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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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loo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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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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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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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의 눈

DUMMY

“···끄응.”

베르트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주변을 둘러보자 한상배는 얍삽한 미소를 지으며 낄낄거렸다.

“내가 오라클의 위치를 그리 쉽게 알려줄 것 같더냐?”

“쥐 같은 놈 같으니라고. 그냥 마법으로 눈만 막으면 될 일인데.”

“드워프 놈들이 어떤 물건을 품에 갖고 있을지 모르니 최선을 다해 막을 수밖에.”

한상배는 우리를 오라클로 인도하기 위해 지하로 향했고, 기다란 터널과 미궁을 지나 온갖 마볍 결계를 해제하며 움직였고, 해저에 있는 의문스러운 방울을 타고 지나간 뒤에야 도착했다.

“정식 루트는 이쪽이 아니겠죠?”

“당연하지. 이딴 식으로 길이 만들어져있으면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못 들어올걸?”

자신감 넘치는 말이었지만, 확실히 그래 보였다. 그냥 무식하게 힘으로 뚫는 게 몇십배는 편해 보였으니까.

“흐음, 설비가 보통이 아니구만?”

벽면을 만지며 걸어가는 베르트가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고, 그 옆에 따라붙은 한상배는 딴지를 걸면서도, 친절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친한 건지 사이가 나쁜 건지.’

의외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나쁘지 않았다.

공격적이지만, 정말로 공격할 의도는 없는.

흡사 창살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해 짖고 있는 개를 보는 것 같았다.

‘···이해하고 있는 건가?’

마스터라는 자리.

마법사와 장인이라는 무언가를 연구하는 존재.

그 외에도 둘은 공통점이 꽤나 많았다.

“어, 자네는 설아의 남자친구가 아닌가?”

둘의 사이를 고민하는 사이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구리에 검을 덜렁거리며 등장한 검성은 목을 긁적이고 있었다.

“체면은 안 지키기로 한 겁니까?”

“집에서까지 체면을 지킬 필요가 있겠나. 허허.”

하긴, 그것도 그렇네.

평상복도 무복과 다름없었지만, 행동거지가 상당히 편해 보였다. 검성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한상배와 베르트를 보더니 머쓱하게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저렇게 잘 어울린단 말이지. 저렇게 대화를 시작하면 한참을 서성이니 먼저 들어가는 게 좋을걸세.”

“···그렇다면야.”

검성의 인도를 받아 안쪽으로 이동했고, 자연스럽게 귀빈실 쪽으로 향했다.

‘여기가 아니야.’

내가 우뚝 멈추자 검성은 의아한 듯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인가?”

“전지의 눈을 보러 왔습니다.”

“음.”

단호한 대답에 검성은 잠시 멈칫했고, 뒤에서 떠들고 있는 한상배 쪽으로 다가갔다.

“자네.”

“으응? 무슨 일이야?”

한참 대화하고 있는데 방해를 받아서 귀찮은지 손을 휘적거렸지만, 검성은 한숨을 내쉬며 붙잡아서 끌고 왔다.

“익, 이게 무슨 짓이야?!”

“전지의 눈에 대해서 이야기하던데, 맞나?”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나?”

“너도 말했잖나. 그 위험한 물건은 두 번 다시 세상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끄응, 그랬었지.”

그 말은 적어도 한번은 사용이 된 적이 있다는 뜻인가?

“자네도 어째서 전지의 눈이 필요한 것인지 설명을 해야할 것이야.”

무도복에는 어울리는 멋진 말이었지만, 방금까지 목을 긁적이던 사람에게 들으니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될까요?”


* * *


전지의 눈은 오라클의 가장 높은 곳에 놓여있었다.

전지라는 이름처럼 주변에는 많은 책들이 놓여 있었고, 한 권 한 권이 마을 하나쯤은 가볍게 날려버릴 위험한 마법이 새겨진 스크롤 북들이었다.

‘그런 녀석들로 봉인진을 구축하고 있다.’

오직, 전지의 눈이 활성화되지 않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수백권의 책들 사이에서도 눈은 고고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꿈틀.

‘비슷한 느낌이다.’

작은 눈동자 같은 보석은 유리로 만들어진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지만, 나보다 먼저 행동을 한 사람이 있었다.

“으럇! 참을 수가 없구나!”

잔뜩 흥분한 베르트가 달려가려고 하자 검성이 뒷목을 잡더니 허허 웃어 보였다.

“침착하시게나. 저건 보통 물건이 아니니까.”

