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특성으로 아포칼립스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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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一결
작품등록일 :
2024.07.3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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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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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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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DUMMY

마법 모자는 말이 많았다.


“그 멍청한 놈들은 인력이 없다고 우는 소릴하면서 이 멋쟁이 모자에게 부탁할 생각은 없더군. 내 답답해서 정말! 어쩌겠나? 믿음직스런 어른인 내가 나서야지.”


그 중엔 모자의 이전 소유주들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모자의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냐는 둘 째치고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다.

모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느 단체에서 개발한 ‘능력 판별기’라는 모양이다. 정말 해X포터 속 마법 모자처럼 자신을 머리에 쓴 사람의 능력을 판별해서 알려준다나.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 판별하는 능력에 종류를 물어봤다. 지능인지, 공감능력인지, 방향지각인지, 그도 아니면 운동 신경이라거나.

나노 로봇 하나만 있으면 판별 가능할 거 같기도한 능력들을 길게도 상상했다.

하지만 모자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현실로 끌어내리려는 내 노력을 비웃었다.


“뭐긴! ‘루소 주니어 파워’ 소유 여부지!”

“뭐?”

“’루소 주니어 파워’말일세! 줄여서 R.J.파워! 모르나? 쯧쯧, 루소 주니어 파워도 뭔 줄도 몰라서 이 험한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려고?”

“뭔, 개소리야?”


난 참지 못하고 모자를 타박했다. 모자가 목도 없으면서 뒤로 넘어가려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잠시 미간을 문질렀다가 슬쩍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상상해도 눈 앞에 용이 나타나진 않았다.


‘꿈은 아닌데.’


쏴아아-···.


와중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그게 내 마음을 더 심란하게 했다.


“그러니까···. 루소 주니어가 누군데.”

“이 신비롭고 대단한 힘을 발견한 위대한 이능력자의 이름이라네.”


이능력, 이능력이라.

그거 결국 초능력자라는 뜻 아닌가?


“아, 초능력.”

“루소 주니어 파워라니까! 이 힘을 처음 발견한 자를 존경하고 우대하는 목적에서라도 이름을 분명히 해줘야지!”

“말이 어렵잖아. 그냥 루소도 아니로 루소 주니어라니.”

“그건 내 부모님께 문의하시게나.”

“잠깐.”


부모님?

난 갑자기 눈알을 굴려 딴청을 피우는 모자를 내려다보았다. 되도 않는 휘파람 부는 척하며, 몸이 없으면서 제스쳐가 큰 거 하며.


“혹시 이거 귀신들린 모자였나?”


나는 모자를 아래 위로 탈탈 털었다. 그러자 모자가 “으아아악! 이런 못 된!” 죽는 소릴 내었다.

괜히 미안해져서 금방 그만두었다. 모자가 뇌는 없어도 멀미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 내 생전 이름이 알리프 루소 주니어였다네! 내가 바로 이 힘을 최초로 발견해낸 사람이자! 그 힘을 이용해서 모자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위대한 영혼이지!”

“아아···. 그렇구나아.”


이제 다 모르겠다.

생각을 포기한 내게 모자는 두 번째 폭탄을 투척했다.


“큼, 여태까지의 무례는 날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이해해주겠네.”

“아니, 뭐, 그래. 그래서 난 이제 여기에 널 도로 두고 가면 되나?”

“아니! 아니지! 내가 어떻게 찾아낸 이능력자인데!”

“어?”

“가는 귀 먹었나? 젊은 치가. 쯧쯧. 자네 이능력자라고! 알리프 루소 주니어님이 발견한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만 같은 목청이 내 뇌리를 뒤흔들고 지나갔다.

멀뚱히 눈만 꿈뻑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윙크하려는 모자의 두 눈을 콕, 찔렀다. 다시금 모자가 “끄아아악! FxxK!”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그 해괴망측한 소리는 빗소리에 가려져 스러져내렸다.


“그런 소릴 하려면 내가 아직 세상의 때가 안 묻었을 때 찾아왔어야지.”


이미 속세에 찌들다 못해 낡고 지친 사회인에게 찾아와 초능력이니, 루소 주니어니 하는 소릴 해도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리가 없다. 날 놀리나, 싶을 뿐이지.

말하는 모자가 눈 앞에 존재하는 이상 초능력의 존재까진 부정하지 않겠지만 그것과 내 삶에 이상한 일이 끼어들게 내버려두겠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심지어 나는 그 옛날 해X포터를 보고 나서도 마법학교를 꿈 꿔 본 일이 없었다. 그저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고 말았던 게 다였다.


그러나 모자는 내게 눈을 찔리고서도 포기하질 않았다.

