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2)
탑에는 위험하고 까다로운 몬스터가 많다.
거의 모든 마법을 반사하는 거울 골렘.
노려보기만 해도 상대를 돌로 만드는 바실리스크.
근접 전투 각성자의 재앙인 산성 슬라임 등등...
위험한 만큼 잡았을 때의 보상도 크기 때문에 오늘도 많은 각성자가 도전하고 있다.
특히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신 압도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전장에선 한 마리만 잡아도 억대의 가치를 가진 부산물이 쏟아진다.
다들 일확천금을 꿈꾸며 도전하고, 누군가는 명예와 부를 거머쥐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고.
각성자 협회와 등반 지원부의 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은 각성자를 살해한 것은 다름 아닌 1층의 스켈레톤 나이트였다.
스켈레톤 나이트에게 대체 무슨 능력이 있길래?
...없다.
1층 보스인 스켈레톤 나이트는 그냥 강한 스켈레톤이다.
검과 방패, 갑옷을 입었을 뿐인 단단한 스켈레톤.
그게 전부다.
스켈레톤 나이트에게 살해당한 각성자의 숫자는 추정 150여 명.
이 나라의 각성자 숫자가 대략 일만 명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스켈레톤 나이트 하나가 각성자의 1.5%를 죽인 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스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1층의 초심자들은 직접 겪어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저 전장이 훨씬 돈이 되고, 스켈레톤은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으니 만만하게 본 것이다.
게다가 안전지대가 아니라 여러 각성자가 모이는 전장은 모든 몬스터가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일격에 살해당하기 일쑤였다.
“뭐, 나는 그럴 일 없지만.”
적어도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일반 몬스터 따위에게 몇 번이나 죽을 뻔했던 나에게 방심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레벨 업에 집중했다.
안전지대 기준으로 스켈레톤 나이트 토벌의 적정 레벨은 3.
지금 내 레벨이면 도전해 볼 만하지만 안전을 위해 최소 4까지는 올려둬야 한다.
자동인형의 보조를 받는 전투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레벨 업도 매우 빨라졌고, 고작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목표했던 4레벨에 도달했다.
[레벨이 증가하였습니다.]
[군단 진화 4단계에 도달했습니다.]
[특성 강화를 선택해 주십시오.]
【전투 모듈 2】
【복제 생산 2】
【물리 방어 1】
또 새로운 특성이 생겼군.
물리 방어라...
스켈레톤 나이트가 순수 물리력으로 싸우는 걸 고려하면 꽤 유용한 특성이 될 수 있겠어.
하지만 전투 모듈과 복제 생산도 나쁘진 않아.
전투 모듈 1만으로도 자동인형의 질이 압도적으로 상승했다.
거기서 한 단계 더 상승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질이 아니라 양에 투자하는 것도 좋겠지.
“셋 다 고를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
항상 정답을 고를 수는 없어도 오답을 고르는 것만은 피하는 것이 실력의 척도겠지.
다만 이 경우는 오답이 없고 셋 다 매력적인 선택지라 어렵다.
“보스 사냥을 위해선 역시 물리 방어지만...”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당장은 물리 방어가 좋겠지만 내 특성은 엄연히 ‘군단’ 진화다.
궁극적으로는 물량으로 밀어붙이면서 싸우게 될 가능성이 높아.
나는 고민 끝에 복제 생산 2를 골랐다.
그러자 처음 1을 골랐을 때처럼 자동인형에게 잔상이 생기더니 곧 실체를 가지면서 수가 늘었다.
그것도 둘 다.
고작 2개 늘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율적으로는 두 배가 된 것이다.
만약 다음에 또 복제 생산을 누르면 그때는 8개가 될 것이고.
나는 시험 삼아 스켈레톤 세 마리를 동시에 끌어내 싸워봤다.
혼자서 스켈레톤 한 마리를 상대로 시간을 끌고 나머지 두 마리는 자동인형들이 각자 맡았다.
숫자가 늘었을 뿐,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전투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기에 별다른 변수가 없어서 무난하게 이겼다.
이 정도면 보스 몬스터와 싸워볼 수 있겠다 싶어서 곧장 1층의 중앙에 있는 스켈레톤 나이트를 향해 다가갔다.
[이 앞은 보스 몬스터의 영역입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보스 몬스터를 토벌해야 합니다.]
보스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자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있던 스켈레톤 나이트가 곧장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갑옷을 입었는데도 일반 스켈레톤보다 훨씬 빠른 속도라 자동차가 돌진해 오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 돌진 앞으로 자동인형 하나가 막아섰다.
