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야 사는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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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버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0 13:16
최근연재일 :
2024.08.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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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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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메인 보컬 구수연

DUMMY

우동준이 막바지 음악 작업에 한창일 동안 나는 멤버들을 데리고 앨범 커버를 위한 촬영에 나섰다.


내가 준비를 꼼꼼히 한 덕분에 현장 분위기는 최상이었다. 그새 나와 친해진 멤버들은 계속해서 감탄하며 촬영 자체를 즐겼다.


“우왁! 옷 진짜 이뻐!”

“세트장도 멋져요!”

“좋다···.”


자연광 아래, 멤버들은 외국 느낌으로 꾸며진 풀장을 둘러보느랴 정신이 없었다. 따로 챙겨온 캠코더로 멤버들의 신난 모습을 찍던 나 역시, 절로 뿌듯해졌다.


‘내가 봐도 컨셉을 잘 짜긴 했어.’


점핑을 트로피컬 하우스 풍의 여름 댄스곡으로 바꾸면서 촬영 장소와 의상 등에도 공들였다. 검은 가죽 재킷 대신 화려한 스포티 의상을 입히고 화장도 밝게 하자, 멤버들의 미모도 더 잘 살아났다.


본래 밝고 에너제틱한 차서원은 찰떡같이 소화했고, 얼굴에서 근심 걱정이 보이던 구수연도 평소보다는 화사한 느낌이 났다. 백송은 날카로움 대신 깜찍한 느낌이 더 잘 드러났다.


백미는 유미소였다. 유미소가 세팅을 마치고 촬영장에 나타나자, 포토그래퍼와 외부 인력 모두가 감탄했다.


“와 미모가 미쳤다.”

“사람이 아니고 CG같네···.”


섭외한 촬영 인력은 베테랑이었다. 연예인과 작업한 게 한두 번이 아닐 텐데도 놀라는 것이었다. 유미소도 오늘은 좀 더 기분 좋아 보였다.


“오늘 촬영 힘내자, 미소야.”


멤버들과 말을 놓기로 했으나 유미소와는 아직 어색한 게 있었다. 일부러 더 유미소에게 말을 걸었는데 의외의 답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매니저님.”

“응? 뭐가?”

“노래도 촬영도. 멤버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봐서요. 다들 의욕도 넘치고.”


유미소의 표정이 평소보다 부드러워 보였다. 평소엔 웃는 얼굴도 어딘가 어색하고 위화감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런 기색이 없달까. 나도 한 번 더 물어보았다.


“미소 너는 어떤데?”

“저는 연기 할 때 이런 장면, 이런 의상으로 많이 찍어봤어요.”


유미소의 소감을 물어보자 오히려 미묘했다. 다른 멤버들처럼 기뻐하는 건 아니었다. 아직도 점핑보다는 다크소울을 더 마음에 들어하는 게 분명했다.


‘본인 취향이 아닌데도 멤버들을 위해서 선택한 거라는 건가? 하긴. 깡패들이 원래 의리가 끝내주지.’


어쨌거나 여신같은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유미소의 본질은 대부업체 깡패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거였다. 시꺼멓고 파괴적인 것을 봐야 싸나이의 영혼이 울린다고 감동하는 그 인간들 말이다.


‘앞으로는 유미소의 취향도 고려해서 작전을 짜야겠어.’


내가 머리를 굴리는데 촬영이 시작됐다. 스탠바이에 들어가면서 유미소가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평소와 다르게 어색한 미소도 없이 진지하게 말이다.


“이번 싱글, 꼭 성공하면 좋겠어요.”

“어? 그래. 성공하자!”


반사적으로 대답했으나 어쩐지 걸쩍지근했다. 유미소와 깡패들이 동급이라고 생각하니, 방금 말도 협박의 일환으로 들렸다.


‘크윽. 자기 취향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억지로 찍고 있으니 반드시 성공시키라는 건가?! 젠장. 원래도 열심히 할 생각이었지만···. 이번 싱글은 진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과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던 캠코더를 다른 매니저에게 넘기고, 나는 따로 촬영 기사에게 찾아가 쓸만한 B컷 사진을 골랐다.


‘그러려면 우선 한 줌 남은 팬들 호응부터 끌어내야겠지.’


입사하자마자 블루문의 모든 홍보 계정을 넘겨받은 건 다 목적이 있어서였다. 나는 바로 블루문의 공식 팬카페에 접속했다.


‘스타즈’. 비록 2000명 규모의, 그마저도 대부분은 유령회원인 죽어가는 팬카페였지만. 어쨌거나 블루문의 마지막 열성 팬들은 모두 모인 사이트였다. 최후의 보루랄까.


‘공수혁 실장은 대중을 유입시킨다고 큰돈 들여서 전방위적으로 광고를 때렸었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남은 소수의 팬부터 확실히 챙기고 확장은 이후에 시도한다.’