그는 마치 사거리에 점집 차린 무당이라도 된 듯이 말로 나를 찌르려 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나? 자네 능력은 ‘럭키 참’이네. 이 나라 언어로는 행운의 마스코트나 부적을 말하지. 자네 어릴 때부터 유독 운이 좋았지?”

“아니. 전혀.”


단언할 수 있다. 이때껏 내가 운이 좋았던 적은 태어난 순간 빼고 없다.

내 행운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사지 멀쩡히 태어난 것으로 다한 것이 분명했다.


* * *


만약 내가 이 순간 죽어 내 무덤에 비석을 세운다면, 비석엔 이 한 문장이 세겨질 것이다.


[불운하되 불행하진 않았던 청년, 유구완 여기 잠들다.]


그러니까, 내 무덤을 만들어줄 사람이 아직 남아 있다면 말이다.

‘불운하되 불행하지 않다’는 말은 내 입버릇과 마찬가지였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유달리 힘든 날에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기도 했다.


내 불운의 역사는 내 몸에 박힌 아홉 개의 철심으로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래도 몇 가지 당장 생각나는 불운을 뽑자면 아래와 같다.


게임 뽑기에서 매번 가장 똥템 뽑기.

찍은 시험문제 모조리 틀리기.

포트폴리오를 위해 출전한 공모전에서 수상 이후에 ‘작품 누락’으로 심사도 못 받았다는 통보 연락 받기.

누가 잘못 떨어뜨린 쓰레기나 돌에 얻어맞기.

기타 등등······.


심지어 말로만 들었던,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지는 경험도 해봤다.


주변에 이상한 놈들도 자주 꼬였다.

정신 건강하고 인생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내 불운에 질려 나를 떠나거나 아니면 물리적으로 세상을 떠나고. 내 주변에서 끝까지 알짱거리는 놈들은 꼭 사람 등쳐먹으려는 놈들 뿐이었다.

그나마 나 스스로 불운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투자를 해달라거나 뭘 사달라거나 하는 일엔 응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돈 빌려준 거 못 받는 건 물론이고. 내가 액막이라 내 근처에 가면 불운한 일이 안 생긴다고 떠들고 다닌다거나-그놈은 나를 무슨 자신이 운 좋게 할인해서 산 물건처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자기 이름 대신 내 이름 팔아먹고 모르는 사람에게 사기치는 놈도 있었다.


‘회사 면접 한 번 보러 가는 길도 험난했는데.’


빨간불에, 공사판에, 사고에···. 무려 두 시간 일찍 집을 나섰는데도 면접을 못 볼 뻔 했다.


참 지긋지긋한 인생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러고도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하다니 나 좀, 대견한 듯.’


나는 스스로를 도닥이는 것으로 회상을 마쳤다.

다시 모자를 바라보자 대놓고 ‘이럴리가 없는데’라는 표정의 모자가 보였다. 약오르라고 어깨 한 번 으쓱해줬다.


* * *


괴상한 모자랑 대화하느라 시간을 너무 끌었다. 벌써 두 시간 후면 해가 질 거다. 먹구름 속에 숨은 해 때문에 낮에도 어두컴컴했지만, 저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자의 고집을 못 이겨, 모자도 내 머리 위에 얹어져 나를 따라왔다. 두고 떠나려고 하면 산이 다 진동하도록 고래고래 소리치더라. 멋드러진 중년 남성의 음성으로 떼를 쓰는 모습은 꿈에라도 나올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그 몸으로?”

“간단하지.”


모자가 설명한 방법은 정말 간단하고 골때렸다. 모자는 기존에 모자가 있던 단체원에게 부탁해 자신을 바깥에 가지고 나가도록 한 다음, 단체원의 정신이 빠지도록 시끄럽게 굴었다는 모양이다. 단체원이 혼비백산해서 난리가 난 틈에 요령껏 단체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는 식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가능해?”

“가능 못할 건 또 뭔가?”

“···그건, 그렇지.”


그래. 말하는 모자도 있는데 뭐가 불가능할까. 요즘 세상에 모자가 히치하이킹도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대충 머릿속으로 애니메이션 풍의 ‘모자 탈출쇼’를 그려나갔다.


모자는 정말 말이 많았고. 나는 심심하진 않지만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윽고 멀리, 내가 기억하는 아파트 단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슬쩍 보아도 우리 동네보단 상황이 좋다. 사람들도 몇 명 밖으로 나와서 산 밑을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무려 평평한 아스팔트 위에 양 발을 딛은 채로 말이다.

아스팔트 자체가 오랜만에 보는지라 잠시 감격이 몰려왔다.


“뭐하나? 바로 내려가지 않고?”


모자가 나를 재촉했다.

