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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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4.07.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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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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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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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인 블라디미르 (4)

DUMMY

여명력 462년.

길고 길었던 대전쟁이 끝났다.

검성의 나라 자토스도

신궁의 나라 엘프의 숲도

대사제를 배출한 태양교 자치령도

축제가 끝나지 않고 1주일째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툭.


사람이 많다 보면 어깨가 부딪치기 마련.

흔한 일이었지만 부딪친 대상이 흔하지 않았다.


“이 더러운 네크로맨서 새끼가!”


한쪽은 연합군의 오물이라 불리던 네크로맨서였고


“아저씨가 먼저 부딪친 거잖아요!”


“이 더러운 잡종 년이! 어디서 말대답이야!”


한쪽은 연합군의 고귀하디 고귀한 성기사였다.


“됐어. 좋은 날인데 그냥 가자고. 똥 밟았다 생각해.”


함께 있던 성기사가 동료를 말렸다.

말린 성기사가 룬디아와 로레인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엔 우월감이 어려있었다.

미천한 너를 고귀한 내가 용서한다는 우월감.


“기도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는 무능력한 새끼들이!”


“로레인! 예쁜 입에서 그런 말 나오면 안 되지!”


“룬디는 안 억울해? 이런 취급 받는 거?”


룬디아는 말없이 로레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이미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네크로맨서와 벰파이어는 마족과 동급이었으니까.


“로레인. 사람들은 변하지 않아. 놈들은 어렸을 때부터 네크로맨서와 벰파이어는 더러운 놈들이라 배우며 자랐고 그 부모의 부모,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 뿌리 깊은 인식은 전쟁에서 활약했다고 바뀌지 않아.”


로레인은 여전히 씩씩댔지만

율리안은 씩 웃었다.

그녀를 달래줄 게 필요했다.


“먹어봐.”


율리안이 달달한 간식을 로레인의 입에 넣어줬다.


“우와~!”


로레인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한입에 딸기를 2개나 베어 물었고

그녀의 볼은 다람쥐처럼 뽈록하게 튀어나왔다.


“룬디. 우리 약속해!”


로레인이 딸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무슨 약속?”


“우리 시간이 지나도 서로 지켜주는 거다!”


룬디아가 피식 웃었다.

이 어린아이가 자신을 위해주는 마음이 귀여우면서도 퍽 기꺼웠다.


“뭐해! 빨리!”


로레인이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알았어. 약속.”


룬디아가 희고 긴 손가락에 자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우린 서로 지켜주는 거야! 알겠지? 약속이야!”


***


“지켜주는 남자 별론데?”


로레인의 비아냥에 율리안의 시간이 현재로 돌아왔다.


“약속했거든. 지켜주기로.”


“아련한 눈깔로 그렇게 말하면 넘어갈 줄 알았니? 그 시간에 단추 하나라도 더 풀었겠다.”

세월은 참 많은 걸 변화시킨다.

봐도 봐도 신기했다.

그 어린아이가 서로를 지켜주겠다고 손을 내밀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요염한 자세로 침대에 앉아 딸기를 먹으며 율리안을 유혹하다니.


“감옥이 아니라 궁전이네.”


“예뻐서 잡혔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율리안이 로레인의 감옥을 둘러봤다.

스튜어트는 그녀에게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옥을 이리 궁전처럼 고쳐줄 리 없으니까.


“향초는 왜 이렇게 많아?”


빛이 통하지 않는 최심부인 만큼 사방은 온통 아로마 향초로 도배된 상태.


“음식은? 이거 다 먹을 수 있어?”


“아니. 몸매 관리해야지.”


“그럼 음식이 남잖아?”


“걱정 마 썩으면 알아서 치워줘.”


“음식을 썩을 때까지 그냥 둔다고?”


“내가 달라 그랬냐? 쟤가 그냥 주는 거지. 근데 왜 이렇게 잔소리야! 어린놈이!”


율리안의 표정이 굳었다.

배고프다고 엄마를 때리던 장면이 눈에 선했다.

엄마는 아이의 성난 주먹을 맞으면서도 슬퍼했다.


“준다고 덥석 받아? 거절할 줄도 알아야지.”


“아빠 납셨다. 아빠 납셨어. 잔소리 계속할 거면 나가!”


벌떡.


“갈 거야? 진짜? 내가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있는데 그냥 가?!”


‘잠깐! 내가 남자를 잡는다고? 이 로레인 블라디미르가?’


로레인은 의아했다.

자신은 어째서 이 남자를 붙잡고 있는가?

잘생겨서?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율리안은 자신의 마음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었다.


“아까 말했지? 옷이라도 벗기라고?”


“응. 빨리 와. 여기 침대 푹신해.”


“옷 말고 다른 걸 찢어줄게.”


“어머!”


로레인이 자신의 가슴팍을 가렸다.

하지만 율리안이 향한 곳은 로레인이 아닌 철문.


‘우선 이 철창부터 찢자.’


로레인이 뒤에서 고자 새끼라고 욕하고 있었다.


***


한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수용소를 드나들었다.

