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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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loo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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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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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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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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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야기

DUMMY

여인은 확신했다.

‘여기엔 미친놈들밖에 없어.’

단순히 자신들을 받아주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렇게 평범하고, 따뜻한 대우는 처음 받아봤기에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이곳은 명백히 이상했으니까.

‘탑? 탑이 뭔데.’

이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폐허.

드물게 시체가 보였고, 시체의 모습도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이 찢겨 있어 평범한 사람이라면 보고 곧바로 눈을 돌릴 정도로 끔찍한 최후였다.

그러나 이 미친 광신도들은 그것을 순교라고 불렀다.

“위대한 죽음, 합당한 희생. 그렇게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겁니다!”

한쪽 얼굴만 근육이 움직였기에 눈물이 흐르는 것도 한쪽뿐.

그 기괴한 상황임에도 여인은 차분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상한 의식이나 실험을 한 흔적은 없어.’

사내를 붙잡아서 해부하려는 시도도 수도 없이 있었기에 이런 상황을 살펴보는 것은 익숙했다.

‘하지만 은은한 혈향. 도대체 왜?’

심지어 그것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피.

즉, 최근의 누군가가 살갗을 찢어 피를 쏟아냈다는 뜻이다.

‘왜? 왜? 도대체 왜?’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왜 죽으려고 하는 거지?

왜 죽음을 앞당기려고 하는 것이지?

평생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여인은 깨닫지 못했다.

그저,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탑이···요?”

“예! 그렇습니다. 따라오시죠.”

기괴하게 웃는 사제의 뒤를 따라갔고, 도착한 곳에는 그 형태가 반절쯤 남은 탑이었던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이게 탑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아직 구원자께서 내려오시지 않았기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죠. 오오! 위대한 탑이시여.”

“이건 누가 지었길래 이렇게 부실··· 아니, 폐허가 되었죠?”

“그것이야말로 기적입니다. 본디 인간의 힘으로는 쌓을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구원이 실재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여인은 옆에서 몸이 흔들리는 사내의 몸을 부축해 주며 사제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의 몸은 괜찮아질 수 있나요?”

이미 몇 번 진찰했으니 말 정도는 들어볼 수 있었다.

“후후, 구원이 내려온다면.”

그러나 미친 광신도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구원. 구원. 구원.

‘도대체 세상에 무엇이 마음에 안들길래?’

자신들에 비하면 이들은 멀쩡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무언가 미쳐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곳 위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거짓 구원자가 내려와 말했으니 사실일 겁니다.”

“거짓 구원자요?”

“예, 이 탑을 오른 자이며, 스스로 내려온 자이기도 합니다. 아아, 위대함과 전능함을 스스로 포기하다니. 얼마나 오만한 존재입니까.”

그 뒤의 이야기는 헛소리에 불과했기에 가볍게 무시했지만, 저 탑을 올랐다는 말에는 흥미가 갔다.

‘···무엇이든 고칠 수 있다고?’

여인은 사제가 떠나고, 한참이나 탑을 지켜보았다.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 발에 찔리는 돌 파편이 널려있을 것이 분명했고, 그곳의 분진은 사내에게 안 좋을 것이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 봐야 하나?’

그러나 들어갔다가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때부터는 사내가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

평생을 함께했기에 그가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상상을 하기 힘들었던 여인은 이내 몸을 돌렸다.

‘확신을 갖기 전에는 할 수 없어.’

뜨겁게 타오르는 심장만큼이나 차갑게 식은 머리로 돌려 몸이 흔들리는 사내를 부축했다.

“돌아가자.”

“···들어가고 싶은 거지?”

“어?”

사내는 아픈 와중에도 항상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건 해가 뜨지 않는 여인의 인생에서 유일한 빛이었고, 삶의 원동력이었다.

“가자. 올라가서, 뭐가 있나 확인해 보자.”

“하지만 어딜 봐도 올라갈 곳은 보이지 않아.”

