에 닿지는 않았다.’

뒤를 돌아봤지만, 올라왔던 통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즉, 갇힌 상태나 다름없었다.

“벽을 타고?”

벽면에 손을 올렸지만, 역시 손은 가볍게 미끄러졌다. 진흙 같은 것이라 손가락을 넣을 수 있나 했지만, 손톱만 망가질 뿐이었다.

“평생 여기를 빙글빙글 돌라는 뜻은 아닐 거야. 분명 어딘가에 힌트가···”

문득, 이 미궁이라는 존재가 궁금해졌다.

어째서 탑에는 이런 곳이 있는 거지?

나를 왜 가둔 것이지?

‘···누군가가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면 더 좋은 방법들이 많았을 텐데?’

즉, 이건 누구를 막는 것이 아니라, 테스트를 하려는 목적인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소년은 여동생을 자리에 조심히 눕힌 뒤 벽면을 향해 달렸다.

몸을 박으면 그대로 어깨가 바스러질 것 같은 속도로, 방금 손톱 따위의 고통은 한순간이라도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그것에는 거침이 없었고, 누군가 보기엔 죽음을 원하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쿵!

소년의 몸과 벽이 부딪치는 순간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나며 벽면에 사람이 지나갈 만한 구멍 하나가 뚫렸다.

“···윽.”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닌지 어깨 한쪽이 뻘겋게 부어올랐고, 그 부위를 쓰다듬으며 여동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

자고 있는지 옅은 숨을 내뱉으며 편히 있는 모습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았으면 더욱 걱정하고, 심란해했을 테니까.

“좋아. 어디 한번 전부 덤벼보라고.”

멈출 생각은 없었고, 탑 또한 그를 멈추게 할 생각이 없었다.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 * *


“···크아.”

마지막 남은 물병마저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였고, 한쪽 눈은 잘 떠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처음 다쳤던 어깨는 감각이 사라져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감내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탑은 소년에게 수많은 함정과 시련을 부여했다.

때로는 여인으로 유혹을 하고.

때로는 안락한 침대로 유혹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강력한 몬스터를 소환했으며, 머리를 쓰지 않고서는 피할 수 없는 함정들을 설치했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낸 소년과 여동생은 마침내 마지막 층으로 추측되는 곳까지 올라오는 것에 성공했다.

“왔어. 드디어. 그 구원자라는 놈이 있는 곳으로 왔다고.”

“···”

여동생은 힘이 없는지 무어라 말은 하지 못했지만, 얼굴을 흔들며 기쁨을 같이 공감해 주었다.

“이 문은··· 그냥 열면 되는 건가?”

이 너머에 과연 구원자라는 존재가 실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면 어째서 내려오지 않았냐며 따질 것이었고,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려가서 모든 것을 폭로할 생각이었다.

저들이 믿는 거짓된 우상이 얼마나 부질없고, 쓸모없으며, 무능한지에 대하여.

그그극···

돌과 돌이 서로 맞물리며 시원한 소리가 들려왔다. 뼈가 부딪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아주 잠깐의 청량감을 즐기기에 걸맞은 소리였다.

“가자.”

밥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더욱 가벼워진 여동생을 업고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마침내 보인 것은 역시나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풍경.

“···당신은?”

이후 소년은 탑을 내려왔다.

등에 업고 있던 소녀는 사라졌고, 가벼워진 몸만큼이나 무거워진 가슴을 안고 탑을 나왔다.

그 아래에는 사제들이 소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탑에서 내려온 존재.

즉, 소년이야말로 구원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

멍한 눈으로 탑을 바라본 소년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주변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쿠우웅···

“아아, 구원이시여!”

사방을 뒤덮고 있던 폭풍이 저물며, 서서히 소년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손 위에 감도는 거대한 힘을 만끽한 소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주변의 사제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 행동을 따라 했고, 자신들도 모르게 서서히, 모래에 빠져들어 갔다.

“구원자는 없어.”


* * *

작은 마을.

중앙에 있는 부서진 용 석상을 제외하면 무엇도 특이한 것이 없는 곳이었다.

은은한 비린내가 항구를 점령하고 있었고, 사람들의 몸에서도 비슷한 향이 났으나 그것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라고 말하며 며칠씩이나 씻지 않고 자랑스럽게 다니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마을에, 한 연인이 찾아왔다.

“도, 도와주세요.”

여자는 얼굴 곳곳에 구멍이 나고, 드러난 피부에는 온갖 염증이 올라 진물이 흐르는 남자를 부축하고 있었다.

“어으, 저것 좀 봐.”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피했다. 아니, 피하기만 했다면 연인에게 행운이었을지 모른다.

멋모르는 아이들은 괴물이 왔다며 썩은 생선을 던졌고, 그들 중에는 돌을 던지는 아이도 있었다.

어른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어른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아이들이었고, 여인은 마을의 안쪽은커녕 그 근처에 있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이, 이건 전염병이 아니에요. 그냥 피부가 조금 벗겨진 것···”

“썩 꺼져!”

