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야 사는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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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버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0 13:16
최근연재일 :
2024.08.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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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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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편곡을 하자

DUMMY

공수혁 실장은 자신을 따라 연습실 밖으로 나오는 유미소를 보고 감탄했다.


‘크···. 언제 봐도 미모가 미쳤단 말이야.’


다른 멤버들도 괜찮게 생기긴 했지만 유미소는 볼 때마다 놀라웠다. 단정한 이목구비에 청초한 이미지가 딱 배우상이랄까.


얼굴만이 아니다. 배우들보다도 좋은 비율에 성격도 얌전하니 다루기 편했다.


‘예쁘니까 연기만 좀 늘면 바로 배우로 성공할 거다. 지금이야 발연기 논란이 심하고, 연기보다는 춤추고 노래하는 걸 더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유미소의 뒷배경이었다.


‘얘는 낙하산이 아니었어도 밀어줬을 거야. 근데 이 녀석이 마침 유새홍 사장의 조카라네?’


유새홍이 자기 조카라며 잘 챙겨달라고 부탁한 유미소가 블루문의 비쥬얼 센터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심지어 유새홍 사장조차 상전처럼 모시는 귀한 조카라는 걸 알았을 때. 공수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이돌은 기획사 빨이야. 그룹을 성공시키는 건 기획사의 몫이라고. 하지만 멤버 한 명 정도는 내 힘으로도 충분히 띄울 수 있지. 심지어 그게 회사의 핵심이라면야!’


아이돌 자체를 띄우는 것보다 멤버 한 명만 살리는 게 훨씬 쉽다. 대부분의 소형 기획사 아이돌을 봐라. 종래엔 인기 멤버 하나만 남기고 그룹을 해체하지 않나?


어쩌다 천운을 만나 잠깐 뜨더라도 소형 기획사 아이돌은 그룹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멤버 하나만 건져도 성공인 거다.


그런 점에서 공수혁 실장은 정답대로 행동했다. 처음부터 유미소에게 올인했으니까. 매 활동마다 센터는 유미소로 고정했고 따올 수 있는 개인 스케줄은 모두 유미소에게 몰아주었다.


덕분에 유미소도 공수혁 실장 앞에서는 유독 더 많이 웃어 보였다. 공수혁 실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수혁은 오히려 유새홍 사장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됐다.


‘유새홍 사장이 프로듀싱 대결을 처음으로 제안했을 땐 화가 났는데 말이야. 이거 결국 내가 이기는 게임 아니야?’


최근 들어 불만이 많아진 유새홍 사장이다. 이번 대결에서 이기면 오히려 유새홍 사장을 입 다물게 만들 수 있었다.


‘사람은 자신한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움직여. 유미소는 내 편을 들 수밖에 없다는 거지. 그래도 미리 약 좀 쳐둘까?’


챙겨온 대본을 유미소에게 건네면서, 공수혁이 눈을 찡긋했다.


“미소야. 이거 내가 진짜 어렵게 구한 책이다. MBS에서 드라마 오디션 여는 거 알지? 이게 그 드라마의 대본집인데 내가 미리 손써서 구해온 거야. 내가 또 방송국 인맥이 좋잖냐.”

“네.”

“그래. 다른 매니저라면 절대 못 해낼 일인데, 내가 능력껏 빼 왔지. 시간 날 때 읽어둬. 대본으로 미리 캐릭터 분석 다 해두면 오디션에서 편해. 조연이긴 해도 첫사랑 배역이야. 이미지 관리 하기도 좋고 연기하기도 어렵지 않고 딱 좋지.”


온갖 생색을 다 내는 공수혁 실장의 말에 유미소는 얌전했다. 대본을 훑어본 유미소가 질문했다.


“이번에도 제 개인 스케줄인 건가요?”

“그럼 미소야! 내가 항상 너만 제일 먼저 챙기잖아.”

“다른 멤버들도 이제 슬슬 활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블루문이 더 성공하려면.”


