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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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5:07
최근연재일 :
2024.09.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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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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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출생의 비밀

DUMMY

7화. 출생의 비밀


스산한 바람이 휘돌아 나가자 서낭당 주변의 나뭇잎들이 거칠게 떨렸다.


“뭔가 사건이 있던 게 분명한데, 내 능력으로는 알 수가 없어. 다만 나무의 울음소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들려.”

“흠··· 정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진짜 사라진 무구들이 저 당집 안에 모두 있을까요?”


가지고 온 무구를 안전하게 신당 안에 모셨지만, 성우와 지연, 이화보살은 개운치가 않았다.

또 다른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자, 이것을 몸에 잘 지녀. 무당바위에 직접 가지 않는다면, 이 부적만으로도 어느 정도 악령의 공격은 막을 수 있을 거야.”


이화보살은 붉은 주사로 짙게 만든 부적을 나와 지연에게 한 장씩 나눠 주었다.

나는 받자마자 안주머니에 넣었고, 지연은 부적이 신기한 듯이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조심스럽게 품속에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불안해요. 소용돌이에 사는 악령이 그냥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어떤 식으로든 해코지를 할 게 분명해요.”

“같은 생각이야. 분명 어떤 식으로든 앙갚음을 하려고 할 거야.”


지연의 말에 이화보살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내 생각엔··· 악령이 무구를 필요로 하는 한, 우리한테는 함부로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우리가 있어야 사라진 무구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우리 대신 다른 사람들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거잖아?”


내 말에 지연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럴지도······.”


띠리링··· 띠리링···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지연은 물론 나도 흠칫하고 놀라 뒤로 한 걸은 물러섰다.


“깜짝이야!”

“네, 원장님!”


내가 근무하는 학원의 원장이었다.


“하 선생님,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 기간이니까 강의를 시험에 맞춰 준비해 주세요. 물론 알아서 잘해 주시겠지만······.”

“네, 네. 잘 알겠습니다.”


원장의 전화를 받고서야 내가 학원 강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 주말부터 오늘까지 사건에 휘말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괜찮겠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이 판국에 강의가 제대로 되겠어?”

“그래도 해야지.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돈을 안 벌면 이래저래 죽는 건 마찬가지야.”

“아, 그러고 보니 어머님이 요양병원에 계신다고 했지?”

“응, 몸은 건강하신데, 치매 끼가 점점 심해지셔서 걱정이야.”

“네 인생도 참, 하루도 편할 날이 없구나.”

“······.”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하려다가 속으로 삼키고 말았다.


요양병원은 한산하였다.

코로나의 광풍이 지나간 후 면회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환자들의 기침 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올 뿐 한산하기만 하였다.

어머니는 6인실에 입원 중이었다.

요양보호사와 누님이 교대로 간호를 하고 있었고, 나는 병원비의 일정부분을 내는 것으로 자식이 도리를 하고 있었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며 아들의 얼굴도 못 알아보자 자연스럽게 병원 방문이 뜸해졌고, 그럴 때마다 누나로부터 야단을 맞곤 하였다,


“왔니?”


병실로 들어서자 침대 옆에서 책을 보고 있던 누나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잠은?”

“별로, 지난밤엔 엄마가 악몽을 꾸시는지 자다 깨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는 통에 나는 물론이고 다른 환자들도 잠을 설쳤어.”

“어떡해? 내가 학원 수업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차에 가서라도 눈 좀 붙여.”

“아니 됐어. 조금 있으면 요양보호사가 올 거야.”


누나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였다.

병원 생활을 몇 개월씩 하는 건 환자도 힘들지만, 간호를 하는 간병인이 더 지칠 수밖에 없었다. 형제라고는 달랑 오누이뿐이니 어머니 간병은 온전히 누나의 몫이었다.

내가 결혼을 해서 며느리라도 있었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텐데, 아직 싱글이다보니 일찍 사별하고 혼자가 된 누나가 엄마를 도맡아 챙겼고, 대신 나는 병원비와 간병비를 대느라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일은 무슨······.”


