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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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5:07
최근연재일 :
2024.09.14 11:4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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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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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사라진 무구(巫具)

DUMMY

3화. 사라진 무구(巫具)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상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확인을 해봐야겠어. 정말 네 형의 죽음하고 무당하고 연관이 있는 거 같아.”


서둘러 상진과 헤어진 나는 지연에게 전화를 하였다.

동창이자 첫사랑이었던 지연은 지역신문 기자였다.


“뭐야? 데이트 신청인 줄 알았는데······.”


지연은 내 말을 듣고는 실망한 듯 눈을 흘겼다.


“그, 그게······.”

“깔깔깔! 농담이야. 이 정도 말에 얼굴이 발개지다니, 넌 어쩜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니? 지금이라도 고백하면 받아줄 수도 있는데.”

“장난 그만하고, 이 사람에 대해 기억나는 거 없어?”

“누구?”

“왜 우리가 어릴 때 트럭을 끌고 다니던 고물 장수 아저씨 있잖아?”

“아, 슈퍼 아저씨?”

“맞지? 그 고물 장수 아저씨가 청일슈퍼 아저씨가 맞지?”

“응, 아마 신혼 초에 자살했을 걸? 고물 장수로 돈도 제법 벌고, 장가도 가서 애도 낳고 한창 깨가 쏟아지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고 말들이 많았잖아. 그래서 다들 귀신이 들려 그런 거라고 수군거렸던 거 같아.”


지연은 내 말에 과거를 떠올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럼 역시 그 아저씨가 아이들이 꺼내 온 무구를 빼돌렸다는 건가? 그래서 무녀의 저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때 사라진 무구는 어디로 간 걸까?”

“칼 같은 쇠붙이야 고물로 팔았으면 이미 녹여서 다른 물건이 되었겠지. 방울이나 부채는 아마도 불태웠을 거야.”

“그럼 사라진 무구를 찾을 수가 없잖아. 무구를 찾아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으면 사람들이 또 죽을지도 몰라.”

“휴, 이 좋은 날씨에 이런 대화나 하고 있으니······.”


맑은 하늘을 바라보려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아무리 호기심이 많은 작가라고 하지만, 어릴 때 짝사랑하던 지연과 귀신이니 저주니 하는 소리나 떠드는 현실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죽음의 위험을 겪은 터라 그냥 물러설 수도 없었다.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떠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었다.


“하긴, 나 같은 미인을 앞에 두고 오컬트 스릴러물 같은 대화나 나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깔깔깔!”

“어휴,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놈의 공주병은······.”

“쳇! 언제는 씩씩해서 좋다며?”


‘그건 네가 다른 놈하고 결혼하기 전 얘기지.’


나는 무의식중에 튀어나오려던 말을 억지로 삼켰다.


“아, 맞다!”

“뜬금없이 뭐?”

“이화 누님, 왜 무당이 된 고향 선배 박이화 있잖아.”

“아, 그 언니 얘긴 나도 들었어!”

“그래, 그 누님한테 가면 뭔가 실마리가 나올 거 같아!”

“와우!”


나와 지연은 로또라도 맞은 듯 신이 나 두 손바닥을 마주쳤다.


“야, 지금 우리가 하이 파이브나 할 상황이냐?”


지연이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목숨이 걸려 있을지도 모를 상황에 지연과 희희낙락하는 건 뭔가 아니었다.


“물론 아니지.”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두 팔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하였다.


“가자.”


지연은 다짜고짜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박이화, 무녀인 이화보살은 갑자기 고향 후배의 전화를 받고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친구 동생이라 반가우면서도 뜬금없이 찾아오는 이유가 궁금하였다.

아무리 자신이 무녀라고 하여도, 이런 소소한 일마저 몸주가 알려 주지는 않았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이화보살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뭔가 알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자신을 덮쳐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똑똑똑!

꿀꺽!


“안녕하셰요? 누님 오랜만이네요”

“그래, 오랜만이야. 조그만 꼬맹이가 어른이 다 되었구나.”