아직도 아이돌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미련이 남은 걸까? 아니면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인가. 유미소는 종종 블루문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무던하고 얌전한 성격이면서도 가끔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인달까. 쓸데없는 질문이었으나 공수혁 실장은 귀찮은 티를 숨기며 다시 설득했다.


“미소야. 내가 다른 애들 스케줄을 잡아주고 싶어도 애초에 너한테만 섭외가 오는데 어떡하냐? 무엇보다 네가 유명해지는 게 결국 팀 전체를 위한 거라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역시 그렇죠?”


유미소가 쉽게 수긍했다. 아까의 질문은 예의상 물어본 게 분명했다. 블루문은 망하는데 본인만 계속 스케줄이 있으면 민망할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분위기는 잘 잡혔다. 공수혁 실장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말이야, 미소야.”

“네?”


“아니, 참. 이게 내가 먼저 말하기 좀 그런데 말이야.”

“그러면 나중에 말해주세요.”


유미소가 연습실로 되돌아가려 하기에 공수혁이 다급하게 붙잡았다.


“미소야! 아 글쎄 유새홍 사장님이 어디서 이상한 말을 듣고 속아 넘어갔지 뭐냐?! 업계에서 재수 없다고 소문난 취준생한테 말이야! 심지어 날 그놈이랑 같은 선상에 두고 평가하겠다네?”


이어 공수혁 실장은 프로듀싱 이야기까지 꺼냈다.


“김해성이란 놈이 이번 ‘다크소울’ 컨셉까지 뭐라고 하더라고. 근데 이게 나만 욕먹는 게 아니더라고. 컨셉을 나 혼자 정했냐? 아니잖아. 내가 미소 네 의견도 물어보고 그랬잖냐.”

“맞아요.”


“미소 네가 걸크러쉬 좋다고 해서 걸크러쉬 했지. 타이틀 곡도 트랜스 EDM이랑 헤비메탈 EDM 중에 네가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골랐지. 불 뿜는 기타 대신 쇠파이프 전기톱이 더 편하다고 해서 소품도 바꿨지···. 그러니까 우리가 같이 프로듀싱한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그랬었죠.”


유미소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수혁 실장이 속으로 웃었다.


‘흐흐흐, 걸렸다!’


같이 프로듀싱했다는 말은 억지였다. 대부분 틀은 공수혁이 다 잡은 상태에서 유미소에겐 아주 약간의 선택지만 준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는 다년간 연예계에서 일한 공수혁만의 꼼수였다.


‘아티스트한테 선택지를 조금이라도 주면 앨범이 망해도 내가 변명할 거리가 있단 말이지. 지금처럼!’


공수혁은 슬픈 표정을 지어냈다.


“미안하다 미소야. 내가 별 이야기를 다 하네. 나만 욕먹는 거면 상관없는데 미소 너까지 같이 욕먹으니까 내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랬어.”

“괜찮습니다.”


“그래 미소야. 네가 다른 멤버들한테도 잘 좀 말해줘. 괜히 휩쓸리지 않게.”

“네.”


“대본도 잘 숙지하고. 내가 계속 캐스팅 감독이랑 연락하면서 오디션 도와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고개 숙이며 고마워하는 유미소를 보고 공수혁 실장이 히죽 웃었다.


김해성이 욕한 프로듀싱에 유미소도 끌어들였으니, 혹시 김해성이 괜찮은 곡을 가져오더라도 유미소는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게 분명했다.


‘물론 김해성이란 놈이 좋은 노래를 가지고 올 리는 없지만. 이제는 놈이 좋은 노래를 가져오더라도 무조건 내가 이긴다.’


결국 버드 엔터에서 중요한 것은 유미소다.


유미소의 선택이 곧 멤버들 전체의 선택이고 유미소의 의견이 곧 유새홍 사장의 의견과 같다. 멤버의 평가로 프로듀싱의 승부가 갈린다는 건, 결국 유미소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비밀을 그깟 똥손 취준생이 알겠냔 말이야. 지금 그놈은 어떻게든 좋은 노래 받겠다고 스스로 편곡할지, 다른 스튜디오에 기웃거릴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노력해 봤자 헛수고라고. 유미소는 결국 내 편을 들 테니까.’


