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특성으로 아포칼립스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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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一결
작품등록일 :
2024.07.3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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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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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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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DUMMY

시간이 흘러, 일주일 후.


일전에 스님에게 말해둔 날보다 육 일은 지나서 떠나게 되었다. 이조차 준비기간을 더 길게 잡고 싶었던 것을 무른 것이었다.


나는 사찰보다 높이 올라가 두꺼운 나무 줄기를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 눈에 봐도 사찰을 찾을 적보다 수위가 높아져 있었다. 산을 깎아 만들었다는 아저씨의 설명대로, 지대의 높낮이가 달라 잠긴 층에 차이가 나긴 했다. 가장 낮은 지대로 보이는 곳을 기준해서는, 이전엔 3층에 물이 들어오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4층을 넘보고 있었고. 보다 높은 지대에선 이제 2층 중반 정도에 물이 차고 있었다.


“···이러다 아틀란티스처럼 한국도 잠겨버리는 거 아니에요?”


언제 따라온 것인지 뒤에서 김상순이 말을 걸었다. 나는 김상순이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를 바라봤다. 모자가 윙크를 보내왔다.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나라가 잠길 정도면 다른 나라는 일찍이 잠겨버렸을 것이라는 등의 말은 삼켰다. 어쩐지 못된 희망사항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애초에 해외 상황을 알 방법도 없었다. 절에 있던 라디오로 오랜만에 뉴스를 들어보기도 했으나 특별한 정보를 얻진 못했다.


-정부는 국민을 돕기 위해 팔방으로 뛰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차분히 구조를 기다리시면-······.


계속 같은 멘트가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 메크로는 아닌가 싶었다. 이전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들었던 라디오에선 그래도 수도권 한정해서 상황을 전달해주기도 하였는데, 그조차 무슨 이유인지 그만둔 상황 같았다.

하기야, 더는 출근하고 싶어도 출근할 수가 없겠지. 집에 모터 보트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말이다.


“짐 챙긴다며?”

“아, 진작에 끝냈죠!”


이런 상황에서도 할 일이 있다는 하나로 웃을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 * *


김상순과 나는 사찰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곤 다시 산을 올랐다.

흙은 물컹했고, 잡는 나무마다 불안하게 뒤흔들렸다. 몇 번 토사가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김상순은 내게 넝쿨을 건네주면서도 조금씩 무너지는 산에 눈을 떼지 못했다.


“···괜찮을까요? 우리는 배를 타러 간다지만.”


아닌 척 그가 사찰을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마음에 걸리면 큰 배라도 하나 만들어주고 가던가? 노아의 방주처럼 말이야.”

“···.”


김상순은 말 없이 멀리 보이는 사찰을 보았다. 그 안에서 모든 재난이 지나가길 바라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 안에 있을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는 걸 것이다.


“아뇨. 됐어요. 욕만 먹을 거예요. 기어코 괴물 티를 냈다고.”

“나중엔 감사해 하실텐데?”

“···그건 잘 상상이 가질 않네요.”


김상순이 덤덤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더 말을 얹지 않았다. 이럴 때보면 내가 나이를 헛먹었다 싶다. 어린 학생 위로 하나, 조언 하나 제대로 못 해주겠는 것이···.



우리는 곧 산을 넘었다. 비탈길을 내려올 땐 무섬증에 온몸이 덜덜 떨리더라. 모자가 머리 위에서 행운 능력자가 뭘 그리 떠냐고 비웃는 소리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비교적 물과 가까운 곳, 그러나 배가 들어설 만큼 평지가 있는 곳을 찾아 결정한 곳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물이 보다 가까워진 것 같았다. 배 건조 장소를 더 밑으로 정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물 위에서 건조하는 게 아니니까 바닥을 뾰족하게할 순 없을 거 같은데.”

“위로 좀 들어서 만들면 되는 거죠.”

“위로? 장비도 없는데···.”


김상순은 더 설명하지 않고 땅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내게 행운이나 조금 나눠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단번에 손을 마주잡고는 김상순을 향해 말했다.


“···배가 단번에 완성되기를 바랍니다.”

“흐얍!”


오랜만에 김상순의 기합소리가 들리고. 곧장 김상순이 짚고 있는 곳에서부터 우르르릉-, 진동이 일었다.


