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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reak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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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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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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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항상 옳다

DUMMY

사장의 꿈을 꾸는 도비들이라면 참신한 계획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현실에 두들겨 맞기 전까지는.


지난 2년 동안의 내가 주도한 사업은 대차게 말아먹었다. 가장 처음 시도했던 건 이씨 집안 전통의 익숙한 밀무역.


물론, 그냥 아버지처럼 왜관을 통해 주변국을 상대로 한 평범한 밀무역이 아니다.


그건 머슴 김씨가 해도 충분한 일. 나는 외교용으로 익혔던 프랑스어를 살릴 계획이었다.


미래인 특권으로 공무원 시험 때 외웠던 19세기 중반 이후 실록의 이양선 기록인 ‘셀 수 없이 많다.’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조선 조정이야 이양선에 대해서 게거품을 물어도 현지 주민들까지 그러지는 않는다.


본능적으로 저것들이 술이니 담배가 있는 것도 알고 외국 선원들도 필요한 물건이 있으니 기껍게 나선다.


옷도 좀 벗겨가고 자잘하게 밀매도 하지만, 그건 엄연한 ‘거래’다.


내가 노린 건 이 과정에서 약간의 언어를 첨가해 이득을 볼 생각이었다.


한 달 8회, 40만 원(부가세 별도)인 불어 학원비가 아쉽지 않은 계획이지 않은가?


“나리, 언제까지 계시려고 그러십니까?”

“내 눈에 전부 담지 못하는 웅대한 대양이 저 뒤로 끝없이 뻗어 있다는 생각에 의(義)와 사기(士氣)가 솟아서 그러네.”

“한성에서 유람을 오셨다지만, 저희 사또께 인사는 올리셔야지 않겠습니까.”

“허어, 내 가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좀 더 바다를 눈에 담아 두고 싶다는 것인데 그러는가.”

“햇빛은 따갑고 바람은 짜기만 하니 혹여 나리께서 몸이 상하실까 봐 드리는 말이지요.”

“···알겠다. 가자. 관아로.”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유야 많은데 우선 이 시대에 유랑하는 외부인이란 이족 보행 지갑이고, 21세기 기준으로는 자물쇠 없는 자전거다.


그렇기에 털리기 싫으면 온몸으로 선비인 척하며 노비와 말도 끌고 다녀야 하고, 지방에 가면 서울 선비로 지방 향반들과 인사는 당연히 기본이다.


악수 좀 하면서 명함 교환 하고 차나 마시는 수준일까? 그럴 리 없다.


소박하면서 정겨운 인사란 선물이 동반되는 일. 그렇게 가는 정이 있어야 거기서 단칸이래도 숙소도 받고 잡곡밥에 무짠지라도 얻어먹는다.


즉, 어디를 가면 다 돈이다. 집에 있는 말과 노비를 포함해 잡다한 소모품 외에도 인사비가 든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어찌 젊은 나이에 그리 가벼이 유랑을 다닌다는 말인가. 무릇 선비라 하면 응당 학문을 익혀 출사하는 것이 바른 일이 아니겠는가.”

“현감 나리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양친을 잃고 풍수지탄함에 어디에도 뜻을 내비치기 힘들어 큰 바다를 안고 높은 산에 오르면 굳은 포부가 생기지 않을까 하여 그랬습니다.”

“허어, 그랬소? 참으로 딱한 일이오.”


딱하면 선물을 받고 표정이 들썩이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이지.


이원현감(利原縣監) 이태규(李泰逵)는 딱 그 말만 하고는 공무로 바쁘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답했다.


그렇게 찾아가는 통역 및 중개 수수료 사업은 처참하게 망해 버렸다.


그래, 원래 발로 뛰는 건 뿌듯함은 많이 줘도 실속은 없지 않은가. 인생은 딸깍이지. 암.


[서양의 이양선은 19세기가 되면서 조선 전국 바다 꾸준하게 출몰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돌아다녔는데도 한 번도 못 봤다면 운이 나쁜 걸지도 모릅니다.]


아니, 나쁜 거야. 알아. 그렇게 애매하게 말해 봐야 살살 긁는 것 같아 더 짜증이 난다.


