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써가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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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신
작품등록일 :
2024.07.22 11:54
최근연재일 :
2024.08.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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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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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 2화. 피해자들(2) ]

DUMMY


출근한 성현은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서 곱창을 초벌하는 중이었다.


모락모락 익어가며 연기가 피어오르고.


뜨거운 열기는 성현을 덮치며 땀을 송골송골 맺게 하였지만.


성현은 힘든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그였다.


“여기 모듬 2인분 추가요!”


알바생들이 종이에 적힌 주문서를 앞에 두고 가면.


“예!”


기합을 넣듯 일부러 우렁차게 대답하였고.


성현의 에너지에 여자 알바생인 윤지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매니저님은 항상 기운 넘치시네요.”


“응? 내가?”


“네. 보기 좋아요.”


얼굴을 살짝 붉히던 윤지가 이어 입을 떼려는데.


“3번 테이블에서 부르신다.”


눈치 없는 건지 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지.


성현은 이내 손님이 있는 테이블로 윤지를 보내 버렸고.


그리고 그런 성현과 윤지를 멀리서 지켜보던 사장 지만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에휴. 저놈도 남들이 하는 거 다 해보고 살아야 할텐데.”


손님이 끊이지 않는 분주한 곱창집 내의 시간은 흘러 어느덧 늦은 밤이 되고.


교대할 알바생이 출근하면서 성현이 퇴근할 준비를 마쳤다.


“오늘도 수고했어.”


40대의 푸근한 인상을 가진 지만은 그런 성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곱창 구운 것들을 포장한 검은 봉지를 내밀며 말했다.


“집에 가서 동생이랑 먹어.”


“늘 감사합니다, 사장님.”


고마워하며 성현이 건네받으려는데.


장난스러운 얼굴로 봉지를 뒤로 슬쩍 빼며 지만이 물었다.


“너, 모르는 척하는 거야, 뭐야.”


“네? 뭐가요?”


“능청 떨지 말고 파트타임 알바생 윤지 말이야.”


“아.”


“너도 아는 거지? 걔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 어떻게 모르겠어요.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근데 왜 모른척해? 이참에 28년 모솔 탈출해야지. 성현아.”


“아직 어린 친구잖아요. 저는 벌써 20대 후반이고.”


“야아 4살 차이면 궁합도 안 본다. 그리고,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서로 좋아만 하면 되지.”


장난끼 넘치는 지만의 표정에 머쓱한지 성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어떻게 감히 그래요.”


“무슨 말이 그래? 네가 어디가 어때서.”


“아... 그런 뜻이 아니라...”


잠시 난처한 듯 표정이 굳었던 성현이, 이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제 한 몸 돌보기도 벅차요.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잖아요.”


“야아, 누가 보면 내가 악덕 사장인 줄 알겠네. 섭섭하다, 섭섭해.”


“에이, 사장님은 제 은인이신걸요. 사장님만큼 잘해주는 분도 없을 거예요.”


뾰로퉁한 얼굴로 입을 삐죽 내민 올해 43살 지만에.


성현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는데.


“어서오세요.”


알바생과 다른 직원들의 우렁찬 인사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격한 환영인사를 받으며 젊은 부부와 아기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식당으로 들어섰고.


지만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성현이 힐긋 고개를 돌려 손님들을 돌아본 순간.


여자의 얼굴을 본 그의 눈이 커졌다.


“재은이...?”


거기엔 늘 그리워했던 매우 익숙한 얼굴이자 성현의 첫사랑이기도 한 재은이 있었고.


그녀는 남편과 아이로 추정되는 이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며 웃고 있었다.


20대 후반의 성숙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맑고 빛이 나는 재은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재은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던 성현이.


문득 과거 짝사랑했던 재은의 앞에서 순간적으로 자신이 초라하게 느끼고선.


저도 모르게 얼굴을 가리고선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왔다.


차라리 재은이 자신 쪽을 돌아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늘 만나기만을 바라왔으며 꿈에 그리던 그녀였지만.


막상 만나면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그런 그녀를 덜컥 만나자.


반갑기도 했지만.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당연히 곱창집에서 일하는 자신의 직업이 부끄러운 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요식업에 종사하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성현이었으니까.


다만.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낳으며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간 재은에 비해.


여전히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아직까지 멈춰있는 스스로가 부끄러웠을 뿐이었다.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성현은 몰아치듯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감정들에 뒤덮이고.


저도 모르게 성현이 현관문을 발로 쾅하고 찼다.


‘만약. 과거의 그 일들만 아니었다면. 날 지옥에 몰아넣은 그새끼들만 아니었다면.’


자신도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까. 남들 하는 거 다 누리면서 살 수 있었을까.


아까의 재은의 옆에 자신이 서서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을 상상을 잠시 해보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정을 가라앉히려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성현의 시야로 거실에 두었던 상 위에 살짝 벗겨져 있는 보자기가 눈에 들어왔고.


상에 다가간 성현은 놓여있는 쪽지에 내용을 급히 확인했다.


‘핸드폰 필요해.’


더불어 옆에 놓인 밥그릇은 싹싹 비워진 채였다.


성현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굳게 닫힌 다현의 방문을 빤히 쳐다봤다.


다현이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



몇 년 만인지 몰랐다.


다현이가 자신에게 부탁한 것이.


성현은 기쁜 마음 반, 희망적인 마음 반을 안고선.


아침이 되자마자 휴대폰 판매점으로 당장 달려갔다.


“어서오세요.”

우렁찬 목소리로 성현을 반기는 직원들은.


이내 초라한 성현의 행색에 실망하는 기색을 감출 수 없는 듯했다.


대놓고 티는 내지 않았지만.


