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특성으로 아포칼립스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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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一결
작품등록일 :
2024.07.3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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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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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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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순

DUMMY

나무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타임랩스 촬영으로 확인한 모습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말이다.

어린 시절 파리지옥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충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무가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실제와 상상은 늘 다른 법이다. 내 상식과 어긋나는 모습을 보니 충격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눈코입이 없는 생물체를 믿을 수 없다는 게 컸다. 나와 교류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은 생명이 내 코앞에서 내 신체보다 강력해보이는 뿌리를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 끔찍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어린 애에게 한 입으로 두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몸이 벌벌 떨고 있는데도 최대한 의연한 얼굴을 하고자 노력했다.


‘사회생활하며 갈고 닦은 가면을 우숩게 보지 마라.’


나무 뿌리가 강하게 주변 흙을 파헤치고, 돌이 날아갔으며, 타격 입은 물살이 약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다가 산 밑으로 흘러갔다.


콰르르르릉-!


코앞에서 벼락이 치는 것만 같은 굉음이 들렸다. 아득히 먼 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산사태가 일어난 것이 아니냐며 외치는 굵직한 소리도.

모든 것이 착각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전에 뿌리 하나가 내 옆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쿵!


그것이 바위의 일부분을 내리쳤다.

다시 다른 뿌리가 쿵! 하고 같은 바위를 한 번 더 내리쳤다. 바위가 크게 쪼개지며 위로 비상했다.

나는 멍청한 표정을 한 채 내 머리 위를 지나가는 내 머리통만한 돌덩이를 올려다보았다. 빗물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 바위의 끝이 칼날처럼 날카롭다는 것은 잘만 눈에 들어왔다.


콰직-!


그리고 바위가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나무 창살 하나에 박혔다. 그것은 비스듬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에 단순히 나무에 꽂히는 것이 아니라 큼지막하게 나무를 잘라내며 떨어졌다.

안쪽이 비어 있는 나무였기에 당연히 바위가 지나간 곳은 아주 얇은, 비닐 같은 두께의 나무가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묘기 같은 모습에 놀라길 잠시, 땅에 박혀 있던 뿌리를 꺼내 요동치던 나무가 돌덩이와 부딪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크게 휘청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발로 차고 나와!”


그리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아직 굵은 뿌리가 양 옆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건 보이지도 않았다.


“으아아악! 잠깐! 멈춰! 나 떨어진다고!”


모자가 머리 위에서 질색 했다. 머리 위로 지나간 나뭇가지에 치여 모자가 뒤로 넘어갔다.


“어서! 바위가 지나간 곳을 발로 차고 나오라고!”

“네, 네네!”


콰직!


얇은 나무를 걷어차는 신발을 두어 번 보았을까, 곧 누군가 허리를 푹 숙이고 좁은 구멍을 통과하려고 했다.

나는 아이의 등이며 팔뚝이며 잡고 끌어당겼다.


아이의 몸을 어떻게든 흙 위로 밀어내고 한숨 돌린 찰나.

신파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혹은 내 지난 인생의 숱한 순간들처럼.

아슬아슬하게 내가 딛고 서 있던 흙을 물살이 한움큼 뜯어갔다. 곧장 의지할 곳 없이 물살에 떠밀렸다.


“안 돼!”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다가 곧장 귀가 먹먹해졌다.

중심을 잃은 순간 물살을 이길 수가 없었다. 넘어진 몸 위로 흙탕물이 덮쳐들었다.

입수를 준비할 겨를도 없었던 탓에 곧장 숨이 막혀왔다. 잔뜩 흥분하고 힘을 쓴 뒤라 더욱 숨이 딸렸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위로 올라가려고 버둥거리는 대신 땅 바닥에 손가락을 박아넣으려 했으나 그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흙 알갱이며, 나무 뿌리며, 돌맹이며···. 물 속에 모든 것들이 나를 공격했다.


그러다 두꺼운 뿌리가 손끝에 잡혔다. 단번에 그것이 애를 가두고 있던 나무라는 걸 알아챘다. 나무는 약간 물에 떠 있었다. 오로지 뿌리만이 물 밑바닥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매달려 나무를 기어 올랐다.


“···푸학! 우웨에에엑-!”

“유구완!”


모자가 제 몸을 비틀어가며 이리 다가오려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앳된 얼굴도.


‘아, 내가 저 애를 구하려다가 이렇게 되었구나.’


