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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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5:07
최근연재일 :
2024.09.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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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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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봉복사 주지

DUMMY

17화. 봉복사 주지


“제물! 제물이 필요해! 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두 눈을 붉게 빛내며 고함을 치자 무당바위 주변에는 음산한 기운이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흠? 놈이 다시 준동을 하는구나. 이를 어찌한다?”


저녁 예불을 마친 뒤에도 불당 안에서 삼천배를 올리고 있던 덕고스님은 피부로 느껴오는 불길한 기운에 한숨을 내쉬었다.


“막아야 하는데,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으니······.”


작은 사찰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소나무들은 마치 누군가를 보호하려는 듯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휘스스스스스······


“그만하길 다행이에요.”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달려온 이화보살은 병실에 누워있는 나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가벼운 타박상이라 며칠 입원하면 될 일이지만, 상진은 의식불명 상태였다.

가해 차량인 트럭 운전사는 경찰 조사 결과 음주나 마약 등의 혐의는 없었다.

급발진 역시 아니었다.

갑자기 시야가 가려 발생한 사고라는 주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나는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또 누군가 해를 입을 거예요. 누님이 될 수도 있고, 제가 될 수도 있겠죠.”

“······.”


이화보살은 내 말에 공감하였지만, 마땅히 할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체도 제대로 모르는 무시무시한 악령을 상대로 뭘 어찌한단 말인가?


“일단 과거의 일을 기억할만한 사람을 만나야겠어요. 마을의 어르신이든, 면사무소 직원이든 누구라도 찾아봐야죠.”

“흠··· 그렇긴 한데, 놈이 가만히 있을까?”

“밝은 대낮에 움직이면 괜찮을 거예요.”


나는 침대에서 일어서며 꽂혀있던 링겔 바늘을 뼀다.


“며칠 더 있지 않고?”

“지금 그럴 시간이 없어요.”


내 머릿속에는 지연이 밖에 없었다.

왜 오기로 하고 안 오냐는 지연의 전화에 갑자기 급한 상황이 생겨 어쩔 수 없다고 둘러대긴 하였지만, 차마 상진의 사고를 당해 코마 상태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침 날이 좋으니 바로 청일면사무소에 들러 당시 기록이 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나는 이화보살의 만류에도 기어이 퇴원을 하고는 절뚝거리며 택시를 탔다.


“가까운 렌트카 지점으로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


“거참, 진짜 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왜 그러세요?”


유승만 주무관이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신참 직원인 권현민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면사무소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을 바꿔 달라길래 나라고 했더니, 과거 무당바위 사건에 관해 물어볼 게 있다고 온다지 뭔가.”

“거참, 그제도 민원이 들어오더니, 또 무슨 일일까요?”

“난들 만아나. 그야 나보면 알겠지. 그보다 자넨 뭘 좀 알아냈나?”

“별로요. 이 근처에서 팔십이 넘은 노인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데다가, 몇 안 되는 분들도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계셔 주무관이 면내 주서 상담이 안 될 것 같네요.”


권현민민들의 인적 사항이 기록된 서류를 뒤적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아! 그러고 보니 면내에서 가장 고령자가 계시긴 하네.”

“네? 누구요?”

“봉복사 주지 스님! 아직 살아계신다면 아마 90이 넘었을 거야.”

“그래요?”


현민은 화색이 되어 서류 뭉치를 뒤적거렸다.


“아, 여기 있네요! 1927년생이면······ 거의 100살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사망신고가 안 된 걸 보면 아직 살아계신 게 분명해요.”

“아, 그분이라면 과거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실 게 분명해. 그럼 조금 있다가 원주에서 하성우란 분이 오면 함께 봉복사에 가보자고.”

“알겠습니다.

‘설마 치매에 걸리거나 요양병원에 계신 건 아니겠지?’


권현민 주무관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당바위에서 일어난 사건보다도 과거 자신의 집안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게 더 가슴을 뛰게 하였다.


우려와는 달리 햇살이 밝은 한낮이라 그런지 나는 렌트한 승용차를 몰고 청일면사무소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안녕하세요? 어느 분이 유승만 주무관님이신가요?”

“접니다. 하성우 씨죠?”


나는 면사무소에 들어가면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직원을 보고 그가 이곳에서 30년을 넘게 근무했다는 유 주무관임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앉으시죠. 차 한잔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면서 마셨습니다.”