첫 아이템은 폐지. 그렇다면 바로 플랜 B, 다음 사업을 선보일 차례였다.


“직접 찾아갔는데 한 번도 볼 수 없었다면, 애초에 거기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반대로 아예 자리 잡은 곳으로 가면 최소한 만나기라도 하겠지.”

“어디로 뫼시면 되겠습니까, 나리?”

“한성으로 돌아가자꾸나.”

“예, 알겠습니다.”


애초에 사업을 해도 서울에서 했어야 했다. 맨 처음 동래에서 한성으로 갈 생각을 했던 것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람이 많으니 기회도 많을 것이란 확신도 있지 않았는가.


한성으로 돌아와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새로운 황금 루트(밀수용)를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법한 일은 누군가 먼저 생각했다는 게 기본.


졸업 논문을 쓰면서 백 번도 더 느꼈던 감정을 10배쯤 더 느끼고 겨우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이걸 정말 하시려 그럽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바늘만 들여와도 들인 돈에 최소 2배, 많으면 5배는 남길 거라고 한 건 자네가 아닌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일이 워낙에 위험합니다. 차라리 몇 다리 건너 아는 의주 만상에게 기름칠 좀 해 놓으면 다소 비싸기는 해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 가격에 받으면 이문이 남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만 볼 수도 있으니 안 된다고 한 것도 김 씨 자네고 말이야.”

“하지만, 도련님···.”

“김 씨, 장사가 하고 싶나?”

“예.”

“그럼, 열심히 좀 해 보게. 내가 제천(堤川)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위치까지 말해주지 않았나?”

“도련님, 자칫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일입니다.”


한사코 거부하는 김근택. 무슨 일이길래 숙련된 밀무역 조교조차 거부하는 걸까.


바로, 조선 대목구 주교의 연락인 루트였다.


* * *


제트엔진으로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일반인도 얼마든지 탈 수 있는 현대에도 해외 선교 여행이라는 건 제법 큰 돈이 드는 일이다.


그런 선교 여행이라는 것도 사실은 말이 선교지 사실상 종교를 테마로 한 패키지 여행에 가까운 게 현실.


잘못하면 목이 날아가는 ‘야만적인 미개국(그들의 종교적 관점에서)’에 자진해서 가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19세기 조선에 선교를 위해 오는 선교사들은 좋든 나쁘든 진심이다.


조금만 삐끗하면 목이 날아갈 지구 반대편까지 수 달씩 걸리면서 배를 타고 가는 건 진심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그런 선교사들에게도 돈은 중요한 문제였다. 일단은 먹고살아야 복음 전파도 할 것이며, 주님의 진정한 뚯도 뭐가 있어야 실천할 것 아닌가?


“아주 평화롭지 않습니까. 혹자는 조선인들이 더럽거나 냄새난다고 혹평하지만, 그것 겉껍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내면이죠. 하느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지상에 내셨을 때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태초의 마음이 어떤 뜻이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주어진 현실과 고통을 외면하거나 도망가지도 그렇다고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거죠.”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건 어느 곳의 누구나 같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군요. 반갑습니다. 프랑스어가 능숙하시군요. 발음이 조금 특이하기는 한데··· 혹시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스스로 익혀 그런가 봅니다. 선비의 일은 나날이 익히고 배우는 것이 업이니 책을 통해 익혔습니다. 많이 이상합니까?”

“오, 아뇨! 제가 만났던 조선인 중에는 가장 완벽합니다.”


제4대 조선 대목구장 시메옹 프랑수아 베르뇌(Siméon―François Berneux) 주교.


그는 자신의 앞에 찾아온 앳되어 보이는 조선 선비와 놀랍게도 프랑스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조선인이 프랑스어를 하는 건 베르뇌 주교에게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완벽에 가까운 발음은 놀라운 일이었다. 특히나, 혀를 튕기면서 바람을 내 보며 성대를 떠는 r 발음은 프랑스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바쁜 시간을 내주셨을 텐데 편하게 얘기드리겠습니다. 본래라면 사제가 전교에 있어 금전을 얘기하는 것은 경망스러운 바이기는 합니다만···.”

“이해합니다. 재화가 어찌 꼭 나쁘기만 하겠습니까.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모여 누구의 손에서 어찌 쓰이느냐가 중요하겠지요.”

