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특성으로 아포칼립스 정복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연一결
작품등록일 :
2024.07.31 22:53
최근연재일 :
2024.08.06 00:05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85
추천수 :
3
글자수 :
46,504

작성
24.08.02 00:05
조회
25
추천
0
글자
14쪽

럭키 참!

DUMMY

다짜고짜 ‘함께 세상을 구하자’라는 말을 들은 나는···.

우선 본래 목적지였던 아파트 상가 마트로 향했다.

점점 발목을 밀어내는 물살도 거세어졌을 뿐아니라, 모자의 말을 깊이 생각하기 이전에 배가 고팠던 까닭이었다.


‘먹고 생각하자.’


일종의 회피이기도 했다.


산에서 내려온 내게 의아한 시선을 보내오는 사람들을 애써 무시하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걷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재난 상황에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극도로 자기보신적인 사람도 있다. 이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 대부분이 베푸는 쪽이더라도 밖에 나와 있는 단 한 명의 자기보신적인 사람이 나를 막아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이 아파트 사람들이 이웃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었기를 바랬다. 그래서 누가 자기 아파트 단지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이전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있었을 때가 생각났다.

산에 모인 스물 가량의 사람들은 산에 오르기는 각자 올랐어도 산에 평평한 부분이 협소한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서로 부대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자연스레 얼굴과 이름을 텄고, 금방 서로 살던 곳과 폭우 이전의 삶을 공유하게 되었다.

혹자는 서로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 사이가 친밀해졌을 거라 상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겉으로 보기엔 어느정도 서로에게 친밀감과 동질감을 가진 듯 보였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내밀한 마음속엔 각기 다른 ‘선’이 그어진 것 또한 분명했다.

나랑 같은 건물에 살던 사람, 나랑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 나의 동향 사람 같은 식으로 사람을 나누는 건 차라리 ‘친밀감’을 이유로 이해할 수나 있지. 똑같이 집이 물에 잠겨 산에 올라온 처지에 살던 집이 지하냐 지상이냐를 두고 따지는 이들도 있었다. 혹은 살던 건물의 집값이라거나. 그도 아니면 나이를 두고 사람을 갈랐다. 사회가 멀쩡할 때도 문제가 되었던 ‘세대 차이’가 산 위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적은 머릿수 만큼 평소엔 속내를 대놓고 티를 내진 않았으나, 꼭 식량이 문제가 되면 각자의 속내가 티가 났다.


‘덕분에 쑥이라도 하나 더 캐오려고 산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솔직한 마음으로, 스스로의 불운이 얼마나 지독한지 아는 입장에서 매일 우중의 산을 돌아다니는 건 부담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도 우중 산행은 위험천만한 일인데 나처럼 발 딛는 족족 장애물이 있다면 위험도가 얼마나 올라가겠는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반지하에 살던. 보호 받아야하는 어린애도, 존중 받아야하는 중장년도 아닌 젊은 이였다. 심지어 이 동네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사온 곳이라 이 지역에서 학교를 나오지도 않았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동네를 지나다니며 얼굴이 익은 몇과 같은 건물 사람들 정도였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별 수 있나. 발로 뛰어야지.


‘이렇게 혼자 쫓길 줄 알았으면 쑥 군락 찾았을 때 혼자 숨어서 다 처먹을 걸.’


그때 빼앗긴 쑥이 새삼 아까워졌다.

아는 식물도 쑥 밖에 없어서 다른 나물은 찾을 엄두도 못 냈는데 말이다.


“언제까지 조용히 있어야 하나?”


모자가 내 품 속에서 소근거렸다. 덕분에 안 좋은 기억에서 벗어났다. 모자를 토닥거리는 것으로 감사함을 표한 나는 모자에게 말했다.


“내가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평범한 모자인 척 해주는 거야.”

“뭐, 맘에 안들지만 이 늙은이가 눈치가 없진 않으니.”


