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조상신이 도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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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훤
작품등록일 :
2024.08.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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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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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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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인연

DUMMY

“정 교수?”

“네, 교수님.”


정시은 교수 연구실에 들린 임동규 교수와 백도현 교수.

이제 같은 식구니 챙기려는 심산이었다.


“같이 식사라도 하지?”

“그래요, 지난번엔 얘기도 많이 못 나눴으니.”

“음.”


정시은은 잠깐 생각했다.

그리곤 대답했다.


“선약이 있어서요. 식사는 다음에 하시죠.”

“하하. 그래요? 중요한 약속입니까?”


정시은은 다시금 생각했다.

중요한 사람인가.

당연하다.


“네. 제가 한국에서 제일 관심 있는 사람이거든요.”

“하하. 정 교수가 그만큼 관심 있는 사람은 우리도 관심 있는데?”

“그러게요. 임동규 교수님. 이럴 게 아니라 다 같이 식사하면 어떤가요?”

“오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요. 정 교수는 약속도 지키고. 우리랑 식사도 할 수 있고. 일석이조 아닌가? 껄껄껄.”


본인 의사는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맞아떨어진다며 좋아하는 두 교수.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시은은 입을 뗐다.


“안 되겠는데요?”

“에?”

“하, 하하.”


단호한 정시은의 대답에 두 교수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감히 후배 교수가 선배 교수에게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니까.

특히 국어국문에서 삼대장이라 불리는 임동규, 백도현 교수는 이 학과에서 실세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각박하게 그러지 말고.”

“그래요. 우리도 다 정 교수를 생각해서···.”

“생각하시면 그러면 더 안 되죠.”


단호박도 이런 단호박이 없었다.

아무리 미국에서 생활했다지만 한국 문화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니, 미국이라 해도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붙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특별히 초엘리트라는 이유로 같은 그룹에 끼워주겠다던 임동규, 백도현 교수.

그들의 선택을 무시했다는 건 권력에 도전하겠다는 것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시은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민망하게 서 있는 두 교수를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아직 안 가셨어요? 저도 곧 약속 시간이라서요. 먼저 가보세요, 교수님들.”

“어? 어어. 진짜 같이 안 가?”

“그런 거 같습니다, 교수님. 저희끼리 가시죠.”


쫓겨나듯 밖으로 나온 두 교수.

한국대에서.

그것도 국어국문학과에서 두 교수를 이런 식으로 대접해선 절대로 안 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삼대장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교수진은 있어도 그 권력에 도전했던 사람은 모두 괴롭힘에 못 이겨 그만두고 말았다.


대부분 무서워서가 아니라 아니꼽고 더러워서 같이 일 못 하겠다는 이유였다.

물론 권력에 대항할 힘이 없었기에 도망치듯 전부 나가떨어진 거긴 하지만.


“허 참.”

“하하, 임 교수님이 참으세요.”

“내가 나이 먹고 이렇게 찬밥 신세였던 적이 있었나?”

“너무 젊어서 사회생활을 잘 모르나 봅니다.”

“칫! 내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줄 알고.”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임 교수님. 제가 적절히 조치를 취해놓겠습니다.”

“그래? 우리 백 교수만 믿어?”

“그럼요, 교수님.”



*



“어쩐 일이야?”

“내가 졸업한 모교도 못 오나?”


날카롭게 말했다.

솔직히 계획으로는 무심하게 말하려던 거였는데.

이러면 더 찌질해 보이는데.


“나 때문에 안 올 줄 알았지.”

“내가? 너 때문에?”

“너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속 좁고. 감정에 휘둘리고.”


미영이는 항상 남을 솔직하게 평가하곤 했다.

사귀거나 결혼했을 때는 그걸 장점이라 생각했었는데.

헤어진 뒤에 들어보니 개싸가지 없네?


“이젠 안 그러려고. 인생을 너무 멍청하게 살았어.”

“그래. 퍽이나 잘도.”

“그 비꼬는 성격은 어디 안 가네.”

“좀··· 불편하다, 우진아.”

“뭐가?”

“너 이렇게 학교에서 만나는 거. 나야 남편 될 사람이 한국대 교수니까 종종 들려야 하잖아. 근데 넌 안 와도 상관없지 않아?”


전남편 앞에서, 그것도 바람피워서 이혼한 주제에.