“쓰읍, 저런 물건을 눈으로 밖에 못 본다니. 장인에게 이만한 고문이 어디 있겠어.”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함을 표현했지만, 검성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조심히 다뤄야 하는 물건이니 양해를 부탁하네.”

“···흐음, 사용법은 기록에 남아있었는데.”

한상배는 옆에 늘어진 책들 가운데에서 하나를 꺼내 유심히 읽기 시작했고, 베르트는 뚱한 표정으로 몸을 흔들었다.

“어련히 가만히 있을까.”

“평소 자네 모습을 생각하면 전혀 믿기지 않는 말인데.”

“흥, 오라클까지 와서 그렇게 품위 없이 행동하지 않을 테니 어서 놔라!”

“끄응···”

그래도 나름 한 길드의 수장이었기에 언제까지 목덜미를 잡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은 놔주겠다만.”

“알았어. 멋대로 행동하지 않겠다.”

‘···불안한데?’

검성은 뒤에 있어서 베르트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전지의 눈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를 할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자기 할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사람이 눈앞의 유물을 포기할 리가.’

아무리 검성이라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듯 섣불리 베르트를 놓아주었고, 그 결과는 몇조 지나지 않아 우리의 앞에 닥쳐왔다.

“크하하! 아티팩트와 유물은 치대다 보면 작동하기 마련이지!”

검성의 손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전지의 눈으로 달려가 작지만, 세월이 묻은 거친 손으로 유리 벽을 내리쳤다.

퍼억!

“이, 이런!”

의외로 순진한 모습의 검성은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지만, 한상배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작 물리적 충격에 반응할 만큼 약하게 설계되지 않았어. 저 정도 충격에 마나까지 더해야만 의미가 있을 거다.”

“잉? 아티팩트를 다루는 장인이라면 언제나 손에 마나 염료를 묻히고 다니는데?”

“···뭣?”

베르트의 해맑은 미소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전지의 눈이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그극.

겉면을 두르고 있던 유리에 서서히 금이 갔고, 주변에 펼쳐져 있던 수많은 마법 스크롤의 마나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라락.

종이에 쓰여진 수많은 글자가 허공으로 흩어지며 평범한 종이로 변해버렸다.

“옷, 신기한 장면이로군.”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자각도 없이 마나로 변하는 글자를 만지는 베르트의 머리를 쥐어박은 검성이었고, 한상배는 급히 전지의 눈으로 달려갔다.

“이, 이게. 쯧.”

열린 전지의 눈 위로 손을 올린 뒤 무언가를 조작했지만, 잘 안된 듯 안쪽에서 마나가 폭발하며 한상배가 저 멀리 날아갔다.

“컥!”

“···제가 만지면 안 되겠죠?”

어차피 마법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기에 딱히 만지는 것에 의미가 있나 싶었고, 구석에 박힌 상태로 한상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해지면 더 심각해졌지 나아지지는 않을 거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전지의 눈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가. 장소를 특정하지 않았던 탓에 완전히 무작위 위치에 전지의 눈이 작동되었어.”

전지의 눈에서 투영된 빛은 서서히 어디를 비추고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곧이어 선명하게 변한 화면 속에는 말라비틀어지는 모래 폭풍과 뜨거운 햇살이 나타났다.

“···사막?”

평범한 사람은 고사하고 헌터조차 살기 힘들어 보이는 뙤약볕 아래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머리 위에 쫑긋 올라온 귀와 뾰족한 이빨, 꼬리뼈 부근에서 튀어나와 있는 꼬리.

즉, 누가 봐도 수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왜 수인들이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지?”

“···끄응, 최근 수인들이 갑작스레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렇게 뜬금없는 장소에서 등장할 줄이야.”

말하는 사이 늙어 보이는 수인 한명이 쓰러지자 다들 달려와 급히 입에 물을 넣어주었다.

“도와주러 갈 건가요?”

내가 넌지시 말을 걸자 검성과 한상배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클은 쓰러진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다.”

평소 언행과는 다른 의외의 모습을 보이며 몸을 툭툭 털어낸 한상배였고, 떨어진 스크롤이었던 것들을 검성이 치워냈다.

“베르트. 당신은?”

“으하하!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나도 같이 가는 것이 예의 아니겠나?”

적어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의식이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그걸 반성하지 않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 * *


그들의 세상은 무너졌다.

온갖 괴물들이 탑에서 뛰쳐나와 학살을 저질렀고, 대륙을 갈랐다.

