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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01 13:24
최근연재일 :
2024.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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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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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나는 허튼소리 안 해

DUMMY

52화











“자. 마이크. 받아라. 형의 배트야. 이걸 쥐고 공포를 이겨내. 형이 기다리는 빅리그로 올라가야지.”


내가 약을 파는 동안 호세는 고문 기술자의 조수처럼 주변 세팅을 착착했다.

마이크는 내가 건넨 형의 배트를 받았다.

스윽-

“그래. 건우. 너의 말이 다 맞아...”


마이크는 이제 전 재산을 나에게 헌납할 수도 있을 세뇌 상태가 되었다.

나는 호세에게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시작해. 호세.”

“잠. 잠깐만. 내가 뭘 해야 하는 건데?”

“없어. 그저 타석에 두 발로 딱 서 있으면 돼.”

“그냥 서 있으라고? 헉!”

퍽-


호세가 바로 앞에서 마이크에게 가볍게 야구공을 던졌다.

퍽-

몸에 공이 맞자 마이크가 움찔했다.

살살 던져서 아플 정도는 아니었는데도 반사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퍽-

“도망치지 말고 버텨. 마이크.”


야구공을 하드볼이라고도 했다.

프로급 투수가 던진 강속구를 타석에서 맞아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아픈지.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타자의 뇌에 새겨진다.

매일 타석에 서야 하는 타자의 뇌는 공포에 서서히 물든다.

타격 메카닉이 무너지고 슬럼프에 빠진다.

일류 타자들도 겪는 일이었다.

야구공을 두려워하지 않는 타자는 없다.

다들 타석에서 공포를 견뎌내며 자신의 스윙을 하려고 애쓸 뿐이다.


퍽- 움찔-

“마이크. 괜찮아. 움찔해도 돼. 타석을 벗어나지만 마. 너의 뇌에 새겨진 공포 신경 세포를 다 지져놓을 때까지 계속 던질 거니까. 치과 신경치료처럼 말이야. 하하하.”

“...”


마이크는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호세는 공을 던져 맞추며 거리와 강도를 서서히 높혀갔다.


“건우. 왜 네가 안 던지고 호세가 던지는 거야?”

“마이크. 나는 오늘 선발 투수잖아. 팔을 아껴야지. 그리고...”

“그리고 뭐?”

“호세가 던지는 게 더 무섭잖아. 효과 만점이라구.”

“...”


그렇게 나는 아침 시간을 겁쟁이 사자 길들이기에 썼다.

오늘 경기 시작까지 7시간 남았다.


***


[테네시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생중계해드리는 더블A 야구경기입니다~! 녹스빌 스모키스 대 그린빌 브레이브스의 3차전이 시작됩니다. 양 팀이 1승 1패를 거둔 상황인데요. 이번 3차전에서 녹스빌이 승리를 거두면 그린빌을 밀어내고 서던리그 동부지구 2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린빌 선발이 무패의 투수 백건우거든요. 이번 시즌 개막전부터 등장해서 10경기 9승 무패를 달리고 있는 현재 리그 최고 투수입니다. 그가 오늘 10승에 도전합니다!]


녹스빌은 그린빌 북쪽 테네시주에 있었다.

모 구단이 녹스빌에서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이고 이 동네는 미식축구가 인기라서 야구장이 썰렁했다.

더블A도 인기팀과 비 인기팀의 차이는 컸다.


“마이크! 너는 이제 용사의 심장을 얻었다! 가라!”


1회초 그린빌 선공.

관중이 없어서 양 팀 선수들도 조용했는데 유독 의욕에 불타는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겁쟁이 사자’ 마이크 글래빈이었다.


[1회 1사 1, 2루 찬스에서 4번 타자 마이크 글래빈이 좌타석에 들어섭니다.]

[방금 녹스빌 배터리가 3번 호세를 볼넷으로 걸렀거든요. 마이크는 여기에 치욕을 느껴야 합니다.]