마음이 편해진 공수혁 실장이 편하게 웃으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


혼자 남은 유미소는 연습실로 바로 돌아가는 대신 핸드폰을 꺼냈다. 어딘가로 문자를 보낸 뒤 답장을 확인한 유미소가 한숨을 쉬었다.


“마음에 안 들면 조져버리거나 없애버리라고···? 삼촌 생각은 이렇구나. 역시 아직은 참아야겠네.”


중얼거린 유미소가 핸드폰을 끄고 대본을 챙겼다.


‘조진다’ 혹은 ‘없앤다’···. 어느 쪽도 유미소가 할법한 이야긴 아니었다. 그간 공수혁이 생각한, 얌전하고 고분고분하며 다루기 쉬운 이미지로는 말이다.


어쩌면 당연했다.

공수혁은 몰랐으니까.


유미소의 가족이 무슨 일을 하는지, 유미소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 모든 게 공수혁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


한편, 동네 호프집에서는 김해성이 처음으로 편곡 제안을 하고 있었다.


“편곡 좀 해줘라 동준아.”

“편곡? 편곡이라고?”


우동준이 놀랐다.


‘작곡 스튜디오 차려서 동업하자는 제안이 아니고 편곡이라고? 확실히 편곡만이라면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언제나 즉각적으로 거부하던 우동준이 고민에 빠졌다. 김해성이 이를 눈치채고 설득을 이어갔다.


“동준아. 봐봐라. 네가 멜로디 창작을 못 하는 거잖아? 그럼 반대로 창작은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너는 사운드랑 어레인지를 맡으면 되지. 요즘 작곡가들이 괜히 탑라이너 따로 트랙메이커 따로 일하겠어? 다들 장단점이 있어서 그렇게 일하는 거야.”

“확실히 트랙만 만들면 표절 논란도 적겠지···.”


멜로디를 작곡하는 탑라이너와 다르게 트랙메이커는 반주를 만들었다. 대중들은 멜로디 라인만 인식하기에, 우동준이 트랙메이커로 작업한다면 표절 논란도 덜할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네 작업물은 내가 다 체크해준다니까? 동준아. 내가 진짜 모르는 노래가 없다. 요즘엔 전문 샘플도 많으니까 네가 작업하기엔 오히려 좋지.”


음원 일부분을 따와서 새로 가공하는 음악기법, 샘플링.


본래 저작권이라는 게 합법적으로 구매한다면 문제가 없는데 이걸 샘플링이 해결해주었다. 최근에 샘플링이 다시 유행을 타면서 샘플링 전용 음원의 공급이 늘어난 덕이었다.


처음부터 재가공을 전제로 만든 소스인지라, 샘플링 음원은 합리적인 가격에 저작권까지 구매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우동준처럼 노래의 좋은 부분만 따올 수 있는 능력자에겐 가장 좋은 호재랄까.


“어때, 동준아? 이번엔 나랑 같이 일해도 괜찮겠지?”


듣고 있던 우동준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형 말 들으니까 나도 편곡은 좀 괜찮겠다 싶긴한데···.”

“그래 동준아! 해보는 거야! 편곡 소스도 다 샘플링 음원으로 사 오면 돼! 같이 일할 기획사가 돈이 많아서 지원도 괜찮을 거다. 완전 합법이야. 네 양심에 거리낄 게 없다니까?”


“그, 그래도···.”

“그래도? 여기서 그래도가 왜 나와?”


우동준이 우물쭈물 답했다.


“대국민 사과문에서 약속했단 말이야···. 반성하는 마음으로 다신 음악계에 발 들이지 않겠다고···.”

“뭐?!”


김해성이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번에야 말로 완벽한 동업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또 퇴짜를 놓지?! 너무나 황당했다.


‘아니, 대국민 사과라고 해봤자 연예부 기자 몇 명 있던 게 전부잖아?! 이건 또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 거야?’


다시 어르고 달래주려던 찰나. 김해성은 깡패들이 고객(빚쟁이)들 다루던 게 생각났다.


