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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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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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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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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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광기(狂氣)

DUMMY

15화. 광기(狂氣)


“나 참 이거야 원.”

“왜요? 또 민원 전화인가요?”

“공무원이 무슨 무당이나 퇴마사도 아니고, 소용돌이에 사는 귀신을 퇴치해 달라니 참······.”


면사무소에서 20년이 넘도록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승만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툴툴거렸다.


“자살자가 속출하던 옛날이야 그렇다 쳐도, 요즘은 별다른 사건도 없는데 귀신을 없애든지, 소용돌이를 메워달라고 하니 참······.”

“누가 그런 민원을 넣는 겁니까?”

“누구긴, 인근 주민들이지.”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면사무소에 갓 임용된 현민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꼬치꼬치 물었다.


“어떻게 했긴, 마을 사람들과 협의하여 자살나무로 불리던 소나무를 베게 하고, 수영금지 표지판을 세웠지.”

“그게 전부인가요?”

“그럼, ‘여긴 귀신이 출몰하는 곳이니까 접근하지 마세요’라고 할까?”

“그러지 말고 주무관님이 현민 씨 데리고 현장에 한 번 다녀오세요. 듣자 하니 요즘 이상한 일이 또 일어나긴 했나 보네요.”


옆에서 듣고 있던 부면장이 빙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네, 그렇잖아도 그럴 참이었습니다.”

“정 꺼림칙하면 지서에 연락해서 도움을 받으시던가요.”

“저야 괜찮지만, 아무래도 권 주무관이?”

“네? 저요? 제가 왜요?”

“자네 표정을 보니 무서워서 무당바위 근처도 못 갈 거 같아서 하는 말이지. 하하하!”


유승만은 어리둥절하여 멍한 표정을 짓는 신입 직원을 놀리듯이 말하였다.


“아니에요. 저 보기보다 겁 없습니다. 못 믿겠으면 가시죠. 지금 당장!”

“오, 이거 우리가 신입을 잘못 봤나 보네. 하하하!”

“그러게요. 하하하!”


신참 직원의 호기에 면사무소 안의 모든 직원이 유쾌하게 웃었다.

현민이 주소지까지 옮겨가며 굳이 청일면사무소에 발령받은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평소 미스터리나 무속, 신화 등에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언젠가 들은 집안 내력 때문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벌초를 하러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고향을 찾았던 성권은 잡안 형님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집안은 양반 중의 양반이야.”

“당연히 안동권씨야 양반이죠.”

“사람들은 안동김씨는 잘 알면서 의외로 안동권씨는 잘 모른단 말이야.”


벌초 후 점심식사를 하던 중 집안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결국 조상 얘기를 하게 된 것이었다.


“잘 아네. 그럼 여기 내려와서도 지방의 수령들이 눈치를 볼 정도로 떵떵거리며 산 것도 잘 알테고······.”


평소 집안의 내력이나 역사에 조예가 깊은 형님이 오늘은 또 무슨 얘기를 하려나 싶어 현민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 날 전 재산을 부리던 머슴에게 주고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이사를 하였지.”

“누가요?”

“누구긴, 자네 집안이지. 우리 집안이기도 하고, 자네하고 나하고는 6촌이니까 같은 증조 할아버지의 후손이야.”

“······.”

“증조부 때까지도 청일면 일대는 물론 둔내면의 많은 땅이 우리 집안 거였지. 부리는 하인만 20명이 넘었다니까, 비록 시골에 은거하지만, 명실상부 개국공신 집안이라고 할 수 있지.”


현민은 6촌 형의 말이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얼핏 말을 해 준 적이 있었다.

물론 중간에 어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말리는 바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그런 집안이 왜 하씨 집안에게 전 재산을 넘겨주고 고향을 떠났을까?”

“흠··· 그보다 강제로 재산을 뺏겼다면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 바로 그거야! 오늘 내가 말하려던 핵심이.”

“······.”


