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파 무한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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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17 14:16
최근연재일 :
2024.09.18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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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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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동호에서

DUMMY

무한의 남동쪽에 위치한 거대한 호수.

한낮의 동호는 평화로웠다. 고기잡이배와 짐을 싣고 나르는 조각배 몇 척이 조용한 호수 위를 떠다닐 뿐이었다.

그리고 동호 한가운데 떠 있는 어느 작은 섬.

항아리처럼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 속에 반쯤 감춰진 수채 안에서, 한 무리의 수적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끄으으······.”

“어제 그렇게 술을 처먹더니, 그럴 줄 알았다. 빨리 정신 차려! 곧 호왕께서 수채들을 쭉 돌아보신다지 않나? 할당량을 다 못 채우면 채주가 우리 가죽을 벗겨다 같이 진상할걸.”

“호왕은 얼어 죽을, 그래봐야 힘만 좀 센······. 우욱!”


숙취로 낯이 하얗게 질려있던 수적 하나가 황급히 배의 가장자리로 뛰어갔다.

한참을 구역질하며 속을 모조리 게워 낸 수적이 헉헉대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흐릿한 시야에 낯선 것이 들어왔다.

저 멀리에서부터 한 척의 조그마한 배가 수채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수적은 눈을 비비며 다가오는 배를 빤히 응시했다.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자, 갑판 위에 열댓명의 사람들이 서 있다는 것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또 뭐지? 밖에 나갔던 녀석들이 있나?”

“아니? 나간 놈은 없을 텐데. 어제 채주가 술자리에 한 놈도 빠지지 말라고 직접 다 불러 모으지 않았나?”


수적들이 웅성대며 하나둘 난간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배는 꾸준히 가까워져, 이제는 그 위에 탄 사람들의 행색을 알아볼 거리가 되었다.


“어린놈들 같은데? 허리춤에 검도 차고 있는 것 같고.”

“인근 문파 놈들인가? 또 강호행이니 협행이니 하는 헛짓거리를 하려고······.”

“글쎄. 눈에 익은 도복은 아닌데?”


커다란 배 위에 타고 있던 수적들이 모조리 나와 난간에 달라붙었을 즈음.

개중 가장 눈이 좋은 수적 하나가 손차양을 만들며 미간을 좁혔다.


“제일 앞에 서 있는 놈은······. 가슴팍에 뭔가 그려져 있는데? 태극인가?”


그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작은 배의 선두에 서 있던 소년이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마치 새가 날아오르듯 가볍게 허공으로 솟구친 소년의 양손에 선명히 맺힌 기운이 일렁였다.

당황한 수적들이 반사적으로 제각기 자신의 무기로 손을 가져가는 순간.

소년이 발출한 장력이 배의 갑판에 작렬했다.


***


콰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배의 선단이 산산조각났다.

두꺼운 나무판자가 부러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고, 거대한 배의 선체가 기우뚱 기울었다. 당황한 수적들은 황급히 난간을 붙잡으며 허둥거렸다.

그들 사이로 가볍게 착지한 무하가 검을 뽑아 들며 그대로 돌진했다.

새카만 검날이 햇빛 아래서 번뜩이고, 누군가의 핏줄기가 허공에 튀었다.


“아아악!”

“뭐, 뭐야, 이 꼬맹이는!”


수적들은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제각기 무기를 내질렀다.

물속에서 싸우는 일이 잦기 때문인지, 수적의 무기는 검보다는 창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검끼리 맞대고 싸우는 것에만 익숙한 정파의 무인들은 그 탓에 난색을 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무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다.


창은 중거리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

창술에 통달한 고수라면 근거리와 중거리를 자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공격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한낱 수적들에게 그만한 조예가 있을 리는 없었다.

무하는 수적들 사이로 뛰어들며 검을 휘둘렀다. 자신을 향해 똑바로 찔러드는 창의 창대를 밟고 뛰어오르며, 크게 검을 휘둘러 그들의 팔과 손목을 베었다.

한껏 날카로워진 극현검의 검날은 사람의 살과 뼈를 진흙처럼 갈랐다. 뻗어나가는 검의 움직임은 마치 물 흐르듯 부드럽고 유려했다.


“아아악!!”

“물러나, 물러나! 저리 비키라고!”

“뭐해, 이 자식들아! 붙어! 에워싸란 말이다!”


당황한 수적들은 우왕좌왕하며 손발이 엉키고, 저들끼리 창으로 찔러대기까지 했다.

그들의 비명과 고함 사이로 극현검의 날카로운 검명이 터져 나왔다.

무하는 오른손의 극현검에는 극양의 기운을, 왼손으론 극음의 기운을 모아 발출했다. 두 가지 기운이 무하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듯 움직이며 마치 소용돌이 같은 모양을 만들어 냈다.

검은 검날을 휘감은 새하얀 검기와, 하얀 주먹을 감싼 새카만 권기. 두 기운이 어우러져 태극의 모양을 빚었다.