“...!”
보스 몬스터의 행동은 지금까지의 스켈레톤과 정확히 일치했다.
자기 앞을 막아선 인형의 머리를 걷어찬 것이다.
스펙이 훨씬 높더라도 결국 스켈레톤에 불과하다는 증거.
비록 인형 하나가 그대로 박살났지만 덕분에 보스 몬스터의 돌진이 멈췄다.
“지금이야! 달려들어!”
그 틈에 세 방향에서 다른 자동인형이 동시에 공격했다.
전투 모듈의 칼날이 갑옷을 긁는 소리가 귀를 찢었다.
스켈레톤 나이트가 몸에 달라붙은 자동인형 하나를 붙잡아 던졌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다른 인형들이 공격을 이어 나갔다.
하나를 처리하고 또 하나를 처리하는 동안 처음 날아갔던 녀석이 회복하고 다시 달려든다.
그걸 해치우면 그 사이에 또 다른 녀석이 회복해서 돌아온다...
이런 무한 반복에 빠진 보스 몬스터는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서서히 체력이 깎여 쓰러졌다.
내가 나서서 싸울 필요조차 없었다.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 나이트’를 쓰러뜨렸습니다.]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레벨이 증가하였습니다.]
[군단 진화 5단계에 도달했습니다.]
한번에 여러 메시지창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가 처음 서 있던 자리의 공간이 유리처럼 깨지더니 푸른색의 게이트가 나타났다.
저것이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일 것이다.
“...”
처음 각성하고 온갖 노력으로도 도달할 수 없던 2층.
그걸 이렇게 간단히...
[전설 특성 강화를 선택해 주십시오.]
『재생』
【자동 회복 1】→【초과 회복 1】
*【초과 회복 1】: 최대 체력의 (100%)만큼 초과하여 회복 가능
『학살』
【전투 모듈 1】→【전쟁 모듈 1】
*【전쟁 모듈 1】: 군단원의 전투력 및 전투지능 대폭 증가
『양산』
【복제 생산 1】→【자동 생산 1】
*【자동 생산 1】: 하루에 한 번 군단원 (10) 추가
아참,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지.
특성 강화는 5단계마다 전설 특성 강화를 찍게 된다.
전설 특성은 기존의 일반 특성의 상위 호환 버전으로,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어려운 선택이다.
어느 것도 강력해서 버리기 아깝지만...
가장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큰 고민 없이 양산을 골랐다.
내 특성은 군단 진화.
물량이 가장 중요하다는 전제하에 이보다 더 알맞은 것은 없다.
물론 복제 생산의 두 배 증가가 고정적인 10개 증가보다 오히려 더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선택지에 적히지 않은 맹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개별적인 특성은 5번까지만 강화할 수 있다는 것.
이는 협회와 정부의 조사로 드러난 비공식 규칙이다.
이 규칙을 모르고 전설 특성에서 가장 좋은 걸 고르지 못한 사람들은 훗날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에 비해 나는 강제적으로 후발주자가 됐기에 이런 함정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 규칙에 따르면 복제 생산으로 도달할 수 있는 군단원의 최대치는 2의 5제곱인 32.
복제 생산의 전설 버전인 자동 생산으로 4일 만에 뛰어넘을 수 있는 수치다.
애초에 전설 특성이 일반 특성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
전설 특성을 찍자 내 자동인형이 곧장 14개로 늘어났다.
두 자릿수가 되자 이제야 좀 군단이라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세 자릿수가 될 거고, 몇 달이 지나면 네 자릿수가 된다.
물론 그동안 물량 증가 관한 특성을 더 찍는다면 증가 폭도 더 커지겠지.
“군단인가...”
그러나 잊어선 안 되는 것이 있다.
내 특성은 단순히 군단이 아니라 군단 진화라는 것.
물량도 물량이지만 전투 모듈이나 자동 회복 같은 개별적인 능력 강화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결국 또 선택의 문제군.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일단 보스를 사냥하고 얻은 전리품을 봐야겠지.
자동인형들이 보스 몬스터의 잔해에서 아이템을 몇 개 가져왔다.
아쉽게도 해골왕의 축성 시리즈가 또 나오진 않았지만 당장 비싸게 팔 수 있는 보석이 있었다.
“이건... 다이아몬드인가?”
손톱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영롱하게 빛나는 투명한 보석.
내가 전문 보석감정사가 아니라서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1캐럿 내외의 다이아몬드로 보였다.
탑을 가는 주된 목적은 희귀한 아이템이지만, 가끔 이렇게 평범한 보석도 나온다.
