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백면서생, 중원을 제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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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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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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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단원이 되어야겠다 (2)

DUMMY

삼일이 지나 새로운 선묘단주의 취임식 날이 밝았다.

태현은 마땅히 할일도 없던터라 이른 시간에 만척과 함께 선묘단 총관에 도착했다.

총관은 아침부터 선묘단주의 취임식을 구경하기 위해 온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구석의 담벼락에 몸을 기대어 상황을 기웃거리는 태현에게 그제 먹이를 주었던 고양이가 나타나 옅은 울음을 토했다. 


“며칠 전 그 녀석이구나. 

간 밤은 잘 지냈느냐?

조찬으로 쥐는 잡아 먹은게냐? 잠시만 기다리거라.“


태현이 입이 심심할 때 먹으려 가져온 양고기 육포를 꺼내어 찢어주자 고양이가 냉큼 받아 물고 사라졌다.


고양이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태현의 어깨를 누군가 가볍게 두드렸다.

돌아보니 그제의 그 고운 삿갓 사내였다. 


“공자는 하는 행동이 늘 똑같구려.

그리고 사시에 만나자고 했는데 뭐 이리 일찍 나왔소?

공자도 꽤나 할일이 없나 보오. 

글을 읽거나, 무예를 연마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나이와 시간에 너무 한가로운 것도 죄라면 죄요.“


삿갓 사내의 핀잔에 태현이 싱긋 웃었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머리가 꽤 좋은 편이라오. 

동문수학했던 사우들이 겨우 ‘대학’을 뗄 때 나는 ‘사서’와 ‘오경’을 다 익혔지.

또한 그들이 ‘문선’의 첫장을 넘길 때 나는 ‘고문진보’에 적힌 시의 깊은 뜻을 마음에 새겼으며, 그들이 철학을 공부할까를 망설이고 있는 동안 나는 ‘주역’과 ‘장자’를 공부했다오.

글 뿐만이 아니오. 

내가 검법과 도법은 물론 권법, 장법, 보법에 이르기까지 이론은 거의 ‘강호팔준’에 미칠 정도로 통달했소.

내 비록 어릴 적 맹독에 중독되어 내공을 익힐 수 없으므로 아는 바를 몸으로 행하지는 못하나, 햇빛도 못본 듯한 공자같은 서생이라면 삼합 내에 너끈히 이길수 있소. 

어디 한번 합을 겨루어 보겠소?“


태현이 장난스레 손을 뻗자 삿갓 사내의 손이 태현의 왼 팔꿈치를 잡아 채어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오른 손으로 사내의 팔을 쳐내려 하였으나 어느 새 오른 손목 또한 사내에게 잡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태현이 환하게 웃었다.


“이제 보니 공자는 강호인이셨군요.

그걸 모르고 제가 실수를 했나 봅니다.

아주 좋은 금나수법을 익히신 듯 합니다.“


“강호팔준이라면 중원에 스물다섯이 안된 강호인들 중 으뜸이라 하던데, 나 정도에게 손을 잡혀 움직이지도 못하는 공자가 비교할 대상은 아닌 듯 하오.    

그나저나 갑자기 존대는 왜 하는게요? 

아까처럼 편하게 대하시오.“


삿갓 사내가 손을 놓아주자 태현의 왼손이 방금 전 사내의 금나수법과 동일하게 움직이며 삿갓 사내의 오른손을 낚아 챘다.


“이것은 어떻소? 이제는 좀 비교할만 하오?

나는 어릴 적 독상을 입어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오.

그래서 강호팔준과 이론적으로는 거의  비근하다고 했지, 무공 자체를 비교한 것은 아니니 너무 비웃지는 마시오.“


사내가 붙잡혔던 오른 손을 빼내어 혀로 핥으며 오묘한 미소를 흘렸다.

“따라 익히는 눈썰미는 인정하겠소.”


태현이 삿갓 사내와 노닥거리는 사이, 사시가 되어 신임 선교단주의 취임식이 시작되었다. 

지난 번 장례와 취임식을 고지하였던 호법이 단에 올랐다. 


“전국에서 왕림해 주신 단원과 하객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본인은 단주를 보좌하며 선묘단의 규율을 관장하는 호법 권한궁 이외다.

본디 선묘단은 전임 단주가 여러 장로들과 상의하여 신임 단주를 정하고, 그에게 단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탐미선과 만독보명단을 양도함으로써 단주의 자리를 이양하는 것을 법통으로 정하고 있소.

하지만 전임단주께서 지병으로 인해 갑자기 작고함에 따라 미처 적법한 절차에 따라 후임 단주를 정하지 못했소. 


