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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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4.07.31 20:31
최근연재일 :
2024.09.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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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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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황궁으로 가는 길 (1)

DUMMY

“그냥 찔러요.”


하이닉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는 그라도 황자는 황자였다.

어쩌면 1황자는 그가 죽길 바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보는 앞에서 3황자가 죽는다면 2 황자는 이를 자신이 유리하게 해석할 수도 있었다. 정치란 그런 거니까.


“원하는 게 뭐냐?”


결국 하이닉이 검을 내려놓았다.


“우리를 무사히 보내 주시오. 이미 손해라면 입을 만큼 입었소.”


“.......”


“이걸 왜 망설이는 거지? 그대들에게 황자의 목숨보다 중요한 게 있나?”


하이닉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황자를 먼저 받겠다.”


“그럴 순 없지. 내가 여기 남겠다. 저들을 먼저 철수시키거라. 그러면 황자를 넘기도록 하지.”


“그리하라. 내가 허락한다.”


대답은 하이닉이 아닌 율리안이 대신했다.

하이닉은 끓어오르는 분노에도 주먹을 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황궁 7검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저 무능한 새끼가!!!’


차마 그를 노려볼 순 없었다.

지금 녀석의 얼굴을 봤다간 그대로 주먹이 나갈 수도 있으니까.


“고맙네. 피닉스 남작.”


피닉스가 고개를 까딱 숙였다.

사울이 하이닉의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발치에 있는 아공간 주머니를 주웠다.

비비안이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갔다.

그렇게 사울이 유유히 사라졌다.


“고맙소.”


율리안은 피닉스 남작만 들을 수 있게 나지막이 말했다.


“은혜는 갚은 걸로 하지.”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번 헤어짐을 애틋하게 회상할 사이는 아니지.”


“그렇네요.”


스테판이 율리안의 등을 툭 민 후 서서히 멀어졌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하이닉은 최대한 화를 삭이며 물었다.

율리안이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방황하던 율리안.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그런 그에게 찾아온 길잡이.


“당신이 왜 여기에?”


고개를 들자, 스테판 피닉스가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율리안은 스테판이 왜 여기 있는지

그가 왜 갑자기 자신을 도와주려 하는지 묻지 않았다.

지금은 동기보다 행동이 우선이었다.

그가 상황을 설명했다.


“비비안 님이!!!”


스테판이 그를 도와주는 건 그저 찜찜한 은혜를 훌훌 털어내기 위함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반드시 도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방법은 간단했다.

인질극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는가?

인질의 이름값이었다.

그리고 율리안은 그 이름값에 충분히 걸맞은 인물이었다.


스테판은 율리안의 목에 칼을 겨눔으로써 모두를 지킬 수 있었다.


“이 일... 황궁에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남기고 하이닉이 철수했다.


“후아~”


모두가 떠난 뒤, 율리안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이지 길고 힘든 하루였다.


***


습격 후 1주일이 지났다.

나와 로레인의 생활은 똑같았다.

훈련하고 쉬고 만끽하고.


“율리. 우리 이러고 있어도 괜찮아?”


로레인은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나는 로레인에게 모든 걸 얘기했다.

하이닉의 경고까지도.


“그럼 어떡해? 도망갈까? 대륙 전체가 제국 건데.”


“그래도 불안하잖아.”


“죽이기야 하겠어.”


“그런 말 하지 마!!!”


로레인이 나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이렇게 우리의 생활은 똑같았지만

동부의 모습도 똑같은 건 아니었다.

사울의 습격 이후 동부는 굉장히 삭막해졌다.

님버트는 제국의 의심을 피해 갔다.

그가 원리원칙을 지킨 것이 한몫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요구사항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내려진 명령은 간단했다.


‘철저한 첩자의 색출’


님버트는 그 일의 책임자로 플로버를 낙점했다.

플로버는 사울의 잔당들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지만, 그는 자취를 감춘 듯 발각됐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가 무사한 건 비비안이 무사하단 얘기는 나로서는 안심이었다.


“안 물어봐?”


“사연이 있겠지.”


로레인은 내가 비비안을 데리고 있던 사실에 대해 일절 묻지 않았다.

나이가 100살쯤 먹으면 그런 일도 사소해지는가 싶었다.


똑똑똑.


“누구야?”


“저하 님버트입니다.”


“들어와.”


자토스 동부는 사건 사고가 많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님버트는 한가해졌다. 수감자들을 밖으로 내보낸 책임을 피할 수 없어 정직을 먹게 된 것.


“많이 알아 왔어?”


“나는 그에게 황궁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알아 오라 시켰다.”


“조만간 저하는 황궁으로 복귀하게 될 겁니다.”


“복귀 맞아? 끌려가는 게 아니고?”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중요한 건?”


