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과 함께 돌아온 귀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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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걸림
작품등록일 :
2024.08.13 17:51
최근연재일 :
2024.09.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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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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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화르르륵-.


구름을 뚫고 높이 뻗은 거대한 신목.


판테아 대륙의 지붕이라 불리는 단 한 그루의 세계수 아름드리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까드득.


수액이 증발하는 소리는 비명이오.


툭툭 무너져 내리는 나뭇가지는 끊어지는 사지니라.


불길은 또 어찌나 뜨거운지 세계수를 둘러싼 호수 밑바닥은 메말라 쩍쩍 갈라졌다.


지평선 끝까지 사방천지가 새빨갛다.


흡사 인세의 종말을 보는 듯했다.


"홍홍홍, 훌륭한 불쏘시개입니다."


날카로운 눈매가 호선을 긋는 백은발 미청년, 알랭 드 아름드리.


짙은 눈화장과 가느러진 미성은 어딘가 거북스러웠다.


드넓은 어깨와 탄탄한 체격, 190의 키만 아니었다면 필시 여성으로 오인했으리라.


그 옆에 선 탄탄한 근육질에 짧은 팔다리, 수염이 명치 끝까지 길게 자란 중년 바툼은 그를 미친놈 보듯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크흠, 정신나간 귀쟁아. 네 어버이가 장작이 되어 재가 되는데도 웃음이 나오냐?"


귀를 쫑긋거린 엘프 알랭은 시선을 그대로 둔 채 조소를 지었다.


"땅굴이나 파는 난쟁이가 뭘 알겠습니까. 자고로 모든 어버이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법입니다. 홍홍홍"


"쯧, 하여간 네놈들 혓바닥은 음흉하기 짝이 없다. 존속살해의 패륜을 부모의 조건없는 희생 내지 사랑이라 하질 않나"


기겁하는 드워프 바툼은 제 팔뚝을 쓸어내리며 중얼댔다.


청력이 뛰어난 엘프는 못 들은 척 흘러넘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모를 덤덤한 표정이었다.


"어버이가 이리 잘 탈 줄 알았으면 내가 진즉에 태워드렸을거늘.. 아쉽군요, 홍홍홍"


뜨거운 불길을 응시하는 알랭의 안광이 붉은 이채를 발했다.


짧은 회한과 슬픔, 자책감과 분노가 다채롭게 섞여있는 듯했다.


스으으-.


두 사람 뒤로 한기가 가득한 보랏빛 사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짙은 사기 아래에서 낡아 헤진 로브를 뒤집어 쓴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침묵하라, 주군이 오신다—"


서늘하고 무거운 음성이 귓가가 아닌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울렸다.


"크흠, 음침한 놈이 납셨군"

"홍홍홍, 더 본의 음성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로브 안 시커먼 어둠 속에 유일한 광원인 새빨간 동공 한 쌍은 여전히 아득히 먼 창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세계수 꼭대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일순 찌그러졌다.


공기가 쩌릿하게 울릴 거대한 존재감이 지금 막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찰나.


더 본이 반사적으로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양팔을 축 늘어뜨렸다.


떨리는 새빨간 동공은 희열에 차있었다.


"—경외하라—"


뒤늦게 이변을 알아차린 엘프와 드워프 역시 같은 자세를 취했다.


다만, 기대감에 가득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더 본과 달리 두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무의식 속 깊이 자리한 두려움 탓이었다.


"—판테아 대륙의 절대자, 아둔한 아홉 군주의 주인 성 유마께서 강림하셨다—"


탄성에 절어버린 음성을 절절하게 외친 탓에 두 사람의 머릿속이 왕왕 울려댔다.


귀청이 떨, 아니 뇌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미친 광신도놈에게 무어라 한 마디 하려던 찰나였다.


"세 사람은 여기 있었구나"


평온한 음성.

사납게 울리는 이명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찾아온 편안함에 엘프와 드워프가 고개를 들었다.


흑발과 흑안, 허연 피부의 인간이 떠있다.

툭 치면 부러질 듯 약한 종족.


허나, 판테아 대륙의 미개하면서 오만하고 비열한 인족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다.


이질적인 외모.

유례없는 제왕의 자애로움과 포용 그리고 기질.

마지막으로 모든 종족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위화감.


"이로써 모든 군주가 모였구나"


사위를 억누를만큼 충만한 기운을 가진 강자가 자애롭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따스하게 감싸는 착각이 들었다.


허나, 그 주인은 방대한 기운조차 귀찮다는 듯 최대한 억누르고 있다.


그마저도 상당한 에너지가 쓰일 게 뻔한데 마실 나온 듯 태연한 태도.


어찌 경외하지 않으리랴.


"저택을 부르마"


주인이 손을 휘저었다.


세 사람 뒤로 거대한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관은 위로 길게 뻗은 칙칙하고 단조로운 탑의 형태.

색깔은 짙고 무광의 검은색.


판테아 대륙민들은 이 검은탑을 일컬어 '악신의 송곳니' '만마의 봉인석' '지옥 죄수들의 형벌장' 등등으로 부르곤 했다.


