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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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5:07
최근연재일 :
2024.09.14 11:4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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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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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무당의 딸

DUMMY

9화. 무당의 딸


“어머니! 이젠 진실을 말해주세요! 도대체 계곡에서 왜 제사를 지낸 것인지, 거기 있는 존재가 우리 집안과 무슨 관계인지 이젠 말해주세요!”

“······.”

“어머니!”


하용균은 아버지 하무행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에서 어머니 김명자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김명자는 굳게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제발······.”

“조용히 해! 아버지 깨실라.”


용균의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너무도 짤막하였다.


“그만 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김명자는 둔탁한 하이힐 소리를 내며 병실을 나갔다.


휘이이이잉···


한 줄기 바람이 신당 안을 휘젓고 지나가자 제단 위의 촛불들이 모두 꺼졌다.

창을 통해 가로등 불빛이 스며들었지만, 신당 안은 어두침침하였다.


“누구냐?”


이화보살은 본능적으로 손님이 찾아온 것을 알았다.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딸랑딸랑! 딸랑딸랑!


청동방울이 힘차게 울렸다.

그리고 눈앞에 소녀들이 나타났다.


스륵··· 스륵··· 스르륵······


한 명, 두 명, 세 명···


휴양림의 숲속에서 하성우에게 나타났던 소녀들의 영혼이었다.

이화보살은 홍지연의 곁에 있던 사령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희들이 무슨 일이지?”

“······.”


소녀들은 슬픈 표정으로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너희들을 보낸 게 일본인 술사인가?”

“······.”


이화보살의 물음에 소녀들은 순간 두려움에 휩싸인 듯 움찔하고 뒤로 물러섰다.


‘역시 소용돌이 속의 악령은 온묘지였나?’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날 찾아온 이유가 뭐야?”


- 무구··· 무구를··· 찾아주세요······.


“뭐? 무구를 찾아달라고?”


- 무구··· 무구를··· 찾아주세요······.


소녀의 영혼은 들릴 듯 말 듯 나지막이 속삭이고는 서서히 사라져갔다.

다른 소녀들 역시 차츰 흐릿해지더니 종적을 감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성우에게도 무구를 찾아달라고 하더니, 또 이화보살에게 소녀들의 영혼을 보내 무구를 찾아달라고 하다니······.

악령과 소녀들은 무구를 찾아달라고 하고, 정작 무구의 주인인 조선의 무녀는 감추라고 하고, 도대체 뭐가 뭔지 혼란스러웠다.

분명한 건 악령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소녀들의 애절한 바람은 자신들의 소원인지, 악령이 시킨 것인지 판단이 필요했다.

이화보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꺼진 촛불을 다시 밝혔다.


하아. 하아.


하가네 식품의 회장이던 하무행은 산소마스크를 쓴 채 힘겹게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들인 하용균이 어머니인 김명자를 다그치는 소리를 모두 듣고 있을 정도로 의식은 멀쩡하였지만, 몸을 일으켜 말을 할 정도의 기력은 없었다.


설희

미안해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너를 희생시킨 대가로 얻은 부와 명예가

이제는 온몸을 찌르는 고통으로 다가오는구나.


주르륵.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설희

이름처럼 하얗고 밝았던 여인

수양버들처럼 하늘거리는 머릿결과 사슴 눈망울을 닮은 검은 눈동자

길고 뽀얀 목덜미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던 여인

뭇 사내들의 눈길을 한눈에 받던 그녀가 내 품에 안겼을 때

나는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진시황제도 부럽지 않았지.

그런 그녀를······.

그녀를······.


“안 된다! 어디 여자가 없어서 그런 천한 무당의 딸년을 만난단 말이냐?”


아들이 무당의 딸을 만난다는 소리를 들은 하덕구는 노발대발하여 하무행이 집에 들어가자마자 온 집안이 떠들썩하게 고함을 질렀다.


“그럼 우리 집안은 뭐가 잘났나요? 대대로 머슴살이를 하다 벼락부자가 된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설희를 무시하시는 거예요?”


아버지의 악담에 화가 난 하무행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


“아무리 뭐라고 하셔도 저는 설희와 혼인할 거예요!”

“그래도 이놈이!”


짜악!


결국 하덕구는 아들의 뺨을 올려붙였다.

칠십이 넘은 나이였지만, 평생을 머슴살이로 쌓인 손매는 무서웠다.


와당탕!


하무행이 맥없이 쓰러지며 장롱 문짝에 부딪쳤다.


“영감! 영감마저 왜 이러시오. 제발 고정하시오.”


분을 참지 못하고 목침을 집어 든 하덕구의 앞을 부인이 두 팔을 벌려 막았다.

이를 바라보던 가노들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아무리 부자라도, 왜놈들한테 자작 작위를 받은 고귀한 신분일지라도 천한 머슴 출신이라는 밑바탕은 어쩔 수 없었다.


“두 말 하지 않겠다. 종지마을 김 초시 댁 첫째 딸과 혼삿날을 잡았으니 그리 알 거라.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그 아이를 만난다면, 그 아이가 무사하지 못한 것이야!”

“아, 아버지······.”


허언이 아니었다.

칠십 고령임에도 사냥을 좋아하고 맨손으로 멧돼지를 때려잡는 무식한 아버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결국 하무행은 아버지의 강요에 김명자와 혼인을 올렸다.

무당의 딸 설희의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설희

영혼이라도 편안하면 좋으련만······.


******


“왜 이렇게 늦었어. 무서워서 혼났단 말이야.”

“미안, 연장 수업을 하는 바람에······.”


밤 11시가 넘어 문을 두드리자 지연의 투정이 쏟아졌다.


와락!


갑자기 지연이 품에 안기자 숨이 막혔다.


