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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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5:07
최근연재일 :
2024.09.14 11:4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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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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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수 :
86,546

작성
24.08.24 16:18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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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화. 정체불명의 영혼

DUMMY

5화. 정체불명의 영혼


- 왔구나!

- 생각보다 많이 늦었네!


“뭐?”


무당바위 위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화보살은 ‘흠칫’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넌 이 지역 출신 무녀이면서 왜 이제야 온 거지?

- 아, 그러고 보니 신내림을 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았구나.

- 신기도 이미 바닥이고, 크흐흐흐.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낯선 목소리는 마치 이화보살을 놀리듯이 빈정거렸다.


“누구냐 넌? 누군데 이곳에 있는 거지?”


- 그건 네가 알아내야지.

- 그 아이들을 살리고 싶으면 무구를 찾아!

- 안 그러면 너도 죽을 거야!


“뭐, 숨어서 빈정거리지 말고 어서 모습을 드러내!”,


- 건방진! 새파란 무녀 주제에 건방지구나!


갑자기 노기 어린 음성과 함께 거대한 힘이 몰려오더니 이화보살을 옴짝달싹 못 하게 얽매었다. 이화보살이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자 천천히 몸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뭐, 뭐지? 이건?”


당황한 이화보살은 자신을 옥죄고 있는 힘을 떨쳐버리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움직일수록 조이는 힘이 점점 강해져 숨이 막혀왔다.


“웁! 웁! 이거 놔! 당장··· 놔······.”


- 크크크크큭! 살고 싶으면 조선 무녀의 무구를 찾아와라!

- 안 그러면 너도, 무녀의 자식도 모두 죽는다!

- 기한은 열흘!

- 열흘 안에 무녀의 무구를 찾아오너라!


긁히는 쇳소리와 같이 기괴한 음성은 섬뜩한 협박을 남기고는 한줄기 회오리바람과 함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털썩!


“아앗!”


허공에 떠 있던 이화보살은 바닥으로 나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억울하게 죽어 원혼이 된 조선 무녀를 만나려던 이화보살은 뜻밖의 상황에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이화보살을 맞이한 것은 무녀가 아닌 다른 존재였다.

엄청난 힘을 지닌 기이한 존재······.


“하아! 하아! 도대체 뭐지? 저 녀석은 절대로 이 땅의 무녀가 아니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화보살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무녀의 자식이라니? 누굴 보고 하는 소리지? 성우가? 아니면 지연이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 동생인 성우의 부모님은 분명히 손바닥만 하지만 화전을 일구던 농부였다.

또 지연의 부모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지만, 과거에 무당바위에서 죽은 무녀 외에 이

지역에서 무당은 자신밖에 없었기에 분명 지연도 무녀의 딸은 아니었다.

이화보살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정체불명의 존재가 한 말을 되뇌었다.


- 크크크크큭! 살고 싶으면 조선 무녀의 무구를 찾아와라!

- 안 그러면 너도, 무녀의 자식도 모두 죽는다!

- 기한은 열흘!

- 열흘 안에 무녀의 무구를 찾아와라!


“조선 무녀의 무구라고? 그럼 아까 그 존재는 조선인이 아닌가? 조선이라고?”


이화보살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때 부딪혀 까진 무릎을 절뚝거리며 자신의 승용차로 돌아왔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과 자신은 물론 성우와 지연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이화보살이 무당바위에서 봉변을 당하고 있을 때 나는 인천 계양구에 다다르고 있었다.

퇴근 시간에 맞물려 잠시 정체가 되었지만, 그런대로 이른 시간에 임학역을 돌아 계양산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임학동과 계산동은 오랫동안 살던 곳이었기에 너무도 친숙한 곳이었다.

내가 이화보살의 전화를 받자마자 무작정 달려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구의 행방도 궁금하였지만, 계양구에 사는 오랜 지인들을 만날 생각에 깊게 생각도 없이 그냥 차를 달려온 것이었다.


“와! 이게 얼마 만이냐?”


나는 임학공원에 차를 주차하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회에 젖었다.

과거 청일슈퍼 사장의 부인에게 사전에 연락을 안 하고 올라온 것이라 우선은 지인들을 만나 술부터 한 잔 마실 생각이었다.

들뜬 마음에 공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차에 이화보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성우는 몽둥이로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악귀인 줄은 알았지만, 이화보살을 허공에 띄울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라면 생각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려던 것을 미루고 곧바로 과거 고향에 살던 슈퍼 여주인에게 전화를 하였다.


“여보세요? 어디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횡성 청일 출신의 하성우라고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 연락처는 여사님의 고향 친구인 오인영 씨로부터 알아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좀··· 무거운 얘기라······ 직접 만나 뵙고 말씀드리면 어떨까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언제 오시겠어요?”


나는 과거의 상처를 건드릴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행히도 과거 고물 장수의 부인, 아니 청일슈퍼 여사장인 지옥섭 여사는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네, 실은 제가 살던 곳이라 지인들도 만나 볼 겸해서 이미 근처에 올라와 있습니다. 편하신 시간과 장소를 알려 주시면 맞춰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세요? 마침 손님도 없고 한가한 시간이니 지금 오셔도 됩니다. 네비에 ‘무당골 계양신녀’를 찍고 오세요.”

“네? 네.”


어안이벙벙하였다,

무당골로 오라니, 그럼 지옥섭 씨도 무녀란 말인가?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내비게이션에 ‘무당골 계양신녀’를 검색하자 내가 서 있는 곳 근처였다.

차에서 내린 나는 임학공원 근처에 있는 빌라에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곳으로 갔다.

깃발에는 ‘계양신녀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씌어 있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고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인천으로 올라온 지옥섭이 왜 무속인이 된 것일까?