떳떳하게도 남편 될 사람이라고 하는 걸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뻔뻔하게도 나더러 모교도 오지 말라고?


“나도 만날 사람이 있어서 온 거야.”

“누구? 후배들이야 밖에서 만나면 되잖아. 굳이 학교까지 찾아올 건 없는데.”

“너처럼 미래에 아내가 될 사람일 수도 있지.”

“하! 네가? 아직도 나 못 잊어서 이러는데?”

“무, 무슨 소리야?”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낮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니긴 하지만.

밤에는 그 누구보다 외롭고 쓸쓸했다.


젠장.

이 여자 앞에서 모양 빠지게 이게 무슨 짓이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그럼 더 모양 빠지잖아.

이렇게 살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솔직히 미영이를 만나기 전에는 호기롭게 다시 만나면 쌍욕을 퍼붓고 바람피웠다는 비난과 힐난을 해주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착한 사람 증후군이 다시 도진 건지.

미영이 앞에 서니 예전의 내 모습으로 다시 돌아갔다.


깊은 심연에 처박힌 것만 같은 기분으로.

밑으로, 더 밑으로 기분이 촤악- 가라앉았다.


“자기!”


그때.

한 줄기 희망이라도 내리듯 찬란한 빛이 내리쬐었다.


“음?”

“여깄었어? 기다렸잖아.”


정시은.

평소와는 다르게 대학교에서는 단정한 머리와 동그란 안경까지.

투피스 정장까지 입은 그녀의 모습은 전문가다워 보였다.


“시은··· 아.”

“오빠. 누구야?”


어느새 내 옆에 착- 붙어서 팔짱을 끼는 정시은.

그 모습에 미영이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아, 그···.”

“전처예요. 전미영이라고 해요.”

“아~ 그 개싸가지?”

“어?”

“개, 개싸가지? 야, 차우진. 너···.”

“저기요. 죄송한데. 저희 오빠한테 야, 너. 이런 말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요.”


정시은을 오래 본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이런 성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 우진이는 저랑 지낸 날만 따지면···.”

“결국 헤어지셨잖아요. 남이 되기로 하셨으면. 그 결정을 좀 따르셨으면 하는데?”


말문이 막혔는지 미영이는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기가 찬다는 듯이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가자, 오빠.”

“야···.”


‘야’라는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불타오르는 눈빛을 쏘아내는 정시은.

예쁜 것도 예쁜 거지만 옅은 푸른빛의 눈동자에 인상을 쓰면 차가운 도시여자 같은 느낌이라 그런지 미영조차 흠칫한 모양이었다.


“어··· 우진··· 님? 어쨌든. 내 얘기 이해했죠?”

“아니.”

“너 진짜! 아, 아니. 우진 씨.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고···.”

“이 여자. 내가 만나는 여자야.”


서로 합의되진 않았지만.

먼저 연기를 시작한 건 정시은이었다.

이건 암묵적인 동의겠지.

나를 도와주겠다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도 몰라. 한국대. 더 자주 오게 될 수도. 불편하면 네가 오지 마.”

“그래. 그 잘나신 여자분께서는 뭐 하시는 분이라 한국대에 드나드는 건가요? 보아하니 학생은 아닌 거 같고? 혹시 보험이라도 팔아요?”

“대학교수요.”

“에?”

“한국대 국어국문학과 정시은 교수라고 해요.”



*



‘정말 기가 막혀.’


전미영은 씩씩- 대며 길을 걸었다.

다시 생각해도 열받는다.

거짓말을 해도 그런 거짓말을 한다고?


딱 봐도 3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에 대학교수?

그것도 새로 남편이 될 사람이 있는 국어국문학과?

넌 잘못 걸렸어.


괜히 있어 보이려고 거짓말했다가 창피만 당했지, 뭐.

그리 생각했다.


“백도현 교수님.”

“음?”


인문관 앞에 임동규 교수와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시는 백도현 교수를 봤다.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 외치자 백도현 교수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아, 안녕하세요. 임동규 교수님.”

“어? 아아. 그··· 허허. 난 이만 먼저 들어가 보겠네, 백 교수.”

“아, 예. 교수님.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그래.”


눈치를 챈 임동규 교수가 인문관 안으로 들어갔다.


“왜 왔어?”

“내가 어디 못 올 데 왔어요?”