밤새 인천에서 내려와 무당바위로, 다시 신림 성황림을 오가느라 나도 몸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나뿐인 동생을 살뜰히 챙겨온 누나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냥 잠을 못 자서 그래. 이따 푹 자면 되니까 누나나 잘 쉬어.”


“아아악!”


곤히 주무시고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자 서로를 걱정하던 오누이는 물론이고 다른 환자들도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이런, 또 악몽을 꾸셨나 보네.”


누나는 익숙한 듯 어머니에게 다가가 두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수건을 들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걱정이 되었지만, 그냥 무덤덤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허구한 날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던 아버지와 별로 정을 주지 않던 어머니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쌓인 응어리가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엄마! 성우 왔어요. 엄마 아들 성우가 왔다고요.”


누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며 나를 쳐다보게 하였다.


“엄마, 저예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으아악! 저, 저리가! 넌 내 아들이 아니야.”


내가 침대 머리맡에 서서 손을 내밀자 어머니는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성우가 왜 아들이 아니야? 성우는 엄마 아들이잖아.”


누나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곧 널 알아보실 거야.”

“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찾은 병원이었지만, 아들을 마치 벌레 보듯 하는 어머니를 보자 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조금 더 있다 가라는 누나의 만류에도 터벅터벅 병실을 나왔다,


“휴.”


무의식중에 한숨이 나왔다.

무심한 저녁 하늘은 아름답기만 하였다.


고급 세단 한 대가 원주 톨게이트를 지나 횡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뒤를 검은 승합차가 따르고 있었다.

과거 무당바위 근처에 살다가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마을을 떠났던 하씨 집안의 며느리인 김명자 여사와 그녀의 아들 하용균이었다.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은 김명자는 감회가 남달랐다.

안동김씨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나 귀하게 자랐지만, 하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후 아이를 못 낳아 시어머니로부터 온갖 설움을 겪다 힘들게 얻은 아들이 옆에 있는 용균이었다.

낳았다기보다 도둑질을 한 아들이었다.


콰르르릉!

쏴아아아아아아!


장맛비가 요란하게 쏟아지던 여름날 하씨 집안의 맏며느리는 마을에 사는 일가인 하지웅을 남몰래 불렀다.

그리고는 문서 한 장을 건냈다.


“아랫마을 입구에 있는 논문서일세. 이 정도면 자네 식구가 먹고살기에는 충분할 거야.”

“이, 이걸 왜?”


저녁 무렵에 은밀하게 부른 것도 이상한 일인데, 느닷없이 마을에서 가장 좋은 땅으로 알려진 옥답의 문서를 내밀자 하지웅은 영문을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긴 말 하지 않겠네. 오늘 밤 무당 딸 설희의 아이를 훔쳐 오게.”

“네에? 어떻게 그런 일을······.”

“어허! 듣자 하니 자네 부인도 며칠 전에 몸을 풀었다고 들었네. 자네 자식을 위해서라도 설화의 아이를 데려와. 그럼 이 논은 자네 것이야.”


하지웅으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문전옥답을 준다는 말에 더 이상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그날 밤 하지웅은 무녀의 딸 설희가 낳은 아들을 훔쳐다 김명자에게 주었고, 하씨 집안은 아침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도망치듯 마을을 떠났다.

그 후로 사람들을 시켜 1년에 두 번 돼지를 잡아 무당바위에 제사를 올렸을 뿐, 다시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온 이유는 남편인 하무행의 병세가 심각해지고 사업도 곤두박질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전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아버지의 병이 나을 리가 없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면 넌 그냥 이 어미가 하는 데로 따르기나 해.”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하용균은 어머니의 헹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귀신한테 제사를 지내는 것도 말도 안 되는데, 제사를 지내야만 아버지도 살고 집안이 다시 일어선다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얼결에 따라오기는 하였지만, 처음 보는 마을의 풍경과 무당바위 주변은 웬일인지 낯설지가 않았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데, 왜 그토록 어머니는 고향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은 것인지, 병적으로 고향을 방문하는 것을 막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용균의 출생지마저 횡성군이 아니라 서울 종로구 현저동으로 되어 있었다.

용균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 강원도라는 것도 중학생이 되어서야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고서야 알았다.