콰아앙-!


무하가 내뻗은 주먹에 수적들의 몸이 마치 조약돌처럼 배 밖으로 튕겨 나가 호수에 처박혔다.

빈틈을 노리고 날아드는 공격은 검으로 모조리 막고 쳐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면면부절의 검기에, 수적들은 제대로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물러나거나 옆 사람을 밀쳐대기 급급했다.


“밀지 말란 말이다, 이 개자식아!”

“뭣들 하는 거야! 한꺼번에 덤벼들자니까? 그래봐야 상대는 한 놈이야! 애송이 하나! 빈틈을 노리면······.”

“젠장, 빈틈이 있어야지! 그럼 네가 먼저 가던가!”


태극검과 태극권. 두 무공은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왔으나 명백한 별개의 무공.

여러 개의 무공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왼손과 오른손으로 각각 다른 내용의 글을 동시에 쓰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은 양의심공.

사람의 마음을 반으로 갈라 각각 가누는 그 심공은, 오직 무당 본산의 고수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당의 비전이었다.


본래 아무리 뛰어나고 강력한 무공이라도 빈틈은 있기 마련이다.

좌측을 공격하면 우측이 비고, 위를 막으면 아래가 뚫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

그러나 양의심공에 대성하여 완벽히 체화한 고수는 혼자서도 두 사람 몫을 한다. 남들보다 두 배로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두 명의 사람처럼 싸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허점을 보완하고, 헌신적으로 도우며,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합을 맞출 수 있는 조력자.

무하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느긋하게 놀고 있을 시간은 없지.’


지금도 무하가 타고 왔던 배는 이 수채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무하에게 끌려온 무한의 여러 속가문의 제자들이 타고 있었다.

무하가 직접 여기까지 사람들을 데려와 놓고 이런 말을 하긴 미안했지만, 무하는 그들이 수적과의 싸움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해가 되면 되었지.

저들의 실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했지만, 그보단 저들이 물 위에서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기우뚱거리는 배의 갑판은 발판으로 삼기엔 불안정하고, 수적들이 쓰는 창은 익숙하지 않은 무기다.

게다가 실수로 배 밖으로 떨어져 물에 빠지기라도 하는 날엔, 물에 익숙한 수적들을 당해낼 수가 없을 터.

이미 저력을 다 알고 있는 수채 한둘쯤이야 무하 혼자서도 적당히 정리할 수 있었지만, 혹을 주렁주렁 달고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저들이 심하게 다치거나, 저 수적들에게 인질로 잡혀 곤란한 상황이 펼쳐지기라도 한다면 일이 커질 테니까.

무하는 다른 사람들을 태운 조각배가 이 수적들의 배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 배에 탄 수적들을 모조리 정리할 심산이었다.


‘채주를 끌어내려면······. 조금 더 자극해야 하나.’


무하는 온몸에서 한순간 강렬하게 기를 방출하여 수적들을 모조리 튕겨냈다.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수적들 사이에서 훌쩍 위로 몸을 솟구친 무하가, 허공에서 빙글 몸을 뒤집었다.

무하의 왼손에 서린 새카만 권기를 발견한 수적들이 비명을 질렀다.


“젠장, 피해라! 물속으로 숨어!!”


누군가의 외침이 들리자, 갑판 위에 널브러져 있던 수적들이 허둥지둥 바닥을 기어 호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거리는 물소리가 곳곳에서 터지는 사이로, 무하가 쏘아낸 권력이 커다란 배 위로 작렬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배의 선단이 완전히 부서졌다.

무하는 그대로 허공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무하의 몸이 팽이처럼 핑그르르 돌자, 검은 용이 그려진 돛이 극현검에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위에서 아래로, 돛을 완전히 찢어발기며 내려온 무하가 반파된 배 위로 내려섰다.

무하의 가벼운 발소리와는 다르게, 너덜거리는 판자들이 끽끽대며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아직 미처 배 밖으로 피하지 못한 몇몇 수적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무하를 쳐다보는 순간.


콰직!


갑판 아래에서 커다란 창날이 불쑥 솟아올랐다. 무하는 발등이 꿰뚫리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뒤로 뛰어오르며 그 공격을 피했다.

두 갈래로 갈라진 기형병기의 창날이 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를 갉아내며 다시 사라졌다.

동시에 무하가 서 있던 자리의 갑판이 부서지며 크고 거대한 그림자 같은 것이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쿠웅, 육중한 발소리를 내며 갑판을 부수고 튀어나온 거구의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채, 채주님!”


깊게 베인 발목을 부여잡고 끙끙대던 수적 하나가 비명처럼 사내를 불렀다.

그것이 환호나 안도의 목소리인지, 겁에 질린 목소리인지를 판별하긴 어려웠다.

채주는 가슴께까지 치렁치렁하게 기른 수염을 바람에 흩날리며 사나운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엉망이 된 배와 돛, 처참하게 당한 수적들의 모습을 발견한 채주의 입에서 불만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웬 놈이냐?”