밝게 웃으며 자리를 권하는 유 사무관을 보자 어딘가 낯이 익었다.


“그러고 보니 고향 애경사에서 이미 많이 뵌 분이시네요.”

“고향이?”

“여기 고실입니다.”

“아!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고실분이셨군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금세 무거워졌다.


“혹, 홍상진이란 분 아시죠?”

“네, 며칠 전에 만났습니다.”

“그 후배가 어젯밤에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네?”


내 말에 유 주무관뿐만 아니라 둘의 대화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던 권현민도 깜짝 놀라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서 결례를 무릅쓰고 뵙자고 한 겁니다. 이미 상진이도 그 건으로 상담을 나눴다고 해서요.”

“그렇긴 하지만, 그것 참 안됐군요.”

“주무관님은 이곳에서 30년을 넘게 계셨으니 마을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을 기억하시겠죠?”

“다른 사람들보다야 많이 알긴 해도 오래된 일들이라 가물가물합니다.”


내 말에 유승만 주무관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이 고장의 산증인이 살아계신 데, 그분한테 가보는 게 어떨까요?”

“그래요? 그분이 누구시죠?”

“봉복사 주지스님이요. 방금 전에 통화를 했는데, 언제든 찾아와도 좋다고 하시더군요.”

“봉복사요?”

“왜요? 고향이 고실이면 봉복사에 대해 잘 알지 않아요.”

“잘 알지요. 어릴 때 수시로 놀러 가던 곳인걸요. 그곳 주지 스님도 자주 뵈었고요.”

“그런데 왜?”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눈치가 빠른 유 주무관은 꼬치꼬치 속사정을 물었다.


“그게··· 봉복사에 가려면 무당바위를 지나야 해서······.”

“왜요? 요즘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이화보살이나 내가 그곳에서 당한 일을 알 수 없는 승만은 이해가 안 됐다.


“그곳을 지나는 게 정 꺼림칙하면 고실로 돌아가도 됩니다.”

“아! 그러네요. 왜 내가 그 생각을 못 했지. 하하!”


나는 유 주무관의 말에 멋쩍어 뒷머리를 긁었다.


어릴 때도 옆 새말에 놀러 갈 때면 무당바위를 피해 마을에 있는 작은 고개를 넘고는 하였다.

물론 그 고갯길도 언젠가 누군가 목을 맸다는 근거 없는 소문에 한밤중에는 피해 다닌 기억이 것보다는 나았다.

그래서 유 주무관과 권현민은 차로있긴 하여도, 악령이 잔뜩 화가 난 상태에서 무당바위를 지나는 무당바위를 지나 봉복사로 가기로 하였고, 나는 고향 고실로 가서 고갯길을 넘기로 하였다.


뎅뎅뎅. 뎅뎅뎅.


소나무 사이를 비집고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풍경이 가볍게 울렸다.


“면서기가 무슨 일이람?”


고령의 나이에도 덕고스님은 매일같이 삼천배를 올렸다.

그래서였을까, 여전히 오십 대의 체력과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스님의 나이를 가늠케 하는 것은 산신령처럼 긴 눈썹뿐이었다.


스님이 처음 머리를 깎은 곳은 오대산 월정사였다.

그리고 잠시 상원사에 머물던 스님은 스승인 태기스님의 권유에 따라 작은 암자였던 이곳 봉복사로 오게 되었고, 한평생을 보냈던 것이다.


“참으로 덧없는 게 인생이로다. 채 스물이 되지 않아 이곳에 왔거늘, 벌써 100세를 바라보다니······.”


씁쓸하게 미소 짓는 스님의 긴 눈썹이 바람결에 나풀거렸다.


“요즘 악령의 기운이 점점 강해지더니, 그 때문에 오는 건가?”


덕고스님은 고개를 들어 소나무 숲을 바라보았다.

공허한 바람만이 휘돌아 나갈 뿐 아직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절이긴 하지만, 밥을 해주는 공양주 할머니 한 명과 절의 허드렛일을 해주며 글을 쓴다고 수년째 붙어사는 40대의 노총각 한 명, 그리고 진돗개 두 마리가 절 식구의 전부였다.

종종 고시 공부를 하거나 요양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채 몇 달을 못 버티고 떠나고는 하였다.


큰 길가에 차를 세운 나는 배낭을 메고 고갯길로 향하였다.

어릴 때는 제법 크게 느껴지던 곳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사람들의 행적이 끊겨서인지 길은 온통 잡초와 나무들로 들어차 있었다.