그의 손에 종이 뭉치가 한 다발이었다.

그가 어떤 걸 준비했는지 궁금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1황자 저하는 율리안 저하를 반기지 않을 겁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목을 벴던 사용인.

그가 모시던 귀족은 브래포드포트 남작가였는데 그 남작가는 1황자를 따른다고 했다.


“하이닉도 1황자 세력인가?”


“알려진 바로는 그렇습니다.”


어쩌다 보니 나는 1황자 놈의 일을 제대로 망쳐버린 샘.


“내가 알아둬야 할 점은?”


“황궁은 본격적인 후계자 전쟁이 시작된 거 같습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제국은 역사에 한 획을 그을 통일이라는 업을 이어냈다.

그 업적을 이뤄낼 수 있었던 건 현 황제 다이크 듀발론의 능력과 카리스마 덕분.

이제 제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은 후계자였다.

다이크 듀발론이 이뤄놓은 통일제국을 대대손손 잘 통치할 후계자.


“일단 거기서 난 나가리고.”


“..... 저하가 걸어온 길은 저하가 더 잘 알거라 생각합니다.”


빈말이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걸 보면 이 몸의 원주인은 정말 망나니의 삶을 살아왔나 보다. 그 이후에도 님버트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다 사사롭고 자잘한 정보들뿐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여태 자토스에 헌신해 오던 그가 황궁의 사건을 어떻게 알겠는가?


“이건 좀 놀랍네.”


“네. 저하는 삼남이십니다. 막내는 4 황녀 루비 듀발론 님입니다.”


그렇게 설명이 이어지고 있을 때


“저하. 황궁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님버트가 편지를 전해주러 왔다.


“율리? 뭐래?”


로레인이 내 어깨에 턱을 기대며 물었다.


“빨리 튀어오라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님버트가 나를 보며 물었다.


“나 걱정해 주는 거야? 예의상?”


그는 그저 웃었다.


“안 괜찮으면 어쩔 거야. 예전부터 지금까지 변한 건 없어. 괜찮든 괜찮지 않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상황이 어떻든 살아남는 거. 나한텐 그게 제일 중요해.”


***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일상의 사소한 변화가 크게 와닿을 때.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율리. 잘 챙겼어?”


전쟁터에 갈 때면 언제나 내 옷은 내가 챙겨 입었다.

하지만 로레인이 외투를 들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색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그녀가 입혀주는 옷을 입었다.


“돈은?”


내가 아공간 주머니를 툭툭 쳤다.


“많이 뜯어냈어?”


“그럼.”


기분이 퍽 이상했다.

예전이건 지금이건 나를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 의도가 좋지 않았다.

예전이건 지금이건 모두 나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나를 불렀으니까.


“가볼까?”


하지만 기분이 마냥 무겁진 않았다.

언제나 혼자 열었던 문.

그 문을 로레인이 열어주고 있었다.


피식.


“왜 웃어? 혼나러 가는데. 미친 거야?”


“아니. 지극히 정상인데?”


휘이이잉.


때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말하고 있었다.

이제 가을은 끝났다고.

겨울이 오고 있다고.


“아이 추워라!!”


로레인이 내 품에 장난스레 안겼다.

나는 겨울을 싫어했다.

전쟁터에서의 겨울은 유독 힘들었으니까.

마물과 싸워 죽는 이들만큼이나

추위와 싸우다 죽는 이들이 넘쳐났다.

유독 내가 속한 부대는 그 비율이 높았다.


“어때? 따듯하지?”


로레인이 낮잠을 자기 위해 품을 찾는 아기처럼 내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퍽 따듯했다.

마음이.


“로레인. 잠깐 어디 들렀다 가자.”


“어디? 여자 끼고 술 마시는 곳만 아니면 되는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 곳 아니야.”


“마치 가본 것처럼 얘기하네.”


“의심하면 끝도 없다.”


“어? 뭐야? 왜 말을 돌려? 진짜 가본 거야? 그런 거야? 너 누나한테 혼난다!!!”


그렇게 노발대발하던 로레인도 걸으면 걸을수록 말 수가 줄어들었다.


“여기로 가면 나오는 건 하나뿐인데.”


“맞아.”


“너 설마 가고 싶다는 곳이?”


“맞아. 검성의 무덤.”


나의 마지막을 본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이렇게라도 그녀의 마지막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척!


검성의 무덤 앞,

제국의 병사들이 그들을 막고 있었다.


“여기서부턴 출입 금지다.”


“듀발론 제국의 3황자 율리안 듀발론이다. 비켜라.”


나의 신분으로 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검성의 무덤은 실로 초라했다.

애초에 초라하게 지은 게 아니었다.

나라가 멸망하며 초라해졌다.