다행스럽게도 이인암 동북 장로께서 임종을 지키고, 전임단주에게 탐미선 또한 받았으니 전통과 유사한 절차에 따라 후임단주로 지명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오. 

본 단의 규율을 관장하는 호법으로서 장로들과의 오랜 상의 끝에 내린 결정이니 부디 단원 제위께서는 본 결정을 따라 주실 것을 부탁하는 바이오.“


군중 속에서 볼멘 소리 몇개가 터져 나왔다. 

“아니, 두분만 있었다면 전임 단주가 탐미선을 준 것인지, 이 장로가 빼앗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죽은 뒤 가져와서는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인지를 어찌 안단 말이오?

증좌라도 있소?“


단상 앞 천막의 중앙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앉은채로 솟구치더니 단상으로 한걸음에 뛰어 올랐다.

단상과 의자의 거리는 얼핏 보기에도 10장은 되어 보였으며, 남자는 앉아 있던 상태였음에도 한걸음으로 도달하였으니 높은 수준의 경공이라 할 수 있었다. 

남자가 가볍게 예를 갖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오. 

하지만 내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오. 

장로인 내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호법께서도 함께 계셨으니 증인도 있는데다 증좌까지도 있소. 

단원 제위께서 그리도 궁금해 하는 ‘만독보명단’은 바로 탐미선의 장신구인 선추에 있다오.“


장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음에도 뒤에 서있던 태현의 귀에까지 똑똑히 들리는 것으로 보아 내공을 실어 발화한 듯 하였다.


“단주가 ‘만독보명단’을 선추에 넣고 다니는 것을 평단원은 모른다지만 장로들이나 단주와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오? 

그것이 어찌 증좌가 된다는 말이오?“

다시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맞소. ‘만독보명단’의 위치를 아는 것은 증좌가 아니오.

하지만, 이 선추를 열어 ‘만독보명단’을 꺼낼 수 있는 분이 여기 계시오?

이 선추는 초대 단주가 특별히 서역의 장인들에게 부탁하여 만든 것이오. 

상단의 숫자들과 하단의 글자들을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열 수 없으며, 개봉 방법은 선임단주가 후임단주에게만 전수하여 왔소.

두번을 틀리거나 강제로 열 경우에는 산액이 흘러나와 ‘만독보명단’을 녹여 못쓰게 만들고 말지요.

그러나 나는 단주에게 탐미선을 넘겨 받으며 선추의 해법도 함께 전수 받았소. 

어떻소? 내가 선추를 제대로 연다면 그 때는 증좌로 인정할 것이오?“


천막에 앉아 있던 흰 수염의 노인이 일어섰다.  

“본디 단주가 권좌를 이양할 때는 탐미선과 보명단, 그리고 본 단의 보물이 보관되어 있는 선묘고의 개방법을 전수하는 것이 전통이오.

하지만 단주께서 갑작스럽게 운명하심에 따라 이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소.

하여 우리 네명의 장로들은 탐미선을 전수받은 이 장로가 선추를 제대로 열어 ‘만독보명단’을 꺼낸다는 것을 전제로 신임 단주 임명에 찬성한 것이오. 


그러니 만약 열지 못한다면 그 때는 새로운 방법으로 신임 단주를 찾고, 봉정해야 할 것이오. 

이인암 장로와 여기 계신 모든 단원 제외들은 이에 동의하시는가?

여기 문상객을 포함한 모든 분들이 증인일세.“


모두들 침묵으로 동의했다. 

이인암이 고개를 한번 크게 끄덕이더니 탐미선을 꺼내어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삿갓 사내가 태현을 쿡 찔렀다.


“지금이 공자가 나설 때요.

저 선추 안에 있는 약이 가짜이니 취임은 무효라고 외치시오.

저 약은 가짜인데 만약 단주가 자발적으로 이인암에게 탐미선을 넘겼다면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리 없소.

그러니 이인암의 봉정은 무효이며, 거짓을 말한 이인암을 벌하고, 신임단주를 새로 찾아야 할 것이라 말하시오.

그것이 공자가 단원이 되는 방법이요.“


“아니,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시키면 어찌 따를 수 있겠소?

그리고 공자는 저 약이 가짜임을 어찌 안단 말이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그렇게 말했다가는 남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상식 밖의 행동을 일삼는 관심 종자로 찍혀 살아가는 내내 놀림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 

공자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선묘단원이 되지 못한다 해도 그런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소.“


질색하는 태현에게 삿갓 사내가 반달 모양으로 생긴 돌을 내밀었다.

“공자 정도의 견문이라면 이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을 듯 한데.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겠소?“


“이것은 우리네 조상들이 사용했다는 반달 돌칼이 아니오?

내 여러 돌칼을 보았지만, 이처럼 보존이 잘되고 세심하게 만들어진 돌칼은 처음 보오.