무덤덤하게 식사를 하던 다른 문중 사람들이 재산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성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뿐만 아니라 권씨 집안의 몇몇 사람이 빼앗기다시피 한 재산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기도 하고, 심지어 소송까지 제기했었지.”

“그런데요? 찾았나요?”


조용히 듣고 있던 조카뻘 되는 상희가 물었다.


“뭐 보다시피··· 되찾았으면 문중이 이렇게 가난하지는 않겠지. 오래된 일이고, 더구나 일제 강점기라 남아 있는 자료도 희박하고, 결국 포기했지.”

“그래도 왜 하루아침에 재산을 넘겨주었는지 궁금하네요.”

“그래. 그건 젊은 자네들이 알아봐.”


현민은 작년 벌초 때의 일을 회상하며 고실로 향하고 있었다.

유 계장과 함께 무당바위에 사는 귀신을 없애달라고 민원을 넣은 주민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21세기에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공무원에게 민원은 귀신보다도 무서운 일이라 형식적으로라도 민원인을 만나야 했다.

민원을 넣은 것은 얼마 전에 죽은 홍상혁의 동생이었다.


“꿈에 죽은 형들이 자꾸 나타나요.”

“네?”


마을 주민의 말에 현민은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유 계장이 전화를 받으며 어이없어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공무원이 무슨 심령술사나 퇴마사라도 되는가?

악몽을 꾼 것까지 해결하다니······.


*****


“미안해, 그런 줄도 모르고 병문안도 안 온다고 원망을 했지 뭐야.”

“아니야. 전화로라도 말하려다가 네가 놀랄까 봐······.”

“어머님은 잘 모신 거지?”

“응, 그보다 몸은 괜찮아?”

“며칠 푹 쉬었더니 괜찮아.”


상을 치르느라 경황이 없던 나는 장례가 끝나기 무섭게 병원을 찾았다.

지연은 다행히도 별일 없어 보였다.

악령이 어머니를 데려갔으면 다음 차례는 지연이 될 가능성이 컸다.

이미 지연에게 원혼들을 보내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경고를 보내지 않았던가.


“지연아.”

“응?”

“당분간 절에 가 있으면 어떨까?”

“어, 어느 절?”

“응, 국형사. 주지 스님한테 이미 허락받았어.”

“그럼 일은?”

“맑은 날 낮에 하면 되지. 주간신문이라 어차피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취재해도 되잖아.”

“······.”


퇴원 준비를 하던 지연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내 손에 이끌려 간단한 옷가지와 노트북만 챙긴 채 치악산 자락에 있는 국형사로 향하였다.

새의 둥지처럼 산들이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국형사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절의 안내판에는 불치병에 걸린 공주가 이곳에 와서 요양을 한 후 완치가 되었고, 그 보답으로 작은 암자였던 국형사를 크게 중건했다고 적혀있었다.

바로 옆에 동쪽의 산신들을 모신 동악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도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무악대사의 발자취가 남아있을 게 분명하였다.

그런 곳이라면 지연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절에서 숙식이 다 되었고, 바로 아래에 카페가 있어서 지연이 묵기에는 적격이었다.

더구나 절을 감싸고 도는 강한 기운은 악령 따위의 이매망량(魑魅魍魎)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갈게.”

“고마워. 이곳이라면 편히 쉴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지연이 묵을 방에 짐을 옮겨주고는 빙긋이 웃었다.

지연에게 저녁을 사 주고, 그래도 헤어지기가 아쉬워 절 아래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지만, 마음은 여전히 헛헛하였다.


“전화할게.”

“응, 조심해 가.”


따사로운 저녁 햇살이 절 안 가득 퍼졌다.


*****


“따라오너라.”


거짓말처럼 아들 요셉이 건강을 되찾자 즉시 퇴원 수속을 밟아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를 침실에 눕히자 김명자는 굳은 표정으로 아들을 불렀다.

용균은 아내에게 요셉을 부탁하고는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김명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거침없이 거실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별채로 향하였다.

