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특성으로 아포칼립스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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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一결
작품등록일 :
2024.07.3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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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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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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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U.S.A

DUMMY

나는 해가 다 질 즈음에서야 비스듬히 튀어나온 바위 밑에 몸을 낑겨넣고 앉았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가방을 여는 동작 하나에도 손이 벌벌 떨렸다. 며칠 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적이 없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괜찮은가?”


여태 눈치 본다고 눈알만 굴리던 모자가 슬그머니 목소리를 내었다. 내 머리도 어느정도 식은 다음이었기에 부러 여상한 태도로 고갤 끄덕여줬다. 금방 모자의 표정이 살아났다.


“뭘 먹을 생각이지?”

“우선, 이거. 젤리.”

“고작?”

“당 떨어져, 어우.”


부러 익살스럽게 말투를 꼬고는 젤리 봉지를 뜯었다. 곧장 입에 털어넣으려다가 슬쩍 모자를 쳐다봤다.

모자는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넌 배 안 고파?”

“하하! 이 모자 어디에 소화기관이 있어 보이는가? 걱정 말라고!”


어디서 기분이 좋아진 건지. 모자가 쾌할하게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젤리를 씹었다.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모자가 다시 입을 연 건 아까 미처 못했던 주장을 잇기 위해서였다.


“아까 그런 일까지 겪고 내 말이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걸 안다.”

“또 루소 주니어 파워인지 뭔지 얘기하려고?”

“맞아. 난 분명 힘이 너에게서 아까 가게 주인에게로 움직이는 걸 느꼈어. 분명 네가 능력을 쓴 거라고!”


모자의 주장은 이러했다.

모자의 감정 능력은 대단해서 많은 걸 감정하고 감각할 수 있지만-모자는 약 5분 간 제 능력을 자랑했다-, 초능력자를 감정할 시에는 그 초능력자의 능력을 세세히 알게 되는 게 아니라 그 능력과 어울리는 이름을 떠올리는 식이란다. 때문에 바람이나 물, 불처럼 자연을 다루는 능력보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무형의 힘을 다루는 초능력자일 수록 이름만 듣고선 정확히 능력이 뭔지 알 수가 없다는 것.


“어쩐지! 네가 ‘운세는 팔자’라고 했을 때 나도 내심 공감하긴 했다네. 루소 주니어 파워가 그리 단순한 힘이 아니니 말이야. 보통의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는 힘! 그게 바로 루소 주니어 파워라고! 그런데 ‘행운’을 ‘휘두를 수 있는 거’라면 루소 주니어 파워를 가졌다고 당당히 말해도 좋지! 암!”

“휘두르다니···.”


나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흥분해서 주절거리는 모자를 아연하게 바라보았다.


“백 번 양보해서 내가 그, ‘행운’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해도 말이지. ···내 능력에 내가 다치는 건 뭔가, 본새 없지 않아?”


애초에 내가 휘두르는 ‘행운’이 어디서 나오는 건데? 지금 모자의 말만 들으면 내가 타고난 ‘행운’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내 몸에 꾹꾹 눌러 담아 간직해도 모를 행운을, 밖으로 빼내어서···.

그렇다면, 행운을 휘둘러봤자 남에게 내 행운을 전달하는 호구 밖에 더 되냔 말이다.


“어쩔 수 없지. 보아하니 너는 네가 타고난 행운을 나눠주는 능력인 모양인데.”


그리고 안타깝게도 모자가 내가 생각한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싶은 가정을 긍정했다.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입에 든 젤리를 우걱우걱 씹고 있는데도 실시간으로 당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잘 생각해봐라. 가게 주인에게 공짜로 음식을 받게 된 건 분명 ‘행운’이지?”

“···.”

“그리고 가게 주인과 헤어질 때 네가 주인에게 행운을 나눠준 다음 무슨 일이 있었지?”

“···.”

“곧장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

“하지만···. 결국 가게 주인분이 도와줘서 빠져나왔잖아.”

“주인분 덕에 상황을 해결했다고 해서 네가 곤혹스런 일을 당한 게 사라지나?”

“그건, 아니지.”

“또는 가게 주인에게 네가 가진 모든 행운을 전달한 게 아닐 수도 있지.”

“···.”

“네가 가진 행운의 크기가 어느정도인지 모르니 모든 건 추측일 따름이야. 하지만 분명한 건, 네가 가게 주인에게 힘을 썼다는 거야.”