“누님은 여전하시네요.”

“여전하긴, 나도 이제 낼모레면 마흔이야 얘.”

“에이, 제가 보기엔 아직도 이십 대 같은데요. 진짜예요.”

“어머, 어릴 때는 수줍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애가 능청을 다 떨다니, 세월이 흐르긴 흘렀구나. 호호호!”


이화보살은 성우를 만나자 불길했던 예감이 모두 기우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얘, 들어와. 박이화 선배님이야. 제 친구 홍지연에요.”

“어서 오······!!!”


이화보살은 지연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아니, 파랗게 질렸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뭔가에 놀랐는지 온몸이 얼어붙어 멍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볍게 몸을 떨기까지 하였다.


“누, 누나··· 왜 그래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나는 이화보살의 어깨를 쳤다. 지연 역시 영문을 몰라 어안이벙벙할 뿐이었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지나자 정신을 차린 이화보살은 조용히 턱짓으로 신당 뒤편에 있는 골방으로 나를 불렀다.


“누님, 왜 그러세요? 저 애가 마음에 안 드세요?”

“위험해! 저 애하고 있으면 네 목숨이 위험해.”

“네?”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지연의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홀로된 지연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론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터였다.

어릴 때부터 짝사랑하던 지연과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나는 누나 친구인 무당 이화보살의 말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누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미안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줄게. 저 아이에겐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쉬어야 한다고 둘러대.”


이화보살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뒷문으로 나갔다.

영문을 몰라 멍청히 서 있던 나는 하는 수 없이 골방을 나와 지연에게로 갔다.


“미안, 누님이 오늘은 몸이 많이 안 좋으신가 봐. 그러니까 오늘은 그만 가고 다음에 다시 오자.”

“······.”


내 말에 지연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지연 역시 이화보살이 자신을 보고 놀라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얼굴은 벌레, 아니 소녀가 뱀을 보고 놀란 것보다도 더 경악한 표정이었다는 것을 지연은 똑똑하게 각인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단지 그 이유가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 잡아먹은 년!”


멀쩡하던 남편이 잠자다 말고 뭔가에 놀란 표정으로 돌연사를 하자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물론 주변 사람들은 지연을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오늘 처음 만난 이화보살이 왜 자신을 보고 그렇게 기겁을 하였는지, 그게 궁금할 뿐이었다.


이화보살은 지연을 보고 놀란 충격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방에 누워있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고, 몸은 여전히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옆에서 조수 역할을 하는 재헌은 이화보살이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였다.

종종 신병처럼 몸져눕는 것은 보아왔지만, 이번처럼 심하게 앓아눕는 건 처음이었다.


“보살님, 괜찮으세요? 감기약이라도 지어올까요?”

“······.”


재헌은 알고 있었다. 감기나 몸살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그렇게라도 낫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냥 꺼낸 말이었다,

이에 이화보살은 힘겹게 손을 들어 재헌에게 나가라는 신호를 하였다.

재헌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나갔다.

이화보살은 두 눈을 감았다.


다시 떠올리기 싫은 모습이 생생하게 눈앞에 나타났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성우의 뒤편에는 선한 모습의 웬 여인이 서 있었고, 지연의 곁에는 원한에 찬 악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기이한 것은 그 악귀들이 모두 앳된 소녀들이었고, 슬픈 표정이었다는 것이었다.

멀쩡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의 꿈을 키우고 있던 이화보살은 갑자기 찾아온 신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았고, 결국 연인과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악귀지만 슬픈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어린 소녀들의 영을 떠올릴수록 비

수로 가슴을 후벼파는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 사령들은 뭐지? 왜 어린 소녀들이 그런 악귀가 된 것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더구나 그런 악귀들이 왜 하필 고향 후배인 지연에게 들러붙은 것인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성우나 지연이 귀신에 씌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영혼들이 그 둘의 곁을 멤돌고 있을 뿐이었다.


“휴, 내가 바보짓을 했구냐.”


