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특성으로 아포칼립스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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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一결
작품등록일 :
2024.07.31 22:53
최근연재일 :
2024.08.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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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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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모자

DUMMY

벌써 세 달째 비가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날씨 속보는 비의 세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늘은 부슬비가, 오늘은 폭우가, 오늘은 장대비가, 오늘은, 오늘은―.

내 작은 스윗 홈은 진작 물에 잠긴지 오래였다. 오래된 반지하 방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갇혀 죽든가, 잠겨 죽든가, 아니면 그전에 탈출하든가.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집에 갇히기 전에 귀중품을 챙겨 나올 수 있었다는 것과, 산에서 노숙한다고 잡아갈 사람도 이제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경찰이 신고 받고 날 잡으러 오려면 배를 타고 와야 하는데, 글쎄. 올까?

이미 내가 있는 산에만 노숙자가 스물이 넘어갔다. 대부분 저층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아마 다른 산의 풍경도 엇비슷할 터였다.

나는 흐릿하게 안개가 껴 희뿌옇게만 보이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흐릿하게나마 산과 그 사이사이를 빼곡이 들어찬 고층 아파트가 보였다. 그리고 이토록 비가 많이 내리기 전에 보았던 뉴스 한자락도 떠올렸다. 미분양 아파트가 몇 백채를 넘어갔느니 하는 뉴스였다.


“쯧.”


이런 상황에서도 저 고층 아파트 어딘가는 텅 비어있을 거란 점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돈이 있어도 당장 부동산 업자를 찾아가기 힘든 이런 상황에.


‘난 돈도 없지만.’


킁, 코를 훌쩍이고는 우비를 좀 더 여몄다. 고개를 돌리니 곧장 제 머리 위에 있는 방수포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어린애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동그랗게 커진 아이가 소심하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나도 마주 숙여주고는 자연스레 시선을 피했다.

저 아이는 처음 부모님과 함께 산을 올랐을 땐 꽤 맹랑하고 버릇이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모르는 어른들과 가깝게 부대껴야하는 상황이 되자 금방 눈치를 보며 예의를 배우더라. 누군가 아이를 부모 몰래 나무란 적도 없는데 그랬다. 재난 상황 속에서 아이는 강제로 철이 들고 있었다.

이 산에 모두가 그걸 알았지만 안쓰럽다고 하더라도 해줄 게 없어서 입을 닫았다. 당장 자기 하나 간수하기도 힘겨운 상황이기도 했다.


나는 남 걱정은 접고 백팩을 한 번 추어올렸다. 그 탓에 우비가 말려들어가 옷정리를 한 번 더 해야했다.

그런 내 뒤로 죄책감 어린 얼굴을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 섰다.


“어디로 가?”


그는 본래 내 바로 윗층에 살던 남자로, 유독 발소리가 큰 사람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가 11시면 잠에 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이 산에서는 삼교대로 망을 보았다.


“글쎄요.”


내가 할 말은 그게 전부였다. 중년 남자도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 죄책감이 짙어져 갔다.



내가 기껏 자리 잡은 산을 떠나기로 결정한 건 일주일 전 일이었다.

발단은 누군가의 히스테리였다.


‘저 불길한 것 좀 치워―!’


사람을 향해 내뱉기엔 퍽 무례한 발언이었다. 그렇지만 순식간에 ‘불길한 것’이 된 나는 항변하지 않았다.

많이 지쳤던 까닭이다.

당시 나는 온 몸에 진흙을 묻히고 절뚝거리고 있었다. 발을 헛디뎌 산을 구르다가 겨우 기어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참이었다. 그동안 나는 계속 속으로 괜찮다고,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고, 이렇게 산도 타고 있지 않느냐고, 정말 괜찮을 것이냐고 중얼거렸다. 고작 속으로만 수십, 수백번 되뇌기만 했는데도 스스로를 변호할 힘 한 톨 남아있질 않았다.

마음 한 편으론 누군가가 나를 불길한 것 취급한 이유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오로지 나만 아프고, 나마 다치고, 나만 상처를 달고 있던 탓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만들거나, 혹은 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아픈 적은 없었지만 그런 건 이런 상황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나는 이 산 위에 불운을 모두 끌어 안은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비가 내리지 않았을 때도 나는 자주 다쳤지만 불길한 취급까진 받지 않았는데, 그것도 평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준 이해와 포용이었던 모양이었다.