나는 불펜에서 마이크를 지켜보았다.

몇 시간 특훈했다고 바로 효과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었다.

글래빈이라는 성 때문일까?


[맞추기 훈련법]을 알려준 사람은 중학교 야구부 시절 타격 인스트럭터로 우리 학교에 순회를 온 김태룡 코치였다.

그때 나도 좌타자로 날리다가 몸쪽 공에 두려움이 생겨서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었다.

경기 중 헤드샷을 맞은 게 원인이었다.

한번 그런 일을 겪으니까 몸쪽으로만 공이 날아오면 몸이 굳어버렸다.

그 증상을 파악한 코치가 나를 따로 불러 보호 장비를 착용하게 하고 좌타석에 세워두고는 마구 공을 던져서 맞췄다.

오늘 마이크에게 했던 것처럼 살살 맞춘 것도 아니었다.

공 맞는 게 무서워서 내가 타석에서 벗어나면 바로 귀싸대기가 날아왔다.

나는 타석에서 공에 맞거나 타석을 벗어나 귀싸대기를 맞는 양자택일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특훈(?)을 받았더니 몸쪽 공포가 말끔히 사라졌다.

나의 오른쪽 팔뚝과 허벅지 등에는 온통 피멍이 들었다.

엄마가 보면 울까 봐 한동안 씻을 때도 조심해야 했다.

그 코치에게 그때 고마웠다고 엽서를 보낼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가혹한 특훈이 효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그걸 순화해서 마이크에게 적용했다.

그런데.


뻐어어어어억- !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마이크가 투수의 공에 맞았습니다. 큰 소리가 났는데 괜찮을까요?]


상대 배터리도 마이크가 몸쪽에 약하다는 걸 알고 바짝 붙이다가 실투가 나왔다.


“역시 효과가 있었어.”


마이크가 공을 맞은 곳은 등이었다.

예전에 그였으면 겁을 먹고 먼저 몸을 빼다가 팔이나 손목에 공을 맞았을 거다.

등에 맞았다는 건 어깨를 닫아놓고 끝까지 공을 보았다는 뜻이다.


[1사 만루입니다. 오늘 그린빌의 선발이 백건우이기 때문에 여기서 1~2점만 내줘도 녹스빌은 어려워집니다.]

따아아악- !

[쳤습니다! 유격수 땅볼! 잡아서 2루로 송구! 아웃! 1루로~~~ 아웃! 병살타! 만루 기회에 1점도 뽑지 못하는 그린빌.]


전형적인 마이너리그 야구였다.

빅리그였다면 큼지막한 외야 플라이를 때려 최소 1점을 뽑아냈을 거다.

지난 시범 경기 때 뉴욕 양키스처럼.


마이너리거들은 팀 배팅보다 자기 스윙을 해서 안타를 하나라도 더 때리고 타율과 타점을 올리는 걸 선호했다.

물론 나는 이런 이기적인 야구를 혐오했다.


[1회말. 이제 백건우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지난 녹스빌 전에서 5이닝 무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던 백건우. 이번에도 쾌투를 이어갈까요?]

[야구는 상대 전적이 쌓이면 쌓일수록 투수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백건우는 언더핸드 투수의 생소함으로 큰 이득을 보고 있거든요. 녹스빌 타자들도 이번에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겁니다.]


“지난번과 똑같은 타순이네. 저 흑인 녀석은 바깥쪽 높은 코스에 환장했었지.”

뻐어어엉! 뻐어엉! 뻐어엉- !!

[높은 코스에 삼진 아웃! 백건우! 첫 타자부터 거침없이 몰아붙입니다.]

[...]


해설자가 민망해서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 백건우는 쾌투를 이어나갔다.

타자들의 지난 대결 정보를 바탕으로 거침없이 승부했다.


“백인 꺽다리. 너는 커브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했지.”