이곳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황가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저하. 제국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줘봐.”


“그것이....”


“줘보라니까?”


놈이 서신을 건넸다.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거기 계속 눌러앉으면 좋고.’


황궁에 돌아오지 말라는 완곡한 표현.

이 내용을 통해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은 두 개였다.


첫째. 이 몸뚱이는 황가에서도 사고를 많이 쳤을 확률이 높다. 자고로 적은 품고 망나니 아군은 내쫓으라는 얘기가 있으니까.


둘째. 어쩌면 황궁의 후계 구도가 본격적으로 열렸을 수도 있다.

황자는 나를 포함 셋.

만약 내가 여기 눌러앉는다면?

황자 후계 구도는 자연스레 양강구도가 될 수도 있다.


“서신은 누가 들고 왔어? 황궁 사람이었나?”


“아닙니다. 정기 보고를 받는 귀족의 하수인이 오는 김에 가지고 온 것 같습니다.”


“그래? 걔 지금 어딨어?”


“근처에 머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왜 이토록 오랜 시간 이 수용소를 드나들었는지 아는가?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황자가 여기 있는데 인사 한번 안 오고 그냥 갔다고? 그것도 귀족이 아니라 귀족 따까리가? 근처에 머물면서?”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잘못은 걔가 했는데.”


“소장.”


“예! 저하!”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녀석이 눈을 요리조리 굴렸다.

궁금했다.

너는 과연 무슨 대답을 할까?


“무시?”


“정답. 그리고 하나 더 있어.”


“그게 뭡니까?”


“차별받는 거. 수감자들 전부 밖으로 집합시켜.”


“수감자들은 왜?”


“화풀이 좀 하자.”


억울하게 고통받고 차별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줄 명분.


***


‘미친 새끼가 또 지랄이네.’


스튜어트는 아연실색했다.

그는 율리안의 명령대로 수감자들을 밖으로 꺼내왔다.

3 황자는 칼을 뽑고 연병장에 서 있었다.

스튜어트는 지금 이 그림이

무시당한 황자가 수감자들을 상대로 화풀이하려는 의도라 여겼다.


스튜어트가 땀을 삐질 흘렸다.

아무리 그가 소장이라 해도 수감자들을 이렇게 맘대로 부릴 순 없었다.

그럼에도 이 무리한 부탁을 들어준 이유는


“황도로 돌아가시면 잘 좀 부탁드립니다.”


오직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 달간 부단히도 노력한 것이다.

아끼고 아끼던 로레인을 바쳤고

그가 궁금하다면 기밀 정보까지 내줬다.

한데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이다.


“오늘 여기서 너희는 선택해야 할 거다. 충절을 지키거나 목숨을 내놓거나.”


“예? 저하?”


“조용.”


율리안이 눈빛으로 스튜어트를 제압했다.

그리고


드륵. 드륵. 드륵.


율리안이 검을 질질 끌어 공터 한 가운데 선 하나를 그었다.


“여자들 먼저 나와라.”


율리안의 명령에 간수들이 여자들을 거칠게 밀어 세웠다.


“지금부터 5초 준다. 듀발론의 통치에 찬성하는 사람은 왼쪽. 반대하는 사람은 오른쪽에 서라. 왼쪽에 서는 사람은 앞으로 굶을 일은 없을 거다. 정해라. 하나! 둘!”


율리안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마음을 정한 여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여인들은 왼쪽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파들은 오른쪽으로


“다섯.”


율리안은 마지막까지 망설이는 여인을 지켜봤다.

그도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아이의 입을 막고 주먹질을 견뎌야 했던 여인이었다.


“괜찮네.”


이때 뒤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음성.

목소리의 주인은 피닉스 남작이었다.


“죄송합니다. 남작님.”


그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정네들 앞으로.”


남자들의 선택은 여자들보다 훨씬 빨랐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왼쪽을 선택했다.


“호오~”


율리안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왼쪽으로 옮기면서도 그 누구보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가 떠난 뒤 피닉스 남작이 성치 못한 몸을 절뚝이며 오른쪽으로 몸을 옮겼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황자님께선 들어가 쉬시지요.”


스튜어트 남작이 수감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다가왔다.


“아니. 내가 직접 한다. 모두 대기시켜.”


“알겠습니다.”


율리안이 피닉스 남작에게 다가갔다.

비록 몸이 굽고 허리를 꼿꼿이 펴지 못할지언정

눈빛만큼은 굴복의 뜻을 내비치지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저항하지?”


“이미 늙고 쓸모없어진 몸. 살아봐야 뭐하겠소.”


“이미 늙고 쓸모없어졌으니 내려놓을 때도 됐잖아.”


“내려놓았습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 내려놓는 그 순간 자기 모습이 떳떳하냐의 문제겠지요.”


율리안은 피닉스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눈빛도 눈빛이었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참 괜찮은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자토스는 멸망했다. 그럼에도 자네는 아직 싸우고 있다. 무엇과 싸우는 중인가?”


“나는 잊히지 않기 위해 싸우는 중이요.”