언제부터 대륙에 있었는지 그 기원을 아는 자는 없었다.


그저 예로부터 수인족과 인족의 왕국, 제국이 흉물스러운 건축물을 없애려고 수많은 시도를 했다.


물론 들어갔다가 살아돌아온 이는 없었다.


정체도, 기원도 불분명한 검은탑.


그 건축물은 앳된 외모의 인간이 '저택'이라 불렀고, 지금 막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또한.


저택이 드러남과 동시에 나타나는 흉엄한 기운들.


해골과 엘프, 드워프 못지않게 강한 존재감이 여섯이 더 있었다.


평범한 문을 두고 벽을 은은하게 통과하며 나타나는 두 명의 사슴과 범 수인.


"주군을 뵙나이다,히잉"


체고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사슴, 양각으로 길게 뻗은 뿔의 수컷 수인이 충성 자세를 취했다.


" 주군을 뵙나이다, 그르렁"


체고 5미터애 달하는 거대한 범, 노란 안광이 번뜩이는 암컷 수인이 충성 자세를 취했다.


검은탑의 2층계의 주인, 수인왕 남매 쿤과 란이다.


그리고.


문을 툭 열고 호다닥 달려 나오는 작은 체구의 양갈래 소녀.


"쭈군!"


냅다 달려와 품에 폭 안긴 창백한 피부와 붉은 머리의 진조 샤를로트 데 베르무트.


해맑은 미소에서 앙증맞게 뽈록 튀어나온 송곳니는 무해해보였다.


검은탑 4층의 120cm 신장의 절대 작다고 말해선 안되는 주인이다.


이어서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나머지 층계의 주인들.


모두 한결같이 충성 자세를 취했다.


거의 오백 년을 함께한 가족과 같은 사이.


이들이 불변의 충성을 보이는 건 시간과 강함뿐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종족의 해방을.


누군가에겐 평생의 숙원을.


누군가에겐 권태가 없는 유희를.


소망을 이뤄줬기 때문이겠지.


"그리하여 나 역시 평생의 소원을 지금 막 이뤘다"


"아함~...헙! 그 말은!"


이 자리가 지루한 듯 길게 늘어지게 하품한 백금발 미청년이 불현듯 뭔갈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그래, 파브니르가 생각하는 그게 맞을거다. 난 이제 지구로 돌아갈 것이다"


지구.


성유마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행성.


뭣 같지도 않은 트럭에 치여 이세계로 환생이 아닌 몸뚱이 그대로 전이했다.


오랜 세월 돌아갈 방법을 찾아다녔다.


이미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백골이 되었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서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되뇌었다.


이제 먼 추억 속에만 남은 한국, 부모님 그리고 음식들.


전지전능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귀환의 실마리를 잡았다.


아니, 정확히는 깨우쳤다.


그 말은 즉슨, 그를 처음 여기로 데려온 존재 또한 자신과 같은 급이니라.


여기 있는 대륙의 압도적인 강자인 아홉 군주보다도 한 단계는 높은.


그러면 대충 어떤 놈인지 알겠다, 복수라도 할까?


-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상상에만 그쳤다.


어차피 녀석이 뿌린 판테아 곳곳의 영향을 죄다 뿌리 뽑았다.


지금 막 마지막 씨앗까지도.


알랭은 오염된 세계수를 더이상 회생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괴로워했지만.


그대로 두는 것이 훗날 더 큰 후환이 될터다.


그냥 완전 말살하는 게 답이었다.


그래도.


일말의 제정신이 남은 세계수가 자신의 모든 걸 담은 씨앗은 건져냈으니.


그의 아공간 어딘가에 안전하게 보관중이니까.


어쨌거나 복수를 하기엔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아아...어찌하여..—"


더 본의 표정이 묘하다.


버림받는다는 절망과 그래도 주군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맹목적 충성 사이에서 충돌하는 갈등이 엿보였다.


"으아앙, 쭈군.. 나도 데꼬가!"


진조 샤를로트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더욱 단단히 붙들었다.


수인 남매가 기겁하게 당황하며 떼어놓으려 힘을 주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단단히 붙잡았다.


그런 촌극을 보며 성유마가 피식 웃었다.


"뭐, 그래도 오백 년 함께한 가족인데. 너희들 두고 가겠어?"


그래, 어차피 오백 년이 흘렀다.


돌아가면 날 반겨줄 이가 남아 있겠는가?


내 유일한 가족이라곤 이제 너희들 뿐인데.


"가, 감사함다!!"


"귀환술식은 언제라도 준비가 됐어. 이제 돌아가면 여긴 다신 돌아올 일이 거의 없을거야, 작별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다녀와"


성유마 말에 아홉 군주는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자신의 종족이나 이 땅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그저 주인의 곁이 더 중요할 뿐.


"뭐야, 다들 정없기는. 그럼 이 반지들을 껴봐. 너희들 본신의 힘이 그대로 넘어갔다간 지구가 박살날지도 모르니까"


절대 권능의 봉인 반지.


원천의 90%를 봉인하는 최상위계 물건.