모자는 그렇게 말하곤 곧장 입을 닫았다. 불편하다는 듯 꿈틀거리던 움직임도 멎었다. 정말 평범한 모자를 품에 안고 걷는 기분이 들었다.


‘모자에 근육이 있다면 어느 부분일까···?’


덕분에 평생 고민해본 적 없는 의문만 샘솟았다.


가까이 다가간 마트는 대충 보아도 대단히 어수선했다.

안 쪽에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부산스레 가게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매대가 많이 비어 있었지만 약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안도 섞인 한숨이 흘렀다.

그에 내 인기척을 느낀 건지 가게 주인이 나를 돌아봤다.


“에그머니나. 이를 어쩌지? 가게 이제 안 하는데.”

“어, 장사 안 하세요?”

“그래요. 상황이 요상해서 여기 짐만 정리하고 나도 집에 가려고 했지.”

“아파트 단지 너머로 나가기 힘들 거 같은데 집에 무사히 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주인분은 내 걱정어린 말에 살풋 웃었다.


“나도 요 앞에 104동 살아. 걱정 마세요.”

“아, 다행이네요.”

“나보다 청년이 더 힘들어보이는데. 참 사람이 좋네.”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할 말이 없어서 웃기만 하는데, 배에서 우렁찬 꼬르륵 소리가 났다. 맹세코 내 배가 낸 소리가 아니다. 망할 모자가 품 안에서 살짝 들썩거렸다. 슬쩍 팔을 벌려보니 윙크하고 있는 모자의 얼굴이 보였다.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어쿠. 그러고보니 물건을 사러 왔댔지. 음식?”

“예에. 그런데 안 파신다고···.”


주인분은 날 정말 좋게 보신 건지 잠깐 기다려보라 말씀하시곤 매대 안쪽에서 봉지 라면이나 캔음료, 과자 같은 어떻게든 당장 입에 넣을 수 있는 음식 몇 가지를 챙겨 나오셨다. 내게 얼른 가방을 열라고 하셔서 주섬주섬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끌렀다.

야무진 손길로 반쯤 차있는 가방에 음식을 넣어주신 주인분이 기분 좋게 웃어보였다.


“이럴 때 돕고 살아야지. 돈은 됐어요. 세상이 이 꼴이라 당장 돈 쓸 곳도 없고.”

“죄송해서요. 그래도 뭐라도,”

“됐어, 됐어. 아줌마 걱정해준 값이라 생각해요.”


울컥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에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이쿠, 그래. 배 곪고 다니지 말고요. 얼른 집에 돌아가 봐요.”

“예. 감사합니다.”

“잘 가요-!”


아주 오랜만에 뜨끈한 욕조에 들어가 앉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좋은 사람’이라 느낀 사람과 대화한 게 얼마만이지?

부디 인심좋은 가게 주인분이 남은 하루를 무사히 보내시길 바랬다.


“···잠깐.”


그 순간이었다. 여태 순순히 입 다물고 있던 모자가 움찔, 요동쳤다.

의아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가게 주인분의 눈치를 보며 재빨리 가게를 벗어났다.


“왜 그래?”

“루소 주니어 파워가 움직였다.”

“근처에 다른 초능력자가 있다는 뜻이야?”

“그게 아니다. 그보단···,”

“거기, 멈춰 봐.”


모자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붙잡았다.

우왁스럽게 잡힌 어깨를 비틀어 뺐다.


“누구십니까?”

“너, 여기 아파트 사람 아니지?”


나를 붙잡은 사람은 꽤 덩치가 큰 남자였다. 머리를 짧게 깎았고, 피부도 잘 그을려 있었다. 운동을 하거나, 혹은 그에 준할 정도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 특유의 다부진 분위기를 풍겼다. 외적인 나이도 나랑 또래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몇 살은 많아 보였다.

이러나저러나 덩치만 봐도 몸에 박힌 철심 때문에 격한 운동을 할 수 없는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회적 체면이나 지위가 반쯤 무너진 현재에선 더더욱. 본래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건만 지금은 법은 한 10km 밖에 있고 주먹은 전방 15cm 앞에 있다.