입이 썼다.

나는 본능적으로 산을 오르기 전에 먼저 안면을 텄던 동네 사람들을 찾았다. 하나 같이 내 시선이 불똥이라도 되는 것처럼 파르르, 어깨나 턱을 떨며 시선을 피했다. 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난 빠른 시일 내에 산을 떠나기로 약속했다. 이 곳에 버티고 있어봤자 오히려 내 신상에 좋지 않을 거 같다는 판단 하에 결정한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내가 떠나기로 마음 먹은 날이었다.

중년 남자는 일주일 내내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때 내게 등을 돌린 일이 마음에 걸리나 보다. 그렇다고 뒤늦게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 변호를 하지 않는 걸 보면 딱 거리까지인 연민이었다.


“그, 조심히 가고.”


나는 그래도 배웅이라도 나와준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며칠 새에 얼굴 주름이 진해졌다. 꼬질꼬질한 모습이 볼품 없어 안쓰러워 보였다.


“예, 아저씨도 조심하세요.”

“···그래.”


그대로 등을 돌려 나아갔다.

일주일 전에 산을 구른 여파인지, 아니면 내 몸에 심긴 아홉 개의 철심 때문인지 온 몸이 욱씬 거렸다.


‘그래도 당장 땟못을 만들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지 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산끼리 다 이어져 있는 우리 나라 만세!


* * *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를 살펴보면 많은 이야기가 산을 배경으로 한다. 고갯길을 넘거나 넘을 예정이거나 넘은 후이거나 인물이 한 번씩은 산을 오른다는 건 같다.

역사를 살펴도 비슷하다. 과거 시험 한 번 보려면 산을 일곱 개는 넘어야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터널 뚫고 산 깎아서 길을 잘 깔아뒀지만, 전국의 신을 죄다 깎아둔 것도 아니니 여전히 어딜가든 산이 많다.

이 좁은 국토에 그 많은 산이 다 모여 있으니 당연히 대부분의 산은 어떻게든 하나의 산맥으로, 그 산맥에서 뻗어나온 작은 산맥으로 이어져 있다.

산맥 지도를 살펴보면 꼭 혈관처럼 생겼다.


왜 갑자기 산을 찬양하느냐.

그 덕에 나라 전체에 홍수가 나도 일단 산을 오르는 데에 성공하면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명과 멀리 떨어져야 하고 빗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산사태를 조심해야하긴 한다. 하지만 문명이든 산사태든 다 뭔 소용이냐? 산 외엔 다 잠겨버렸는데.

아직 고층 아파트나 고층 빌등의 고층 부근은 잠기지 않았으나 그 사람들은 이제 건물을 나오려면 무조건 땟목을 만들어서 창을 문 삼아 뛰어내려야 한다. 건물 내에 식량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유예 기간을 번 것과 마찬가지다.


난 출발하기 직전에 확인했던 지도를 떠올리며 방향을 잡았다. 우선 옆 도시로 넘어가볼 생각이었다. 내가 오른 산은 거대한 산 하나에서 뻗어나온 작은 산으로, 그 거대한 산은 옆 도시와 걸쳐져 있었다. 기억상 내가 있는 AA도시와 맞닿은 동네에 산 중턱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가 하나 있었다. 산 위에 지어진 빌라촌과 달리 아파트 단지는 건설 시 상가동을 함께 짓는 경우가 많으니, 운이 좋다면 오랜만에 물에 잠기지 않은 마트를 만나볼 수 있을 터였다.


이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모두의 의견을 취합해야 하고, 모두의 컨디션을 고려해야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옆 도시로 넘어가면 마트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도 과감하게 움직이질 못했더랬다.

특히 이 산 근처엔 어르신들이 많이 살았어서 우중 산행을 힘겨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또, 산사태를 걱정하면서도 밑으로는 내려가지 못하는 이들 또한 한가득이라 산에서 산으로 이동하는 계획에 질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정이 뭐라고. 또 군중심리가 뭐라고.

마트가 아니라 비를 피해 이동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마저 울상을 짓고 한 자리에 눌러 앉아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어차피 이리 내처질 거 냉정하다 욕 먹어도 따로 행동할 걸.


‘혼자 움직이니까 편하네.’