판테아 대륙 최고의 손재주 솜씨를 지닌 드워프, 모든 드워프의 태조격인 바툼이 직접 만든 반지다.


여기에 유마의 힘이 조금 새겨들어갔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착용했다.


공기가 쉴틈도 없이 찌릿하던 기운들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거기다.


"그래도 조금 부족하네.. 이거까지 껴야겠는데?"


아까보다 투박한 금반지.


에테르 약화 반지.


본신의 힘을 90% 약화시키는 상위계 물건이다.


이것까지 착용한 아홉 군주는 필멸자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훨 낫군"


원천의 90, 본신의 90 가까이 떨어뜨렸으나, 어차피 본체는 모두 탑에 있다.


누군가 이 순간을 노려 죽인다고 죽일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자, 내 고향으로"


"—주군의 명 받들겠나이다!—"

"툼! 주군을 따릅니다!"

"성심을 실망시키 않겠습니다, 홍홍"


검은탑을 매개로.


거대한 마법진이 창공에 나타났다.


일대의 에테르를 모두 끌어올린 방대한 힘이 지금 막 발현했다.


이윽고 검은탑이 자취를 감췄다.



*


세계가 개벽했다.


현대는 게이트와 마물로 혼란스러운 세상.


인권은 더이상 천부적인 권리가 아니다.


오로지 힘과 힘으로 대변하는 회귀해버린 야만의 시대.


고담시가 된 대한민국 어딘가.


오늘도 활개치는 각성자 빌런과 게이트 속 마물들.


"에라이 씨이~팔, 박봉 받으면서 목숨까지 걸어야 돼?"


그런 빌런과 마물을 잡으러 다니는 각성자 영웅.


서울 동북구 20번대 구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금급 영웅이다.


자고로 국제 공인 영웅등급이 녹청금홍자백흑 순으로 밑에서 세 번째.


위로는 4개의 급이 있다고 절대 약한 수준은 아니었다.


인구 단위 당 활개치는 범죄자를 생각하면 영웅 승급 심사는 정말 깐깐하고 까탈스러우니까.


그러니까 금급 영웅 한 명이 5급(국제 공인 1~5급 중 최하위) 빌런 10명은 거뜬히 제압하고도 남을 정도다.


"후우, 씨벌. 이 좆도 아닌 새끼들이 나보다 더 많이 버네"


범죄 현장, 수북히 싸인 각성 혈청을 보며 금급 영웅 한태성이 현타가 씨게 온 표정을 지었다.


비각성자도 몇 시간 가량 각성자가 될 수 있게 하는 불법 약물.


하나 당 십만 크레딧(평균 월봉 삼십만 크레딧)은 우습게 넘는 게 수백 개나 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한태성 영웅님 아니신가"


그리고 한태성을 에워싼 빌런들.


"하아, 씨발. 함정이었나 보네?"


봐라, 함정을 까놓고 기다린 것부터.


이미 증명된 셈이다.


"그동안 우리 식구들 대가리 자른 업보를 치르실 준비는 되셨나?"


얼굴 흉터가 끔찍한 빌런 두목이 모가지를 긋는 시늉을 했다.


수배범에 3급이라 적힌 인물.


나머지는 5급이지만 그 수만 얼핏봐도 스물이 넘는다.


거기에 3급이 끼어 싸운다면..


"여기가 내 무덤인가"


한태성이 씁쓸하게 웃었다.


유독 대한민국 영웅의 순직률이 높다고 알려졌다.


열악한 지원 환경?

부족한 영웅의 수?


그런 거 다 고사하고 그냥 내통자가 너무 많다.


내부가 존나게 썩어서 그렇다.


"그래도 혼자가진 않으마, 들어와봐! 처죽일 벌레들아"


온몸이 돌로 경화한다.


<암석 경화>


한태성의 능력이다.


단단한 외피와 증가하는 힘과 스피드.


잡범 검거율이 제일 높은 이유다.


이미 승기를 잡았다 생각한 빌런들이 천천히 주위를 옥죄였다.


예전부터 단단히 준비했는지 '능력 약화 테이저트랩'도 주위에 깔았다.


어쩐히 힘이 안 나더라.


죽더라도 한놈은 데려간다는 마인드로 자세를 취한 순간.


쿠웅-.


그의 뒤로 무언가 묵직한 질량이 낙하했다.


때문에 은신을 펼치고 뒤에서 조용히 접근하던 빌런 대여섯이 압사.


"저, 저게 뭐여!"


난데없는 재앙.


본부의 지원은 아니다.


한태성이 삐걱이는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리는 경칩 소리를 들은 탓이다.


더불어 그 틈새로 새어나오는 흉악한 기운들.


그의 목을 콱 쥔 압박감.


아군은 절대 아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뚜벅-.


뚜벅-.


왠 남자가 걸어나온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여유로운 걸음.


단지 그뿐인데 전신이 쭈삣서고 긴장됐다.


"흐음, 미세먼지 가득한 이 냄새. 확실하네, 제대로 돌아왔어"


조카뻘의 잘생긴 한국인이 어딘가 그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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