뻐어어엉-!

[높은 커브에 헛스윙 삼진! 백건우가 4회까지 퍼펙트게임을 이어갑니다. 지난 등판 때보다 더 압도적입니다.]

[... 제가 정정해야겠네요. 백건우는 지금 베테랑 의사처럼 녹스빌 타선을 거침없이 수술하고 있습니다. 타자들이 수술대에 누워 꼼짝도 못 하고 당합니다.]

[그린빌 0 대 0 녹스빌]


“마이크. 등은 좀 어때? 아프지 않아?”

“전혀. 아무 느낌도 없어.”


5회초.

더그아웃에서 내가 마이크에게 물었다.

녀석은 첫 타석에서 몸에 맞는 공으로 진루하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삼진으로 물러났다.

마이크는 자신의 등짝을 맞춘 투수를 빤히 보며 조용히 분노를 삭였다.

사고 치기 딱 좋은 상태.


[2사 1루에서 마이크 글래빈이 3번째 타석에 들어섭니다.]

[저렇게 찬스에 약한 4번 타자도 없을 겁니다. 꾸준히 4번에 기용하는 감독의 의도를 모르겠어요. 톰 글래빈에게 사인볼이라도 받은 걸까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나는 외야 뜬공으로 물러난 호세와 나란히 서서 삶은 땅콩을 씹으며 마이크를 지켜보았다.

물가에 애를 내놓은 심정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호세. 마이크가 이번에는 잘할까?”

“못하면 계속 공을 맞춰줘야지. 히히히.”

“너는 왜 못 친 거야? 그리 대단한 투수는 아니잖아.”

“요즘 견제가 너무 심해져서 투수들이 나한테 좋은 공을 안 줘.”

척-

나는 호세에게 어깨동무했다.


“호세. 오히려 좋은 신호야. 네가 이 레벨을 졸업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니까.”

“정말이야? 마스터?”


따아아아악- !

[마이크 4구를 쳤습니다! 힘껏 잡아당긴 타구! 우측에 큽니다!]

[이건 볼 것도 없어요! 홈~~~ 런~~ 선제 투런 홈런을 때리는 마이크 글래빈!]

[그린빌 2 대 0 녹스빌]


마이크가 홈런을 때린 게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승부처에서 속 시원한 홈런을 때린 건 처음이었다.

나와 호세는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고 들어온 마이크를 누구 보다 반겼다.

동료들에게 축하받는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속삭였다.


“잘했어. 마이크. 내일 아침에도 한 100개만 맞자.”

“헉!”


이렇게 그린빌 브레이브스는 마이크의 선제 홈런포를 시작으로 앞서가며 경기 후반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백건우는 6이닝 2안타 무실점을 기록하며 가볍게 10승을 거두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그린빌이 녹스빌을 8대3으로 물리치며 3차전 승리를 가져갑니다. 백건우는 더블A 리그 전체에서 유일한 10승 투수가 됩니다. 아. 0점대 평균자책도요.]


***


경기 후.

3연전이 끝나고 원정 짐을 빼서 버스에 싣고 녹스빌을 떠나 밤새 그린빌로 돌아와 버스에서 짐을 빼서 홈구장 클럽하우스에 다시 가져다 놓고 아침에야 집으로 들어와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곧 전화기가 울렸다.

참고로 오늘 오후에 홈경기가 있어서 2~3시간 자는 게 고작이었다.


뚜- 뚜- 뚜- 뚜-


어떤 집요한 놈인지 안 받는데도 계속 전화를 걸었다.

침대에서 귀를 막고 버티다가 결국 짜증을 참으며 전화를 받았다.


“누구십니까? 아침부터.”

“미안. 건우. 자고 있었구나.”

“당신은...”


친한 사람은 아닌데 분명 들어본 목소리였다.


“톰 글래빈이다. 마이크에게 이야기 들었어. 네가 큰 도움을 줬다며? 너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서 전화했다.”