“감사합니다. 이번에 저희 목구에서는 북경까지 가는 연락원을 페켱(Pékin, 베이징) 보내려고 합니다.”

“그렇군요.”


‘상관없다.’ 혹은 ‘그저 알겠다.’라는 무미건조한 반응. 분명 이 조선인 사내도 앞뒤 사정을 다 알고 왔을 터인데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베르뇌 주교는 더 자세히 얘기할까 싶었지만, 목회자의 심장이 잠시 그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너희가 하나님과 보물을 같이 섬길 수는 없느리라.’


그 짧은 침묵을 이회신은 단번에 잡아내고는 입을 열었다.


“서학은 전혀 아는 바가 없으나 좋은 곳입니다. 고아들도 맡아 돌보시고 전교 모임에 조만간 책까지 내시겠다 들었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그걸 위해서 내년부터까지는 못해도 4명의 목자가 이 땅을 더 찾을 겁니다.”

“많이 들겠군요. 아주.”


구체적으로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초가와 기와가 섞인 지붕을 천천히 훑는 이회신.


베르뇌 주교는 그 옆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안도감을 느꼈다. 필시 주님께서 안배하심이리라.


먼 동방에서 복음의 싹이 자생한 것이 기적이나, 주의 뜻이라면 먼 길을 가는 데 필요한 길잡이도 당연히 두셨으리라.


“도움이 필요합니다.”

“11월에 출발이라고 들었습니다. 2명이라고요?”

“그렇습니다.”

“1년에 얼마면 교구 사람들이 넉넉히 지내겠습니까.”

“2만 5천 프랑··· 아니, 적어도 3만 프랑은 있어야 넉넉합니다. 밥을 못 먹는 고아들부터, 지금 본국에서 보내주는 돈으로만 생활하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잠언에 이르길. ‘듣기 전에 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 당한다.’ 하였다.


그렇다면 듣고 답하되 약점을 묻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라고 해야 하겠는가.


‘박애(Fraternité, 博愛)라고 할 것이로다. 아멘, 정녕 주께서 보우하심이시란 말씀이십니까!’


계속된 핍박과 백해였다. 성인은 옳다면 가시밭길이라도 능히 걸어야 한다 하셨지만, 베르뇌 주교는 날마다 눈을 감고 뜰 때마다 시험에 드는 자신을 책망했었다.


뒷짐을 지고 멀어지는 젊은 선비를 보면서 주교는 생각했다. 다시 한번 믿어 봐도 좋지 않겠는가라고.


그가 설령 이문만을 찾는 상인이라고 해도 좋을 일이다. 속세의 길을 걸으며 사후의 일을 걱정하다가 신의 뜻에 귀의하는 것은 유럽의 오랜 포교였으니까.


* * *


프랑스 선교사를 통해서 신규 루트를 개척한다고 해서 무슨 천주교에 적을 두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은 경신년, 1860년.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인 병인박해가 일어날 1866년까지 6년이나 남았다.


6년이면 연례행사로 있는 연락원 파견이 적어도 3~4번은 진행된다. 그렇다. 딱 세 번만 천주교 코인을 타면 될 일이다.


21세기 비트코인 투자야 1억을 찍고 나서 곧바로 10억까지 갈 줄 알았으니 9,500에 물렸다지만, 지금은 정확한 정거장을 아니까 안전투자가 확실하다.


게다가, 지금 조선 내의 분위기로는 앞으로 천주교 복음 전파가 과거처럼 과격하지는 않을 거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렇다는 소리는 내릴 때 권리금 프리미엄도 두둑이 받을 수 있다는 소리.


이걸 안 사? 안 사면 그게 바로 역사적 배신이자 시대적 손해다.


[축하합니다. 처음으로 조선에서 직업을 얻으셨습니다. 잠상(潛商). 누군가는 그런 멸칭으로 부르겠지만, 자유로운 국제 교류가라고 불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신의 목적이 돈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의·식·주를 모두 얻은 당신을 응원하며 이제 구체적인 단계를 제시해 성공을 돕겠습니다!]


[한성부 정선방의 8살 꼬마 개똥이를 찾아 친해지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 생각을 하니까 곧바로 뜨는 알림. 그래, 나도 안다.