막상 사람을 벗어나니 한나절을 걸었는데도 딱 한 번 넘어진 거 빼고 문제가 없었다.

어쩐지 정말로 무리의 불운을 내가 다 짊어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리가 없지.”


빗물과 진흙, 우거진 풀숲 따위가 시야를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넘어질 일도 줄었을 텐데. 어찌 감을 믿고 내딛는 걸음마다 돌이며 나뭇가지, 썩은 나뭇잎 더미가 깔려 있는지.


자꾸 얼굴로 들이치는 빗물에 몇 번이고 세수를 했다.

빗줄기가 심할 땐 유독 우거진 나무 밑으로 숨어들었다. 가끔 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뭇잎들이 한 번에 물기를 털어내기도 했지만 대체로 빗물을 막아주었다.


내가 괴상한 물건을 발견한 건 다섯 번째로 숨어들 나무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때였다.


그건 커다란 모자였다. 꼭 마술사들이 비둘기를 꺼낼 때 쓰는 모자처럼 생겼다. 다른 점이라면 희한하게 모자에 크라운 부분(챙 위에 머리를 감싸는 부분)에 눈과 입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입 부분은 입술이 벌어질 수 있도록 양쪽으로 바느질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저런 기괴한 모자는 누구 취향이야?’


어딘가 조악하게도 느껴지는 모자는 그 생김새 때문인지 비오는 날 산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래도 챙이 꽤 너비가 있었다.


나는 슬금슬금 다가가 모자를 들어올렸다. 어린애도 아니고 이 나이에 이런 모자를 썼다간 우스운 꼴이 되고 말겠지만 적어도 빗물이 얼굴로 곧장 들이치진 않을 거 같았다.


‘아무도 없는데 뭘.’


이제 눈치 보고 비위 맞춰 줘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이건 도둑질 같은 게 아니라고 몇 번 되뇌고는 그대로 모자를 머리 위로 얹었다.


“럭키 참(Lucky Charm)!”


그 순간 우중의 산 속을 쩌렁하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어디에서?

바로 내 머리 위에서.


‘이, 이거 뭔데···! 해x포터야?’


나는 한 참을 얼어있다가 겨우 손을 들어올려 모자를 끌어내렸다.

다시 본 모자는 아까와 달리 한쪽 눈을 감고 있었다. 윙크였다. 모자가 내게 윙크를 해보이고 있었다. 그 폼이 너무 익숙해서 느끼할 지경이었다.

모자가 천으로 만든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어때, 감격스럽지?”


대체 뭐가?

아니 그전에 모자가 말을 한다고?


쏴아아아―······.


“왜 말이 없어!”

“너, 너 왜 말 해?”

“그럼 누가 말을 하나? 이 멋쟁이 모자 말고!”

“모자잖아. 모자잖아···!”


나는 겁도 없이 모자를 뒤집어 그 속에 손을 집어넣고 막 헤집었다. 그럴 때마다 모자가 아우치(ouch)! 라거나 웁스(whoops)! 같은 감탄사를 내었다.

나는 금방 잔뜩 낡은 표정이 되어 아무래도 made in U.S.A.인 게 분명한 모자를 바라보았다.

내 심정도 모르고 모자가 여유롭게 말을 걸었다.


“다 했나? 이 신사의 속살을 파헤치는 파렴치한 짓 말이네.”

“속살···. 실크더라.”


분명 겉에서 봤을 때 입이 뚫려 있었는데 안쪽엔 뚫린 부분이 없다는 점이 가장 그로테스크한 점이었다. 안에 아무런 기계장치도 없다는 점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포기하질 못하고 모자를 이리저리 더듬어도 봤다가 구겨도 봤다가 난리였다. 모자는 조금 성질을 내는 걸로 내 모든 행위를 참아줬다. 지가 참지 못한다고 해봤자, 보복할 손발도 없이 뭘 하겠느냐만은.


“내가 꿈을 꾸나···.”

“그럴리가! 나를 만난 것이 감격스러워 그러나본데 걱정 말게나! 꿈이 아니니까!”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점차 썩어들어간다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모자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더 괴리감이 느껴졌다.


‘사실 마법학교가 실제했나?’


어느 학생이 마법 모자를 머글 세상에 유출한 건진 모르겠지만 어서 수거해가줬으면 좋겠다. 수거하러 온 김에 우리 동네 비 좀 멈춰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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