“잠깐만 이대로 있어 줘. 나 너무 힘들단 말이야.”

“······.”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내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나도 힘차게 지연을 끌어안았다.

심장은 더욱 요동쳤다.


“야, 오버하지 마!”


지연이 가볍게 밀쳐냈다.


“커피? 아니면 맥주 한 잔 할래?”


지연은 뻘쭘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 어깨를 가볍게 치고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마셔!”


지연은 캔맥주 두 개를 꺼내 하나를 던졌다.


딸깍!

벌컥벌컥! 벌컥벌컥!


단숨에 캔맥주 하나를 마셨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아까 이화 언니한테서 연락이 왔었어. 별일 없냐고, 이화 언니 신당에는 소녀들의 영이 왔었대. 그 말을 듣고 나니 너무 무서워서 전화를 한 거야.”


지연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나를 믿고 전화를 준 지연이 고마웠다.

지연의 원룸에는 금줄뿐만 아니라 십자가와 작은 불상은 물론이고 달마상까지 걸려있었다.


“부처님도 계시고, 예수님도 계시고, 거기다 달마대사까지······, 내가 없어도 지켜주시는 분들이 많네.”


나는 지연을 안심시키기 위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뭐? 한밤중에 불러서 불만이야?”

“노, 노!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네가 잘 알잖아.”


지연이 토라진 표정으로 말하자 나는 당황하여 두 손을 저었다.


“자고 갈래?”

“뭐?”

“농담이야, 넌 어쩜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니?”


내가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지자 지연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만 가. 이제 괜찮아졌어.”

“으, 응······.”


지연은 반강제로 나를 밀어냈다.

맥없이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지연이 다시 불렀다.


“성우야.”

“응.”


텁!


뒤돌아보는 나를 향해 지연이 달려들었다.

입을 맞췄다.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려 하자 지연은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휘스스스스스···


한줄기 스산한 바람에 아파트 담장 위의 장미 넝쿨이 파리하게 떨렸다.


“훗,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무슨 로맨스람?”


지연의 집에서 나온 나는 혼란스럽기만 하였다.

뜨겁게 입을 맞춘 지연이 알 수 없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뭐?”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반대라면······.”

“???”


나는 지연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뜸을 들이자 영문을 몰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전히 달콤한 키스의 여운이 입가에 맴돌고 있었다.


“그렇잖아, 네 앞에 나타난 소녀들의 영혼이나 이화 언니 앞에 나타난 영혼이 모두 무구를 찾아 달라고 했잖아. 물론 너를 협박한 영혼도 그랬고······.”

“그게 왜?”

“그러니까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또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거야.”

“······.”

“우리에게 무구를 봉인해야 한다고 말한 건 인천에 사는 무당이야. 과연 그 분 말이 모두 옳은 걸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내 말은 무구를 봉인하는 게 옳은 건지, 아니면 찾아서 무당바위에 가져가는 게 옳은 건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야.”


나는 지연의 말을 회상하며 머리를 저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무구를 봉인하면 자신과 지연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목숨마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지연이 말이 맞을지도······.”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내 모습을 지연이 창가에서 창백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더니 무너지듯 침대 위에 쓰러졌다.

침대 머리맡에는 지연이 밝혀놓은 작은 촛불 두 개가 일렁이고 있었다.


지연의 집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는 승용차로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강변로를 따라 달렸지만, 밝은 가로등과 전조등 때문이었는지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차공간이 없어 아파트 담장 밖 공터에 차를 세운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향하였다.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지연과의 키스도, 지연의 말도 꿈결처럼 아스라하게 느껴졌다.


용균은 새벽이 오도록 잠 못 들고 있었다.

벌써 두 병째 딴 양주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취해 널브러졌을 텐데, 오늘은 아무리 마셔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고향에서 본 모습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도대체 왜?

우리 집안과 무당바위에 있는 원혼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건강하던 아버지는 왜 갑자기 쓰러진 것일까?

아버지가 입원하자마자 왜 어머니는 놀라 시골로 달려가 제사를 지낸 것일까?

그래,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직접 알아보면 된다.


하용균은 취중에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다.

차 키를 챙긴 용균은 비틀거리며 집을 나섰다.

양주 두 병을 마셨지만, 정신은 멀쩡하였다.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지만, 용균은 자동차를 몰고 거리로 나왔다.


부아아아아앙.


용균은 뭔가에 홀린 듯 강원도를 향하였다.

새벽녘이라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는 도로는 한산하였다.

평소 틈이 날 때마다 드라이브를 즐기는 용균은 내비게이션을 켜지도 않은 채 횡성으로 향하였다.

무의식중에 가속 페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부아아아아.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용균의 스포츠카는 과녁을 향해 날라가는 화살처럼 어둠 속을 질주하였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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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하씨 가문의 비밀 24.09.01 11 0 12쪽
11 10화. 빙의 24.08.30 12 0 12쪽
» 9화. 무당의 딸 24.08.28 13 0 12쪽
9 8화. 이방인 술사 +2 24.08.28 21 1 12쪽
8 7화. 출생의 비밀 +2 24.08.27 23 1 12쪽
7 6화. 신이 머무는 숲, 신림(神林) 24.08.26 20 1 11쪽
6 5화. 정체불명의 영혼 +2 24.08.24 27 1 11쪽
5 4화. 사령(死靈)의 소원 +2 24.08.23 33 1 12쪽
4 3화. 사라진 무구(巫具) +2 24.08.20 33 2 12쪽
3 2화. 귀곡성(鬼哭聲) +2 24.08.19 85 3 12쪽
2 1화. 자살바위 +4 24.08.19 36 3 12쪽
1 프롤로그 24.08.19 36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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