“예!?”

“마이크는 어릴 때 나보다 야구 재능이 더 뛰어난 녀석이었어. 하지만 겁이 많고 유순해서 이 세계를 힘들어했지.”

“그렇긴 해요. 당신보다 재능이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요.”

“고마워. 녀석이 자신감을 얻은 듯해. 나한테 전화해서 큰소리를 치더라구. 이게 얼마 만인지. 하하하.”

“지금 우리 팀에는 마이크 같은 좌타 거포가 필요하거든요. 이번 시즌 우리 그린빌이 우승하는데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린빌의 우승이라... 예전에 나도 그 팀에 있었지만... 훗. 즐거운 마이너리그 생활인가? 너의 나이 때에는 그런 자세로 야구를 하는 것도 좋겠지. 시간은 충분하니까.”

“이 팀을 언제 떠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이기고 싶어요. 그린빌 사람들을 위해서도요.”

“좋아. 잘해봐. 너에게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지 모르겠군.”

“뭐. 그러시면 저한테 체인지업을 전수해주시던지요.”

“체인지업? 좋아. 언제 시간 내서 그린빌로 내가 찾아갈게. 그때 보자.”

“정말요!?”

“나는 허튼소리 안 해. 잘 자라. 루키.”

뚝-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멍하니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내가 톰 글래빈의 체인지업을 전수받는다구!?”


[백건우 투수의 레퍼토리에 톰 글래빈표 체인지업이 장착되었습니다. 투수력이 +20 상승했습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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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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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허튼소리 안 해 NEW +9 18시간 전 3,349 153 12쪽
51 겁쟁이 사자와 오즈의 마법사 +11 24.09.19 5,240 195 12쪽
50 땅콩 더 줘 +9 24.09.18 6,269 230 11쪽
49 남부의 환대 +11 24.09.17 6,994 232 12쪽
48 타격이 +10 상승했습니다 +11 24.09.16 7,547 253 12쪽
47 좋은 리듬이야 +7 24.09.15 8,355 257 12쪽
46 여기는 너의 놀이터가 아니야 +18 24.09.14 8,715 248 11쪽
45 로켓맨이 로켓 쏘는 소리 +9 24.09.13 9,240 253 12쪽
44 정말 끝내주는 너클볼 +16 24.09.12 9,736 319 12쪽
43 로페즈만 아니면 돼 +23 24.09.11 9,807 340 11쪽
42 이것이 강철 멘탈의 비결 +9 24.09.10 10,298 296 12쪽
41 배트보이까지 그를 따르더군요 +9 24.09.09 10,646 321 12쪽
40 왜 이름이 낯익지? +12 24.09.08 10,960 295 11쪽
39 건방진 뉴요커 녀석 +9 24.09.07 10,986 289 11쪽
38 매덕스와 하이킥을 +15 24.09.06 11,099 303 11쪽
37 로커와 세탁소 +11 24.09.05 11,076 312 12쪽
36 메이저리그 최악의 남자 +7 24.09.04 11,343 295 12쪽
35 마이너리그의 법칙 #3 +6 24.09.03 11,304 296 12쪽
34 종이 한 장의 공포 +9 24.09.02 11,494 291 12쪽
33 플로리다의 3월 하늘 +9 24.09.01 11,722 294 12쪽
32 언더핸드 투수의 평범한 패스트볼 +12 24.08.31 11,928 304 12쪽
31 마이너리그의 법칙 #2 +5 24.08.30 11,745 292 12쪽
30 기다려라. 내가 간다. 투수 왕국. +7 24.08.29 12,050 287 12쪽
29 이것이 대약물 시대 +9 24.08.28 12,002 287 12쪽
28 소금은 어디 있지? +14 24.08.27 11,831 309 11쪽
27 술탄 오브 스윙 +13 24.08.26 11,976 29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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