나는 이 생각 없어보이는 모자를 어떻게 잘 숨겨야할지 고민하다가, 또 조금은 모자가 걱정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초능력자일리가 없는데,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 찾아가는 게 맞지 않아? 원한다면 저기 아파트단지에서라도 초능력자를 찾는 걸 도와줄게.”

“아, 글쎄. 네가 맞다니까!”

“진짜 모르겠는데···.”


사실 우리의 대화는 이곳까지 오는 길에 벌써 정형화된 형식이 생겨나버렸다. 내가 초능력을 부정하면 모자가 그걸 부정하고, 그러다가 모자가 제 단체 이야기를 하면, 나는 거기에 맞장구를 치거나 질문을 하고. 그러다가 다시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라거나 ‘곰곰히 다시 생각해봤는데’로 물꼬를 터서 초능력을 부정하면 모자가 그걸, ······.


“애초에 ‘행운’이 어떻게 초능력이 돼. 그냥 타고난 팔자지.”

“허어. 내가 힘을 느꼈다니까? 난 생전에도 ‘감정’ 능력자였다고! 내가 괜히 모자가 되겠다고 설친 줄 아나?”

“···설마 해X포터 1 편 좋아해?”

“좋아하고 말고!”


세상에.

오타쿠를 무시하다가 큰 코 다칠 거란 소리는 인터넷을 하며 몇 번 보긴 했지만 그 말이 사실일 줄이야···.


“내가 이 조그마한 나라까지 온 이유도 이곳에 이능력자가 있을 거란 확신을 가졌기 때문일세!”

“잠깐. 그러고보니 이름이 루소 주니어면서 한국어는 왜 잘하는 거야?”


머리 위에서 모자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약올랐다.


“이 멋쟁이 모자가 못할 일은 없지!”

“이야, 대단히 똑똑하시구나.”

“그러엄!”


나는 산에서 아파트로 이어진 길을 찾아 발길을 돌렸다. 나무에 가려져 뒤늦게 알았지만 좀만 옆으로 걸어가면 아파트단지와 이어진 등산로가 나 있었다. 나무 계단을 따라 물이 철철 흐르고 있다는 점만 빼면, 길도 나지 않은 흙길 보단 안전해보였다.


막 첫 번째 계단에 발을 내밀 때, 모자가 답지 않게 심각한 목소릴 내었다.


“이제 와서 다른 초능력자를 찾는 것도 무리일세.”

“왜?”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잖나.”

“그렇게 급히 새로운 초능력자를 찾을 필요가 있나?”


그러고보니 모자를 데리고 있던 단체에서 인력부족으로 고민이 많았다고 했던가. 대체 뭐하는 단체이길래 이런 모자도 가지고 있고, 인력도 없다고 난리인 걸까. 역시 초능력자 모임? 세계 정보 단체랑 암약이라도 하나···.

이번에 내 머릿속을 점령한 것은 CSI나 FBI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였다.


‘아니지. 초능력자니까 히어로 무비를 떠올리는 게 맞겠구나.’


말하는 모자를 머리에 얹은 후로도 여전히 영 적응이 안 된다. 내 삶에 판타지가 끼어들기엔 내 코가 석자라 그런가. 낭만 다 뒤진 사회인이라 그런가.

괜히 감성에 젖을락 말락했다.


“이봐, 어린 친구. 주위를 둘러보게나.”

“?”


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빗물이 느껴졌다. 산 전체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났고. 산 밑에는 입간판이며 모자며, 나무며, 신발이며 하는 것들이 빗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이 물 난리가 누구 때문이겠나?”

“인간 때문이지 뭐겠어. 자연 환경을 그리 파괴해대니까 지구가 몸살을 앓는 거 아니야.”

“아니지. 뭐, 따지면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일 수 있겠지만. 우리 ‘블러드 파워’에서는 이번 자연재해의 가장 큰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네.”


블러드 파워는 또 뭐야. 얘네 ‘파워’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데.

내가 속한 단체도 아닌데도 공감성 수치를 느끼고 있자니, 모자 혼자 진지했다.


“이러다가 못된 놈들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어···. 예?”

“이러다 다 죽는다고!”


모자가 답답했는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코 앞에 있는 아파트 동에서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황급히 모자를 머리 위에서 끌어내려 품에 꼭꼭 숨겼다. 모자가 힘좋게 펄떡펄떡 뛰는 게, 꼭 품에 날생선 한 마리 안고 있는 기분이들었다.


‘해X포터에서 이젠 히어로 무비냐.’


이것도 내 불운 중 하나일까? 인복이 없다 못해 모자복도 없나?

어디서 패션테러라는 말은 안 듣고 살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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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상한 모자 24.08.01 5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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