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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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9 10: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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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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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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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너희들이 원하는 세상은 오지 않아

DUMMY

“산채식구들의 죄를 사하고 양인으로 신분을 바꾸어 주십시요.”



기회였다. 막란 자신은 어찌 되든 상관은 없으나 산채식구들의 신분은 바꾸어 주고 싶다. 모두 어쩔 수 없이 화적이 된 사람들이다.



“이 교서의 가치가 네놈들의 목숨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아니다. 틀려....... 그 이상이다. 그 무엇도 이 교서를 대신할 수 없어.”


“.......”


“원한다면 그 이상도 해줄 수 있다. 면천이 되는 것 뿐 아니라 논과 밭도 줄 수 있다.”



듣고 있던 윤서가 막란을 가로 막으며 최이척을 쏘아본다.



“또 얼마나 이들의 피를 원하시는 겁니까!”


“새로운 임금을 만드는 일이다. 피의 대가는 충분할 것이다. 어떠냐....... 함께 하겠느냐!”


“막란아 안한다고 해....... 산채식구들 모두 죽을 수 있어!”


“.......”


“맞다. 질녀 말이 맞아. 모두 죽을 수 있어. 너희들 뿐 아니라 나도, 윤서도, 가족 모두, 가문 전부가 말이다. 그러기에 성공하면 너희 짐승 같은 삶을 바꿀 수 있는 게야.”


“짐승 같은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짐승 같은 삶을 피해 산으로 들어간 것뿐입니다. 매 맞아 죽기 싫어서, 세금 착취에 시달려서, 주인의 죄를 대신해 옥살이를 피해, 겁탈 당하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배고파서....... 그런 사람들입니다.”


“강요는 하지 않아. 너희들의 삶은 너희들 거니까.”


“막란아 잘 생각했어. 이 분이 내 백부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야.”


“하겠습니다.”


“막란아! 머리에 뭐가 들었어? 내 말을 도대체 콧구멍으로 들은 거야? 뭘 하겠다는 거니? 무조건 하지 마!”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요. 산채식구들도.......”


“.......”



말문이 막힌다. 어쩌면 한 번도 마음 놓고 등 따습게 자고, 배불리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윤서도 청렴한 아버지를 두어 풍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이들과 비할 바는 아니다. 언제든 원하면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있는 처지였으니까.



“약조하마. 너희들이 원하는 것 뭐든지.......”


“산채식구들의 허락도 필요합니다.”


“시간이 별루 없다.”


“나두 산으로 갈래. 여기는 하루도 있고 싶지 않아.”


“윤서야 너는 나를 도와야 돼.”


“싫어요. 나 막란이 하고 갈래요.”


“아씨는 안 됩니다. 안전한 이곳에 계세요.”


“여기가 더 위험해. 만약 일이 틀어지면 여기부터 작살날껄.”



맞는 말이다. 윤서를 위한다면 여기를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산채로 데려갈 수는 없다. 일이 시작되면 산채도 위험해 진다.



“윤서야 넌 내가 책임질 거야.”


“뭘 책임진다고 그러세요. 한 번 배신한 사람을 또 믿을 수는 없지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경우였지. 나라도 살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기에 그런 거였다는 걸 너두 잘 알잖느냐.”


“모릅니다. 그동안 부모처럼 믿고 따른 것이 원통할 뿐입니다. 차라리 돼지를 믿을 걸 그랬나 봅니다.”


“아무튼 임금 쪽의 사람들도 움직이니 윤서 너의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 집의 감시가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막란도 산으로 가려면 저들의 감시를 뚫어야 한다. 그리고 윤서도 데리고 나가려면 부담이 따른다.




*




다음날 아침.......

막란과 윤서가 말끔히 갈아입고 대문을 나선다. 토포사 쪽 감시자들이 이들을 쫒는다. 막란이 윤서의 신발을 닦아주는 척하며 미행하는 놈들을 확인한다. 두 놈이고 모두 칼을 품었는지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윤서와 가끔 왔던 시장의 난전에 들른다. 여인들의 부속품을 파는 곳에서 막란이 면경을 통해 놈들을 본다. 막란과 윤서가 가는 곳이라면 이놈들도 들러 행적을 조사한다.


시장에는 윤서가 좋아하는 중고 서적들도 많이 나와 있다. 이곳에 들르면 한참 앉아 서적을 읽는다. 막란도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주인의 책망도 무시하고 서적에 꽂히면 날이 저물어야 일어난다. 이때는 놈들도 감시가 느슨해진다.