공수혁 실장은 블루문 컴백 시기가 되면 인터넷과 지면을 가리지 않고 광고를 넣었었다. 황당한 일이었다. 어떤 아이돌 팬들이 신문을 본다고, 단가도 비싼 지면 광고에 블루문 홍보를 때리냔 말이다···.


당연하지만 신문을 보는 어르신들은 블루문을 신경도 안 썼고. 인터넷상에서의 아이돌 광고야 워낙 흔하니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돈은 무진장 쓰는 데 효과는 없달까. 공수혁 실장이 날린 마케팅 비용만 세이브해도 싱글 몇 장은 더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차라리 지하철 화장실 문짝에 붙인 버드 머니의 스티커가 그보다 나을 터였다.


‘마케팅이라고 꼭 큰돈을 쓸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오히려 잘됐어. 나는 가격에서부터 경쟁력을 보여주는 거다. 그리고 팬들 관심을 끌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주면···.’


자켓에 쓸 A컷 대신, 약간 아쉬운 B컷 사진을 푸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겐 나쁘지 않을 터. 모자이크 수준으로 사진의 화질을 낮춘 다음, 팬카페와 SNS 계정에 업로드했다. 자질구레한 설명 대신 물음표 하나만 써서 말이다.


‘흐흐흐. 좋아. 원래 떡밥이라는 것은 한 번에 왕창 뿌리는 게 아니야. 궁금증이 일도록 조금씩 나눠서 투하해야지.’


망돌답게 당장은 조회수가 0이었지만 괜찮았다. 팬들이 떡밥을 물때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말이다.


***


자켓 촬영이 끝나고 얼마 안 되어 우동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동준 : 형, SIGALAXY한테 허락받았어. 베이스 라인만 따는 거면 상관없대. 저작권에 문제없을 거야. 최종본 들어봐.]

[김해성 : 동준아 고생했다. 내가 곧 계약서 들고 찾아갈게!]

[우동준 : 괜찮아 형. 형한테 미안하고 고마워서 작업한 거니까, 부담 갖지 마.]


‘응 아니야. 계약서 들고 갈 거야.’


우동준이야 이번 한 번 만 작업하고 말 생각이겠지만, 나는 아니다.


‘동준아. 너는 반드시 음악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빚을 다 갚고 자유의 몸이 됐을 때, 너랑 같이 동업을 하지!’


여하간 잘 됐다. 우동준이 샘플링 문제를 해결해준 덕분에 녹음 일정도 빠르게 잡을 수 있었다.


회사가 빌려준 스튜디오에 모인 날. 편곡 최종본을 들은 멤버들이 또 한 번 흥분했다.


“우와, 좋아! 매니저님, 노래 진짜 좋아요! 그냥 점핑을 타이틀 삼아서 활동하면 안 돼요? 음원만 내고 끝내기엔 아쉬운데!”


차서원이 눈을 반짝이면서 기특한 소릴 했다. 흐뭇한 마음에 친절하게 답했다.


“열심히 하자 얘들아. 혹시 모르잖아? 반응이 좋으면 사장님도 점핑으로 무대 활동하라고 마음을 바꾸실지?”

“열심히 할게요! 꼭 좋은 반응을 끌어내겠습니다!”


“그래. 잘해보자.”

“네!”


평소에 열심히 연습해서인가. 파트도 새로 나눴고 멜로디도 조금씩 수정되었음에도 멤버들은 곧잘 적응했다.


메인 댄서임에도 차서원은 벌스(도입부)를 잘 소화해냈고. 음색 좋은 백송도 프리코러스와 자기 파트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아쉬운 점은 오히려 메인 보컬 구수연에게서 나왔다. 구수연이 노래를 마치자, 스튜디오의 엔지니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레코딩 과정을 찍던 나도 조용히 캠코더를 내려놓았다.


‘뭐지? 이게 메인보컬이야? 실력파라고 했었는데 전혀 아니잖아. 그다지 어려운 고음도 아닌데 소리도 약하고 삑사리도 많다.’


엔지니어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계속해서 같은 파트를 다시 부르게 시켰지만···. 구수연의 맥아리 없는 고음과 뒤집히는 목소리는 나아지질 않았다.


스튜디오 분위기가 차츰 가라앉았다. 녹음 부스 안의 구수연도 침울한 표정이었고 차서원과 백송도 내 눈치를 보았다.


“뜨와! 어, 언니가 목감기인가?”

“매니저님. 수연 언니가 오늘 컨디션이 별로인가 봐요. 진짜 열심히 연습했었는데···.”


“괜찮다, 얘들아. 작은 실수야 튜닝 프로그램으로 잡으면 되고. 미소 스케줄 때문에 스튜디오를 한 번 더 빌렸으니까. 다음에 더 잘하면 돼.”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우선은 괜찮다고 말해줬다.


