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조상신이 도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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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훤
작품등록일 :
2024.08.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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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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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증후군

DUMMY

착한 사람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남에게 어떻게든 착한 사람으로 내비치고 싶은 사람을 착한 사람 증후군이라 한단다.

타인을 더 생각하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며 그런 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딱 나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금은 어두운 터널에 있는 느낌일 겁니다. 수험생 여러분들.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하다 보면 꿈은 이루어집니다.”


평생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생각하며 살았다.

난 착한 사람이야.

남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해.

그런 강박을 가지고 살았다.


“요거 이렇게 생각해서 틀린 분 있던데요. 이거 좀 아쉬워요. 이거 틀렸다고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까요.”


내 이름은 차우진.


대한민국 최고 대학교라 할 수 있는 한국대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교수가 꿈이었기 때문이다.

똑같이 한국대 석사를 진학했으나 집안 가세가 기울어져 돈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입시학원 강사 일.

처음에는 아는 형님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일하면서 경력도 쌓고 일도 배워서 더 저명한 학원에서 돈을 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대학 교수의 꿈을 포기하진 않았으니까.

석사 졸업은 못 하고 수료만 했지만, 돈만 있고 시간적 여유만 생긴다면.

꼭 졸업도 하고 박사도 따서 어릴 적 꿈이었던 대학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여전히 대학교수의 꿈만 마음 깊숙이 모셔둔 채 입시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제가 우스갯소리로 항상 하는 말이 있죠? 국어 영역은 별거 없어요. 수학은 세계 공통어고 영어는 외국어잖아요? 못하는 게 당연하죠. 근데 국어 영역은 조금만 공부하면 한국말이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다들 힘내시고요. 다음 수업에서 또 뵙겠습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빠져나간다.

조용한 목례로 오늘도 감사했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학생들을 보며 현실을 견뎌냈다.


“형님. 저 퇴근하겠습니다.”

“벌써?”

“예. 수업도 다 끝났고요.”

“에이~ 그러지 말고. 형이 소주에 삼겹살 쏠 테니까 기출문제 정리하는 것만 좀 도와주라.”

“국어 영역은 이미 제가 다 끝냈죠.”

“야야. 수학랑 영어 쪽은 항상 부족하잖아. 네가 좀 도와주면 좋잖아.”


부탁을 거절하는 법을 모른다.

아니,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나를 입시학원 강사로 이끌어 준 형님.

강태준.

한국대 선배이자 같은 동네 출신.


“그럼 한 시간만···.”

“에이~ 원래 소주는 새벽 1시가 제격이지.”

“그렇게까지 늦게는 안 돼요. 와이프 임신했다고 지난번에···.”

“그래! 형이 유아용품 벌써 예약 걸어놨다? 너 유모차도 등급이 있는 거 알아? 요즘 애들 명품 타고 다니잖아.”


도와준 시간만 따져도 유모차가 아니라 스포츠카 하나는 거뜬히 뽑겠다.

이런 생각에도 행동으론 못 옮긴다.

얘기했듯이 나는 착한 사람 증후군을 앓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역시! 다들 봤지? 이래서 내가 우진이를 좋아한다니까? 얘 대학교 시절부터 의리 있기로 소문이 자자했다니까? 내가 이러니 우진을 챙기지. 안 그래?”

“하하. 그럼요, 형. 저 전화만 좀 하고 올게요.”

“그래그래. 천천히 와. 밤은 길고. 할 일은 많은께.”


애써 미소 지으며 밖으로 나왔다.

미영이한테 전화는 해야지.


“어, 미영아.”

-언제 들어와?

“그게··· 학원에 일이 좀 있어서···.”

- 또 태준이 오빠한테 붙들린 거야?

“그런 건 아니고. 미처 못한 일이 있어서···.”

- 잘도. 태준이 오빠 부탁에 또 넘어갔겠지.

“뭐. 어쨌든. 새벽에 들어갈 거니까 먼저 자. 미안해. 미영아.”