그러나 이 서적 난전은 최이척과 연통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윤서가 보는 서적은 글자 옆에 잘 알아채지 못하는 점이 하나씩 찍혀 있다. 책장을 넘겨 표시해 둔 글자를 읽으면 문장이 완성된다. 윤서가 정보를 최이척에게 알린 방법이다.


반대로 정보가 담긴 서찰을 넘길 경우는 윤서가 보고 있는 서적 바로 옆의 서적에 끼워 넣는다. 그러면 윤서가 떠난 다음에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그 서적을 사간다. 서적 주인은 눈치 챌 수가 없고 아예 관계가 없다.


이번에도 서적을 읽는 척하고 그 옆의 서적에 교서를 끼워 넣는다. 같은 일을 해 왔기 때문에 감시하는 놈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할 일을 마치고 윤서가 일어난다.



“아씨 왠일입니까? 이렇게 빨리....... 해가 중천에 뜨겠습니다.”


“바보....... 해가 중천에 뜬 게 언젠데. 앞장 서.”


“네.......”



막란과 윤서가 길을 떠나자 이들에게 다시 감시자들이 붙는다. 그러다 한 놈이 눈을 가늘게 뜨며 책방 난전을 본다. 윤서가 있던 자리에서 서적을 다른 사람이 사가는 것이 아닌가? 급히 서적을 산 사람을 쫒는다. 쫒고 쫒기어 시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감시자 한 명은 쫒고 다른 놈은 주위를 돌아, 가는 길을 막아선다. 마침내 붙잡아 꼼짝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뒤져도 수상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서적을 산 사람은 최이척의 사람이다. 만일을 위해 감시자들의 눈에 띄게 윤서가 일어나자마자 서적을 사게 하였고, 이들의 눈을 피해 그 다음 사람이 교서가 든 서적을 가지고 사라진 것이다.


한바탕 소란을 일으켜 감시자를 따돌리고 윤서와 막란은 산으로 향한다. 윤서는 당분간 산채에 있는 편이 안전할 것 같았다. 그리고 윤서와 함께 있고 싶었다.




*




화적의 산채.......



“안돼요. 양반 놈들을 어떻게 믿고 대사를 치를 수 있단 말이오!”



예상대로 화적들의 반대가 심하다. 거의 대부분 양반들에게 착취당하거나 수탈되어 온 사람들이라 최이척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백부는 나쁜 사람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하는 윤서의 말도 한 몫 했다.



“이름 석 자를 갖고 싶다.”



꺽쇠다.



“천민은 성을 마음대로 가질 수 없다. 내 이름 꺽쇠 앞에 성을 갖고 싶어.”


“성이 뭔 필요가 있소. 밥을 멕여 줘 술을 줘.......”


“우리들 자식의 자식의 자식........ 그 자식들의 자식의 자식들은 조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할 거 아닌가?”


“형님 아무리 약조를 해도 양반들은 그 약조를 안 지킵니다. 안 지켜요.”


“제가 껴들 자리는 아닙니다만 제 백부 최이척 대감은 속이 검은 사람입니다. 확실한 담보가 없으면 믿지 못할 분입니다. 그 담보가 있기 전에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하는데 모두가 윤서를 쳐다본다. 조카이기에 담보물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전 조카입니다. 담보가 아니잖아요.”


“아씨만 있으면 최이척 대감은 약속을 지킬 거요.”


“막란아 너까지 왜 이러니? 너두 봤잖아. 사정없이 내치는 걸!”


“대왕대비마마도 아씨한테 교서를 내릴 만큼 반정(反正)에 없어서는 안 될 분이오. 아씨가 우리와 있는 동안 우릴 버리지 않을 거요.”



윤서만 화적들과 함께 있으면....... 약속을 지킬 것 같다. 화적의 죄뿐 아니라 화적에 입적하기 전 양반을 죽인 것이나 도적을 한 것 모두 사면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분을 고쳐 아이들에게도 성을 물려줄 수 있고, 논밭을 얻어 더 이상 화적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막란과 아씨와 혼례를 치루면 되겄네.”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화적들이 웅성거린다.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윤서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입에서는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하고 있지만 입 밖으로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만 놀려요!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해요!”



이놈은 언제는 나 좋다고 잘도 따라다니더니 막상 떡을 입에 넣어주니까 뱉고 지랄이네....... 그런데 나도 왜 싫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나도 지랄이네.......



