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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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4.07.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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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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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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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2)

DUMMY

“어때요? 어울려요?”


아름다운 단풍이 물든 산속.

로레인이 율리안의 팔짱을 끼고 앉아있었다.


“힘드실 텐데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자토스에서 그림을 업으로 삼았던 화가가 붓을 들었다.

항상 철창에 갇혀 빠져나갈 날만 기다리던 그였는데

요즘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율리! 움직이면 안 돼. 알겠지?”


“로레인. 너야말로 괜찮겠어? 얼굴에 경련 날 거 같은데.”


“괜찮아. 한창 예쁠 때잖아?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화공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

님버트가 그런 율리안 일행을 지켜보았다.

이제는 그도 혼란스러웠다.


“나는 주야장천 쇼핑만 갈 거야.”


그의 꼭두각시가 된 후,

님버트는 재산이 거덜 나진 않을까?

친척 중에 젊고 예쁜 여자가 있는지 찾진 않을까?

어느 순간 킬리언과 밀리언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 자리 잡고 어느덧 10일.

율리안은 정말로 주야장천 여행만 다녔다.


“간수님! 오늘은 어디로 가요?”


아이들도 하루하루가 퍽 기다려졌다.

아이들 사이에서 율리안의 인기는 절정이었다.

엄마가 몸에 좋은 음식만 먹이고 있지만

이따금 불량식품을 사주는 삼촌이 조카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언니. 혹시 화장품 조금 남았어?”


들뜬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보호라는 명목이지만 갇힌 것 갇힌 것이다.

남녀노소 모두 외출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계절도 계절이다 보니 사람들은 오랜만에 맛본 외출에 눈이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았다.


“율리. 근데 이렇게 여행만 다녀도 돼?”


로레인의 말도 안 되는 능력이 펼쳐졌다.

그녀는 웃고 있는 그 상태로 입술도 움직이지 않은 채 목소리를 뽑아냈다.


“왜 싫어?”


그와 반대로 율리안은 표정이 흐트러졌고


“저하!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화공은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이 날씨, 이 배경, 이 온도 그리고 두 모델.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말이 있다.

화공은 지금 자신이 바라보는 피조물들이 그렇다 생각했다.

아름다운 선남선녀에 배경과 날씨까지 도와주니 지금 이 그림을 완벽하게 완성하고 싶은 의무가 있었던 것.


“.........”


그리고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

율리안이 보내줬던 마르코는 망원경을 든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요? 듀크란 님.”


그의 옆, 그저 바라만 봐도 강자의 기도를 풍기는 사내가 옆에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사울 듀크란.

자토스가 멸망하기 전까지 제국과 끝까지 전쟁을 벌이던 맹장 중 한 명이었다.


“뻔하지. 지금 3황자는 저 여인에게 환심을 사고 있는 걸세. 봐라. 나는 죄수를 풀어주고도 이렇게 당당히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내 말 한마디면 죄수들도 이렇게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내가 이런 남자다.”


사울은 제 나름대로 율리안의 행동을 분석했다.


“이 일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마르코의 질문에 사울이 나무를 바라봤다.


휘이이잉.


때마침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바람을 통해 계절을 만나고 계절을 보낸다.

지금의 바람은 슬슬 가을과의 이별을 준비하라 말하는 것 같았다.


“조만간이겠지.”


“그럼?”


“우리도 준비해야지.”


정찰을 마친 사울과 마르코가 더욱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혹시 쟤들 때문이야?”


로레인이 입을 열지 않은 채 말했다.


“거기 여성분! 눈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죄송해요~”


“눈웃음도 안 됩니다.”


“아. 이건 습관이라. 노력해 볼게요.”


로레인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눈치챘구나.”


“그럼.”


로레인의 시선이 향했던 곳.

그곳은 사울과 마르코가 몸을 숨기고 두 사람을 염탐했던 곳이다.


“잠깐 쉬겠습니다.”


그렇게 3시간의 작업 끝에 화공이 붓을 놓았다.


“아니. 여기까지만 하세.”


그의 작업 열정을 꺼트린 것은 님버트였다.

황자와 그의 여인에게도 서슴없이 지시하는 그였지만 님버트 앞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물품을 챙기겠습니다.”


그가 아쉬운 표정으로 물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율리안과 로레인을 담은 그림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챙겼다.


“율리. 네가 정확히 원하는 게 뭔데.”


율리안은 평야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내 편을 만들고 있어.”


“나 말고?”


“응. 이번 일은 꽤나 중요한 일이라 내 편이 많이 필요하거든.”


로레인이 율리안의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


“과연 쟤들이 네 편이 돼줄까?”


지금이야 해맑게 뛰놀지만 아이들은 영악할 때 영악하다.

로레인은 확신했다.

저들은 지금이야 율리안을 좋아하겠지만

그가 이 나라를 없앤 제국의 핏줄이란 걸 알면 대번에 돌아설 것이다.