“···그게 문제가 됩니까?”


당연하지. 나는 속으로 자문자답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허, 남자가 보란듯이 헛웃음을 쳤다.


“문제가 됩니까? 이걸 말이라고. ···너 저 가게에서 뭐 했어? 뭐 훔친 거 아냐?”

“절대 아닙니다. 값도 다 치뤘어요. 의심스러우면 주인분께 가서 여쭤보시죠. 안에 계십니다.”


가게 주인분이 걱정 값이랬으니 좀 더 당당히 가슴을 폈다.

하지만 남자는 강적이었다.


“그 사이에 네가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려고?”


도망 가봤자 내가 어디로 가겠는가. 산을 타도 남자가 더 빠를 거 같은데.

남자는 다시 한 번 우왁스런 힘으로 가방끈을 잡아채었다.


“아악! 이거 놓으세요!”

“떳떳하면 가방 좀 보여달라니까!”


모자를 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때, 소란을 듣고 가게 주인분이 밖으로 나오셨다.


“이게 무슨, 거기 무슨 일이에요! 그 청년은 왜 잡고 있어!”


남자는 일순 당황하는 표정을 짓다가 금방 안면을 싹 바꾸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놈 이거 우리 아파트로 숨어들어온 쥐새낍니다! 어떻게 들어왔는진 모르겠지만, 분명 우리 아파트 사람들도 나눠쓰기 모자란 자원 뺏어가려고 왔겠지!”


내내 물건 값을 치뤘니 뭐니 하던 내용은 쏙 빼고 내게 불리하게만 들리는 소릴 외친 것이다. 가게 주인이 옹호하기도 애매한 내용으로 골라서.


‘X발. 몸이 좋아서 머리 안 쓸 거처럼 생겨놓고. 약은 새끼.’


밖으로 나와 아파트 단지 정문 밑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수런 거렸다. 언뜻 들어도 다들 내 존재를 탐탁치 않아하는 걸 알겠다. 아직 체면을 차리냐 아니냐 정도지 남자의 말에 반박하고 나선 이가 없다는 것부터가 뻔했다.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날 잡고 있는 남자와 같은 이들이 더 행동하기 쉽다.


“품에 안은 그건 뭐래?”


지금처럼.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아저씨가 내 품에서 모자를 잡아채려 했다. 그걸 피하려고 움직이니 어깨를 잡은 손에 더 힘이 들어간다. 가방 끈이 내 상체를 옥죄었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왜 이러세요! 놓으라고!”

“이것도 훔친 거 아냐?”

“훔치긴 누가 훔쳤다고! 당신들이 깡패야?”

“깡패는 네 새끼고!”


남자의 도움을 받아서 아저씨가 내 품에서 모자를 반쯤 빼내었다.

내 손은 모자와 가방을 각각 잡느라 힘이 분산되어 있었다.


‘X발, X발, X발···.’


말 많던 모자는 이땐 또 입 다물고 평범한 모자인 척하고 있었다. 아저씨와 내가 각각 잡아당기는 힘에 모자에 그려진 얼굴이 찢어질 듯 길게 늘어났다. 아파보였다. 모자에 통각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첫 만남에 내가 함부로 다루니 아프다고 소리치던 것이 생각났다.


‘···X발.’


나는 결국 가방을 잡던 손을 놓고 아저씨 손에서 모자를 잡아 뺐다.

남자는 내게 빼앗은 가방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안을 열었다. 안에는 내가 집에서 나올 때 들고 온 옷가지 몇 벌-제대로 빨래할 상황이 아니라서 잔뜩 꼬질꼬질한 상태였다-과 집계약서, 통장. 그리고 가게에서 받은 음식이 차곡차곡 들어가 있었다.


“이거 봐! 자, 보라고! 이거! 이거 이 아파트에서 가져간 거 아냐!”