*


“호식아 받아라. 최 사장한테서 100만 원 뽑았다.”


책상 위로 피 묻은 돈뭉치가 떨어졌다. 김해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깡패를 칭찬했다.


“이야! 이번엔 진짜 못 받을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또 숨겨둔 비자금을 꺼내게 만드셨어요? 대단합니다!”


인사치레였는데 깡패는 신나했다.


“호식아. 세상에 못 받을 돈은 없다. 우린 딱 보면 견적이 나온다고.”

“하하···. 저는 몰랐습니다. 아까 최 사장이랑 같이 웃으면서 나가시길래 그냥 좋게 인사하고 끝낸 건 줄 알았죠.”


깡패와 최 사장은 분명 농담을 주고받으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는데, 피 묻은 돈뭉치가 튀어나온 것이다. 어떻게 웃는 얼굴로 나가서 웃는 얼굴로 돈을 뜯어냈을까. 그저 숨죽이고 일해야겠다고 새로이 다짐하는 김해성이었다.


그런데 김해성의 말을 들은 깡패가 쑥스러워했다.


“하하하! 호식아 이정도는 별거 아니다. 괜히 칭찬하지 마!”

“하하···. 그, 그렇습니까?”


칭찬이 아니었는데 어디서 칭찬으로 들은 거지? 김해성이 당황한 동안 깡패가 주절주절 떠들었다.


“뭐 그래도 팁 하나만 알려주자면···. 좋게 말해줬는데 정신을 못 차리잖아? 그러면 피를 좀 보면 돼. 처음부터 무섭게 나가는 것보다 이게 더 효과가 좋다고.”

“한 수 배웁니다, 형님!”


배우긴 뭘 배우나! 나처럼 착한 일반인이 깡패들 일에 엮일 게 뭐 있다고.


당시의 김해성은 진심으로 대답하는 척, 깡패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러나 너무 성실한 탓인가. 서류 작업만으로도 빚쟁이 목록을 달달 외웠던 것처럼, 이날의 일도 김해성의 기억 속에 남아있게 되었다.


깡패의 조언과 말투 온도 습도 분위기···. 모든 것을 말이다.


*


문득 떠오른 기억에 김해성이 눈썹을 꿈틀였다. 이번엔 어쩐지 깡패들 이야기가 맞는 듯했다.


‘그래. 굿캅 배드캅이 왜 있겠어? 좋은 말로 설득한 건 이미 충분히 했어. 동준이 놈이 정신 차리려면 이번엔 세게 나가야 해.’


김해성이 싸늘한 얼굴로 우동준을 쳐다보았다. 깡패의 말투 온도 습도 분위기 등등등을 되새기면서 천천히 몸에 깡패의 영혼을 씌웠다.


김해성이 처음 보이는 표정에 우동준이 당황했다.


“형 화난 거야···?”

“야, 임마. 그러면 화가 나지 안 나겠냐?”


카리스마가 묻어나는 저음에 우동준이 움찔했다. 그간 김해성을 알고 지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김해성 본인도 조금 놀랐다.


‘아니, 따라 한다고 금방 비슷하게 나오네? 가까이에서 하도 봐서 그런가?’


깡패 밑에서 일한 지가 벌써 2년이다. 서당개가 풍월을 읊듯 김해성의 몸에서 깡패 바이브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야 임마. 네가 다른 사람한텐 다 그래도 나한텐 이러면 안 되지.”

“해성이 형?!”


“음악 업계와 대중에게 미안해? 야 임마! 그 사람들한테 미안한 것의 반의반만큼 나한테도 미안해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너 때문에 본 피해가 얼마인데?!”

“무, 물론 형한테도 미안하지···.”


그간 우동준 앞에서는 어려운 내색을 표하지 않았던 김해성이다. 그러던 김해성이 작심하고 따지고 들자 우동준도 할 말이 없었다.


“활동 시작하자마자 네 표절 사건 터져서 우리 회사까지 같이 불매운동 당하고. 애들 앨범 준비하면서 들었던 돈에 투어 대관비까지 싹 다 밀리면서 빚 겁나 생기고. 나는 덩달아 매니저에서 잘리고! 거기서 잘리고 배우 기획사 갔다가 대판 망하고 빚지고!!”