모자는 제 말이 다 맞다는 듯이 확신의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단번에 모자의 말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그건 그거고.


“내가 가진 행운이 평범한 사람정도거나 그보다 못한 정도라면 말이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랬을 경우엔 세상을 구하는 데엔 별 역할을 못해줄 거 같은데?”

“아! 이런!”


제 입으로 초능력자를 찾는 이유가 세상을 구하는 일에 인력이 부족해서라고 해놓고도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새였다. 내가 초능력자라는 걸 인정해봤자 모자에게 도움이 안 되면 모자는 헛짓거리하는 게 아닌가.


눈을 한 바퀴 돌리더니 무슨 결심을 새로 한 것인지, 모자가 다부지게 외쳤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하네! 우선 네가 타고난 행운이 어느정도인지, 정말 다른 사람의 행운을 다룰 순 없는 것인지도 아직 모르지 않은가? 어린 친구, 세상엔 심사숙고해서 고심해봐야하는 일도 있는 법이라고.”

“에휴, 그래···.”


남의 행운을 다룰 수 있게 되어도 그러고 싶진 않은데···.

슬쩍 모자 눈치를 봤다가 말을 삼켰다. 괜히 입 밖으로 내 뱉어서 언쟁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나는 마저 젤리를 입에 넣으면서, 만약 그간의 불운이 내가 남들에게 행운을 다 나눠준 결과였다면 어떨까 상상해봤다. 막연하게 생각해도 꿈 같은 이야기다. 곧 꿈에서 깰 수 있을 거란 희망만이 남은 악몽 말이다.


나를 찾아온 불운이 부모님의 죽음 뿐이 아니었음에도 가장 먼저 부모님 얼굴부터 떠올랐다.


‘하필 부모님끼리만 여행 갔던 날에 사고가 일어난 건, 내가 행운을 드리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타인에게 행운을 다 줘버려서 ‘부모님의 죽음’으로 내게 불운이 찾아온 것인가?


‘젤리 맛 없네.’


소주나 마시고 싶어졌다.


* * *


비가 점점 얇아졌다. 핸드폰으로 라디오를 켠다면 오늘의 날씨는 부슬비가 내릴 거라고 할테다.


“이러다 얼어 죽는 건데.”


산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올라온 방수포나 담요 같은 것들을 빌려 사용할 수 있었다. 하다 못해 추워 죽을 거 같은 사람끼리 꼭 껴안고 체온을 나누기도 했다.

혼자라서 좋은 점이 있다면 혼자라서 죽을 거 같은 점도 있다는 걸 알곤 있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추위는 가늠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킁, 그래서 이제 뭐해?”


나는 결국 모자에게 ‘내 능력에 대해 알아 보겠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내 인생이 굳이 남들보다 불운해야했을까, 하는 의문이 없지도 않았을 뿐더러. 자연재해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보단 뭐라도 해보고자 하는 편이 낫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우선 타인에게 행운을 나눠주지 않는 방법부터 알아봐야지.”

“반대가 아니라?”

“보아하니 너는 이미 능력을 남발하며 살아온 거 같던데.”

“···.”

“원래 추상적인 관념을 다루는 초능력자일 수록 제 능력을 조절하기를 버거워하곤 하지. 그래도 걱정 하지마. 내가 바로 루소 주니어 파워를 발견한 알리프 루소 주니어! 신입 초능력자를 다루는 건 내가 베태랑이니까!”


여전히 내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능력이 있다는 가정은 낯설고, 마냥 부정하고 싶을 만큼 겁이 났지만.


‘평생 겁쟁이로 살고 싶었던 것도 아니잖아.’


솔직히 나를 방어적으로 만든 건 잇따른 불운 때문이었지 내 본래 성격이 겁쟁이인 건 아니었다. 나도 꼬꼬마 시절엔 짱 센 공룡을 좋아하던 어린이였다고.


나는 가방에 든 음식이 다 떨어질 때까지 모자와 이런 저런 실험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약 일주일이 지난 날의 낮, 나는 정자에 드러누워 생각했다.


‘···내가 바로 이 구역의 제일 가는 호구 X끼?’


알고보니 나는 정말로 주변에 내가 가진 행운을 다 뿌리고 살아왔던 것이다!


“···괜찮나?”

“아니. 인생이 너무 편해서 불편해.”

“···.”


모자와 ‘주변에 행운 나눠주지 않기’는 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야, 주변에 나눠줄 사람도 없으니 당연했다. 오히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나눠줄 수 있는가?’를 찾아낸 게 대단했다.