심지어 8살 개똥이가 미래에 임금이 될 운명인 고종이라는 것도 안다.


한성에 올라오고 살 집을 구한 순간부터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고종의 명신이 되어 조선을 개혁하는 건 쉽게 실패한다. 이미 평행 세계에서 여럿이 했다가 소인배 같은 임금의 기질에 비명횡사하고 만다는 건 유명하니까.”


위로는 임금을 따르고 아래로는 만백성을 이끌어 나라를 개혁한다. 뭐 그런 이상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접근하면 안 된다.


고종이라는 애새끼를 달랜다. 나라가 근본도 없이 꼬라박는 미래를 구한다. 이런 현대 외교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 명복이의 성격이 그런 건 불행한 유년 시절이 크다고 본다.”


기다려라. 개똥아. 조만간 좋아하는 커피랑 와플 사서 만나러 가마.


커피 수입은··· 김 씨가 잘 해주겠지.


작가의말

1. ‘이양선이 셀 수 없이 많다.’ 라는 표현은 헌종실록 15권, 헌종 14년 12월 29일 己巳 1번째기사에 등장합니다. [是歲夏秋以來, 異樣船, 出沒隱現於慶尙全羅黃海江原咸鏡五道大洋中, 或漫瀾無以蹤跡之, 或下陸汲水, 或叉鯨爲糧, 殆無以計其數也。]


2. 이원현감 이태규(李泰逵)는 귀양을 가면서도 뇌물을 받아 탄핵의 탄핵을 받은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3. 조선인이 더럽거나 냄새난다고 혹평을 했던 건 선교사들 기록 중에 제법 많습니다. 다만, 주어진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 순수성을 지녔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죠. 김장춘, 세밀한 일러스트와 희귀 사진으로 본 근대 조선, 살림출판사 를 참고했습니다.


4. 조선대목구에서 매년 11월에서 5월 사이에 북경으로 가는 연락원을 통해 밀무역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장사 수완이 좋지는 않았는지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합니다. 방상근. (2021). 베르뇌 주교의 조선 선교 활동 ―조선대목구의 수입과 지출을 중심으로―. 교회사연구. 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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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원래 신입은 크게 내지른다. (1) +12 24.08.23 1,652 96 13쪽
20 수강생과 현장답사 (2) +9 24.08.22 1,695 100 13쪽
19 수강생과 현장답사 (1) +11 24.08.21 1,798 97 14쪽
18 민생 일타 강사 이회신과 수강생 개똥이 (2) +6 24.08.20 1,822 100 15쪽
17 민생 일타 강사 이회신과 수강생 개똥이 (1) +11 24.08.19 1,878 105 14쪽
16 태풍이 오고 있다. (2) +10 24.08.18 1,804 96 13쪽
15 태풍이 오고 있다. (1) +8 24.08.17 1,810 103 13쪽
14 박규수와 사랑방 손님 +13 24.08.16 1,882 103 14쪽
13 커피가 연결해준 인연. +8 24.08.15 1,956 99 13쪽
12 이게 진짜 커피다. +14 24.08.14 2,006 116 13쪽
11 커피, 진짜 콩으로 만든. +13 24.08.13 2,041 112 14쪽
10 인플레이션과 착취, 조선의 참 맛. +6 24.08.12 2,046 103 13쪽
9 나와 봐, 내가 하게. +11 24.08.11 2,156 119 13쪽
8 한양의 효도는 비싸요 +7 24.08.10 2,215 110 14쪽
7 임금님도 드시는 우유죽 +10 24.08.09 2,296 120 13쪽
6 지구 반 바퀴, 조선 버터. +11 24.08.08 2,278 121 13쪽
5 아침 출근길 벼슬인의 필수품, 라씨. +7 24.08.07 2,288 123 14쪽
4 젖 팝니다. 신선한 젖 팔아요. +13 24.08.06 2,402 119 13쪽
» 돈은 항상 옳다 +10 24.08.05 2,599 106 13쪽
2 인 서울이 기본 +8 24.08.05 2,810 116 13쪽
1 과로사 하는 공무원 +14 24.08.05 3,279 1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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