이화보살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나는 무녀다. 무녀는 무(巫)자,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무녀인 내가 날 찾아온 가엾은 영혼들을 내치다니, 이 무슨 못난 짓이란 말인가?”


곱씹어 생각할수록 자신이 한 행동이 한심해 보였다.

사람으로 찾아온 후배 성우와 지연, 그리고 그들을 따라온 선한 영혼과 악령들, 이유야 어떻

든 모두 무녀인 자신을 찾아온 존재들인데, 그들을 그냥 내친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휴, 못난 것 같으니······.”


이화보살은 가볍게 미간을 찌그리고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 시각, 나는 근처 자연휴양림에 홀로 있었다.

그냥 집이 있는 원주로 나오기에는 개운치 않았고, 그렇다고 누군가와 어울리기엔 시골에 마땅

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자연휴양림이었다.

지연을 부를까도 했지만, 아무리 편하고 친한 친구라고 해도 그녀 역시 여자였다.

더구나, 그녀는 돌아온 싱글이었다,


“어차피 둘 다 혼자인데, 그냥 편하게 불러서 한잔 하자고 할까?”


나는 캔맥주를 마시며 중얼거리다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몹쓸 놈의 이성이 또 자신을 이겼다고 생각하니,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언젠가 친구 놈이 한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인마! 사랑을 가슴으로 해야지, 머리로 하는 놈이 어디 있냐?”


오랜 친구답게 자신의 연애관을 정확하게 꿰뚫는 말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여자들을 만나면서 쓸데없이 생각이 너무 많았다.

상대방은 별생각이 없는데 혼자 예단하고, 속단하고, 결정하고, 문제가 많았다.

그 몹쓸 성격 때문에 작가라는 포장지로 먹고는 살고 있지만, 연애에는 여전히 빵점이었다.

IQ 128, MBTI는 ENTJ

연애 쪽으로는 젬병인 두뇌와 성격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캔맥주 두 개를 연거푸 비웠다.


“푸, 푸하하!”


장작불이 내 웃음소리에 화답하듯 일렁거렸다.

평상시 캠핑장에서 불을 피워놓고 불멍을 때리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아니, 그럴 시간이 있으면 책을 보든지, 공부를 하든지 하고 그들을 내심 경멸하던 내가 불멍이나 때리고 있다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일부러 캠핑장 가장 외진 곳을 선택하였다.

캔맥주도 6개 묶음을 두 개나 샀다.

홀로 조용히 취하고 아침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싶었다.

점점 자주 보이는 희끗희끗한 기이한 형상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고향 친구들.

다시 사랑을 키우고 싶은 지연을 멀리하라는 고향 선배이자 무당.

착잡하였다.


휘이이잉.


순간, 차가운 회오리바람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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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화. 광기(狂氣) 24.09.10 8 0 12쪽
15 14화. 뒤바뀐 아이 24.09.07 10 0 11쪽
14 13화. 해코지 24.09.03 15 0 11쪽
13 12화. 제물 24.09.01 15 0 12쪽
12 11화. 하씨 가문의 비밀 24.09.01 11 0 12쪽
11 10화. 빙의 24.08.30 12 0 12쪽
10 9화. 무당의 딸 24.08.28 13 0 12쪽
9 8화. 이방인 술사 +2 24.08.28 21 1 12쪽
8 7화. 출생의 비밀 +2 24.08.27 23 1 12쪽
7 6화. 신이 머무는 숲, 신림(神林) 24.08.26 20 1 11쪽
6 5화. 정체불명의 영혼 +2 24.08.24 27 1 11쪽
5 4화. 사령(死靈)의 소원 +2 24.08.23 33 1 12쪽
» 3화. 사라진 무구(巫具) +2 24.08.20 34 2 12쪽
3 2화. 귀곡성(鬼哭聲) +2 24.08.19 86 3 12쪽
2 1화. 자살바위 +4 24.08.19 36 3 12쪽
1 프롤로그 24.08.19 36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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