무너지기 이전에는 얼마나 높았는지 추측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저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즉,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고사하고 올라갈 위 공간이 없는 곳이었다.

“혹시 모르잖아?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기대와 호기심은 오래전에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새로운 것에 접근한다고 생각하자 여인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간다?”

이미 반쯤 부서져 열려있는 문의 사이로 몸을 살짝 집어넣었고, 사내 또한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인 것은 전혀 다른 세상.

먼지와 모래 그리고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모래 폭풍의 위협이 없는 세상.

‘하지만 이곳도.’

“···피 냄새.”

곧바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고, 사내 또한 누군가 오면 곧바로 대응하기 위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 대비가 무색하게 보이는 것은 오직 시체. 수많은 늑대들의 시체였다. 그들 주변에는 무기가 떨어져 있었지만, 대응도 하지 못하고 죽은 것인지 무기는 상당히 깨끗했다.

“자기들끼리 내분이 일어나서 죽은 것은 아니고··· 압도적인 누군가?”

상처의 상태를 보니 무언가에 갈가리 찢겨나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날붙이 같은 건 아니야. 이렇게 깔끔한 상처를 낼 수는 없어.”

“음, 엄청난 실력의 검사라면?”

사내가 옆에서 그녀의 추리를 도와주었고, 그녀 또한 그것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그 정도의 검사라면 더욱 말이 안 돼. 단칼에 목을 쳐서 죽이는 것이 더 쉬울테니 말이야. 이렇게.”

늑대의 시체를 휙 뒤집어 앞면에 생긴 수많은 자상을 보여주었다.

“원한이나 분노. 혹은 그에 준하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우리가 마을에 찾아갔을 때 날아오던 화살과 비슷한 느낌인 건가?”

사내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하자 그녀 또한 웃으며 사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응, 그런 거야.”

둘은 평범했고, 평범했었다.

너무 많은 일을 겪어 세상을 더 이상 평화롭게만 볼 수 없었으며,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그렇기에 이런 일은 오히려 밥을 하는 것보다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계속 올라가자.”

“시체는 더 안보고?”

“응, 볼 필요 없어. 우리는 위로 올라가야 하니까.”

사내의 손을 잡고 다시 위로, 끊임없이 위로.

절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당장 지금이라도 쓰러져 죽는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여인의 마음은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여기도 마찬가지야.”

시체가 있느냐 없느냐에 차이일 뿐.

각 층은 분명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대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었고, 그것은 인간이 어쩔 도리가 없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쿨럭!”

거칠게 피를 토한 사내는 슬쩍 여인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여인은 언제나처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아니, 말하지 마.”

입가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준 여인은 굳은 표정으로 계속해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여긴, 가?”

웅장하다는 말이 고작. 이라고 느껴질 만큼 거대한 돌문.

그리고 더 이상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없었다.

이곳이 종착지라고 생각한 여인의 몸이 자연스레 무너졌고, 사내가 곧바로 그 몸을 받아주었다.

“자, 가자.”

“응.”

지금까지는 긴장과 초조함으로 두근거렸다면, 이번에는 혹시 모르는 희망에 대한 감정으로 점차 고조되었다.

‘우리,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그 말은 아끼기로 했다.

그것은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해도 문제 없었다.

“문이 열려있어.”

아이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열려있는 문이었고, 한쪽 문에는 핏자국이 심하게 남아있었다.

‘···그 광신도가 말했던 거짓 구원자인 건가?’

구원이니 구원자이니 그런 사소한 말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얻어갔으며, 무엇이 남아있는가. 그것이 핵심이었다.

타박. 타박.

가벼운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열려있는 돌문 사이로 몸을 욱여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보인 세상은, 여인을 절망하게 하기 충분했다.

“···왜?”

아무것도 없다.

그야말로 무(無)를 형상화한 공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주변을 훑어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발로 내리 찍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려고 해봐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는 허무한 공간.

