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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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5:07
최근연재일 :
2024.09.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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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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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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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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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제물

DUMMY

12화. 제물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댔다 뗀 지연은 무슨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나 역시 지연과 나누었던 첫 키스의 뜨거운 기억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어색하여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왔다 간 건 확실한 거지?”

“······.”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데 왜 아무 기억이 없지? 게다가 누가 기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어. 네가 그랬을 리가 없잖아? 그럼 내가 그랬다는 건데, 역시 하나도 생각이 안 나!”

지연의 얼굴은 심각하다 못해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내가 정말 귀신에 씌인 걸까? 진짜면 어떡하지? 응? 응?”


반복되는 지연의 채근에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지난번에도 그랬고, 어젯밤 일도 그렇고. 전혀 기억을 못 하는 지연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영혼을 함부로 빙의가 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화 누님한테 갈까?”

“······.”

“아니면 누님보고 오시라고 할까?”

“······.”


물음에도 지연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깔깔깔! 깔깔깔!”


갑자기 지연이 고개를 들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나는 본능적으로 움찔하고 뒤로 물러났다.


“깔깔깔깔깔깔!”


이런 내 모습이 우습다는 듯이 지연은 고개를 젖히고는 더 크게 웃어댔다.


“지, 지연아! 정신 차려!”


당황한 나는 지연의 양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지연이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았다.

그리고는 입을 맞출 듯이 얼굴을 가까이 하였다.


“아차, 남매끼리는 입을 맞추면 안 되지. 또 할머니한테 혼날라. 깔깔깔!”


지연은 알 수 없는 소릴 하며 확 하고 밀쳤다.


‘남매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혼란스러웠다.

지연에게 빙의된 영혼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나에게 남매라고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추측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살아 있는 누이가 한 명 있을 뿐, 어려서 죽거나 유산된 누나나 여동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털썩!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던 지연이 다시 기절하듯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휴, 어쩌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나는 지연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


“살려줘! 제발!”


김명자는 손자 요셉이 발작을 일으키자 마치 영혼이 보이기라도 하듯 허공을 향해 애원하였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제발 이 아이만은 살려줘!”


하용균과 부인 이수영은 어머니 김명자의 행동에 경악하였다.

가뜩이나 사경을 헤매는 아들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인데, 어머니마저 기이한 행동을 하다니, 삑삑거리는 기계음과 할머니의 이상행동을 지켜보던 용균의 딸 사라는 결국 겁에 질려울음을 터트렸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오자 혼란은 진정되었고, 이상하게도 요셉의 맥박이나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한참 동안 어머니 김명자의 말을 듣고 있던 하용균은 신음하듯 말을 토해냈다.

집안의 과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나도 처음에는 시부모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단다. 그렇지만 차츰 그들과 동조가 되더구나.”

“······.”

“대대로 머슴살이로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던 자에게 부귀와 영화를 주겠다는데, 거기에 유혹당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용균은 어머니 김명자의 말을 그냥 듣고만 있었다.


“어느 날 찾아온 일본인 음양사 부부의 제안에 삶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시아버지나 시어머니는 그들의 청을 떨쳐낼 수가 없었어. 더구나······.”


*****


별채의 담장 안에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절에서 들려오는 불경 소리와 비슷하긴 하였어도 어딘가 달랐다.

일본인 주술사의 주문이니 당연히 집안의 어린 여종의 귀에 신기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별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주인마님의 엄명에도 어린 계집종은 호기심을 주체못하고 결국 담장 가의 살구나무를 기어올라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안에는 이상한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뭔가를 향해 주문을 외우며 열심히 절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담장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계집종은 담장 안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고 몸을 앞으로 잔뜩 기울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담장의 기와를 짚고 좀 더 안을 들여다보려던 계집종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뚜둑!


나뭇가지가 계집아이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다.

그 바람에 아이는 두 손으로 담장을 짚으며 엎어졌다.


와지끈!


“아얏!”


작은 비명소리와 함께 어린 계집종은 담장 안으로 거꾸러졌다.

안에서 치성을 올리던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큭큭큭. 제물이 필요하던 차에 스스로 찾아오다니······.’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간난이 얘가 도대체 어딜 갔담?”

“그러게요. 아까도 빨랫감을 잔뜩 들고 냇가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걸 봤는데···.”

“저기 간난이가 널어놓은 빨래가 있어요.”

“거참, 그럼 얘가 어딜 간 거야?”


아침나절까지 분명히 있던 어린 계집종이 보이지 않자 하씨 집안의 남녀 비복들이 모두 나서 집 안팎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든 행랑아범은 서둘러 사랑채 쪽문을 벗어나 냇가로 달려갔다.

멀리 희끗희끗한 것이 너럭바위 앞 소용돌이를 따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맙소사!”


행랑아범과 달려 나온 노비들은 눈앞의 광경에 입이 벌어졌다.

온 집안을 이 잡듯이 뒤져도 보이지 않던 간난이가 검푸른 소용돌이 위에 떠 있었다.


“아이고 간난아!”


어린 계집종의 어미인 봉명댁이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너럭바위 쪽으로 달려갔다.

뒤를 따라 하씨 집안의 비복들이 앞다투어 몰려갔다.


“아이고, 간난아! 아이고! 아이고!”

“이것아, 네가 거길 왜 가! 왜?”


창졸간에 자식을 잃은 간난이의 어미와 아비는 너럭바위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였고, 젊은 사내종들은 소용돌이 속으로 갈고리를 던져 물 위를 돌고 있는 어린 계집종을 끌어당겼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처리하거라!”