“막란이 말처럼 놀리지 말게! 어떻게 사대부 규수와 내 아들이 혼례를 치를 수 있단 말인가? 아씨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 농입니다.”



꺽쇠의 농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서운하게 들리는 걸까? 설마 저 못생긴 놈을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혼례는 못하더라도 여기에 살고 싶다. 바깥세상은 권력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죽고 죽이는 암투가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살기 위해, 먹기 위해, 노략질 하는 이 사람들이 더 순수하게 느껴진다. 막란이 저 놈도 사람 죽이는 것 빼고는 착한 것 같다.



“저 여기 있을 게요. 담보로요....... 백부 최이척 대감은 믿지 못하지만 대왕대비마마는 믿거든요. 그 분 며느리가 될 뻔 했거든요. 제가 여기 있는 동안 나중에 새로운 왕이 만들어지면 그 분이 절 찾으실 겁니다.”



윤서의 말이 거짓 같지는 않다. 꺽쇠가 수긍하자 화적 모두 윤서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막란도 위험이 없다면 윤서를 곁에 두고 싶다. 보기만 해도 행복하니까.......




*




남한산 남문 천주사 절터.......

며칠 후....... 전란으로 모두 불에 타 없어진 절터에 화적들이 모여 있다. 화적 모두의 동의가 있으려면 화적 전부가 최이척 대감과 만나야 한다. 꺽쇠의 뜻이기도 하지만 윤서의 부탁이었다. 서로의 믿음을 윤서가 중재하려는 뜻이다. 그래서 임진년 왜란 때 불타 없어져 인적이 끊긴 천주사를 택해 화적 모두를 데리고 왔다.


최이척은 호위무사 수 십 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 자체로 위엄이 있고 세를 과시하듯 기가 넘쳤다. 상대적으로 가족들 모두 함께 나온 화적들의 모습은, 옷차림도 남루하고 씻지 못한 얼굴들이 걸인들하고 진배없어 보인다.



“저의 백부 좌찬성 최이척 대감이십니다.”


“인사 올립니다. 꺽쇠라 합니다.”


“반갑네. 자네가 이들을 이끄는 사람이라 들었네.”


“존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을 필요로 하신다고요.”


“새로운 세상이 오면 자네들의 죄를 사면해주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줌세.”


“그러한 세상이 오면 우리 같은 천민도 양반이 되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안 되네.”


“우리도 과거를 보고 싶습니다.”


“아니야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아.”


“우리들의 자식 대에도 안 되는 겁니까?”


“기대하지 말게.......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아.”


“그럼 우린 성을 가질 수 없는 겁니까?”


“.......이름만 갖고 살아가게.”



꺽쇠가 되돌아 화적들을 본다. 화적들의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덕팔이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온다.



“됐소 형님! 언제 우리가 성 때문에 살았소. 배부르고 따뜻하게 자리에 누우면 됐지. 합시다! 반정이든 뭐든!”



다른 화적들도 동의 한다는 듯 주먹을 꽉 쥐고 어깨 위로 올린다. 덕팔이 눈물을 훔치며 소개를 한다.



“강원도에서 올라온 갖바치 덕팔이라 합니다.”


“덕팔의 지어미 막심이라 하옵니다.”


“회령 태생 상인 솔개라 합니다.”


“솔개의 지어미 큰년이라 합니다.”


“솔개의 아우 돈두라 합니다.”


“돈두의 지어미 언년이라 합니다.”


“평양에서 창기를 했던 덴년이라 합니다.”



막란을 빼고 모두의 인사가 끝났는데 윤서가 그를 억지로 떠밀어 인사를 하란다. 사실 제대로 최이척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꺽쇠 아들 막란이라 합니다.”



막란을 떠밀어 억지로 인사를 시켜 미안했는지 막란의 팔짱을 끼고 미소를 보낸다. 막란이 팔을 빼며 쑥스러워 한다.



“인사 올립니다. 막란의 아내 최윤서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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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9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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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천으로 세상을 덮다 24.08.16 17 0 11쪽
38 고구마와 감자 24.08.15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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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숟가락과 젓가락 24.08.12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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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혼례를 치루다 24.07.26 42 0 12쪽
» 너희들이 원하는 세상은 오지 않아 24.07.25 38 0 12쪽
16 짱돌을 던지다 24.07.24 37 0 13쪽
15 모닥불 피워 놓고 24.07.24 4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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