“아니. 굳이 이렇게 찾아오는 이유가 뭐야? 혹시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일단 조용해질 때까지는 오지 말라고 했잖아.”

“산부인과요. 남편도 같이 오라고 하잖아요.”

“나 바쁜 거 몰라? 내가 꼭 같이 가야 해?”

“그게··· 같이 가야 한다고···.”


백도현 교수는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한숨에서 그의 생각과 앞으로 할 말이 느껴질 정도였다.


“미영아. 임신해서 힘든 건 알겠는데. 나도 똑같이 힘들어. 너만 힘든 게 아니잖아.”

“알아요. 그냥···.”

“앞으로 학교로 찾아오지 마. 임 교수님도 이상하게 보시잖아. 쯧.”

“알았어요.”


참담함을 느낀 전미영.

이혼을 결정한 이후부터 이렇게 되리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일이었기에 주워 담을 순 없었다.


그저 자기합리화로 더 나은 환경과 본인이 그토록 꿈꾸던 교수 남편을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끔 이런 백도현 교수의 행동을 보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전남편이었던 차우진을 괴롭히고 싶었다.

그놈이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별 볼 일 없는 놈이 되어야만 전미영이 만족스러울 거 같았다.


“저기··· 국어국문에 정시은 교수라고 있어요?”


본인 귀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전남편이 지금 만나는 여자가 얼마나 형편없는 거짓말쟁이인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네?”

“정시은 교수. 어떻게 아냐고? 벌써 밖에까지 소문이 났나?”

“그, 그게 아니라··· 우연히. 어떤··· 분이에요?”

“칫. 나이 서른도 안 돼서 대학교수가 된 초엘리트지 뭐. 아주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몰라.”

“서른도 안 돼서 교수요?”

“나이는 정확히 몰라. 이번에 하버드, 예일, 하버드 코스로 졸업한 신임 교수가 있다길래 기대했더니 아주 싸가지가 무슨.”


전미영의 마음은 더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이혼하면 차우진 성격상 나락 밑으로 처박힐 거로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끼며 위로받고 싶었던 건데.


이건 그녀가 생각한 모습이 아니었다.

차우진은 승승장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안 돼.



*



“미안해요. 못 볼 꼴을 보였네요.”

“아니에요! 제가 도움이 좀 됐어요?”


정시은은 밝게 웃었다.


“많이요. 솔직히 좀 힘들었거든요.”

“휴~ 다행이다. 저는 혹시나 오지랖 부린 건 아닌가 싶었거든요.”

“전혀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난처해 보이길래. 도와주고 싶었어요.”

“조, 좋아하는 사람이요?”

“네. 제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아직도 적응이 잘 안된다.

이렇게 훅 들어오는 행동.

그런데 그게 딱히 싫진 않았다.


“푸흡.”

“왜 웃어요? 왜왜?”

“아까 연기한 게 조금 생각나서.”

“아앗! 지금 도와준 사람 놀리기에요?”

“아니, 근데 연기는 어디서 배웠어요? 아주 앙칼지던데요. 마치··· 앙칼진 고양이 같았어요.”

“그, 그만해욧! 부끄러우니까.”


날 위해 성격에 맞지도 않는 연기까지 해준 사람이다.

적어도 이 사람의 마음을 배신하고 싶진 않았다.

어쩌면 남은 인생에서 유일하게 다시 믿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밥 사준다면서요?”

“아, 맞다! 생각해 봤는데요. 한국대 다녔으면 학식은 지겨울 테니까. 밖에 나가서 사 먹어요. 그래도 소원권으로 사주는 건데. 근사한 거 먹어야죠.”

“아뇨. 전 시은 씨랑 같이면 학식도 괜찮은데요?”

“오올. 방금 쫌 설렜는데요?”


참 이상한 인연이었다.


박미나와 엮일 줄만 알았던 그날 밤.

뜬금없이 침대 옆에 누워 있던 사람이 정시은이었다.


밤을 함께 보낸 사이인데.

다음에 만날 때 처음 소개팅 나온 사람처럼 설레고 격식을 차렸다.


첫 만남부터 침대에서 뒹굴었던 사이에.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관계를 이어 나가는 중이다.


이보다 더 이상한 인연이 또 있을까?


“우진 씨. 뭐해요? 빨리 와요. 늦으면 줄 서야 해요.”

“네, 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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