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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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loo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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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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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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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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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야기

DUMMY

마녀는 포근한 침대에서 이불을 발로 차며 몸을 일으켰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어디까지나 마녀의 의지에 따라 불어오는 것이었기에 슬슬 그만둬. 라는 생각을 하자 곧바로 바람은 멈추었다.

“어라.”

눈을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자 물방울이 흘러나왔다.

눈물을 흘려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기에 상당히 신기한 상황이었고, 마녀는 눈물을 곧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짜.”

곧바로 옆에 놓인 과자를 입에 넣어 입을 정화시킨 마녀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던져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 귀찮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무기력증이었고, 신연우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한 순간부터 무기력증은 더욱 강하게 몸을 지배했다.

이대로라면 문을 박차고 나가 세상의 경계 속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이제 그만둘까.”

가슴에 손을 올린다.

심장은 콩닥콩닥. 마녀의 체구에 어울리는 귀여운 박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녀는 진정한 심장은 이미 오래전 멈추고 말았다. 지금은 그저 펌프질하며 혈액을 이곳저곳으로 보내는 기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피, 피인가?”

마녀는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힘을 얻은 이후 어떤 일을 해도 굳은살이 박히거나, 다치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자신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해 마녀는 자해도 몇번이나 시도했다.

‘무의미해.’

자신들을 무시했던 존재들에게 복수를 끝냈고, 세상에 미련이 사라진 마녀는 곧이어 죽으려고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신을 원망해.”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말을 건넸지만, 그것은 영원한 저주이자 속박이 되었다.

그나마 정신이 조금 깨어있는 지금에야 인지를 할 수 있었고, 그 이외의 시간은 그저 미쳐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당신을 위해···”

미쳐버린 마녀는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몰랐다.

쾌락과 흥미를 제외하면 그녀의 행동은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않았지만, 적어도 돈 만큼은 항상 챙기고 다녔다.

그것이 마지막 속죄이며, 연인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세상을 살만큼의 돈을 모았더라도, 결국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 심지어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사내의 병은 고작 대환단이나 엘릭서 따위로 고칠 수 있는 위중함이 아니었다.

“으응, 그래. 이젠 아무런 의미 없어.”

완전히 버려졌다.

세상은 새로운 영웅을 찾았고, 마녀의 역할은 그를 여기까지 인도하는 것이었다.

“이젠, 오히려 편하네.”

안개가 개인 듯 오랜만에 깔끔해진 정신 상태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마녀는 이내 손을 뻗어 세상을 관찰하는 구슬을 꺼냈다.

“···이젠 이것도 필요 없.”

파삭.

“?!”

깜빡. 깜빡.

마녀의 공간에 있던 등불이 점멸했다.

‘그럴 리가.’

이곳은 마녀의 개인 공간.

세상이 마녀만을 위해 갈라놓은, 이른바 세계의 균열이었다.

이곳이라면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고, 오직 마녀의 초대밖에 들어올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누군가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바라보고 있었다.

“누, 누구?”

본능적인 두려움.

포식자를 바라보는 토끼의 심정이 된 마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조각이 난 수정 구슬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갈라진 수정 구슬의 조각에서는 신연우가 해룡 마을로 향하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도와줘야 할까?’

파삭!

마녀의 평생을 묶어두던 족쇄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눈치채기엔 너무 작은 균열이었다.

마녀는 그저, 신연우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고민할 뿐이었다.


* * *


“여기다.”

해룡이 가볍게 나를 내려주었고, 나는 곧바로 마을의 안쪽으로 향했다.

“어, 또 외부인이구만.”

수염을 길게 기른 한 노인이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다.

‘설아는?’

마을에는 무언가 습격했다거나, 싸움이 있었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싸웠다면, 적어도 여기가 전장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젊은 친구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빠르구먼.”

해룡은 옆구리에 노인을 낀 채 나의 옆으로 다가왔고, 내가 돌아다니기 위해 몸을 숙이자 곧장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이야.”

“침착해라.”

해룡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나와 눈을 맞추었고, 옆구리에 있는 노인을 내게 내밀었다.

“···?”

“이자가 그랬지. 또 외부인이 왔다고.”

“그, 그랬나?”

번역 마법은 다 좋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흘려지나가 듯 들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뭐, 내가 제대로 듣고 지나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누가 찾아왔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겠나?”

“얼마 전에 여인이 한 명 찾아왔는데, 몸이 안 좋은 것 같아 집에서 간병을 하고 있다네.”

“···혹시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고, 검을 차고 있었나요?”

“으음, 그렇다만?”

옆구리에 끼어있던 노인을 곧장 빼낸 뒤 앞장서라고 말했고, 약간 영문 모를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으나 순순히 안내를 해주었다.

“아, 저건 우리 마을의 명물. 해룡 동상이라네.”

“딱히 안 궁금한···”

말을 자르기 위해 시선을 돌렸지만, 해룡은 이미 그 동상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먼저 가서 몸 상태를 확인해라.”

“···그래.”

그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하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저분은 동상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구먼.”

“그러게요.”

노인은 허허롭게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급한 것 없네. 그 아이가 많이 다치긴 했다만, 시간이 꽤 지나 가볍게 몸을 움직일 정도는 되었으니 말이야.”

‘그러면 그전에는 얼마나 아팠다는···’

오싹한 감각이 순간 오감을 지배했지만, 지금은 괜찮다는 말에 절로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표현이 풍부해서 보는 맛이 있고만 그려.”

“하하··· 그런 말 많이 듣고는 하죠.”

정확히는 얼굴을 많이 읽히는 편이지만.

“저 동상은 과거 우리 마을의 수호신이었던 해룡 님을 형상화한 것이라네.”