가격은 천연과 인조의 중간 정도.
처음에는 천연보다 비싼 프리미엄이 붙었지만 시간이 흘러 가격이 꽤 내려갔다.
그래도 하루 일해서 버는 돈으로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아이템 취급이 아니라 인벤토리를 차지하지 않는 점이 좋다.
그냥 주머니에 담아가도 되니까 말이지.
그다음은 흰색 액체가 담긴 병이었다.
【엑토플라즘 포션 (하급)】
대상에게 저주를 부여한다.
언데드에게 사용 시 HP를 약간 회복한다.
언데드 종류의 몬스터를 잡으면 랜덤하게 나오는 포션.
네크로맨서나 연금술사는 물론 방역이나 제약, 가끔 상조 회사에서 매입하는 물건이다.
하급이면 병당 20만 원이었지.
저주는 1분마다 최대 체력의 1% 데미지를 주는 디버프다.
하지만 보통 수준의 저항력만 있어도 쉽게 걸리지 않아 낮은 확률에 기대고 공격에 쓰기보다는 대부분 언데드 회복에 사용한다.
마지막은...
“이건 대박이네!”
해골 모양 장식이 달린 검.
부산물이나 보석도 나쁜 건 아니지만, 역시 아이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건 이런 장비 아이템이다.
가장 비싼 건 갑옷, 그다음이 무기.
소모품이나 부산물과 달리 이런 것들은 예술작품처럼 단순히 돈 많은 일반인에게도 수요가 있다.
【비탄의 검 (C)】
[속성]: 물리 / 부정
[내구도]: 70 / 70
[공격력]: 물리(140) / 부정 (80)
1층 보스를 잡고 나온 무기인 만큼 한계가 명확하지만 초심자에겐 차고 넘치는 성능이다.
같은 아이템의 D등급이 200만 원 좀 넘은 가격에 팔렸던 게 기억난다.
그렇다면 C등급은 500만 원 정도 되지 않을까.
“되팔이나 하던 것도 나름 도움이 되네.”
탑에 들어갈 능력이 안 돼서 낭비한 허송세월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아직 보석의 감정을 안 해서 확실하진 않지만, 오늘 하루 거의 천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벌 수 있다면 금방 건물주 정도는 될 수 있겠지.
사실 제대로 된 각성자라면 이게 정상이다.
각성자 대부분은 탑을 등반하는 것만으로 1년도 안 돼서 평생 쓸 돈을 버는 게 기본이다.
게다가 대기업 후원과 방송 출연, 광고 모델 등 이런저런 부업까지 뛰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괜히 도서관이나 서점, 동영상 플랫폼이 각성과 탑 등반에 대한 걸로 가득 찬 게 아니지.
“어디 보자.”
인벤토리는 비탄의 검과 엑토플라즘 포션을 제외하고도 여러 잡템으로 거의 가득 찼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돌아가도 되겠지만...
“...”
나는 보스 몬스터를 잡고 나타난 2층 통로를 보았다.
어차피 싸움은 전부 자동인형에게 시켜서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배가 좀 고프긴 하지만 징징거릴 정도는 아니고.
무엇보다 지금 내 뒤에는 세 배 이상 늘어난 자동인형들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시겠습니까?]
[1층 활동에 대한 평가 결과가 탑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됩니다.]
층을 올라갈 때는 이런 식으로 평가가 저장된다고 듣긴 했지.
하지만 그 정보가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협회나 정부가 열람한다는 소문은 있지만 둘 다 공식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다.
물론 나를 포함해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1층에서 평생 지낼 수도 없지만.
어차피 개인 정보 같은 건 굳이 이런 거 아니라도 매일 유출되는 세상이기도 하고.
인터넷 쇼핑몰 같은 곳에 가입만 해도 알게 모르게 팔리잖아.
“올라간다.”
[‘군단 진화’ 김대성 님의 1층 평가 결과가 저장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2층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
“팀장님, 방금 괜찮은 신입이 들어온 것 같은데요?”
“그래? 어떤 녀석인데?”
“군단 진화. 1층 평가가 B예요.”
탑의 평가는 여러 요소를 종합해서 이뤄진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보스와 몬스터를 쓰러뜨렸는지, 처음 탑에 들어갔을 때부터 통과할 때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등이다.
“군단 진화가 뭔지 아직 잘 모르잖아. 초심자가 B급을 받을 정도면 좀 치는 특성일 텐데. 이번에 누가 나가지?”
“화연 씨요.”
“그럼 문제없겠네. 오늘도 힘내볼까, 각성자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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