“다, 다 가져간 거야?”

이 공간에 아마 엄청난 약이 있었을 테고, 영악한 그 사람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전부 챙겨갔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여인의 눈에서 스멀스멀 광기가 피어올랐다.

“죽이겠어. 죽여서···”

“크흑.”

털썩!

“아, 아아!”

자신을 너무 믿었기에.

너무 믿어서 그 아픈 몸으로 여기까지 같이 와주었기에.

“미안, 미안해요··· 내가 이곳에 오지만 않았어도.”

자리에 쓰러진 사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까지 너와 함께할 수 있어서.”

뒷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것마저 듣게 된다면, 정말 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기에.

그리고 그 순간, 여인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 이곳까지 올라오다니···

“누, 누구?”

눈물과 콧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 손에는 언제 들고 왔는지 모를 돌조각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곧바로 휘두를 것은 자명해 보였다.

─ 하지만 안타깝구나. 이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

“···당신은.”

그것은 본능이기도 했으며, 직감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낮은 곳에서 살아오며 누군가에게 빌어먹을 때마다 느끼던 감각.

‘이 사람이다.’

─ 그러니 내게 말해보아라.

“무, 무엇을 말이죠?”

끈적하고, 달콤했다.

목소리만 듣고 있음에도 얼굴이 녹아내렸고, 목 너머로 각설탕을 긁어내는 듯한 불쾌감이 몸을 지배했다.

─ 넌 무엇을 원하느냐.

“이 사람을. 살리고 싶어요.”

사내의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한다.

목소리는 어느새 안개처럼 변하며, 여인의 주위를 에워쌌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 그러면 넌 무엇을 포기할 수 있지?

포기한다.

그것은 여인의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난 애초에 무언가를 가져본 적이 없어.’

사내만이 전부였고, 삶이었으며, 세상이었다.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크윽.”

사내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그보다 빠르게 여인의 입이 열렸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요.”

─ 웃기는군.

그러나 목소리는 여인을 비웃는 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대답에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

─ 그래, 네 소원을 이루어주마.

안개는 서서히 형상을 갖추었지만, 어째서인지 제대로 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바라볼 때마다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사람으로 변했다면, 팔이나 다리 한쪽이 사라졌고, 동물로 변했다면 머리나 꼬리가 사라진 모양이었다.

심지어 처음 보는 괴상한 생물체로도 변했는데, 이 또한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니야. 소원을, 몸을 원래대로 만들어준다고.’

우득.

생각은 길지 않았다.

눈앞의 사내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고, 꺾이고, 살갗이 찢어졌다.

그러나 울부짖는 소리는 없었다. 이상한 형체는 사내의 입을 틀어 막았고, 눈을 감겨주었기 때문이다.

‘제발. 제발.’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여인의 앞으로 목소리가 쿡쿡 웃으며 지나갔다.

─ 네 소원을 이루어 주었다.

“···”

눈앞에 있는 것.

그래, 사내가 있던 자리에 있는 것.

‘저게, 뭐지?’

순간 머리가 정지한 여인은 멍하니 목소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목소리는 형체를 여러 번 흔들며 여인을 놀리 듯 말을 꺼냈다.

─ 네 소원은 이 사내가 살아있는 것. 이지 않았더냐?

“···그런 말장난이.”

─ 무언가 말을 할 때는, 항상 입을 조심해야지.

숨을 쉬고, 심장이 뛴다.

그러나 그걸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괜, 괜찮아요?”

여인은 살덩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행히 의식은 있는지 몸이 꿈틀거렸고, 안쪽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르륵···”

가래 끓는 소리가 울리며 여인을 품으로 끌어당긴 살덩이는 최대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능한 큰 목소리로 여인에게 전해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아.”

뚝.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그리고 손에 쥔 돌멩이를 들어 올렸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팔이 하늘로 높게 치솟아 오른다.

“네, 잘못이··· 아니야.”

콰직!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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