사방에 훼손된 꽃과 나무들이며

금 간 비석이 그 증거.


“율리 그거 알아? 저기 저 비석에 남긴 말. 학자들이 아직도 해석하지 못하고 있데.”


내가 비석 아래 남긴 말을 바라봤다.


“thtjfaksgdlqhkwnaus rkatkgkrpTtmqslek”


그건 이 대륙의 말이 아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의 언어.

‘한글’이라는 언어였다.


“이제 가자.”


“뭐야? 이게 다야?”


“그럼 뭘 더해? 무덤 앞에서 눈물이라도 흘릴까?”


“죽은 여자 앞에서 왜 눈물을 흘려. 눈앞에 예쁜 여자 보면서 웃어도 부족할 판에.”


로레인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로레인은 어디 들렀다 갈 곳 없어?”


“나?”


“잘 생각해. 이제 떠나면 앞으로 언제 올지 몰라.”


“......”


로레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내


“없어.”


“없다고?”


“응. 정확히는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찾을 수 없는 곳이야.”


“그게 어딘데?”


로레인 어린애는 알 필요 없다며 말을 아꼈다.


“로레인이 그렇다면야. 이제 진짜 가볼까?”


“응! 가자.”


로레인은 미련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100년이 넘도록 이곳에 살아서 그런 것일까?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


“로레인. 근데 걱정 안 돼?”


“뭐가?”


“나랑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근데 이렇게 덜컥 따라나서는 거.”


“응. 하나도.”


“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나쁜 사람은 그런 질문 안 한다.”


그녀는 뒤이어 나를 따라나선 이유를 덧붙였다.


“감이야. 너를 따라가도 되겠다는 감. 그리고 내 의지.”


그래.

때로는 구구절절한 말보다 이런 이유가 더 힘이 되기도 한다.

내가 로레인을 빤히 바라봤다.


“갑자기 왜 그래?”


로레인이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입술에 침을 발라 촉촉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제일 중요한 게 살아남는 거라고.”


“그렇지.”


“생각해 보니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더라고.”


“나?”


로레인이 능청스럽게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맞아. 너랑도 관련된 일이야.”


“나면 나지. 나랑도 관련된 일은 뭐야?”


나는 그저 웃었다.


“뭐야? 말 안 해 줄 거야?”


“살아남고 싶어. 나와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 소중한 사람?”


로레인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 갑작스레 빨라지는 발걸음.


“로레인 괜찮아? 갑자기 귀가 빨개졌어.”


“추워서 그래!!”


“아까까진 안 빨갰는데?”


“추워서 그렇다니까!”


그녀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나는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같이 가!”


그렇게 우리의 황궁으로의 여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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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버려진 땅 (1) 24.08.24 12 0 12쪽
35 마음속 용광로에 불을 지펴라 (2) 24.08.24 12 0 12쪽
34 마음속 용광로에 불을 지펴라 (1) 24.08.23 13 0 12쪽
33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4) 24.08.22 13 0 12쪽
32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3) 24.08.21 14 0 12쪽
31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2) 24.08.20 21 0 12쪽
30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1) 24.08.19 18 0 12쪽
29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4) 24.08.18 20 0 12쪽
28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3) 24.08.18 17 0 12쪽
27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2) 24.08.17 17 0 12쪽
26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1) 24.08.17 16 0 12쪽
25 죄인과 죄수의 만남 (4) 24.08.16 16 0 12쪽
24 죄인과 죄수의 만남 (3) 24.08.15 19 0 12쪽
23 죄인과 죄수의 만남 (2) 24.08.14 17 0 12쪽
22 죄인과 죄수의 만남 (1) 24.08.13 20 0 12쪽
21 황궁으로 가는 길 (4) 24.08.12 18 0 12쪽
20 황궁으로 가는 길 (3) 24.08.11 18 0 12쪽
19 황궁으로 가는 길 (2) 24.08.11 20 0 12쪽
» 황궁으로 가는 길 (1) 24.08.10 20 0 12쪽
17 습격 (4) 24.08.10 21 0 12쪽
16 낚시 (3) 24.08.09 21 0 12쪽
15 낚시 (2) 24.08.08 23 0 12쪽
14 낚시 (1) 24.08.07 25 0 12쪽
13 시작된 여행 (4) 24.08.06 26 0 12쪽
12 시작된 여행 (3) 24.08.05 27 0 13쪽
11 시작된 여행 (2) 24.08.04 27 0 12쪽
10 시작된 여행 (1) 24.08.04 35 0 12쪽
9 로레인 블라디미르 (5) 24.08.03 35 1 13쪽
8 로레인 블라디미르 (4) 24.08.03 38 0 12쪽
7 로레인 블라디미르 (3) 24.08.02 7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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