무하는 대답 없이 채주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무하의 서늘한 눈빛을 본 채주가 오만상을 쓰며 자신의 창을 꽉 움켜쥐었다.


“허······. 어린놈의 눈빛이 제법 건방지구나.”

“······.”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으르렁대는 듯한 채주의 위협을 들으며, 무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이 자에겐 딱히 연기를 할 까닭이 없었으니까.

의심을 피하기 위해 딱히 생기지도 않은 감정을 연기할 필요도, 밑밥을 깔기 위해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 할 말을 찾을 필요도 없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무하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남이었다.


“조용해진 걸 보니 이제 와서 겁이라도······?!”


채주는 흠칫하며 반사적으로 창을 세차게 휘둘렀다.

그를 향해 정면에서 달려들던 무하가 몸을 살짝 낮추며 횡으로 휘둘러진 그의 창을 피했다. 어찌나 강한 힘으로 휘둘렀는지, 창에 휘감긴 바람에 머리카락이 펄럭일 정도였다.

순식간에 창의 사정거리 안쪽으로 파고든 무하가 그의 발등에 검을 박아 넣었다.

발등의 뼈를 피해 박힌 검이 배의 갑판에 깊숙이 박혔다.

채주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사이, 무하는 다른 쪽 발등을 제 발로 짓밟아 고정시키며 순식간에 그의 몸통에 여러 번의 권격을 먹였다.


“커허억!”


주먹이 닿을 때마다 내력을 상대의 몸속으로 밀어 넣어 직접 혈도를 타격하는 무하의 수법에, 채주는 순식간에 시커먼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무하는 그의 발에 꽂아 넣었던 극현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뚱이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그 거대한 덩치가 무색하리만큼 힘없이 나가떨어진 채주가 갑판 위를 데굴데굴 구르다 가까스로 멈췄다.

곧바로 그에게 따라붙은 무하가 채주의 등을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

그 타격이 등에 닿는 순간, 무하는 내력을 발출해 상대의 단전을 부숴버렸다.


“끅······!”

“채, 채주!”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던 수적들이 절박하게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하는 축 늘어진 채주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검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내고 납검했다.

고통에 끙끙대는 채주의 옷깃을 움켜쥐고 질질 끌며 앞으로 나아가니, 부서진 갑판 위로 핏자국이 길게 남았다.

무하가 향한 방향의 끝에는 한 수적이 엎어져 버르적대고 있었다.

뒤늦게나마 몸을 피해 보려 안간힘을 쓰며 기어가는 꼴이 퍽 처절해 보였다.


철퍽!


무하가 그의 옆에 축 늘어진 채주의 몸뚱이를 집어던지자, 수적은 크게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무하는 그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빙긋 웃었다.


“알려야 하죠?”

“예, 예······?”

“다른 동료들한테 알려야 할 것 아니에요. 수채가 습격을 당했다고.”


고작 작은 수채 하나를 정리하겠다고 이런 수선을 떨었겠는가.

무하는 몇 개의 수채를 미끼로 삼아 그보다 더 큰 것을 낚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런 무하의 속내를 모르는 수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무하를 쳐다보기만 했다.

무하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그를 응시하며,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와 바닥에 고인 피를 턱하니 짚었다.

철퍽,하는 불쾌한 물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서찰이라도 쓰실래요? 시간은 드릴 테니까. 되도록 상세하게, 여기서 본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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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파 무한회귀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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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천재 아닌 괴물 NEW 1분 전 0 0 12쪽
24 실수 (3) 24.09.17 76 2 12쪽
23 실수 (2) 24.09.14 95 2 14쪽
22 실수 24.09.13 95 2 12쪽
21 동호의 작은 영웅 24.09.12 106 2 11쪽
20 동호에서 (4) 24.09.11 118 1 14쪽
19 동호에서 (3) 24.09.10 106 3 14쪽
18 동호에서 (2) 24.09.09 131 4 13쪽
» 동호에서 24.09.08 142 3 13쪽
16 무한으로 (4) 24.09.07 137 5 14쪽
15 무한으로 (3) 24.09.06 131 5 14쪽
14 무한으로 (2) 24.09.05 134 5 14쪽
13 무한으로 24.09.04 165 5 14쪽
12 연습은 미리미리 24.09.03 164 3 13쪽
11 금와상단 (3) 24.09.02 159 4 16쪽
10 금와상단 (2) 24.09.01 159 5 13쪽
9 금와상단 24.08.31 189 4 15쪽
8 극현검(2) 24.08.30 191 5 15쪽
7 극현검 24.08.29 195 4 13쪽
6 무극동 24.08.28 202 4 15쪽
5 비무회(2) 24.08.27 200 4 14쪽
4 비무회 24.08.26 199 4 15쪽
3 사부님 24.08.25 215 6 12쪽
2 우선은 심공부터 +2 24.08.24 249 6 14쪽
1 마지막 시작 +1 24.08.23 337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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