- 됐어. 한두 번도 아니고.


뚝.


전화가 끊어졌다.

차갑게 식은 미영이의 말투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했던 약속을 무를 수도 없는 일.

다음에 미영이 기분 풀어주면 되겠지.


그렇게 눈꺼풀이 피곤이라는 무게에 못 이겨 서서히 가라앉을 때쯤.

일이 모두 끝났다.


“야. 진짜 다들 수고했다. 너희들 덕에 살았어.”


강태준은 기쁜 모양이다.

오늘도 무사히 작은 입시학원을 연명할 수 있었으니까.


“아차! 근데 어쩌지? 오늘 와이프랑 결혼기념일이었네?”

“기념일이면 가셔야죠.”

“기념일인데도 이렇게 있으셨어요?”

“얼른 가세요.”

“진짜 미안. 우진아. 내가 진짜 다음에 밥이라도 쏠게. 미안!”

“아니에요, 형. 얼른 들어가세요.”


뻔한 레퍼토리였다.

여기 있는 강사들은 전부 다 알고 있다.

저놈의 핑계를.


일부다처인지 결혼기념일만 일 년에 두세 번은 있는 듯했고.

멀쩡히 살아계시는 할머니를 고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건강하신 부모님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지병을 얻으신다.

이래서 거짓말도 똑똑한 사람이 잘 친다고 하지 않던가.

치밀하기라도 하면 얄밉지 않기라도 하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시학원 원장이라는 타이틀에 모두 용서한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네! 내일 봬요.”

“차우진 쌤. 진짜 감사해요. 덕분에 살았어요!”

“진짜요!”

“감사해요!”

“아닙니다. 다 돕고 살아야죠.”


이런 순간에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다.

이게 내 도파민이고 아드레날린이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래도 새벽 1시에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 듯싶었다.

솔직히 나도 회식 같은 건 원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일찍 집에 가는 게 낫지.


빈손으로 돌아가긴 그러니까.

평소 먹고 싶어 했던 복숭아를 산다.

혹시라도 깨어 있으면 야식으로 즐겨 먹던 치킨도 한 마리 사고.

맥주는 임신해서 못 마시니까 건강에 좋은 콤부차라도 사자.


양손에 가득 담긴 봉지를 움켜쥐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했다.

미영이도 충분히 이해해주겠지.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집 앞에 섰다.

혹시라도 잠들었으면 깨지 말라고 정말 조심히 문을 열었다.


불은 다 꺼져 있네.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서 산 치킨은 냉동실에 넣어둔다.

요즘 에어프라이어가 잘 나와서 냉동해 놓았다가 돌리면 방금 튀긴 것처럼 바싹하게 먹을 수 있다.


내일 먹어야지.


다시 살금살금 방으로 향한다.

문 사이로 불이 켜진 걸 보니 아직 깨어 있나?


“그렇다니까. 남편은 전혀 몰라.”


그때,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대화.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언제 알려주긴. 곧 알려줘야지. 근데 나도 힘들어.”


무슨 얘기지?

뭘 알려준다는 거지?

아, 혹시 성별?


정말 궁금하긴 했다.

태어날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솔직히 딸을 선호한다.

아들이라도 좋겠지만.

딸이면 더 좋을 거 같다.


“그 둔탱이가 자살이라도 하면 어떡해? 마음 여린 거 알잖아, 자기도.”


심장이 멎는 듯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혹은 친구 사이에 자기라고 하기도 하니까.

여자들끼리는 애칭으로 ‘자기야’라고 부르기도 하지 않는가.


“위자료도 준비해야 하고. 이래저래 나도 바빠. 자기도 좀 돕든지.”


너무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사람은 가장 먼저 부정한다.


잘못 들은 거겠지.

다른 사람 얘기겠거니.

나와는 상관없어.

우리 미영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변호사도 고용했다고? 벌써? 그럼. 곧 얘기하긴 해야지. 하아··· 나도 힘들어. 당신 애도 뱄는데 이런 건 전부 나한테 떠넘기지? 아니야? 다 도와준다구? 흥. 뭐··· 그러든지.”