점점 나무를 붙잡은 팔에 힘이 빠져갈 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제 머리를 힘껏 내리치더니 곧장 내쪽을 향해 내달렸다.

아이는 굴러 떨어지듯이 산을 타고 내달리다가 덩쿨 같은 식물을 피워냈다. 덩쿨이 알아서 내쪽으로 길게 뻗어와 내 팔뚝을 휘감았다.


한참을 양쪽에서 덩쿨을 잡고 애를 쓴 다음에야 나는 겨우 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괜찮으세요? 죄, 죄송합니다아.”


앳된 얼굴에 물기가 가득했다. 눈밑이 붉은 것이 빗물이라 착각도 못할 정도다.

나는 그 어린 얼굴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몇 살이야?”

“네? 아, 저 18살이요.”

“어리네.”

“···그렇게 어리지는,”


대충 손을 휘젓고는 말을 이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나 해줘. 그래도 내가 너 거기서 빠져나오는 일에 조금은 도움을 줬잖아.”

“조금이라뇨. 많이, 아주 많이 도와주셨죠. ···감사합니다. 정말로. 많이 무서웠는데.”

“그래. 다행이다. 거기서 빠져나와서. 그렇지?”

“네, 네네. 네에···.”


한참이 지나서야 비척비척 일어나 모자를 찾으러 갔다.

모자는 처음 내던져진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여 있었다. 비를 맞아도 반짝반짝 빛이나는 듯했던 벨벳 천이 온통 꼬질꼬질해져 있었다.

능글맞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동그란 눈이 나를 마주보았다.


“···이렇게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기분이 아주 더러워.”


모자는 그 말을 끝으로 침묵했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모자를 주워 빗물로 흙탕물을 닦아냈다.


모자가 거즘 깨끗해질 즈음. 내내 눈을 감고 있던 모자가 눈을 뜨더니 버럭, 소리쳤다.


“네 몸이나 닦아!”

“응, 이것만 마저 닦고.”

“난 됐다고!”

“육신보단 천이 더 상하기 쉬워. 이건 자연 회복도 안 되는 재질이잖아.”

“다른 모자로 옮겨타면 되는 거지! 잊었나? 나보고 귀신들린 모자라면서!”

“지금 눈, 입 달린 모자를 어디서 구해? 잔말말고 얌전히 있어.”


모자가 한참을 꿍얼거리다가 홀로 지쳐 나가떨어졌다.


나는 우비를 벗으며, 여태 잠자코 있던 아이를 돌아봤다.


“나 잠깐 옷에서 흙만 떨궈 낼 건데 저쪽에서 기다려 줄래?”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곤 산 안쪽에 큼지막한 나무 뒤로 숨어들었다.

작은 뒷모습이 안 보이는 걸 확인하고 옷을 벗었다. 우비 안에서 나름 청결을 지키고 있던 옷들이 온통 흙 범벅이었다.


“으.”


세찬 빗물에 옷가지를 내놓고 몇 번이고 비볐다.


“에라이. 글렀다.”


결국 가방을 열었다. 이미 엇비슷한 일로 가방행 신세가 된 옷들이 들어있었다. 어쩐지 잘못 말린 빨래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하기야 언제 젖은 옷을 제대로 말릴 수 있는 환경이라도 되었던가?

가방이 방수라 안에 흙탕물이 들어오지 않은 점이 위안이었다.

보기에라도 깨끗한 옷을 입고 싶어서 옷가지 몇 개를 골라내었다.


찝찝함을 참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머리 위로 모자를 썼다. 모자가 한 번 더 꿍얼거렸다.


“제대로 좀 눌러 써라. 또 나뭇가지에 걸려서 날 버리고 가지 말고.”

“빗물에 쓸려 내려가는 것보다 나뭇가지에 걸리는 편이 낫지 않아?”

“쯧, 어른 말 꼬투리 잡지 말거라!”

“한국에 얼마나 있었다고 벌써 꼰대가 된 거람···.”


* * *


아이의 이름은 김상순으로, 사찰로 가던 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찻길은 유속이 빠른 계곡으로 변한지 오래였고, 그렇다고 다른 길은 알지 못하다 보니 아까의 나와 같이 물 옆을 걷게 되었다고.

나름 잘 올라가고 있었는데, 사고가 나는 건 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다행히 초능력을 사용해서 살았지만 혼자 힘으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고.