오늘 오지 못한 유미소의 스케줄에 맞춰서 스튜디오를 한 번 더 빌린 건 사실이었으나···. 실수도 괜찮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후보정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저 정도 삑사리까지 매끄럽게 처리하긴 힘들었으니까.


‘뭣보다 이번 점핑은 기계음 없이 깔끔하게 가고 싶었는데···. 씁. 혹시 그런 건가? 블루문 노래가 오토튠 범벅인 게 구수연 삑사리 때문이었어?!’


아무래도 틀린 음을 튜닝 프로그램으로 잡다 보면 보컬 질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전 블루문 노래에 기계음이 너무 많기에 공수혁을 욕했는데. 이것만큼은 공수혁 실장의 잘못이 아닌 듯했다.


구수연의 보컬 실력을 덮으려는 작전이었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주눅 든 녀석한테 안 좋은 소릴 할 수는 없잖아···.’


나는 부러 밝게 말했다.


“수고했다 수연아. 다음에 수정 녹음하러 또 오면 되니까, 오늘은 마무리하자.”

“네···. 조금만 있다가 나갈게요.”


대답하는 구수연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느낌이랄까.


내가 멤버들과 함께 자리를 비켜주자, 엔지니어도 슬쩍 눈치를 보더니 담배를 핑계로 컨트롤 룸(녹음 부스 밖에서 모니터하는 공간)을 나섰다.


스튜디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백송과 차서원에게 물어보았다.


“얘들아. 수연이 진짜 감기야? 그래서 컨디션이 나쁜 건가?”


내 질문에 백송이 마지못해 답했다.


“감기는 아닌데···. 요즘 들어서 언니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려고 하면 긴장을 많이 해서요···.”

“우우우! 공 실장님이 너무 무서워서 그래! 그래서 수연 언니도 점점 움츠러드는 거라구. 원래 우리 언니는 무대 체질이에요. 팔도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도 탔었고요!”


“어쨌든 지금은 노래할 때 긴장한다는 거네. 무대 공포증 같은 건가?”

“그렇게 심한 건 아녜요!”

“······.”


차서원은 부정했지만 백송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멤버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구수연에게는 블루문이 무명인 게 오히려 다행인 일이었다.


‘메인 보컬이 무대 공포증이라니···. 말인즉슨 블루문은 라이브가 불가능하다는 거잖아!’


인기 많은 그룹은 라이브 할 일이 많다. 음악 방송의 앵콜. 심야에 방송하는 하이퀄리티 라이브 음악 방송. 음악 예능. 또는 관심도 높은 대형 축제 등등···.


구수연은 블루문이 인기 없는 덕분에 살아남은 케이스였다.


(앵콜을 제외한) 음악 방송의 경우, 뒷돈 낸 만큼 아이돌들 망신당할 일 없게 MR을 쫙 깔아주었을 거고. 그 외에는 라이브 기회는커녕 지방행사조차 제대로 못 잡는 게 블루문의 현실이었으니까.


‘이렇게 되면 점핑으로 무대 활동까지 노리는 건 불가능한데···. 계획을 다 엎어야 하는 건가?’


심란했으나, 때맞춰 밖으로 나온 구수연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죄송해요, 매니저님···.”

“뭐가 죄송해? 잘했는데! 내가 듣기엔 좋았어. 오늘 다들 고생했다. 저녁 먹고 바로 숙소로 가자.”


침울한 구수연을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속상해하지 말라고 다른 멤버들과 일부러 장난치며 분위기 띄우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구수연과 멤버들이 다시 기운을 되찾은 건 좋았으나, 깨닫는 게 늦었다. 멤버들을 숙소에 데려다준 다음에야 캠코더를 스튜디오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아, 젠장! 작업할 게 산더민데 그걸 놓고 오냐···!”


블루문의 뉴튜브 채널 관리, 점핑 음원 발매에 맞춘 홍보 영상 등···. 구상대로 진행하려면 하루도 낭비할 수 없었다. 스튜디오에 들려서 캠코더를 찾아온 나는 절로 탄식했다.


“와···. 녹화본 길이가 다섯 시간이 넘네. 아까 수연이 차례 때 켜놓고 나왔던 건가? 이거 파일 옮기려면 날밤 새워야겠어···.”


구수연의 엉망인 보컬 때문에 가뜩이나 할 일이 쌓였는데. 이제는 별 쓸데없는 것까지 말썽이다.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구수연의 다섯 시간짜리 녹화본을 재생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번만큼은, 실수가 우리 모두를 살렸다고 말이다.


***


며칠 뒤. 방송국 인력이 상주하는 것으로 유명한 상암 모처의 연기 아카데미.