물기가 많아 씨앗이라곤 죄 썩었지 않았을까, 싶은 땅에서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올라왔다. 그것은 곧장 굵기를 더하고 더하여 줄기가 되었고, 키를 키웠다. 줄기의 색이 초록색에서 갈색으로, 갈색에서 고동색으로 변화하는 동안 가지는 극도로 적은 갯수가 뻗어나왔다.

고작 두 갈래의 가지가 옆으로 눕듯이 자라더니 옆에서 함께 자라난 다른 나무의 가지와 얽혀들었다. 꼭 연리지처럼, 혹은 두꺼운 밧줄처럼.

그렇게 네 그루의 나무로 거대한 빨랫대를 만든 김상순이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다.


“이 나무 위로 배를 만들면 되지 않겠어요? 아저씨 상상력 좀 키우셔야겠다, 그죠?”


약올리듯 하는 말에도 감탄하기에 바빴다.

모자도 머리 위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김상순은 의기양양해져서는 이번엔 땅에 자라난 새싹 하나를 뿌리째 뽑더니 위로 내던졌다.


“흐야아아압!”


그 나무는 공중에서 이리저리 몸을 꼬면서 자라더니 배의 밑면이 되어 거대한 빨랫대에 걸쳐졌다.


“훠우-!”


짝짝짝짝!


박수를 치고 있자니, 김상순은 이번엔 새싹 두 개를 던졌고. 그것들은 기존의 배 밑바닥이 된 나무 줄기와 얽혀서는 배의 윗부분이 되었다. 꼭 나무가 아니라 넝쿨이 나라나는 것만 같았다.


배는 금방 완성되었다. 초능력이라고 해도 많이 사용하면 지치는 것인지 김상순의 얼굴이 그 사이 핼숙해졌다.


“이거, 내 행운이 없었어도 되었겠는데?”

“그건 아니에요. 솔직히···.”

“응?”

“공중에서 나무 키우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하지만 새싹을 적절한 위치로 던지던데?”

“그러니까요. 그게 아저씨가 준 운이라고요. 저 다트 내기하면 매번 꼴지했어요.”

“학생이 무슨 다트 내기를 해?”

“아저씨 땐 게임방 없었어요?”

“···있었지.”


함께 갈 친구가 없어서 그랬다, 임마.

속 쓰린 이야기에 얼른 배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배가 공중에 떠 있는 터라 밑바닥이 훤히 보였다. 나무가 어떻게 얽히고 설켰는지도 훤히 보였다.


“···이거 물이 세지는 않겠지?”

“아저씨가 있는데 뭐가 문제에요?”

“너 가만 보면 나보다 더 내 능력을 믿는 거 같아.”

“전 오히려 아저씨가 본인 능력을 못 믿는 게 더 이상해요.”


모자가 하품을 쩌억하더니 대화를 끊고 들어왔다.


“그것보다 어린 친구들. 저 배는 어떻게 내릴 셈인가?”

“아···.”

“···.”


그러게?


타는 건 사다리를 만들어서 올라가면 되었는데, 배를 산 밑으로 내릴 땐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을 안 해봤다.


* * *


풍덩-!


“훠우-!”


김상순이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곤 배 위에 엎어져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재잘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저씨 능력이 진짜 쩌는 거 같아요.”

“내 꼴을 봐도 그 소리가 나오니?”

“···음. 죄송해요.”


나는 찢어진 옷과 그 밑에 생채기 가득한 몸을 슬픈 눈길로 훑었다. 빗물이 계속 닿아서 그런지 쓰라리긴 엄청나게 쓰라렸다.

조금 전을 생각하면 참 아찔하다.


일단 무작정 배 위로 올라가 김상순이 배 윗부분을 완성하는 걸 지켜보았다. 좁은 갑판과 작은 선실을 만들었고. 노를 끼울 구멍도 배 양 옆으로 냈다. 키도 있어야하지 않겠냐니까 김상순은 잠시 고민하더니 뚝딱 만들어냈다. 잘 만든 건지는 모른다. 그저 얘가 정말 사찰에서 배를 공부했구나 싶었을 뿐이다.

돛을 만들겠다는 말은 정말이었는지 십자가처럼 나무를 키우고는 거기다가 내가 가지고 있던 방수포를 매달았다.