삼촌이 좋다 말하지만 결국은 울며 엄마의 품으로 달려드는 아이처럼.


“저는 될 거예요!!!”


언제 얘기를 들었는지 철창에 처음 말을 걸었던 마크가 율리안 앞에 와 있었다.


“진짜로?”


“네!!!!”


“이 형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데?”


“아니에요.”


마크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왜?”


“이 형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잖아요. 나쁜 사람은 행복 대신 불행을 줘요.”


마크의 말에 로레인은 반박할 수 없었다.


“똑똑하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똑똑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어주는 것뿐.


“마크. 나랑 약속해 줄 수 있어?”


“무슨 약속이요? 누나?”


로레인은 이모가 아닌 누나라는 말에 몹시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한 말. 꼭 지키기로. 할 수 있겠어?”


“당연하죠!”


“남자가 두말 하기 없기다.”


“약속!”


마크가 새끼손가락을 뻗었고

로레인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걸었다.


***


오랜만에 이 일의 시발점,

마차 앞 음식점으로 왔다.


“어서 오세요!!!”


주인장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궁금했다.

그녀는 황자라서 반가운 것일까?

그저 은인이라서 반가운 것일까?

내가 만약 네크로맨서라는 걸 알면 그때도 지금과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장사는 잘됩니까?”


“덕분에요! 음식은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때 먹었던 걸로 주세요.”


“네.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주인장이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봤다.

손님이 많았다.

맛도 맛이고 가격도 저렴했다.

손님이 없을 이유가 없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술은 안 시켰는데?”


“서비스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맥주를 밀어냈다.

하지만 로레인이 냉큼 가로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계산할 때 저것도 포함해 주세요.”


“아이~ 아니에요. 아니에요.”


주인장은 음식을 먹고 있는 우리 테이블에 착석했다.

심리적으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것일까?


“언제까지 머무를 생각이에요?”


“곧 떠날 생각입니다.”


“갑자기요? 정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떠나요?”


“음식 맛 생각하면 계속 여기 눌러앉고 사람 일이 마음대로 안 되네요.”


“수용소 사람들을 데리고 소풍을 간다 들었어요.”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주인장은 님버트가 늦게 퇴근할 때면 이 식당에 들러 안줏거리와 함께 술을 마신다고 말해줬다.


“요즘 저하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주인장이 나지막이 귓속말로 말해줬다.


“잘 먹었습니다. 로레인 그냥 일어나.”


“율리. 나 아직 다 안 먹었는데?!”


“.......”


그릇의 음식은 깨끗하게 비워졌고

잔에 채운 맥주잔도 비워졌으니 이제 다 먹었을 텐데 그녀는 어찌하여 아직 먹지 않았다고 하는 것일까? 로레인이 맥주잔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맥주 많이 마시면 근손실 온다.”


“하루쯤은 괜찮잖아! 싫어! 마실래!!!”


로레인이 아이처럼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주인장 앞으로 돈을 건넸다.

물론 맥줏값도 포함해서.


“매번 이렇게 챙겨주시니 감사합니다.”


“킬리언은? 요즘도 그 녀석 옵니까?”


“거리에서 안 보인 지 오래됐어요.”


주인장은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가기 전날 꼭 찾아오세요. 제가 모처럼 솜씨 발휘할 테니까!”


“솜씨라면 이미 충분히 발휘하고 계십니다.”


“가기 전에 꼭 말씀해 주세요. 안 그러면 저 서운해요!!”


“알겠습니다.”


“율리! 나 아직 안 끝났다니까! 율리!!!”


로레인은 맥주를 마치 생이별하는 엄마를 보듯 바라봤다.

그래도 안 된다.

술은 근손실을 부른다.


***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예전에는 퍽 마시기 좋은 상쾌한 바람이었는데 이제는 아침과 저녁에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차가운 바람으로 변했다.


“내일이 마지막 소풍이 될 거야.”


“이제 떠나시는 겁니까?”


“왜 기뻐?”


“그저 사실 확인을 위해 물어본 겁니다.”


님버트의 영혼이 바람 앞 촛불처럼 일렁였다.

녀석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래.

제 목줄 잡는 사람이 어찌 좋겠는가?


“내일은 마지막인 만큼 성대하게 가보자고.”


“성대하라 하심은?”


“네가 자주 가는 식당 있지? 거기 주인장 좀 섭외해 와. 애들한테 따듯한 음식 먹여야지.”


“알겠습니다.”


“아 계산은 물론 네가 하는 거고.”


“알겠...습니다.”


녀석이 이빨을 까득 깨무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내 이빨인가?

자기 이빨이지.

이빨은 소중히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고생하기 마련이니까.


하여튼.


그렇게 다음 날, 우리는 주인장과 함께 인근 공원으로 소풍을 떠났다.


“여깄습니다. 저하.”


화공이 우리에게 그림을 건넸다.


“어쩜!!!!”