“솔직히 ‘행운’이 능력이라고 했을 때 그게 내 탈출에 무슨 도움을 줄까 싶었어요.”

“너무 솔직한데?”

“제가 무지렁이여서 그렇죠.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김상순이 예의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집 앞 골목길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학생만 보다가 김상순을 보니 마냥 귀엽게만 보였다.


“부모님은?”

“아···. 아마 사찰에 계실거예요.”

“부모님도 네가 사찰로 올 거라는 걸 아시니?”

“예. 음. 아닌가?”


김상순이 미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딘가 상처 받은 거 같기도, 분노한 거 같기도, 또는 아무렇지 않고 싶어하는 거 같기도 했다.


“···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으로 질문을 했다. 아픈 구석을 찌르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미성년자를 두고 부모가 어디 계신지 묻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아니겠는가?


“제가 안 오니까 한 번 사찰에서 내려오셨어요. 그런데 제가 나무 안에 있다는 걸 아시고는···.”

“···.”

“그냥 가시더라고요?”


김상순이 흐릿하게 웃어보였다.

나는 눈치껏 입을 닫았다. 사기꾼 친구, 날 부적취급하는 친구, 양아치 같은 상사, 날 등처 먹으려는 사장님 등등은 공감해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를 버리고 가는 부모’는 공감해줄 수가 없었다. 내 부모님은 남들은 불길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아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으니. 오히려 내가 주눅들까봐 ‘네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우선, 사찰로 올라가자. ···부모님 뵙기 싫을 순 있어. 그치만 우리 꼴을 봐. 도움 받을 곳이 필요해.”

“···.”


김상순이 내 꼴과 제 모습을 번갈아보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간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사찰 입구부터 사람이 보였다. 불안한 모습으로 마당을 배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자기들끼리 수근 거리더니 안에서 스님들을 데려왔다.

우리를 반기는 것도, 내쫓는 것도 아닌 모양새에 눈치를 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찰 입구가 물길로 막혀 있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마지막에는 물 속에 발을 밀어넣어야했다. 물이 모이는 아랫쪽보단 수위가 높지 않다지만 그래도 비가 세 달 동안 내린 뒤였다.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버거웠다. 그 와중에도 내 앞에서 휘청거리는 김상순이 저도 모르게 능력을 쓸까봐 식은땀이 다 흘렀다.


“능력쓰면 안 돼. 아직 지구는 초능력자를 받아들이려면 멀었다. 뇌에 힘 줘! 꽉 줘!”

“저도 알아요!”


막판엔 그 예의바르던 김상순도 짜증을 냈다.

얘, 그래도 몸에 철심 아홉 개 박고도 지금 네 몸무게까지 지탱해주는 나한테 그러면 안되지. 삼촌 서러워서 눈물 난다···.


“김상순!”


겨우 사찰 안에 들어와 숨을 골랐다. 그때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중년의 부부였다. 딱 봐도 고등학생 자녀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외견이다.

내 시선이 절로 김상순의 얼굴로 향했다.

김상순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곤 한 발 앞으로 나아가 먼저 중년 부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상순 학생 보호자되십니까?”

“예? 예에. 저희 딸입니다.”

“아이가 아래에서 위험한 상태로 있어서 어떻게 구조해오긴 했습니다만. 너무 오래 비를 맞은 거 같습니다.”

“아, 감사, 합니다.”


부부의 얼굴 위로 떨떠름한 기색이 스치듯 지나갔다.


“저흰, 몰랐네요. 아이가 어디로 사라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부인 쪽이 혼잣말하듯 덧붙여 말했다. 그리곤 곧장 김상순 쪽으로 고개를 돌려 손짓했다.


“상순아, 가자. 가서 씻고 옷 갈아입자. 이리 와.”

“···.”


하지만 김상순은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여러 시선에 의문이 섞이는 게 느껴졌다.

김상순이 한 발 내 곁으로 붙더니 내 옷자락을 꽉 쥐었다.

그리고 무슨 결심을 한 건지 복식호흡하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거짓말하지마! 나 어디있는지 뻔히 보고 간 거 다 봤어! 내가 구해달라고 말했는데도!”

“얘가 무슨 소리야! 우리가 언제!”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김상순이 눈을 부릅떴다.


“···.”


반항도 좋긴 한데, 내 옷은 놔주면 안 될까. 지금 우리 되게 이상해 보일 거 같아. 제발. 상순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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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상한 모자 24.08.01 5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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