그러고 나니 정말 배를 어떻게 내려보낼지 고민이었다.

그때 모자가 제안했다.


-그냥 네 행운을 밑고 돌이라도 옆으로 던져보는 게 어떠냐?


대체 행운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아무렇게나 돌을 던진다고 해서 배가 물 위로 순간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한껏 툴툴 거려봤으나 모자와 김상순에겐 통하지 않았다. 어느새 모자의 말에 깊은 동감을 보내고 있던 김상순은 내 손에 돌도 아니고 어디서 떼어온 것인지 나무 조각을 쥐어주었다. 꼭 말뚝처럼 생겨선 다트 던지듯 던져야 할 것 같았다.


-행운이란 것이 무엇이냐? 네가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그 결과가 네게 이롭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


모자는 그러니 무엇이든 시도하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일단 모자를 스승으로 모시고자 하긴 했기에 입을 삐죽이면서도 산쪽으로 말뚝을 내던졌다. 내가 봐도 참 매가리가 없는 궤적이었다.

옆에서 내내 부추기던 둘 조차 할 말을 잃고 침음성을 다 낼 정도였다.


그러나.


말뚝은 기가 막히게 지반이 유달리 약한 곳을 건들며 떨어졌고, 그대로 산사태가 났다.

당연히 배를 지탱하던 네 그루의 나무 또한 순식간에 옆으로 넘어갔다.

그 순간 나는 무심코 모두가 안전하길 바랬고.

결과, 오로지 나만이 이리저리 튀어오른 흙이나 돌맹이에 쓸려 배 밖으로 튕길 뻔 했다.

김상순이 기지를 발휘해서 넝쿨로 나를 휘감지 않았다면 그대로 배 밖으로 떨어져 토사에 먹히거나, 홀딱 젖은 생쥐꼴이 되어 배를 기어올라와야 했을 거다.


“나··· 한동안 안 움직인다.”

“그래, 그래. 행운 찰 동안 숨만 쉬거라. 그런다고 해서 불운이 피해가나 싶긴 하다만.”

“좀!”


모자는 익살 맞게 입술을 말아 물었다. 눈도 큼지막하게 뜬 것이 날 놀리는 게 분명했다.


“그럴거면 안에 들어가서 자요. 제가 여기 있을게요.”

“아니야···. 어떻게 그러겠어. 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정도는 알아야지···. 혼자 노를 저을 수도 없을 거고.”

“키 돌리면 되죠.”

“키를 돌린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

“그런가?”


김상순은 알아서 하시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슬쩍 일어나 앉아 배 바깥을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정말 배를 만들어 타고 있다는 점이. 이 배가 잘 나아갈지는 둘째치고, 말만 세상을 구하겠다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몇 번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 * *


배는 순조롭게 나아갔다. 잠깐 배 위로 물이 차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던 것이 무색하게, 오히려 빗물을 모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배가 단번에 잠기기 전에 알아서 밖으로 흘러내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김상순은 절에서 구했다면서 상추 씨앗과 고구마 씨앗, 토마토 씨앗 같은 것을 내보였다. 그리곤 비가 많아서 식물 마를 걱정은 없겠다고 했다. 씨앗이 썩으면 어쩌냐니까 썩기 전에 키우면 되지 않느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능력보다 김상순 능력이 더 대단한 거 같은데···.


식량은 김상순이, 식수는 빗물을 끓이는 것으로 해결하기로 하니 걱정이 딱히 없어졌다.

비바람이 아무리 들이친다고 해도 바다보다 물이 잔잔하다보니 대단한 노젓기 실력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무턱대고 힘만 쓰다보면 앞으로 나아가더라.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는 건 오히려 사람들이었다. 산으로 대피하지도 못하고, 배로 삼을 것들도 없어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도 태워 줘!”


한 둘이면 모를까, 구조를 원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초능력을 일반인들에게 드러내야할지도 김상순과 상의되지 않은 마당에 수재민 모두를 포용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제발! 제발 안전한 곳까지만 데려다주세요! 이러다 잠겨 죽겠어요!”


그렇다고 외면하자니,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거 같았다.

무엇보다 내 옆에는 미성년자가 있지 않은가? 도움이 간절한 사람을 외면하는 경험은 정서 교육 상 좋지 않았다.


딜레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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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상한 모자 24.08.01 5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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