‘내가 상대의 행운을 진심으로 바라면 딱 그만큼 행운을 나눠줄 수 있다고?’


이를 테면 이런 거다. 내가 A라는 친구를 보고 ‘이 친구 가다가 천원을 주웠음 좋겠다’고 생각하면 정말 A가 길 가다가 천원을 주울 수 있을 만큼의 행운을 A에게 주게 되는 것이다.

고로, 내가 가게 주인분이 ‘무사히 남은 하루를 보내’길 바랬기 때문에 그만큼의 운이 가게 주인분께 갔고. 난 무사히 남은 하루를 보내지 못하게 되었을 확률이 크다!


‘내가 계속 불운했던 건, 결국. 내가 불운한 와중에도 남을 걱정해서라는 거잖아.’


X친, 호구 X끼. 몰랐는데. 배가 부른 X끼가 바로 나였다.


의식적으로 그 누구의 행운도, 무사도, 행복도 빌지 않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내게 자잘한 행운이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내가 누워 있는 정자도 그 중 하나였다. 여기서 더 비 맞으면 폐렴으로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자 마자 흐릿한 안개 사이로 정자의 지붕이 보였을 때의 기분이란.

심지어 정자를 향해 걷다가 누가 버리고 간 건지 모를 방수포도 얻었다. 나는 정자 한 쪽 면을 방수포로 막고선 그 앞에 드러누워 있는 중이고.


덕분에 몸은 편해졌는데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그래도. 네 덕에 목숨을 건진 사람도 많을 거야. 네가 원래 타고난 행운이 많은 걸로 보이는데도 몸에 철심이 아홉개나 박혀 있는 걸 보면 말이지···.”

“···하.”

“철심 하나 당 목숨 하나를 구했다고 생각하면 어떤가? 마음이 좀 편해지지?”


순간 ‘그래봤자 부모님은 못 살렸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겨우 삼켰다.

부모님 돌아가신지가 꽤 되어서 가슴 속에 남은 응어리는 없다고 생각했건만. 다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나이 스물 여덟이 뭔 소용일까. 정신 머리가 미성년자인데. 크흑.


모자는 계속 나를 위로하려고 들었다.


“사람이 생긴대로 사는 거지. 어쩔 수 없어.”

“그거 내가 겉으로 호구X끼처럼 보인다는 뜻이야?”

“워워, 말을 왜 그리 거칠게 해? 나와 함께 세상을 구할 영웅처럼 보인다는 거지!”


와하하! 모자가 시원스레 웃어보였다.

···듣기엔 좋았다. 듣기에만.


“잘 생각해 보라고. 여태 불운하다 생각하고 살았어도 남을 진심으로 생각해줘왔다는 거잖아! 그거 아무나 못하는 거야. 역시 내가 인재를 제대로 찾았지!”


그 소리에 열이 받다가도 금방 가라앉았다. 불운하게 살아서 좋은 점이 있다면 타협이 빠르다는 거다.

그래, 이제 와서 이기적으로 살라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솔직히 나는 여태 내가 이기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타고나길 사람이 좋다는 데 어쩔거냐.

이게 다 부모님이 나를 대단한 인격자로 낳아주셔서 그렇다.


“좋아. 솔직히 아직도 내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거 같진 않지만. ···돕긴 할게.”

“하하하!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좋아, 좋다고! 그럼, 이제 블러드 파워 애들을 만나러 가보자고!”


모자를 따라서 슬쩍 광대를 올리며 물었다.


“블러드 파워라는 곳은 어디에 본부가 있는데?”

“하하! 너도 들어봤을 거야. 미국이라고.”

“···뭐?”


나라에 홍수가 났는데 미국?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고?

속으로 몇 번 made in U.S.A, made in U.S.A 하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게 진짜일 필욘 없잖아.


“너어, 는 어떻게 한국까지 왔는데···?”

“나? 당연히 여기저기 옮겨타고 왔지. 저번에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말하긴 했지. 이해가 안 가서 그렇지.”


모자는 뒤늦게 내 걱정을 이해했다는 양 ‘아하!’ 감탄사를 흘렸다. 벌써 약이 올랐다.


“걱정 말라고, 친구. 한낱 말하는 모자도 여기까지 왔는데, 인간인 자네가 미국엘 못 가겠나? 으응?”


어. 못 갈 거 같아···.


방금 새로이 쌓아올린 각오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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