남자가 내 가방을 활짝 연 채로 공중에 흔들었다. 툭, 투둑, 아래로 과자 봉지와 내 통장, 싸구려 손목시계 같은 작고 가벼운 것들이 떨어져내렸다.

그때서야 가게 주인이 다시 한 번 끼어들었다.


“이 청년이 내게서 값치르고 받아간 건데 왜 그러는 거예요! 깡패는 청년이 아니라 당신 같아! 어! 남 물건이나 빼앗으려 하고!”

“아줌마는 빠지세요! 가게 접는다더니 청년이 값을 치르긴 무슨.”

“허! 거기 들어있는 내 가게 물건 내가 팔았다는데! 그리고 나도 이 아파트 주민이야! 어린놈이 따박따박! 거기 301호 아저씨도! 부끄러운 줄 아세요!”


내 모자를 빼앗으려던 아저씨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목에 핏대가 서는 게 당장 가게 주인분께 달려들기라도 할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아파트 주민들이 이젠 내 가방을 든 남자와 나, 그리고 가게 주인분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이윽고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나를 탐탁치 않아하던 이들은 슬쩍 발을 빼고 이쪽을 외면했고, 그래도 양심을 챙기고 싶은 이들이 남자와 아저씨를 말리고 나선 것이다.

아직 이들의 턱밑까지 물이 밀려들지 않은 덕인양 했다.


가게 주인분이 씩씩하게 다가와선 내 등을 토닥이고는 귓속말했다.


“다들 멍청하게 서 있을 때 얼른 챙겨서 떠나.”


나는 퍼특, 정신을 차리곤 남자 손에서 가방을 빼앗았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도 황급히 줏어담았다. 그리고 가게 주인분에게만 고개를 푹, 숙였다 들고는 도로 산 쪽으로 걸어갔다. 힘이 빠져서 뛸 엄두도 안 나는 게 가장 자존심 상했다.


“하, 씨. 쪽팔려.”


이젠 모자도 내게 럭기 참이니 뭐니 말하지 못할 거다. 내가 운이 좋았다면 기분 좋게 상가 마트에서 벗어나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산으로 돌아갔겠지.


“나를 놓지 그랬나? 난 살아있는 것도 아닌데···.”


품에서 모자가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내가 조금만 험하게 다뤄도 비명지르는 놈이 무슨.”

“···.”

“그래도 방금 봤지? 나 초능력자 아닌 거.”

“아니다.”

“아직도 고집 못 버렸어?”


나도 모르게 조금 날 선 목소리가 났다. 모자의 목소리에 당황이 묻어났다.


“끝까지 들어줘! 아까 분명 내가 루소 주니어 파워가 이동하는 걸 느꼈다고 하지 않았어?”

“···.”

“그때 무슨 생각을 했지? 뭔가 느껴지는 건 없었고?”

“느껴지긴 무슨···. 그냥 가게 주인분이 안전하길 바랬을 뿐인데.”

“아아아! 그렇군!”

“뭐가?”


머리가 조금 아파왔다. 얼른 대화를 끝내고 쉴 곳을 찾고 싶었다.


“왜 럭키 참인가 했더니. 정말 행운을 주고 받을 수 있어서 였어!”

“···나 이해가 안 돼. 근데 지금은 별로 이해하고 싶지가 않네.”

“···.”


모자가 다시 내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았다. 그래 이따 다시 말하자.

당장은 등산로를 오르기 위해 한층 거세진 물살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상황 좋으면 아파트 현관이라도 빌리고 싶었는데. 아오. 야박한 인간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행운 특성으로 아포칼립스 정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딜레마 +1 24.08.06 9 0 12쪽
7 건조 24.08.05 6 0 13쪽
6 김상순 24.08.04 12 0 12쪽
5 우지지직 24.08.03 17 0 15쪽
4 made in U.S.A 24.08.03 24 0 12쪽
» 럭키 참! 24.08.02 26 0 14쪽
2 초능력? 24.08.01 35 2 13쪽
1 괴상한 모자 24.08.01 57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