퍽!

그 상황에서도 남자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몸을 돌린 채 최대한 막아주었다.

그럼에도 정확히 머리를 향해 날아온 썩은 생선이 머리카락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괜찮···”

“으응, 괜찮아. 당신은?”

“나도.”

퍼억!

이번엔 내장이 흘러내리며 남자의 구멍 난 살점 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그 때문인지 표정이 일그러지며 몸을 흔들었지만, 절대 몸을 피하지 않았다.

“당신, 머리에 생선···”

휘익!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

그건 지금까지 수십번은 들었고, 아직도 깊은 상처를 남긴 날카로운 소음이었다.

“피, 피해!”

여인은 이미 수차례 돌멩이에 맞아 찢어진 상처가 이곳저곳에 있는 자신의 연인을 밀치기 위해 힘을 줬지만, 억지로 자리를 지키며 돌멩이조차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아, 아아···”

타격음은 들리지 않았다.

이미 양손으로 귀를 막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난과 모욕의 소리를 전부 차단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앞에 있는 사랑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고, 고통의 신음조차 같이할 수 없었다.

단지, 머리를 타고 흐르는 피를 보며 오열할 뿐이었다.

“흐으윽··· 가, 갈게요. 갈 테니까.”

이런 상황을 수십번이나 겪었지만, 아직도 여린 마음에는 큰 상처로 남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연인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품으로 천천히 끌어당겨 줄 뿐이었다.

“빨리 꺼져!”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혼자의 몸이었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목숨보다 소중해진 서로였기에, 그렇기에 떠날 수 없었다.

‘내가 죽더라도···’

혹은 그 고통을 분담하거나, 자신이 전부 받아낼 수만 있더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현실은 참혹했고, 구원과 희망은 저 너머에 있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이, 이번엔 어디로 가야 해야···”

품에서 지도를 꺼내 계속해서 체크를 시작했다. 그 옆에서 남자는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만 아니면···”

“바보, 그런 말 하지마.”

“아니야. 너라면, 어디서든 잘할 수 있을 거야.”

그건 확신이 담긴 목소리였다.

병든 자신을 데리고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치료 방법과 먹을거리를 구한 그녀라면, 어디에서든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없으면.’

서로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었고, 그 끝에 존재하는 것이 파멸일지라도 달려가는 것이 운명이라는 이름을 지닌 신의 장난이었다.

“내가 여기까지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당신 덕분이니까.”

“너···”

둘의 대화는 이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항상 미안해했고, 항상 괜찮다고 말한다.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남자는 진즉에 눈치를 챘지만, 뭐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걱정마. 내가,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

이제는 눈에 알 수 없는 광기가 돌며 때로는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사내도 그런 그녀가 아직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보내줘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족쇄로 언제까지 그녀를 묶어둘 수는 없었다.

“여, 여기. 이쪽으로 가보자.”

지도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아니, 지도 자체가 부실해서 제대로 그려진 것은 딱히 없었으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쪽 지역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

사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인을 올려다보았고, 그제야 조금 안정을 되찾았는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게 말이야. 저번에 몰래 들었던 내용이 있거든. 저쪽으로 가면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는 영약이 있다고 하네.”

‘그런 게 있을 리가.’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뱉지는 않았다. 저런 사소한 희망 하나하나가 전부 그녀의 삶을 유지시키는 힘일 테니까.

가는 길은 험난했다.

음식과 물은 어차피 굶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최소한으로 섭취하며 이동했고, 나름대로 체력에 자신이 있었기에 사막을 건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중간중간 몰아치는 회오리바람에 사내의 피부가 벗겨지는 것이었다. 결국 중간중간 바위나 나무 뒤에 숨어 시간을 장시간 보내야만 했고, 몇번이고 사막 위에서 밤을 보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행복했다.

추우면 서로를 껴안고, 뜨거우면 열을 나누기 위해 껴안았다.

“저, 저기 보여?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지?”

여인은 덜덜 떨리는 모습으로 한쪽을 가리켰고, 부축을 거부하고 억지로 뒤를 따라온 사내는 작은 횃불을 보자 그제야 겨우 웃음을 보였다.

‘···마을.’

하지만 이내 불길한 마음도 같이 감돌았다.

지금까지 그들이 받은 취급을 생각하면, 돌멩이 세례 정도는 기본이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독이 든 음식을 먹여 죽이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가자!”

그러나 활기차게 구멍이 송송 뚫리고, 진물이 나는 손을 꽉 잡아준 여인이 앞장서자 결국 그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는 영약이···”

모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남은 마을이었다. 안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얼핏 보기엔 이미 무너진 마을이었다.

“오오, 새로운 손님들이로군요.”

얼굴의 반쪽이 거칠게 쓸려나간 자국이 있는 한 사제가 나타나 자신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익숙지 않은 상황에 당황한 연인이었고, 사제는 천천히 그들을 이끌었다.

“이곳은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의 쉼터입니다. 아직, 아직 구원은 내려오지 않았으니 말이죠. 흐흐···”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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