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특성으로 아포칼립스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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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一결
작품등록일 :
2024.07.31 22:53
최근연재일 :
2024.08.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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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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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DUMMY

다행히 사찰에서 방을 얻을 수 있었다. 좁은 방이었으나 나 혼자 잘 곳이었기에 상관 없었다.

모자는 연신 작은 창과 문 쪽을 힐끔 거리다가 물었다.


“김상순은 괜찮겠나?”

“글쎄.”


김상순은 결국 부모에게 돌아갔다. 주변 눈치를 보던 부모가 그를 잡아끌고 어딘가로 사라졌던 것이다.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저마다 알 수 없는 눈짓을 주고 받고는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나는 그제서야 마중 나오신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더랬다.

꽤 순조롭게 하루 묵을 방과 저녁 식사를 얻을 수 있었다. 스님께서 사람도 많고, 산이 위험한지라 식량 수급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많이 나눠줄 수 없어 죄송하다고 하시었다. 그 말에 내가 더 죄송스러웠지.


똑똑.


노크소리에 자리에서 문을 열어보니 모르는 얼굴에 스님 한 분이 서 계셨다.

어딘가 엄중한 인상인 스님이 입을 여셨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요?”

“아닙니다. 덕분에 오늘 밤은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는 곳에서 잘 수 있어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여기,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습니다. 혹 빨래가 필요한 옷이 있을까요?”

“아, 빨래도 가능한가요?”

“그럼요. 아직까지는 전기가 끊기지 않았습니다. 주시면 이틀 안에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스님께 회색 법복을 건네 받았다. 금방 갈아입고 가방에 옷가지를 가득 담아 건네드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도움 될 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돕겠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엄중한 분위기도 웃음 한 번에 흩어졌다. 이제보니 나보다 약간 나이가 더 많아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분위기가 환기된 김에 아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옷을 받고 나면 곧장 이곳을 떠날 생각이라서요. 그 전에 일손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불러주세요. 은혜를 갚겠습니다.”

“이 궂은 날씨에 떠나십니까?”

“갈 곳이 있어서요.”


내 딴엔 ‘세상을 구하러 갑니다’ 같은 허무맹랑한 소릴 하기가 멋쩍어 얼버무린 것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주지스님께도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표정을 보니 다른 오해를 한 거 같았다.

하기야 재난 상황에 안타까운 사정이 얼마나 많겠는가? 어쩌면 나 이전이 먼저 사찰을 떠나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 흐릿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으로 착각을 넘겼다.


김상순이 찾아온 것은 스님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노크 하나 없이 물을 열어젖힌 김상순은 나와 똑같은 법복을 입고 있었다. 보아하니 욕탕을 빌려 씻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아, 나도 씻어야 하는데.


김상순은 잔뜩 울상을 짓고는 외쳤다.


“저도 데려가세요!”

“···뭐?”

“떠나신다면서요? 저도 갈래요!”

“잠깐. 그건 어디서, 아니지. 내가 어딜 가는 줄 알고 따라간대?”

“···세상을 구하러?”


X친. 어떻게 알았지?


“···정말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김상순이 내 표정을 읽고는 깜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너 지금 나 떠본 거니?”

“아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말을 꺼내긴 했는데···. 진짜일 줄은?”

“···.”


내가 입을 다물자 혼자 초조해진 김상순이 내 앞에 털썩 앉았다. 야무지게 문도 꽉꽉 닫는 폼이 절대 쉽게 방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들어보세요. 제 능력 보셨잖아요? 저 식물도 금방 키우고, 다 자란 애들도 움직일 수 있어요. 종자만 있으면 과일이나 채소도 금방 키울 수 있고. 아까처럼 넝쿨로 밧줄 삼아도 되고.”

“아니, 잠깐···.”

“아! 배! 배 안 필요하세요? 배도 나무로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이 나무 엮어다 만드는 시간보다 나무끼리 알아서 엮이게 만드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혹할 뻔 했네.”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상순이 눈썹을 팍! 찡그리곤 말했다.


“혹 할 뻔 한 거면 그냥 혹해버리지 왜 멈춰요?”

“아니, 진정하고. 날 왜 따라오려는 건데?”

“···솔직하게요?”

“어. 솔직하게. 너 나 오늘 처음 봤잖아. 이렇게 경계심 없어도 되는 거야?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세상 구하러 간다는 말이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 원래도 세상은 험했지만 지금은 더 험해. 너 그거 알아야해.”


김상순은 한참을 말 없이 고민하는 가 싶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따라가고 싶어요. 제가 봤을 때 아저씨 좋은 사람 같고. ···솔직한 마음으론 저 죽든 말든 버려둔 부모님이랑 같이 있기 싫어요.”

“단순히 그런 이유로 네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선택을 하겠다고?”