성현은 이런 무시를 한두 번 받아본 게 아니었다.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며 남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잣대.


그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는 일상이었다.


그건 여기에 속해있는 성현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성현은 남들을 비교하며 무시하지는 않았다.


대신 자기 자신을 남들에게 비교하며 못났다라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남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소위 최하위 계층이라 여겼다.


외모도 별로였고, 학벌도 좋지 않고, 돈도 없고, 그 무엇 하나 잘난 게 없는.


조선시대로 따지자면 백정만도 못한 삶이라고 늘 생각했다.


성현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고, 사랑할 수조차 없었다.


사실 찾아보면 그에게도 장점은 많았다.


일 년 내내 병원 갈 거리가 없는 건강하고 튼실한 신체를 가졌고,


곱창집에서 꾸준히 일해 왔던 성실함이 그에겐 있었다.


또한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생각보다 얼굴도 꽤 미형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성현은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세상에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불어 그의 낮은 자존감과 다현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좀먹어갔다.


“저... 요즘 잘 나가는 스마트폰 기종 보여주실 수 있나요?”


성현의 손에 들려있던 낡은 스마트폰을 빤히 보던 직원이.


이내 최신형 스마트폰들을 성현의 앞에 주욱 늘어놓았다.


“핸드폰 바꿀 때가 되셔서 오셨나보네요.”


“아..”


성현이 순간 손에 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보는데.


직원이 아는 체를 해왔다.


“그 모델은 벌써 6년 전에 나온 건데. 오래 쓰셨네요.”


“제거가 아니라 동생 거 보러 왔는데요.”


성현이 직원의 말에 멋쩍어 머리를 긁적이자.


“아... 이참에 손님 것도 하나 하시는 게 어떠세요? 이 모델이 보급형으로 나온 건데...”


직원이 머쓱한 얼굴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성현에게 최신형 기종 하나를 내밀어 보였다.


“이번에 할인 행사 들어가서 만약 동생분이랑 같이 하게 되시면 결합 할인이 들어가서...”


“아. 저는 괜찮습니다. 동생 것만 할게요.”


“아, 예...”


성현이라고 왜 핸드폰을 바꾸고 싶지 않겠는가.


가게에 들어온 순간부터 눈이 돌아간 성현이었다.


요새 나온 모델들은 때깔부터 다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달랐다.


가뜩이나 비싼 통신비만으로도 내기에 벅찬 현실인데,


여기에 기기 값까지 더하면 감당이 되지 않을 거 같다.


사람이 사는 데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


건강보험료, 국민연금과 같은 세금부터 시작해서.


월세, 관리비, 수도세, 가스요금, 기타 생활비 등등...


특히나 성현과 같은 경제활동을 책임지는 가장이면 그 현실이 더욱 와 닿았다.


그래서 성현은 매번 매 순간 모든 것을 참으면서 살아왔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은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의 하나뿐인 가족, 다현이었다.


다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돈도 아끼지 않는 성현이었다.


“제일 비싼 기종으로 주세요.”


“제일 비싼 거요? 200만원 대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직원이 다소 놀란 얼굴로 성현을 쳐다보며 기계를 꺼내 내밀었고.


가격을 듣고 난 후 성현이 지진 난 동공으로 기계를 한 번 쳐다보았다.


‘200만원대면... 매일 10시간씩 꼬박 20일을 일해야 하는 돈인데.. 내 200시간의 노동력...’


이 순간, 자신의 목숨값 보다도 비싸 보인다고 생각한 성현이었다.


그러나 다현을 위해서라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좋은 것으로 사주고 싶었다.


“주세요... 혹시 36개월 할부 가능한가요?”


성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였고.


“36개월 할부는 매달 붙는 수수료가 나가실 텐데 괜찮으세요...?”


직원 역시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이에 성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에게 있어서 누가 되었건 간에 자신은 핸드폰만 팔면 되었다.


통신사에서 고객을 유치할 때마다 인센티브가 지급되었고, 그것은 꽤나 쏠쏠했다.


하지만 저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굳이 성현에겐 비싼 기종을 권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성현의 결심은 단호해 보였고,


결국 직원은 가장 비싼 기종으로 가입을 진행시켰다.


좋은 호갱님 아니, 고객님 하나 잡은 직원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충전기부터 시작해서 잡다한 악세서리들을 잔뜩 챙겨 주고 있는데.


그때,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며.


가게 문이 열리며 선글라스를 낀 풍채 좋은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고.


그를 알아본 직원들은 곧장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사장님 나오셨습니까.”


“어어, 그래. 수고가 많네.”


겉옷을 벗으며 남자가 육중한 풍채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안에 반팔을 입은 그의 팔 한쪽은 시커먼 용모양의 이레즈미가 완전히 뒤덮고 있었고.


우락부락하게 성난 근육들은 남자의 인상을 한층 더 세보이게 만들었다.


“하아, 그래서 매출은 좀 어때?”


사장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직원들에게 던지듯 묻자.


직원들이 당황해선 우물쭈물하며 답했다.


“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노력 좋지. 항상 노고가 많으신 것도 알고.”


직원들이 또 시작되었다라는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고.


남자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세상은 성과거든. 실적이 안 좋으면 내 입장에서는 다른 직원들을 들이는 게 더 유리하지 않을까.”


“네네. 맞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젊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꼰대적인 말투의 남자에.


성현이 얼른 개통을 마치고 가게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선글라스를 벗으며 손수건을 꺼내 닦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나고.


그 모습을 무심코 보던 성현이 불현 듯.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민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딘가 인상이 조금 변하긴 하였지만 틀림없었다.


저 남자는 분명히 오민성이었다.


일진들의 우두머리였던 주윤석의 왼팔이자 동창 오민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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