로레인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의 그림 실력은 수준급이라고 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훌륭했다.

과거, 나타샤에게서 들은 말이 있다.


[내가 살던 세계엔 소중한 시간을 담아두는 기계가 있어. 우리는 그걸 사진이라고 불러]


나타샤의 말이 맞다면 이건 사진에 비견될 정도로 훌륭한 그림이었다.


“선물.”


내가 그림을 로레인에게 건넸다.


“율리~!!!”


로레인은 퍽 감동한 눈빛이었다.


“꼭! 꼭! 소중히 간직할게.”


로레인이 그림을 품속에 꼭꼭 집어넣었다.

소풍은 순조로웠다.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떠나가는 가을과 이별을 건넸고

나와 로레인도 낙엽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을 누리고 있을 때


“슬슬이지. 율리?”


“그런 것 같아.”


공원이 비정상적으로 조용해졌다.

주변을 살펴봤다.

뛰어놀던 아이들은 어딘가로 사라졌고

우리 주변엔 님버트와 나, 로레인을 호위하기 위해 남은 병사들밖에 없었다.

잠시 후, 공원 입구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


“나 기억하지?”


“기억하지. 내가 보내줬잖아. 이름이 뭐였지?”


“마르코라고 한다.”


“그래. 마르코. 여긴 왜 또 찾아왔어? 집 나가보면 개고생이란 거 이제 깨달았어?”


“그럴리가.”


녀석은 내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도리어 여유로웠다.

잠시 뒤, 사방에서 병장기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저하와 소장님을 보호하라!”


플로버가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척!


병사들이 사방으로 창을 겨눴다.

그리고 잠시 뒤,

길잃은 창끝에 이정표를 제시하듯 일말의 무리듯이 공원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게 자네가 말한 무력 단체인가?”


“.......”


님버트는 말이 없었다.


“자네 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자네도 한통속이었나? 주인장과 함께?”


내가 주인장을 바라봤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떠나기 전 꼭 나에게 찾아오라는 그 말.

그건 정말 날 떠나보내기 싫어서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술장사만큼 정보 나오기 쉬운 곳은 없거든요.”


“당신의 밥과 술은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거든.”


“킬리언으로 부터 우리 가게를 지켜준 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 나라를 뺏은 당신을 곱게 보내줄 순 없어요.”


예상한 일이었다.

잠시 후, 병사들의 길이 갈라졌다.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갈라진 길 사이로 한 사내가 걸어왔다.

검붉은 갑옷에 성인 남자 몸집만 한 대검을 등에 멘 사내.


척.


그의 걸음은 내 앞에서 멈췄다.

나는 고개를 끝까지 젖히고 나서야 그를 볼 수 있었다.

다리우스와 맞먹는 체격.


“내 이름은 사울 듀크란.”


그가 몸집만 한 대검을 땅에 박았다.


“멸망한 왕국의 소드 마스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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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버려진 땅 (2) 24.08.25 12 0 12쪽
36 버려진 땅 (1) 24.08.24 13 0 12쪽
35 마음속 용광로에 불을 지펴라 (2) 24.08.24 13 0 12쪽
34 마음속 용광로에 불을 지펴라 (1) 24.08.23 13 0 12쪽
33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4) 24.08.22 14 0 12쪽
32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3) 24.08.21 15 0 12쪽
31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2) 24.08.20 21 0 12쪽
30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1) 24.08.19 19 0 12쪽
29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4) 24.08.18 20 0 12쪽
28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3) 24.08.18 17 0 12쪽
27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2) 24.08.17 18 0 12쪽
26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1) 24.08.17 17 0 12쪽
25 죄인과 죄수의 만남 (4) 24.08.16 16 0 12쪽
24 죄인과 죄수의 만남 (3) 24.08.15 19 0 12쪽
23 죄인과 죄수의 만남 (2) 24.08.14 18 0 12쪽
22 죄인과 죄수의 만남 (1) 24.08.13 21 0 12쪽
21 황궁으로 가는 길 (4) 24.08.12 19 0 12쪽
20 황궁으로 가는 길 (3) 24.08.11 19 0 12쪽
19 황궁으로 가는 길 (2) 24.08.11 21 0 12쪽
18 황궁으로 가는 길 (1) 24.08.10 20 0 12쪽
17 습격 (4) 24.08.10 22 0 12쪽
16 낚시 (3) 24.08.09 22 0 12쪽
» 낚시 (2) 24.08.08 24 0 12쪽
14 낚시 (1) 24.08.07 25 0 12쪽
13 시작된 여행 (4) 24.08.06 26 0 12쪽
12 시작된 여행 (3) 24.08.05 28 0 13쪽
11 시작된 여행 (2) 24.08.04 27 0 12쪽
10 시작된 여행 (1) 24.08.04 36 0 12쪽
9 로레인 블라디미르 (5) 24.08.03 35 1 13쪽
8 로레인 블라디미르 (4) 24.08.03 3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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