상가 건물 세 개 층을 모두 사용하는 데도 사람이 미어터지는 이곳에서, 유미소가 조용한 곳을 찾으려 애썼다. 복도 끝자락에 와서야 유미소가 핸드폰을 켰다.


“응. 이제 들려. 계속 말해봐, 서원아.”


유미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피커를 통해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서원이었다.


점핑 편곡 때 멤버들 편을 든 이후로 어쩐지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예전부터 밝았던 차서원은 더 스스럼없어졌다. 바로 지금 전화처럼.


-우오오오! 언니 그래서 연기 레슨 언제 끝나는데?! 나 진짜 김해성 매니저님 너무 좋아! 아까 춤 연습 끝났을 때 내가 배고프다고 했더니, 매니저님이 편의점 가자고 하신 거야!

“그렇구나. 좋았겠네.”


그런데 그게 내 연기 레슨과 무슨 상관인 걸까? 유미소가 고민에 빠진 동안 차서원이 계속해서 떠들었다.


-근데 편의점에 딱! 언니가 좋아하는 젤리 음료수가 하나 남아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딱! 챙겨뒀다는 거지! 그러니까 오늘 레슨 빨리 끝내고 회사로 와!

“음료수 때문에?”

-응! 벌써 미지근해지고 있어!


‘희귀한 젤리 음료수와 MBS 드라마 오디션과 직통으로 연결된 연기 학원의 레슨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건가···. 삼촌이라면 뭐라고 답했을까?’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어떤 걸 골라야 좀 더 평범해 보일까? 유미소가 다시 고민하는 동안 핸드폰 너머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차서원 미쳤어?! 뭐 그딴 거로 빨리 오라고 해?!

-왜냐면 이걸 계속 여기다 두면 내가 마시고 싶어지잖아! 견물생심 몰라? 백쏭쓰 견물생심도 몰라?!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내가 다 먹고 싶어지잖아!

-아, 됐고! 내 핸드폰 내놔, 빨리!

-싫은디??


다시 한번 투닥거리는 소음이 일더니 백송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미소야. 별일 없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 지금 연기 학원이지?

“응.”

-레슨 잘 받고 와. 서원이는 그냥 무시하면 돼. 파이팅하고!

-왜에! 왜 날 무시하라고 해···!

“그래. 나중에 봐.”


다행히 유미소가 틀린 답을 고르기 전에, 백송이 알아서 전화를 끊어주었다. 유미소가 안도하는데 누군가가 혀를 차더니, 아주 띠꺼운 목소리로 유미소를 흉내 냈다.


“에효. 이래서 아이돌 출신들은···. 그래~ 나중에 봐~ 자기야~”

“?”


아는 얼굴이다. 첫사랑 조연 자리를 놓고 유미소와 경쟁하는 다른 배우 지망생이었다.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서 유미소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가 화를 냈다.


“뭘 째려봐?! 남자 친구랑 통화한 거 들킨 게, 네 잘못이지 내 잘못이야?!”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 남자 친구라니? 자신이 연락하는 사람이라고는 멤버들과 회사 사람, 그리고 삼촌들과 아버지가 전부인데 말이다.


의아한 유미소를 앞에 두고 상대는 짜증을 냈다.


“하여간 아이돌이 배우 판 다 흐린다니까···. 너희는 여기가 무슨 놀이터인 줄 알지? 너 같이 얼굴만 믿고 나대는 애들 때문에 다른 젊은 배우들이 다 같이 욕먹잖아! 발연기로 유명한 거 본인도 알 텐데, 왜 매번 나타나 가지고는···!”

“저기요. 뭔가 오해가 있는데···.”


유미소가 해명하려는 찰나. 공수혁 실장이 끼어들었다.


“미소야! 너 왜 갑자기 사라지고 그래! 곧 개인 레슨 시작인데!”

“공 실장님. 저 사람이 뭔가···.”

“빨리 오라니까!”


공수혁의 채근에 마지못해 따라나서면서도, 유미소는 상대를 쳐다보았다. 있지도 않은 남자 친구 이야기가 계속 신경 쓰였다.


“저 사람이 저한테 남자 친구가 있다고 오해하고 있어요.”

“무슨 오해야. 시비지.”


블루문에 피해가 갈까 봐 다시 말한 것인데 공수혁 실장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네?”

“그냥 너한테 시비 거는 거라고. 무시해. 여배우로 살려면 이런 거 저런 거 다 견디고 참는 거야. 그래야 청순한 이미지랑 어울리잖아. 미소 너도 이제는 좀 적응할 때가 되지 않았냐?”


일전에 김해성 매니저의 편을 든 이후로 퉁명해진 공 실장이었다. 유미소는 잠시 주먹을 쥐었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손을 폈다. 입을 다물고 공 실장의 뒤를 따랐다.


견디고 참는다.

이게 바로 정상적인 보통의 삶이라고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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