1층에는 아버지 하무행의 서재 겸 BAR가 있는 곳이었고, 2층에는 어머니의 개인 카페가 있었다.

용균은 평소와 다른 어머니의 행동에 오늘은 집안 내력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실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어머니는 카페 한쪽에 있는 책장으로 다가 갔다.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사전을 옆으로 밀치자 작은 문고리가 나타났다.


위이이이잉.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커다란 책장이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열렸디.


딸깍!


불을 켜자 커다란 공간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여러 개의 신위가 놓여있었고, 제단 위에는 제상이 차려져 있었다.

향로 위의 향이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향을 피워놓은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았다.


“절을 올리거라. 네 조부모와 고모, 그리고 누나들의 신위다.”

“!!!!!”


하용균은 어머니의 말에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혔다.

고모를 제물로 바친 거야 알았지만, 누나들이라니······.

아들 요셉이 사경을 헤맬 때 어머니가 허공을 향해 울부짖으며 딸들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때는 경황이 없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놀랄 것 없다! 처음 일본의 주술사와 계약을 맺을 때 한 약속이니까.”

“그, 그게 무슨?”


“하씨 집안의 여인들을 제물로 바칠 것, 안 그러면 대신 다른 여인이라도 바쳐야 하는 게 내가 시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김명자는 너무도 끔찍한 이야기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덤덤하게 말하였다.


덜덜덜.


자식은 혼자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위로 누나가 있었다니, 용균은 온몸이 떨려왔다.

두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씨 집안의 여인들을 제물로 바칠 것, 안 그러면 대신 다른 여인이라도 바쳐야 하는 게 내가 시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방금 어머니가 한 말이 메아리처럼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미 희생된 고모와 누나들은 그렇다고 쳐도 그럼 내 딸은? 내 딸 사라도 하씨 집안의 여인이다. 그럼 사라 역시 제물로 바쳐야 한단 말인가?’


용균은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주왕복선이 오고 가고 AI가 일상화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악령은 뭐고 제물은 뭐란 말인가?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용균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큰소리로 웃었다.


“다 거짓이야! 이게 말이 되냐고?”


와르르르!

와당탕!


용균은 다짜고짜 달려들어 제상을 엎어버렸다.

사과와 배 등의 제물들이 바닥에 제멋대로 굴러떨어졌다.


“이게 다 뭐야? 이따위 미신을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콰직!

와당탕!


미쳐 날뛰는 용균의 행동에 제단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런 아들의 행동을 김명자는 아무런 제재 없이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별채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집안일을 하는 집사와 가사 도우미가 달려오자 명자는 손짓으로 그들이 오는 것을 막았다.

수십 년 동안 비밀리에 있던 제실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에야 용균의 행동은 멈췄다.

기진맥진한 용균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제실 밖은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였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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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광기(狂氣) 24.09.10 8 0 12쪽
15 14화. 뒤바뀐 아이 24.09.07 10 0 11쪽
14 13화. 해코지 24.09.03 15 0 11쪽
13 12화. 제물 24.09.01 15 0 12쪽
12 11화. 하씨 가문의 비밀 24.09.01 11 0 12쪽
11 10화. 빙의 24.08.30 12 0 12쪽
10 9화. 무당의 딸 24.08.28 12 0 12쪽
9 8화. 이방인 술사 +2 24.08.28 21 1 12쪽
8 7화. 출생의 비밀 +2 24.08.27 23 1 12쪽
7 6화. 신이 머무는 숲, 신림(神林) 24.08.26 20 1 11쪽
6 5화. 정체불명의 영혼 +2 24.08.24 27 1 11쪽
5 4화. 사령(死靈)의 소원 +2 24.08.23 33 1 12쪽
4 3화. 사라진 무구(巫具) +2 24.08.20 33 2 12쪽
3 2화. 귀곡성(鬼哭聲) +2 24.08.19 85 3 12쪽
2 1화. 자살바위 +4 24.08.19 36 3 12쪽
1 프롤로그 24.08.19 36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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