“단순한 이유 아니에요. 물론, 어른이 봤을 땐 제가 철없어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

“어릴 때부터 늘 생각해왔어요. 제가 이런 비상식적인 힘을 타고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부모님이 저를 괴물보듯하게 만든 힘을 타고난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고. 아니면 제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무서운 힘을 주었을까. 난 잘못한 게 없는 거 같은데. 분명 이유가 있겠지. 있을 거야. 있어야만 해···.”

“···.”

“멋 모르는 어린 애가 식물이 제 뜻대로 춤을 춘다며 즐거워하는 걸 보고 부모님이 뭐라 하셨는지 알아요?”

“···.”

“저건 내 딸이 아닌 거 같아, 이랬어요.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저럴 수 있냐면서.”


김상순은 쏟아내듯이 어릴때부터 있었던 일을 말해왔다. 실수로 집안 물건을 깨트린 일. 그로 인해 딸이 자신들을 죽일지도 모른다며 부모가 겁을 먹은 일. 그 후 집안에 식물이 싹 사라진 일. 바깥에서 힘을 쓰지 말라고 강요받은 일. 집에서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일. 그러면서도 혹 딸이 밖에 나가 사고를 치고 자기들 이름을 말할까봐 부모가 딸을 감시한 일. 등등.


듣기만 해도 어질어질했다.


“좋아. 알았어. 네가 부모와 있기 싫은 이유는 이해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아저씨 따라가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이 상황에서 제가 누굴 따라갈 수 있어요? 절 구해준 사람두고?”

“···아니.”

“부정하지 마세요. 솔직히 나쁜 사람은 자기 나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말 안해요.”

“이게 얼마나 살아봤다고 단정해? 나쁜 사람 중에 양심 있으면 자기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지.”

“됐고. ···제 능력 도움 되잖아요.”

“으으아아악.”


머리를 죄 헤집고는 모자를 잡아챘다.


“일리프 루소 주니어씨 이럴 때 입 다물지 말고 말 좀. 조언 좀.”


모자는 입만 우물거리더니 대뜸 윙크를 했다.


“그냥 데려가지 그러냐? 솔직히 우리 배 필요했잖아. 저 아이만 도와주면 지붕 있는 배도 가능할 거 같은데.”

“그런 말이 아니잖아! 어른된 도리로! 어? 말투 보아하니 너도 나이 꽤나 잡수신 거 같은데! 좀!”

“어린 친구, 진정해봐.”

“지금도 봐봐, 나보고 ‘어린’ 친구라며!”


미국 태생인 모자에 맞춰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어린’에 강조 표시도 해주었다.

모자는 내 지적에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능글맞게 웃더니 이리 말했다.


“잊지 말게, 친구여. 세상을 구하는 일에 늙고 젊음은 소용없다네.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하는 일이야.”

“···그렇다고, 저 어린 애를 데려가자고?”

“그냥 어린애가 아니라 초능력이 있는 어린애지. 게다가 그 ‘어린 애’도 원하는 일 아닌가? 우리가 뭐 나쁜 일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리고 자네는 모르겠지만 초능력자들이 초능력자들끼리 모여사는 이유가 있어.”

“···.”

“일반인들은 초능력자의 존재를 알면 두 가지 반응을 하지. 신기해하며 동급의 사람 취급을 안해주거나. 무서워 하며 동급의 사람 취급을 안 해주지.”


나는 모자의 말을 쉬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살면서 유독 못된 인간을 많이 만나왔어도, 세상엔 좋은 인간들도 많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김상순의 부모처럼 이해 못할 힘을 가진 자식을 배척하는 부모가 있으면, 반대로 포용하고 보듬어주는 부모도 있을 것이기에.

나도 불길한 아이 취급을 당했지만 부모의 품 안에선 한없이 평범한 아이가 되었듯이.


“가끔 능력을 밝히고도 잘 지내는 자들이 있긴 해. 하지만 그런 경우가 몇 없고, 대부분은 저 어린 애와 같은 일을 겪지. 특히 자연물을 다루는 초능력자일 수록 그래.”

“···.”

“다르다는 게 눈에 보이고. 위험한 요소가 눈에 들어오고. ‘나’와 다른 점이 눈에 보일 수록 더욱.”

“···그런.”

“심지어 그동안은 세상이 참 평화로웠지. 이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초능력’은 참 쓸모 없는 것이었어.”

“하지만 초능력이 있으면 좋다고들 다들 말하곤 하잖아?”

“그 편한 능력을 가진 이와 경쟁해야하니까. 누가 좋아하겠어?”

“···.”


모자가 은은하게 웃었다. 평소의 호탕한 웃음과는 결이 달라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자네의 부모는 예외였던 모양이니 이해 못할 수 있어. 하지만 많은 초능력자들이 배척 당해왔고, 그렇기에 그 힘을 숨겨 왔다는 걸 기억하게. 자네가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이 있다는 걸 기억하듯이.”