“형···.”


“그래도 동준이 네가 착한 놈인 거 알고, 알거지 된 것도 아니까. 몇 년 동안 밥 사주고 술 사주면서 챙겨줬더니만 뭐?! 편곡 부탁까지 거절해?! 이게 말이 되냐 임마?!”

“그, 미, 미안해, 형!”


한번 터지자 계속해서 쌓인 게 나왔다. 김해성은 새삼 깨달았다. 자기도 그동안 너무 착하게만 살았다고 말이다.


“안 되겠다. 나도 이번엔 피해 본만큼 받아내야겠다. 너 나한테도 빚진 거야 임마. 빚 갚아!”

“가, 갚고 싶지만 돈이 없는데···!”


“돈 말고 음악으로 갚으라고!”

“아, 알았어 형! 할게! 편곡할게!”


“한다고?!”

“으, 응! 할 게 형! 대신···. 내 이름은 숨겨서 할게···. 사과문에 한 약속도 지키고, 형한테 미안한 것도 갚고 싶으니까···.”


“아, 한다고? 진짜?”

“응. 할게! 그러니까 형도 진정해봐!”


깡패 바이브에 취해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김해성도 얼떨떨했다.


‘이야. 우동준 저 양심병 똥고집이 내 말을 듣는다고?!’


몇 년간 좋게좋게 타이르며 동업을 제안하고, 칭찬해 주고, 잘 챙겨줬음에도 번번히 실패했는데. 처음으로 우동준이 자신의 말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저 깡패가 알려준 대로 했을 뿐인데 말이다.


‘아니 이거 효과가 좋잖아!’


새로운 발견에 김해성이 전율한 것도 잠시. 목표를 달성했으니 더는 깡패 모드로 있을 필요가 없었다. 김해성이 다시 표정을 풀고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좋다 동준아! 우선 내가 짠 컨셉 설명부터 들어봐. 어쿠스틱 기타 솔로를 걸그룹 타이틀 느낌으로 편곡할 거거든? 완전 댄스곡으로.”


생전 처음 본 깡패같은 김해성보다도 어쩐지 지금 저 웃는 모습이 더 무서웠다. 우동준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


호프집에서 밖으로 나온 김해성은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우동준에게 편곡 의뢰를 성공적으로 맡긴 덕이었다. 비록 우동준이 끝까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수락했으나, 그거면 됐다.


‘흐흐흐. 동준이가 약속은 꼭 지키는 녀석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실력이 좋으니까 말이지. 타이거맨 따위는 상대가 안 된다고.’


그래서인가? 다음날 버드 머니의 우중충한 사무실에 복귀했을 때도. 실력 좋은 작곡가를 만나 블루문의 타이틀을 새로 의뢰하고 왔다는 보고를 하면서도. 김해성은 자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강우식 이사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강우식 이사가 김해성의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버드 엔터에 입사하기 위해서 공 실장이란 놈을 꺾어야 한다는 거지?”

“네. 위조 이력서로 손쉽게 입사하려던 플랜 A가 실패했으니, 지금은 이 방법뿐입니다.”


강우식 이사 빽으로 입사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강우식 이사와 내 관계 -주인과 노예, 의뢰인과 쁘락치-가 들킬 수 있기 때문에 불가했다.


남은 것은 공 실장보다 뛰어난 프로듀싱 실력으로 자력 입사하는 방법뿐.


‘물론 이렇게 되면 당분간은 블루문이 활발하게 활동하겠지만···. 그래도 망하게 만들 방법은 다양하니까.’


김해성이 깡패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할 때. 강우식 이사는 프로듀싱 대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호식아. 일을 그리 복잡하게 풀어야 하냐? 더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잖냐.”

“예? 더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까?”


‘뭐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방법이라는 게?’


김해성은 의아했다. 깡패들이 자신보다 똑똑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강우식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가락으로 목을 그었다.


“그냥 공 실장이란 놈을 처리하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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