거적때기에 쌓인 간난이의 시신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하덕구의 명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주검으로 발견된 어린 계집종은 염도 하지 못한 채 냇가의 소나무 아래에 묻혔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주인마님의 엄명과 별채에 머물고 있는 왜인 부부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어린 계집종은 왜인 술사가 소용돌이에 제물로 바쳤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나돌기 시작하였다.

그 또한 얼마 못 가 조용히 잊혔고, 별당 근처엔 발길이 끊겼다.


*****


창틈으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지연이 깰세라 나는 커튼을 쳤다.

지연이 걱정이 되어 머리맡에서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하였지만, 이상하리만큼 컨디션은 좋았다.

원래 야행성이라 밤을 새우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지난밤에 지연에게 빙의되었던 영혼이 한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에 피곤할 틈도 없었다.


- 남매끼리는 입을 맞추면 안 되지.


- 남매끼리는 입을 맞추면 안 되지.


- 남매끼리는 입을 맞추면 안 되지.


지연과 남매일 리는 없고, 그렇다면 지연에게 빙의되었던 영혼과 내가 남매라는 말인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영혼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으으응.”


오랜 잠에서 지연이 깼다.


“어머나!”


눈을 뜬 지연은 머리맡에 누군가 앉아 있자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잘 잤어?”

“네, 네가······.”

“쉿, 잘 잤으면 됐어.”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지연의 입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막았다.


“배고프겠다. 해장국 먹으러 가자.”


지연을 억지로 일으킨 나는 반강제로 욕실에 밀어 넣었다.


“간단히 씻고 나와. 밤을 샜더니 나도 배가 많이 고프단 말이야.”


거울에 비친 얼굴은 너무도 편안해 보였다.

자고 일어나면 붓기가 있던 얼굴도 멀쩡했고, 눈 밑에 있던 다크서클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랜만에 푹 자서인지 몸은 솜털같이 가벼웠다.


지연은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성우가 언제 왔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지금 그대로의 모습과 생각으로 하루를 맞기로 했다.


“그래. 즐겁게 친구와 아침 식사를 하고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거야.”


지연은 잇몸을 하얗게 드러내고 밝게 웃었다.


“적당히 해. 넌 화장 안 한 얼굴이 더 예뻐!”


나는 화장대에 앉아 머리를 말리는 지연을 향해 속삭이듯 말하였다.

가볍게 돌아가는 헤어드라이기 소리와 창밖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 방안을 가득 메우는 햇살만큼이나 편안한 풍경이었다.


“가자!”

“어딜?”

“어디든.”


숟가락을 놓자마자 지연을 잡아끌어 차에 태웠다.

살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지연과 단둘이 동해 바닷가를 달리고 싶었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 인간이 잡을 수 있는 시간은 지금밖에 없어!

지금!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지연과 단둘이 함께 할 시간이 안 올지도 몰라.’


지연을 납치하다시피 태운 나는 원주 톨게이트를 벗어나 강릉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아침햇살이 눈 앞을 가려 급히 썬글라스를 꼈고, 지연은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쓰고 나온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 썼다.


“음악 들을까?”

“좋지.”


오디오를 켜려 하자 지연이 손으로 막았다.


“어허! 옆에 라이브 가수를 두고 뭐하는 거야?”


지연의 말에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뭐야, 그 웃음은? 너 내 노래 실력을 몰라서 그래?”

“아니야. 모르긴, 문득 고등학교 때 네가 들려주던 노래가 생각나서······.”

“아, 맞다! 너 그때 응큼하게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 노래를 들었었지?”

“그랬었나?”


나는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지만, 짐짓 모르는 척 능청을 부렸다.


“가만, 그때 불렀던 노래가 뭐였더라?”

“글쎄? 원더걸스? 소녀시대? 티아라?”

“내가 그렇게 깜찍 발랄한 노래를 불렀었나? 하긴, 걸그룹이 나하고 잘 어울 리긴 하지. 깔깔

깔.”


너무 너무 멋져~ 눈이 눈이 부셔~ 숨을 못 쉬겠어~

떨리는 Girl Gee Gee Gee Gee~~


“야, 야! 앉아!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신고 들어 가!”


너무 부끄러워 쳐다볼 수 없어~ 사랑에 빠졌어~ 수줍은 Girl Gee Gee Gee Gee~~


- 흥! 나는 차디찬 물속에서 떨고 있는 데 너희들은 신이 나서 바닷가로 놀러 간다 이거지?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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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뒤바뀐 아이 24.09.07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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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하씨 가문의 비밀 24.09.01 11 0 12쪽
11 10화. 빙의 24.08.30 12 0 12쪽
10 9화. 무당의 딸 24.08.28 12 0 12쪽
9 8화. 이방인 술사 +2 24.08.28 21 1 12쪽
8 7화. 출생의 비밀 +2 24.08.27 23 1 12쪽
7 6화. 신이 머무는 숲, 신림(神林) 24.08.26 20 1 11쪽
6 5화. 정체불명의 영혼 +2 24.08.24 27 1 11쪽
5 4화. 사령(死靈)의 소원 +2 24.08.23 33 1 12쪽
4 3화. 사라진 무구(巫具) +2 24.08.20 33 2 12쪽
3 2화. 귀곡성(鬼哭聲) +2 24.08.19 85 3 12쪽
2 1화. 자살바위 +4 24.08.19 36 3 12쪽
1 프롤로그 24.08.19 36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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