나는 깜짝 놀라 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초능력자 단체가 있다는 걸 나도 널 만나고서야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숨어든 이유가 있겠지. 그만한 힘을 가지고도 말이야.”

“초능력자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했다면 지금과 취급이 달라지긴 했겠지! 하하!”

“그건 좀···.”


내내 숨 죽이고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김상순을 돌아봤다. 김상순의 두 눈이 반짝반짝했다. 그의 부모를 마주했을 때 보았던 어둑하고 그림자진 눈이 아니었다.

희망과 꿈이 들어찬 두 눈이 김상순을 제 나이로 보이도록 했다.


“그, ···부모님 허락 맡아오면.”

“아싸!”


김상순은 “기대리세요!” 한 마디 남기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빗물을 찰팍이는 소리, “학생! 감기걸려요!” 누군가 김상순을 말리는 소리 등이 점차 멀어져갔다.


김상순은 한나절이 채 지나기 전에 당당하게 돌아왔다.

두 번째 동료이자, 내가 책임져야할 첫 번째 생명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어른’이라는 무게가 양 어깨에 올라탄 듯했다. 그래도 밝은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 * *


나와 김상순은 낮에는 산을 쏘다니며 배를 만들 곳을 찾았고, 저녁엔 사찰로 돌아와 스님이며 사찰에 머무는 사람들을 찾아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근방의 지리라던가, 산에 올라오기 전에 들은 뉴스 같은 것들이 주였다.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 거 같았냐고? 그런 걸 왜 물어봐?”

“배를 만들까 싶어서요. 산은 너무 위험하고요.”

“절에 계속 있으면 되잖아?”


중년의 남자는 의아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순순히 제 생각을 말해주었다.


“알다시피 이 근방 지역은 모두 산 깎아 터 닦은 곳이라 지대가 높아. 당연히 물은 아래로 흘러가겠지.”

“아래면···.”

“이 근방 도시들이 죄 분지지형이잖아. 거기로도 흘러가겠고···. 봐봐, 하천이 이전엔 여기서 이쪽으로 흘렀으니까 물도 비슷할 거라고.”


중년 남자는 제 휴대폰을 꺼내 들고 지도까지 켜서 제 생각을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물러났다.

방 밖에서 비를 구경하던 김상순이 이쪽을 바라보고 입을 뻐끔거렸다. 대충 뭐 얻은 게 있냐는 뜻일 거다.

고개를 끄덕이고 내 좁은 방이 있는 곳으로 손짓했다.


어느정도 사람들과 멀어졌다 싶을 때 입을 열었다.


“배는 산을 너머가서 만들어야 할 거 같아. 위치를 잘못 잡았다간 꽤 고생할 거 같네.”

“물 흐르는 곳으로 따라 가는 게 가장 편하댔죠?”

“그치. 우린 돛도 없고 모터도 없으니.”

“돛은 만들면 되는 거 아니에요?”

“···얼마나 제대로 만들려고?”


김상순의 능력이 그토록 뛰어난가? 나는 김상순의 능력이래봤자 식물을 조종하고 빨리 키우는 정도만 생각해서 그런지, 그가 얼마나 제대로 된 배를 만들 수 있는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그는 고등학생이었다. 사회생활 5년은 한 나도 배의 설계가 까마득한데, 김상순이라고 더 알까 싶은 것이다.


“일단 배 밑바닥은 좁게 만들고, 위에 평평한 판 대어서 딛고 설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위에 십자가 모양으로 긴 나무 세워서 거기에 평평한 천 메다는 거예요. 그리고 옆구리엔 말뚝 같은 거 만들어서 넝쿨 감고, 넝쿨 끝에 무거운 돌 매달아서 닻도 만드는 거죠!”


듣기만 하면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미심쩍은 마음이 가시질 않아서 그렇지.

하지만 지적하고 싶어도 내게 능력이 없었다.


“···만들기 전에 주변에 묻든, 핸드폰을 충전해서 검색하든 해서 배 설계 좀 알아보고 갈까?”

“저 못 믿어요?”

“아니, 우리 정확하면 좋잖아.”

“허! 검색 제가 할게요! 저한테 맡기세요! 아저씨는 지도 익히고, 뭐, 생필품 좀 구해오시든가요!”


요 근래 힘이 펄펄 나는 김상순은 당차게도 몸을 휙 돌려 나아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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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조 24.08.05 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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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지지직 24.08.03 17 0 15쪽
4 made in U.S.A 24.08.03 24 0 12쪽
3 럭키 참! 24.08.02 26 0 14쪽
2 초능력? 24.08.01 35 2 13쪽
1 괴상한 모자 24.08.01 5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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