그래도 옛길의 흔적이 남아있어 그런대로 걸을만 하였다.

한낮의 햇살이 고갯마루를 밝게 비치고 있었다.

이런 날씨라면 악령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먼저 출발을 하긴 했어도 차를 타고 가는 공무원들보다 빠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나마 그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한편으로는 악령이 두려워 길을 돌아가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였다.


“멀쩡한 차를 두고 이게 무슨 고생이람? 그래, 올 때는 그냥 차를 얻어 타고 오자.”


나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봉복사의 주지는 몇 년 만에 절을 찾은 유 주무관을 알아보고 합장을 하였다.


“스님은 세월이 빗겨 가나 봅니다. 제가 처음 발령받아 왔을 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하신 게 없네요.”

“그런가요? 하하하!”


유승만의 인사에 덕고스님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네, 실은 저희보다 스님을 뵙고 싶어 하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아마 곧 도착할 겁니다.”


옆에 있던 권현민이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스님에게 말하였다.


“고실 출신이라? 그분 성씨가 어떻게 되나요?”

“하씨입니다. 나이는 삼십 대 초반이고요.”


권현민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던 스님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분이 무당바위를 피해 고실에서 고갯길로 온다고요?”

“네, 같이 오자고 해도 한사코 고개를 넘어온다고······.”

“이, 이런······.”


갑자기 스님의 얼굴이 흑빛이 되자 승만과 현민은 이유를 몰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설희, 설희가 왜?”


덕고스님은 고실에서 넘어오는 고개 방향을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달리듯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목검 하나와 화살과 활을 들고 나왔다.


“누가 저 좀 태워주시겠습니까?”

“네? 네.”


스님의 괴이한 행동에 유승만과 권현민은 영문을 놀라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설희의 아들, 아니 하성우가 위험해요! 빨리 가야 해요!”


덕고스님은 다짜고짜 주차장을 향해 달려갔다.


“아, 젊은 분은 이 칼로 대웅전을 지켜줘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절대로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 네에······.”


얼결에 검을 받아든 현민은 뒷머리를 긁으며 대웅전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갔다.


고갯마루를 막 넘자 온통 수풀에 뒤덮여 길이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울창한 숲에 가려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기까지 하였다.

나는 온몸을 싸늘하게 감싸고 도는 기운에 불길함을 느끼고 발걸음을 멈췄다.

이는 분명 사령, 즉 귀신이 근처에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보이지는 않았다.

시력이 나빠지고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 희뿌연 존재들,

어느 날부터 귀신들이 보였는데 지금은 사악한 기운만 느껴질 뿐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악령이 또 소녀들의 영혼을 보냈나 보군?”


이미 여러 번 귀신을 접한 성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앞을 응시하였다.

그늘 속에 서 있는 희미한 존재······.

괴물체가 점점 짙어지기 시작하며 형체를 드러냈다.


“뭐, 뭐야? 이건 대체!!!”


순간 나는 온몸이 굳어 꼼짝할 수 없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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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봉복사 주지 24.09.18 5 0 13쪽
17 16화. 경고 24.09.14 5 0 12쪽
16 15화. 광기(狂氣) 24.09.10 9 0 12쪽
15 14화. 뒤바뀐 아이 24.09.07 11 0 11쪽
14 13화. 해코지 24.09.03 16 0 11쪽
13 12화. 제물 24.09.01 16 0 12쪽
12 11화. 하씨 가문의 비밀 24.09.01 12 0 12쪽
11 10화. 빙의 24.08.30 12 0 12쪽
10 9화. 무당의 딸 24.08.28 13 0 12쪽
9 8화. 이방인 술사 +2 24.08.28 22 1 12쪽
8 7화. 출생의 비밀 +2 24.08.27 25 1 12쪽
7 6화. 신이 머무는 숲, 신림(神林) 24.08.26 20 1 11쪽
6 5화. 정체불명의 영혼 +2 24.08.24 29 1 11쪽
5 4화. 사령(死靈)의 소원 +2 24.08.23 34 1 12쪽
4 3화. 사라진 무구(巫具) +2 24.08.20 36 2 12쪽
3 2화. 귀곡성(鬼哭聲) +2 24.08.19 94 3 12쪽
2 1화. 자살바위 +4 24.08.19 36 3 12쪽
1 프롤로그 24.08.19 36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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