그다음에는 사고가 고장 난다.

올바른 사고 자체가 되지 않는다.


몸은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너무나 절실하게 방 안으로 들어가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입은 물론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사랑해. 곧 합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기다려. 그래도 출산일 전까진 다 해결될 거 같아서 다행이네.”


그리고 찾아오는 마지막 단계.

배신감과 분노.


이때부턴 고장 났던 사고도 다시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씩씩대며 그녀 앞에 섰다.


“미영아!”

“왔어?”


차분하게 식은 얼굴.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저 눈빛까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들켰다는 수치심이나 부끄러움 따위는 없는 듯했다.

일어나야 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이.

이 모든 걸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몰래 꾸미고 있었다는 듯이.


“방금··· 무슨 통화야?”


일말의 희망.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


“다 들었어?”

“어. 이혼이니 변호사니··· 전부 무슨 얘기야? 친구? 지인?”

“하아··· 차우진.”

“어?”

“다 알잖아. 너도.”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섹스리스 부부가 된 지도 오래되었다.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였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거사는커녕 근처에도 구경 못 했던 상황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미영이는 내가 술에 거나하게 취했을 때.

그때 했다고 둘러댔다.


나는 또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

사실 의심한다는 전제 자체가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의심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지만.


난 미영이를 의심하지 않아.

난 착한 사람이니까.

그놈의 착한 사람 증후군이 나를 집어삼켰다.


“누구야? 누구랑··· 도대체 누구랑?”

“너도 아는 사람이야. 근데··· 알면 더 충격일 텐데.”

“그러니까. 누구냐니까?”

“백도현 교수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하필이면.

왜?


하필 한국대 국어국문학과 지도 교수님과 바람이 나냐?

꽤 젊은 나이에 대학 교수까지 되신 엘리트 교수님이셨다.

나한테는 은사와도 같은 분인데.


아무리 젊어도.

지금 40대신데.


“음··· 우진아. 언제까지 너 이렇게 강사 일 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살 순 없잖아.”

“대학 교수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 박사 학위만 받으면 되는데.”

“석사 졸업도 못 했잖아.”

“수료했어. 졸업이나 마찬가지야. 진짜. 조금만 더 하면 됐었다니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졸업은 못 한 거잖아.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강사 일에 전전긍긍하면서 허송세월이나 보냈고.”


미영이는 데이트하는 동안에 쭉- 말했었다.

내 꿈이 너무 멋있다고.

자기도 대학교수의 아내가 되는 게 꿈이 되었다면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미영이는 차우진을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

대학 교수 타이틀을 가진 남편이 가지고 싶어서 결혼했던 거였다.


“어쨌든. 그렇게 됐어. 참고로. 하··· 이건 나중에 말해주고 싶었는데. 애도··· 백도현 교수님 아이야.”


손뼉이 맞은 적이 없으니.

내 애는 당연히 아니겠지.


“우리 원만하게 합의하자. 우리 쪽은 이미 변호사 고용했거든? 너도 선임만 해. 자기··· 아니 백도현 교수님이랑 나는 위자료 충분히 챙겨줄 용의가 있으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미영아. 이러지 말자. 우리 다시 생각해 보자.”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 그딴 소리가 나와?”

“내가 더 잘할게. 이건 아니야.”

“더는 할 말 없어. 나 그래도 홀몸이 아니니까. 잠은 네가 나가서 자줘? 알겠지?”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다.

그런데 입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쌍욕이라도 날리고 싶었다.

빌고 싶기도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위자료랑 재산분할은 어떻게 할 건지도 궁금했다.


이 모든 의문과 궁금증을 끌어안고 뒤로 돌았다.

더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거 같아서.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더 들었다가는 내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거 같아서.


“저기.”


순간 희망의 불꽃이 타올랐다.

역시.

다시 잡아주겠지.


“조정기일에 봐.”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희망도.

내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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