일부 부족은 결국 대를 남기지 못하고 멸족했으며, 그들조차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 그들의 어머니가 직접 그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보내주었다.

‘목숨은 건졌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희미한 존재들이 부족민을 농락하며 죽이는 모습을 떠올리자 여전히 손이 벌벌 떨려왔다.

‘이 기억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갈 것이다.’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복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두 감정이 공존하며, 사내를 그 무엇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끊임없이 걸어갈 뿐이었다.

“으윽.”

배에서 천둥이 치던 노인의 무릎이 땅으로 꺼졌다. 남은 식량을 최대한 분배하고 있었으나, 남은 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조금만 버티세요.”

사내는 정처 없이 걷는 것이 아니었다.

명확한 목적지가 있었고, 그곳에 구원이 있음을 확신했다.

‘이토록 강렬한 생명의 기운은 느껴본 적이 없다.’

그의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불렸던 드루이드조차 해변가의 모래 알갱이로 만들 거대한 힘이 사내를 부르고 있었다.

“큽!”

입에서 씹히는 모래 알갱이를 억지로 뱉어내던 중 이빨 하나가 같이 튀어나왔다.

덕분에 안쪽에서 피가 흘러나와 땅을 적셨고, 뒤에서 따라오던 부족민들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달려왔다.

“괘, 괜찮다.”

억지로 자신을 달래며 걸었지만,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에 비해 그 거리는 너무나 멀었다.

모두가 죽고, 겨우 하나가 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깊은 고민을 갖게 하는 수준이었고, 서서히 그들에게 짙은 절망이 다가왔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의 어머니는 부족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또한 그저 믿는 것.”

그것이야말로 믿음이라 그들은 배워왔다.

자리에 주저앉은 노인은 그대로 머리를 모래에 파묻고,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를 올렸다.

구해달라던가, 살려달라던가 그런 말이 아닌, 오늘도 살아있게 해주심에 감사한다는 형식적이지만, 지금에 가장 어울리는 기도였다.

“모두들, 잘 들어라.”

기도를 끝낸 노인은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부족민과 족장을 바라보았다.

“우리들을 데리고 가기엔 틀렸다.”

그 뒤에 나올 말은 뻔했기에 반발이 일어났지만, 결국 모든 결정은 족장이 하는 것이었다.

사내에게 모든 시선이 몰렸고, 노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듯싶었다.

“···식량을 놓고 가겠습니다.”

“허허.”

그것마저 거절하면,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노인은 그저 허탈한 웃음을 남길 뿐이었고, 눈물을 흘리며 가방에서 식량을 덜어내었다.

‘제발, 우리를 구원하소서.’

빠진 이빨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피 때문인지 모래 알갱이에서조차 짭짤한 맛이 나며 그의 눈물이 더욱 붉게 변했다.

콰과광!

“···으응?”

그런 그의 앞으로, 거대한 모래바람이 일어났다.

“저기 있다!”

“다들 천막과 응급 도구를 준비해라! 환자가 다수 있다!”

“···아, 어머니.”

“괜찮습니까?”

마침내 찾아온 구원에 사내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고,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몸을 흔들자 그것이 현실임을 깨달았다.

“···고맙습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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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블랙스미스 24.09.17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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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블랙스미스 24.09.13 5 0 12쪽
125 데이트? 24.09.12 7 0 12쪽
124 데이트? 24.09.11 7 0 11쪽
123 데이트? 24.09.10 7 0 11쪽
122 데이트? 24.09.09 6 0 11쪽
121 데이트? 24.09.08 6 0 12쪽
120 세계수 24.09.07 7 0 11쪽
119 세계수 24.09.06 8 0 12쪽
118 세계수 24.09.05 7 0 12쪽
117 누군가의 이야기 24.09.04 8 0 12쪽
116 누군가의 이야기 24.09.03 9 0 13쪽
115 누군가의 이야기 24.09.02 8 0 12쪽
114 누군가의 이야기 24.09.01 6 0 12쪽
113 누군가의 이야기 24.08.31 9 0 11쪽
112 불사의 군단 24.08.30 9 0 11쪽
111 불사의 군단 24.08.29 5 0 11쪽
110 불사의 군단 24.08.28 7 0 11쪽
109 불사의 군단 24.08.27 8 0 11쪽
108 불사의 군단 24.08.26 7 0 13쪽
107 불사의 군단 24.08.25 6 0 13쪽
106 불사의 군단 24.08.24 9 0 11쪽
105 불사의 군단 24.08.23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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