이 완벽한 반달 모양을 보시오.

등쪽에 난 이 구멍으로 끈을 꿰어 여기를 손으로 잡고, 마치 낫처럼 사용했다는 것 아니겠소?

이처럼 선묘한 것을 어디서 구했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이 돌칼은 공자의 것이오. 

그저 방금 내가 말한 것을 외치기만 해도 공자께 주겠소.

그렇다면 공자에게는 괜찮은 장사가 아니오?

또한 내 말에는 한치의 거짓이 없어서 저 보명단이 가짜임이 밝혀질터이니 공자가 앞으로 놀림이나 비난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오. 

어떻소? 이만하면 남는 장사가 확실하지 않소?“


삿갓 사내가 말을 마치고는 돌칼을 태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사내의 몸에서 가르릉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태현은 신경쓰지 않고 돌칼을 꼭 쥔 채 손을 들었다. 

“소생이 할 말이 있소.   

저 선추 안에 있는 ‘만독보명단’은 가짜가 확실하오.

만약 단주가 주었다면 가짜를 줄 리가 없지 않소?“


태현은 부끄러움에  머리꼭지가 화끈거렸으나, 손에 있는 돌칼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그러니 이 봉정식은 무효요.”

군중들의 눈이 태현에게로 향했다. 

군중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뚫고 이인암이 소리쳤다.

“나 이인암이 ‘만독보명단’을 꺼냈소.”

군중들의 눈이 다시 이인암에게로 돌아섰다. 


“여기 모든 사람들 앞에서 선추를 연다면 나 이인암을 후임 단주로 인정한다고 단원 모두가 이미 약속했소.

내가 이 선추를 열었으니 절차를 마친 것이오.

약속을 잊지 마시오.“


삿갓 사내가 쿡쿡 찔러대는 통에 태현이 말을 받았다. 

“저기 저 흰 수염 장로께서 군중들 앞에서 한 말은 선추를 열어 ‘만독보명단’을 꺼내는 것을 전제로 임명에 찬성한다는 것이었소.

그런데 ‘만독보명단’이 가짜라면 전제가 무너지는 것 아니오?

이제 당연히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여 신임 단주를 찾고, 새로 봉정해야 할 것이오.“


분노에 가득한 이인암이 내공을 실어 일갈했다.

“네깟 놈이 어찌 이 약이 가짜라고 확신할 수 있더냐?

이 약이 가까라는 증좌라도 있는 것이냐?“


군중들 중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이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다. 

태현 또한 심법을 배웠으나 몸으로 익히지 못했으므로 고통스러웠지만 참고 외쳤다.   

“약의 진위는 다른 장로들에게 물어 보시오. 

장로들이 ‘만독보명단’의 진위를 검증하면 될 것 아니오?“


아까의 흰 수염 장로가 다시 일어섰다. 

“분명 본 장로가 한 말은 선추를 열어 ‘만독보명단’을 꺼내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었소.

그러나 저 ‘만독보명단’은 우리가 알고 있던 단약과 똑 같은 모습을 하였소.

또한 무향무취라 겉으로 봐서는 진위여부를 쉽사리 검증할 수 없지요.

이번에는 공자께 묻겠소.

공자의 말이 사실임을 어찌 증명하시겠소?“


“‘만독보명단’은 천하의 모든 독을 치료할 수 있는 명약 아니오?

여기 이 군중 중에 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가 있을 것이오. 

그에게 시험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오.“


흰 수염 장로가 고개를 저었다.

“‘만독보명단’은 본 단의 보물이오. 

오직 본단의 단원이 생사가 갈리는 위중함에 처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소. 

그러니 그 제안은 수용할 수 없소.“


“작은 쥐나 닭을 잡아 독에 중독시킨 후 소량의 약으로 시험을 해봅시다. 

몸집이 작은 동물이라면 독을 해독하기에 ‘만독보명단’의 극히 일부만 사용해도 되지 않겠소?

이미 군중들은 그 약의 진위를 의심하고 있소.

선묘단의 평판이 누란지위에 처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는 걸 수 있지 않겠소?“


군중들이 웅성거리자 이인암이 부르짖었다.

“좋다. 그렇다면 네 놈은 무엇을 걸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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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첫 싸움 (1) 24.07.27 101 1 12쪽
5 삿갓을 쓴 남자는? (2) 24.07.26 131 2 14쪽
4 삿갓을 쓴 남자는? (1) 24.07.25 163 2 14쪽
3 신입 단원이 되어야겠다 (3) 24.07.24 184 2 13쪽
» 신입 단원이 되어야겠다 (2) 24.07.23 217 1 12쪽
1 신입 단원이 되어야겠다 (1) 24.07.22 393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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