무당바위의 소용돌이에 사는 악령과 어떤 연관성이 있기는 한 걸까?

차에서 채 200 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걸으며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신당에 다가가자 흰머리에 곱게 비녀를 꽂은 노인이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온화한 얼굴의 노인은 무녀라기보다 친할머니처럼 친숙한 모습이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노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멍하니 바라보았다.

노인은 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종이컵에 인스턴트커피를 타 앞에 내놓았다.


“언젠가 누군가가 찾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젊고 멋진 분이 찾아왔군요.”


지옥섭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서일까? 비극적인 과거를 가진 여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표정이 밝았다.


“무구 때문에 오셨지요?”

“네? 그걸 어떻게······.”


내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바라보자 노인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신당 쪽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는 제단 위에 올려놓은 부채와 방울을 들어 올렸다.


“이게 남편이 제게 남긴 무구입니다.”

“네?”

“신혼 초에 끔찍한 일을 겪고 도망치듯이 마을을 떠났지요, 마땅히 갈 곳이 없던 터라 자연스럽게 친정이 있는 인천으로 오게 되었지요.”


여인은 묻기도 전에 담담하게 과거의 일을 털어놓았다.


“아무 것도 없이 숟가락 하나만 갖고 시작한 살림이라 남편은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일이란 일은 닥치는 대로 하였지요. 더구나 제 뱃속에 아이마저 생기자 남편은 잠을 안 잘 정도로 일거리를 찾았어요.”


나는 종이컵을 들어 커피를 입에 댔다.


“고물장수가 보기엔 천해 보여도 제법 돈벌이가 되었지요. 그러던 중에 마을 아이들이 갖고 노는 무구를 발견한 거지요,”

“네······.”

“고철값이 비쌀 때였어요.”


무녀 지옥섭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연이었다.


“야, 어디야?”

“인천!”

“갑자기 인천은 왜?”

“그럴 일이 있어.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죄송합니다. 전화를 안 받으면 며칠이고 잔소리를 하는 친구라······.”

“좋은 인연입니다, 한 번 어긋나긴 했어도······.”

“네?”

“서두르세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지옥섭은 뜻 모를 소리를 하며 탁자 위에 있던 무구인 부채와 방울을 챙겨 종이 가방에 담았다.


“나머지 무구에 대해서는 나중에 전화로 할게요, 다시 말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요.”

“네, 네······.”


나는 등을 떠밀리듯이 신당을 나왔다.

여인은 무녀답게 나와 지연이 처한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원주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남편은 무구를 지키려고, 가족을 대피시키기 위해 스스로 무당바위로 간 거예요.”


과거 고물장수를 하던 박광열의 부인인 지옥섭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구를 돌려 달라고 시달렸으면 순순히 돌려주면 될 일이었는데, 무구를 지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그 무구를 신성한 곳에 보관하기 전까지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릅니다. 다행히 악령의 힘이 멀리까지는 미치지 못하니, 반드시 밤에는 주무시고 날이 밝은 후에 움직이세요.”


지옥섭의 신신당부에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여주 어딘가의 길가에 차를 세웠다.

이쯤이면 한밤중이라도 악령이 힘이 미치지 못할 거리였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철희네 농장에서 고구마 순을 심고 또 인천을 오고 가느라 피곤했는지 운전석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었다.

지연이었다.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으응, 깜빡 잠들었나 봐.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잠결에 지연의 전화를 받으며 시간을 보니 새벽 3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나 무서워.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겠어.”


지연은 흐느끼고 있었다.

아니, 가볍게 떨고 있었다.


“지금 어디야?”

“어디긴? 집이지.”

“알았어. 내가 지금 갈게.”


지연이 걱정이 되어 시동을 걸었다.

여주의 외진 국도는 가로등도 없이 어두컴컴하였다.


“답답해. 왜 이렇게 답답한 거야?”


신당에서 치성을 드리고 있던 계양신녀 지옥섭은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불안감에 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하성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기운은 뭐지? 꿈틀거리는 기운은 아까 만났던 그놈 같은데, 어떻게 기운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거지?”


잠자리에 누웠던 이화보살은 꿈자리가 뒤숭숭 하자 냉장고를 열어 냉수를 들이켰다.

그 시각 나는 지연이 걱정이 되어 어두운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조수석 종이가방 안의 부채와 청동거울에서 반딧불처럼 파란 불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 계속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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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3 하윌라
    작성일
    24.09.04 23:52
    No. 1

    오 신비롭고 잼있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8 술뫼도사
    작성일
    24.09.05 06:44
    No. 2

    무당바위는 실제로 제 고향에 있습니다.
    자살자들이 많았던 것도, 귀신 출몰이 잣았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소설 시작할 때 무당바위에 찾아가 술을 올리며 글을 써도 되냐고 허락을 구헸고요.
    물론, 답은 듣지 못헸지만 지금까지 헤가 없는 걸 보면....
    작가님, 오늘도 고맙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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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이방인 술사 +2 24.08.28 21 1 12쪽
8 7화. 출생의 비밀 +2 24.08.27 23 1 12쪽
7 6화. 신이 머무는 숲, 신림(神林) 24.08.26 20 1 11쪽
» 5화. 정체불명의 영혼 +2 24.08.24 27 1 11쪽
5 4화. 사령(死靈)의 소원 +2 24.08.23 33 1 12쪽
4 3화. 사라진 무구(巫具) +2 24.08.20 33 2 12쪽
3 2화. 귀곡성(鬼哭聲) +2 24.08.19 85 3 12쪽
2 1화. 자살바위 +4 24.08.19 35 3 12쪽
1 프롤로그 24.08.19 35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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