“계속해 봐라.”


“때로는 삶보다 죽음으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알려줄 수 있지. 그리고 그게 지금이오.”


그의 대답에 연병장에 있던 이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제 편하게 해주겠나?”


“아니. 아직 편하긴 이르지.”


“마지막까지 잔인하구나.”


율리안은 느꼈다.

뒤편에서 전해지는 지독하게 뜨거운 살기를.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참아냈다.

피닉스 남작의 뜨거운 눈빛이 그들을 자제시키고 있었다.


‘쉽지 않다. 쉽지 않아.’


스튜어트 남작은 그 와중에도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는 왜 이런 상황을 연출했을까?

그저 화풀이를 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무리 미친놈이라지만 사람은 죽인 적 없다는 그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뭘까?


‘지금이라도 불러와야 하나?’


이건 메시지다.

나는 지금 몹시도 화나 있다.

여기 있는 수감자들을 모두 죽일 정도로.

그러니 빨리 그 사용인을 데려와라.

스튜어트 남작이 자신의 옆에 있는 부하에게 은밀히 명령했다.


“그 분께 황자 저하가 부른다고 전해라.”


율리안은 곁눈질로 스튜어트의 행동을 지켜봤다.

잠시 후, 그의 명령을 받은 간수 하나가 빠르게 수용소를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치욕 받고 조롱받으며 결국엔 자존심까지 내려놓은 그들이오. 저들은 살려주시오.”


“새겨듣지.”


“무릎은 꿇지 않겠소.”


피닉스 남작은 손을 결박당한 상태에서도 꿋꿋하게 율리안의 눈을 마주 봤다.


“저 새끼가! 뭣들 하고 있어! 당장 무릎 꿇리지 않고! 아니다! 내가 직접 한다.”


스튜어트가 성큼성큼 피닉스 남작에게 걸어갔다.


퍽!


스튜어트가 종아리를 밟아 피닉스를 강제로 무릎 꿇렸다.

몇몇 여인이 입을 막고 울음을 삼켰다.

남자들은 손에 피가 나도록 주먹을 쥐었다.

모두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그의 희생을 기억하겠다는 듯.


촤아아아악!


율리안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커억!”


그리고 이어지는 단말마.

스튜어트가 목을 부여잡았다.


“어... 어째서?”


“내가 이 남자의 자존심을 지켜줬는데 네가 그거 짓밟았잖아. 그건 날 모욕한 것과 다름없다.”


“이 개새.....”


스튜어트 남작이 바닥에 꼬꾸라졌다.

피닉스 남작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 검은 분명히 자신의 목에 닿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스튜어트 남작을 시작으로 그는 간수들의 목을 베고 또 벴다.


촤악.


간수들의 피를 털어낸 뒤, 율리안이 피닉스 남작을 일으켜 세웠다.


“내가 아까 말했지? 아직 편하긴 이르다고.”


“나한테 원하는 게 뭐요?”


“이 일. 너희가 저지른 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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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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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버려진 땅 (1) 24.08.24 11 0 12쪽
35 마음속 용광로에 불을 지펴라 (2) 24.08.24 11 0 12쪽
34 마음속 용광로에 불을 지펴라 (1) 24.08.23 12 0 12쪽
33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4) 24.08.22 12 0 12쪽
32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3) 24.08.21 13 0 12쪽
31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2) 24.08.20 19 0 12쪽
30 드워프의 나라 토르크 (1) 24.08.19 18 0 12쪽
29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4) 24.08.18 18 0 12쪽
28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3) 24.08.18 15 0 12쪽
27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2) 24.08.17 16 0 12쪽
26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1) 24.08.17 15 0 12쪽
25 죄인과 죄수의 만남 (4) 24.08.16 15 0 12쪽
24 죄인과 죄수의 만남 (3) 24.08.15 18 0 12쪽
23 죄인과 죄수의 만남 (2) 24.08.14 16 0 12쪽
22 죄인과 죄수의 만남 (1) 24.08.13 19 0 12쪽
21 황궁으로 가는 길 (4) 24.08.12 17 0 12쪽
20 황궁으로 가는 길 (3) 24.08.11 17 0 12쪽
19 황궁으로 가는 길 (2) 24.08.11 20 0 12쪽
18 황궁으로 가는 길 (1) 24.08.10 19 0 12쪽
17 습격 (4) 24.08.10 20 0 12쪽
16 낚시 (3) 24.08.09 20 0 12쪽
15 낚시 (2) 24.08.08 22 0 12쪽
14 낚시 (1) 24.08.07 24 0 12쪽
13 시작된 여행 (4) 24.08.06 25 0 12쪽
12 시작된 여행 (3) 24.08.05 26 0 13쪽
11 시작된 여행 (2) 24.08.04 26 0 12쪽
10 시작된 여행 (1) 24.08.04 34 0 12쪽
9 로레인 블라디미르 (5) 24.08.03 34 1 13쪽
» 로레인 블라디미르 (4) 24.08.03 38 0 12쪽
7 로레인 블라디미르 (3) 24.08.02 7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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