정말이지 뭐가 뭔지 모르는 사이 무당바위까지 끌려오다시피 한 것이었다.

벤츠와 검은 승합차가 번쩍거리며 주차를 하자 무당바위 맞은 편의 펜션 주인이 다가왔다.


“실례지만, 누구신데 남의 집 앞에 함부로 주차를 하시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오래전에 이 마을에 살던 하무행 씨의 처입니다.”

“하무행이라면··· 아! 해마다 이곳에서 제사를 올리는 하씨 집안 말이군요? 어떻게 사모님께서 직접 오셨습니까?”


마을 이장이자 펜션 주인인 김종수는 그제야 앞에 서 있는 귀부인의 정체를 알고 반색을 하였다. 이곳 출신으로 잘 나가는 중견 기업인 ‘하가네 식품’의 여 회장이며, 해마다 1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마을 발전기금으로 후원하는 분이 오셨으니······.


“이번에는 직접 제사를 올리려고 오셨군요? 저희가 어떻게 도우면 될까요?”

“아뇨, 그냥 주변 사람이 모르게 조용히 올리고 가려고요. 그러니까 이장님은 크게 신경을 안 쓰셔도 됩니다.”

“그, 그래도······.”

“권 비서.”

“네, 회장님!”


김명자 여사의 고갯짓에 비서가 속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마을 이장인 김종수에게 건냈다.


“약소합니다. 마을을 위해 써주세요.”

“아이고, 매번 이렇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약소하다고 하지만, 이장은 봉투 안에 얼마가 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해마다 제사를 지내러 올 때마다 비서를 시켜 5백만 원을 주었던 것이다.

그중에서 2백만 원은 당연히 자신의 몫이었다.

여 회장과 마을 이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뒤를 따라온 검은 승합차 안에서 검은 정장을 한 사내 셋과 기모노 차림의 한 여인이 내렸다.

마을 이장은 처음 보는 일본 여인의 모습이 신기한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사이 남성들은 무당바위 위에 접이식 탁자를 놓고는 가져온 제물을 차렸다.

제사를 준비하는 여인은 일본 무녀, 즉 후죠였다.

그녀가 소용돌이 속 존재를 부르는 소환술을 펼치기도 전에 괴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괘씸한! 왜 이제야 온 것이냐?


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치성을 올리려던 김명자는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일렁이는 소용돌이 속에서 검은 형체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덜덜 떨고 있는 무녀와 김명자의 주변을 맴돌았다.

어머니의 행동이 미신이라고 속으로 경멸하고 있던 하용균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상황에 새파랗게 질렸다.


- 좋은 몸을 지녔구나. 이제 네 몸을 빌어 내가 직접 무구를 찾아오겠다.


검은 악령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번쩍!


순간, 후죠의 두 눈이 붉게 빛났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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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화. 봉복사 주지 24.09.18 4 0 13쪽
17 16화. 경고 24.09.14 5 0 12쪽
16 15화. 광기(狂氣) 24.09.10 9 0 12쪽
15 14화. 뒤바뀐 아이 24.09.07 11 0 11쪽
14 13화. 해코지 24.09.03 16 0 11쪽
13 12화. 제물 24.09.01 15 0 12쪽
12 11화. 하씨 가문의 비밀 24.09.01 12 0 12쪽
11 10화. 빙의 24.08.30 12 0 12쪽
10 9화. 무당의 딸 24.08.28 13 0 12쪽
9 8화. 이방인 술사 +2 24.08.28 22 1 12쪽
» 7화. 출생의 비밀 +2 24.08.27 25 1 12쪽
7 6화. 신이 머무는 숲, 신림(神林) 24.08.26 20 1 11쪽
6 5화. 정체불명의 영혼 +2 24.08.24 29 1 11쪽
5 4화. 사령(死靈)의 소원 +2 24.08.23 34 1 12쪽
4 3화. 사라진 무구(巫具) +2 24.08.20 36 2 12쪽
3 2화. 귀곡성(鬼哭聲) +2 24.08.19 92 3 12쪽
2 1화. 자살바위 +4 24.08.19 36 3 12쪽
1 프롤로그 24.08.19 36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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