노인은 동상을 만지며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 해룡을 바라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누굴 탓할 것도 없지. 우리의 죄였으니 말이야. 그분이 떠난 것도 당연하다네.”

끼익.

어느새 도착한 노인의 집 문은 관리를 잘한 듯 살짝 밀자 가볍게 열렸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하게. 알겠나?”

“아, 예···”

영문 모를 말이었지만, 노인의 은은한 미소에 담긴 현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난 나가보겠네.”

쿵.

노인이 사라지자 남은 것은 나와 한설아. 두 명밖에 없었다.

“···어.”

“음.”

걱정되어 찾아오긴 했는데, 여기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너무 어색했다.

한설아 또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오물거리긴 했지만, 결국 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게. 응, 못 본 지 오래되긴 했지?”

마지막으로 본 것이 집에서 에블의 과거를 보기 불렀던 때였으니 이미 한참 전이었다. 그사이에 짧게는 끝내지 못할 이야기가 잔뜩 생겼을 테지.

침대에 앉아 볼을 긁적이던 한설아는 이내 옆에 있던 과일 바구니를 건넸다.

“머, 먹을래?”

“···보통 이건 병문안을 온 사람이 주는 거 아닌가?”

“으음, 보통은 그렇지?”

나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가 올라왔다. 그래, 우린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몸은 괜찮고?”

팔을 이리저리 흔들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의 흐름도 딱히 문제 될 거 없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안정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녀의 상태는 멀쩡했다.

“여기서 이상한 구멍을 발견했어.”

갑작스레 시작한 말이었지만, 한설아가 이곳에 온 이유와 누구와 싸웠는지 들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조용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번에 에블의 일기장을 봤을 때 미심쩍은 게 있어서 이곳저곳 돌아다녔거든.”

실제로 한상배가 요즘 한설아가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닌다며 몸 상태를 걱정했었다. 그래서 갑자기 사라졌을 때 더 불안했던 거겠지.

“여기에 도착했을 때 느꼈어. 그때 봤던 무언가와 분명 연관이 있다고. 그래서 저 산 정상에 올라가 봤는데.”

거기서 말을 끊은 한설아는 침울해보이는 표정으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결국 구멍은 확인 못 했어. 분명 뭔가 중요한 단서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이상한 녀석들에 대한.”

아마도 군단에 대한 이야기겠지.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한상배 또한 일의 경중 때문인지 그렇게 아끼는 한설아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듯싶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호기심을 부르고, 이런 위험한 일을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겠지.

‘한설아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바뀌었다.

“마침 오늘 다시 올라가 보려고 했거든. 같이 가볼래?”


* * *


도착한 묘지에서 한설아는 한참이나 돌아다녔다. 발로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며 확인을 했으나, 결국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상황에 망연자실하였는지 풀밭에 털썩 주저앉고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눈을 꾹 감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여기서 뭐라고 위로를 해줘야 할까?

‘···모르겠어.’

위로나 충고 같은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받는 것이 더 익숙한 나였기에 입을 다문 채, 조용히 그녀의 옆을 지켜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

“여기서 싸웠어. 붉은 머리카락에 아름다운 기사랑.”

어느 정도 정돈이 되어 있었지만, 묘지에는 아직도 그 싸움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었다. 사방에 흩날린 참격에 의해 생긴 길쭉한 흉터들과 파괴된 묘비들.

거기에 더하여 부패의 흔적이 남아 땅 깊숙한 곳에서부터 대지를 썩히고 있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온 거긴 한데··· 그래도 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네.”

손바닥을 땅에 살짝 가져간 한설아는 안쪽에 뿌리 깊게 박힌 부패를 뽑아내어 바깥으로 꺼내었다.

“이제 돌아갈까?”

빙긋 웃으며 몸을 돌린 한설아였지만, 가슴속에 있는 공허함은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한설아가 먼저 다가와 나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산 아래로, 마을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저기 너희 집에 있던 그 사람인데?”

그녀는 내가 부담 갖지 않도록 일부러 더욱 활발한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그 부담을 알기에 굳이 더 말은 꺼내지 않았다.

“해룡?”

해룡과 촌장은 무언가 대화를 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사래를 치거나 등등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 무뚝뚝한 모습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너희의 죄가 아니다.”

“예?”

해룡은 촌장을 마치 어린아이를 바라보듯 따뜻한 감정을 담아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모든 것은 그저, 통제와 억압이 진정한 평화라고 여긴 멍청한 녀석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지.”

그는 동상을 향해 가볍게 손을 가져갔다.

“인간이 자유를 동경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건 당연한 감정이다. 그걸 몰랐기에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지.”

파각!

해룡의 손에서 뻗어나간 마력의 실은 해룡의 동상을 휘감았고, 가볍게 손에 힘을 쥐자 동상은 산산이 조각나며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과거의 잔재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을 살아가도록 해라.”

“허허.”

무너진 해룡의 동상을 바라보던 노인은 머리를 긁적였다.

“치우는 데에도 한세월이겠습니다.”

“···내가 치워주지.”

마법으로 하면 될 것을 굳이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자드키엘이 얼마나 굴렸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마법을 못 쓰게 하니까.’

“그렇지만 말입니다. 인간은 이상한 존재인지라, 아무리 밉고, 싫어도 다시 돌아보게 된답니다.”

촌장의 담담한 말에 해룡의 몸이 움찔했다.

“본인들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슬퍼하고, 그저 잘되기를 기도하고는 합니다.”

“···마음은 고맙게 받도록 하지.”

둘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지만, 해룡의 입가에는 긴 웃음이 걸려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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